I Need A Friend Who’s Close But Far Away

에디터 K의 가소로운 일상 기행
딱 하루만큼의 관계

오늘 사랑하고 내일 헤어지는 여행. 내겐 그런 취미가 필요하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진다. 책 사는 걸 좋아하지만 읽지는 않고, 수영과 유도를 했지만 꾸준하지 않았으며, 음악 감상을 말하기엔 박재범 노래만 반복해 듣는 탓이다. 베이킹이나 서핑처럼 생산적이고 간지 나는 취미를 가진다면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파리바게뜨 피자빵보다 나은 빵을 만들 자신은 없다. 요즘 나는 퇴근 후에 마라샹궈(5단계)에 혼술을 하며 밀린 예능(<스트릿 우먼 파이터>) 보는 걸 가장 좋아한다. 하지만 차마 언니들의 싸움을 보며 질질 짜는 걸 취미라고 자랑하고 싶지는 않다. 예능 보며 우는 아저씨만큼 꼴 보기 싫은 것도 없으니까.

한때는 여행이 거의 유일한 취미였다. 여름휴가를 맞아 떠나는 여행, 일을 그만두고 오랫동안 집을 비우는 여행, 사랑하는 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이별을 준비하는 여행. 일상을 기념하는 매 순간에 여행이 있었다. 떠나기 위해 머무는 사람처럼 살았다.

얼마 전에도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여행 이야기가 나왔다. 하늘길이 열리면 제일 먼저 어디를 가고 싶은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떠들어댔다. 발리에서 풀만 먹으며 요가를 하겠다는 친구, 런던에서 유학 중인 애인이 바람을 피우는지 확인하고 오겠다는 친구, 뉴욕 플라자호텔에 묵으며 어메니티를 잔뜩 훔쳐 오겠다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얘는 뻔해. 염소랑 노인밖에 없는 파키스탄 어느 촌구석에 처박혀서 물담배나 피우며 지낼걸?” 친구 중 하나가 아는 체 떠들어댔다. 나는 대답 대신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참내, 제까짓 게 뭘 안다고.’

가진 게 시간뿐이던 스무 살 무렵에는 세상으로부터 격리되는 걸 즐겼다. 인적 없는 동굴을 찾아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 그 시절을 풍경화로 그려본다면 흙먼지 날리는 무채색의 바위산이 떠오른다. 무언가를 책임지는 것이 두려워 여기저기 숨어 지내던 날들. 고독하고 싶어 안달이 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무섭고 자주 뼈가시리다. 빛이 나는 솔로였던 스무 살의 나와, 젊은 척, 힙한 척 발악할수록 “저 꼰대는 뭐야?”라는 말을 듣게 되는 마흔의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그 간극을 깨닫게 될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 삭풍이 분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염소와 노인뿐이라는 파키스탄의 시골 마을 여행은 다음 생으로 미루기로 한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그림 한 점을 보려고 기꺼이 북유럽 항공권을 끊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EDM이 좋다는 이유로 이비사행 크루즈에 올랐다. 라멘 투어를 하겠다고 당일치기로 일본에 다녀온 친구도 있다. 나 역시 여행지에서 만나는 훌륭한 음식과 영감의 순간, 위대한 건축을 흠모한다. 하지만 내가 여행에서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낯선 이를 만날 때다. 나이도 출신도 모르는 생면부지의 타인을 만나 평범한 하루를 함께 보낼 때, 별것 아닌 것 같던 여행의 결이 몇 겹은 더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위대한 만리장성을 혼자 걸었을 때보다 여행지에서 새로 사귄 친구와 함께 걸은 돌담길이 아련하고, 웅장한 경기장에서 혼자 관람한 축구 결승전보다 작은 펍에서 훌리건들과 함께 소란을 피우던 순간이 더 그리워지는 것이다.

전 지구적인 전염병으로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자 새 친구를 사귈 길이 요원해졌다. 오래 알던 친구들은 결혼이라는 돌아오기 힘든 강을 건넜다. 마침 다니는 직장도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료들조차 메타버스 안에서만 만날 수 있게 됐다. 매일 같은 풍경 속에서 (혼자) 눈을 뜨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혼자) 밥을 먹고, 매일 같은 자리에서 (혼자) 용변을 보는 일상이 이어졌다. 알람을 맞추지 않았다면 어제와 오늘을 구분할 수조차 없는 식상한 하루. 하나의 생물이 도태되는 과정을 관찰하고 싶다면 훌륭한 표본이 될만한 삶이었다. 서둘러 몸에서 빠져나간 여행을 채워야 했다. 정확하게는 뉴페이스를 만나야 했다.

