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T A PHOTOGRAPHER

구멍 너머의 일

구멍 너머의 일

I AM NOT A PHOTOGRAPHER

책상 위에 현상해야 할 필름이 있고 그 안에는 내 가족의 사진이 담겨있다. 그걸 만지작거리다가 언젠가 영화에서 본 구멍 하나를 떠올렸다.

구멍을 통해
뭔가를 보는 일

“볼 것 같아?”, “글쎄, 선아는?”, “나도 글쎄….”, “어쩐지 들여다보게 될 것 같지 않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어느 호텔에 묵는데, 옆방엔 신혼부부가 잠을 자고 있다. 그 방과 내 방 사이에 구멍이 뚫려있어 그들을 볼 수 있다면 그 너머를 볼 것인지에 관한 대화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함께 본 영화 〈바이 더 씨By the Sea〉에 있었다. 권태로운 중년의 부부가 여행을 떠나 바다 옆 호텔에 묵는다. 그들은 우연히 구멍을 하나 발견하고 그걸 통해 옆방의 신혼부부를 훔쳐보게 된다. 서로의 몸을 만지는 일에 신이 난 옆방 커플을 훔쳐본 부부는 처음 이 호텔에 들어왔을 때와는 조금씩 달라진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웃음을 짓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도 한다.영화를 보고 바로 저녁 식사를 한 우리는 구멍을 통해 뭔가를 보는 일에 관한 대화를 시작한 것이다. 

“볼 것 같아?”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타인의 은밀함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고, 어린 시절 누군가의 일기나 편지를 몰래 본 일을 털어놓거나 일부러 비밀을 만들어 숨겨둔 경험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사진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른 이의 비밀을
많이 본 사람의 태도

수년째 한 사진관에 필름을 맡겨왔다. “언제부터 거기에 맡겼어?”, “음, 2008년 즈음에는 코스트코에서 필름 현상과 스캔을 해줬거든. CD로 스캔한 사진을 구워주는 것까지 15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보다 싼 곳은 없었지. 한 지점씩 서비스를 중단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어느 지점에서도 해주지 않더라. 여기저기 찾다가 그 사진관을 알게 된 거야. 코스트코 다음으로 저렴한 곳이었거든. 잘은 모르겠지만 얼추 10년은 되지 않았을까?” 필름을 맡기러 가거나 찾으러 갈 때, 사진관 주인 뒤로 종종 컴퓨터 모니터가 보였다. 줄지어 늘어선 필름 틈으로 보이는 화면에는 이제 막 스캔한 다른 사람들의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사진관 주인은 여기에 필름을 맡기는 사람들의 사진을 다 볼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구멍 이야기를 하다가 그때가 생각난 것이다.

그 사진관에서 스캔한 필름 중에는 남이 보면 안 되는 것이 있었다. 애인의 엉덩이도 있었고, 팬티만 입고 거울에 비친 나를 찍어둔 것, 친구가 자면서 가슴팍을 긁던 사진도 있다. “주인은 그걸 다 봤을까.” 그런 얘기를 친구에게 들려주다가 사진관 주인이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여러 번 갔지만 “선아 씨, 오셨어요?”라던가 “이번 필름 좋던데요.” 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친구의 결혼 사진 촬영을 돕기 위해 다른 사진관에 간 적이 있다. 그 사진관 아저씨는 예비 신부인 내 친구에게 “어디에선가 본 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아, 전에 이 근처에서 일을 했어요. 필름도 몇 번 맡겼는데.”라고 답했고, 아저씨는 활짝 웃으며 “기억나요! 사진 느낌이 좋아서 기억하고 있어요. 카메라 뭐 쓰세요?”라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촬영 내내 그는 내 친구와 많은 말을 했다. 밝고 기분 좋은 사람이었지만, 영화 속 구멍이 생각나서 나는 자꾸 조바심이 났다.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며 친구에게 물었다. “저 사진관에 또 사진 맡길 것 같아?”, “음, 아니.”

내가 본 걸
누군가 본다면

가족과 일본의 어느 섬에 다녀왔다. 몰락해가는 온천 마을에 갔다가 아직 문을 닫지 않은 호텔을 하나 발견했다. 줄지어 늘어선 건물들은 하나같이 색이 바래있었는데, 그 스산한 틈에 단정하게 열려있는 호텔이 있어 자연스레 그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 앞에서 “스미마셍.”이라 몇 번 외쳐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무심결에 발견한 탁상 종을 세게 치니 안쪽에서 한 노인이 나왔다. 입장료는 500엔, 한화로 5천원 정도다.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았고 그는 지하로 내려가라는 손짓을 했다. 온천장으로 가는 길은 어두웠지만 어쩐지 무섭지는 않았다. 낡긴 했지만 누군가의 손길이 꾸준히 닿아있는 것들이 보였다. 한참을 걷다가 여탕을 발견해 들어갔다. 탈의실에 들어서자 여섯 개의 바구니가 보였고, 그 뒤에는 온천 그리고 그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와!” 엄마, 여동생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 한동안 감탄만 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구나. 바구니에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 던지고 온천으로 뛰어들었다. 바다가 보이는 따뜻한 욕조, 이곳에 우리 가족밖에 없다니. 우리는 큰 소리로 행복을 이야기했다. “너무 좋다! 최고야! 행복해!” 이런 말들을 호들갑 떨며 해본 게 언제였을까. 웃고 있는 엄마와 동생을 뒤로하고 탈의실에 가서 카메라를 꺼내 왔고, 한 번도 찍은 적 없는 사진을 찍게 되었다.

처음에는 조심스레 그들의 뒷모습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두어 장을 찍고 나자 나도 모르게 앞으로 가버렸다. 그저 아름다워서 담아두려는 순간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경우는 아녔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나 혼자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순간이었다. “언니, 지금 우리 알몸을 찍는 거야?” 동생이 놀라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내 작은 카메라를 흘긋 보던 엄마와 여동생은 이내 하던 이야기로 돌아갔다. 한동안 찍고 싶은 것이 없었다.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나가지만 꺼내는 일은 드물었다. 일본에 가기 직전에는 멜버른에 갔었는데, 거기서도 필름 한 롤을 채 찍지 않았다. 몇 달 내내 카메라에 들어있기만 하던 필름 한 롤을 그 온천에서 다 썼다. 당연히 사진을 안 찍을 줄 알고 필름도 더 챙겨가지 않았기에 딱 한 롤뿐이었다.

여행은 끝났고 지금 내 책상 위에는 그때 찍은 필름이 있다. 직접 현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사진관에 맡기겠지. 사진관 주인이 이 필름에 담긴 것을 보게 될까. 나로선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을 생각하길 그만두고, 바다 옆에 있는 호텔을 하나 그려본다. 방마다 벽이 있고 벽에는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있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사진 박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