처음은 작은 서점에서 주최하는 시 창작 모임에 참여했다. 젊은 시인 선생님의 주도 아래 각자 써 온 시를 읽으며 의견을 주고받았다. 기대했던 것만큼 차분하고 나풀나풀한 분위기였다. 그러던 중 참석자 한 명이 자신의 인생을 김장 김치에 비유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최루탄이 터진 것마냥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혼자 있을 땐 <고등래퍼>를 보면서도 울어버리는 나지만 공개된 공간에서 모두 함께 우는 울음은 견디기 힘들었다. 대중목욕탕에서 존경하던 은사님의 나체를 마주친 기분이랄까. 김장 김치라는 비유에 울음이 나지 않던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그날 이후, 역시 시는 혼자 읽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린 채 모임과 멀어졌다.

두 번째로 찾은 것은 조기 축구였다. 마침 서울 각 동마다 아마추어 축구 리그가 활성화되어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운동장을 홈그라운드로 쓰는 축구팀에 문의했다. “편하게 주말 아침 6시까지 와서 운동하면 됩니다.” 아침 6시라는 말이 몹시 불편했지만 일주일에 하루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쿠팡에 접속했다. (당연하게도 모든 취미의 시작은 쇼핑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장비를 검색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스포츠 양말과 정강이 보호대를 사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가 신었다는 핑크색 나이키 축구화를 새로 맞췄다.

드디어 주말 새벽, 운동장은 한산했다. 어슬렁어슬렁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간단한 소개를 마친 뒤 감독님의 주도로 준비 운동을 진행했다. 적게는 20대 대학생부터 많게는 70대 할아버지까지, 반세기를 아우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막내그룹에 속했다. 두 시간을 쉴 새 없이 뛰었다. 공을 차고, 상대의 정강이를 차고, 전력질주하고, 나뒹굴고, 쥐가 나고, 절뚝거리기를 반복했다. 운동이 끝나고 땀범벅이 된 티셔츠를 갈아입으며 음료수를 나눠 마셨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후에야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 중에 유난히 말이 많고 찰진 욕을 구사하던 아저씨가 다가왔다. “그래, 결혼은 했고?” 아, 이 익숙하고 불길한 패턴. 아니라고 대답하자 “그럼 다녀온 건가?” 하고 물어왔다. 그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자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안 해서 큰일이야!”라는 깊은 태클이 들어왔다. 그다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론. ‘저 청년이 결혼을 못 하는 건 이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그러므로 반드시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 대꾸할 힘이 1그램도 남아 있지 않아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아저씨의 타깃은 축구화를 갈아 신던 대학생에게 옮겨 갔다. “최 군아 너는 안 그럴 거지? 연애 오래 할 필요도 없어. 살아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대학생 최 군은 자주 겪는 일인 듯 무심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아, 뭐래. 꼰대가.” 첫 모임 이후 방역 수칙이 바뀌며 운동장 이용 금지령이 떨어졌다. 조기 축구 모임은 무제한 연기됐다. 아마 그 조치가 없었더라도 내 핑크색 축구화가 두 번 다시 신발장에서 나오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 두 번의 모임 실패의 원인을 금세 알아차렸다. 시 쓰기나 축구 자체보다는 새로운 만남에 더 관심이 있었던 거였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대하는 관계의 깊이가 저마다 다르다는 게 버거웠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눈물을 견디고, 친근함을 가장한 무례를 감당하기에는 내 그릇이 작았다. 그러고 보면 이제껏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연락도 하지 않는다. 그저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한 얼굴들을 추억하며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서로를 깊게 알려고 하지 않는 것. 오늘 만나도 내일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어, 당신과는 딱 하루 정도의 관심만 주고받겠다고 합의하는 관계. 그래서 다시 취미가 무어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조금 더듬거리며 “여행···이려나?” 하고 대답할 테다.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관심받고 싶은 마음과 관심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 그 미묘한 구분을 온전히 설명할 방법이 내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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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