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beautiful

in turkey

이스탄불의 길거리를 걷다 쇼윈도에 걸린 카펫에 새겨진 한 문장을 봤다. “In Turkey, I am beautiful.” 여행을 하는 내내 터키의 자연과 풍경에 압도되어 그만 자신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내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 주는 그 마음씨가 고마웠다. 터키에서 ‘사람’이란 그렇다. 자연과 신 앞에서 어쩌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다

터키로 가는 길

비행기 안의 문화를 좋아한다. 안전띠를 풀어도 좋다는 신호와 함께 들리는 알림음, 아기자기하게 포장된 기내식을 나누어 주는 승무원들의 숙련된 노동,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어디쯤 왔는지 알려주는 모니터를 보는 일이 모두 흥미롭다. 비행기 안에서 좋아하는 여러 가지 중 음악 라이브러리를 뒤적거리는 일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음반이 저장되어 있다는 걸 발견한 후론 영화나 게임보다 음악 채널에 집중한다.

터키로 향하던 날도 그랬다. 재즈와 블루스 장르부터 샅샅이 뒤지다 보니 좋아하는 음반들이 금방 눈에 띄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Kind of Blue>, 팻 메스니와 브래드 멜다우의 <Metheny/Mehldau>, 후앙 질베르토와 스탄 겟츠의 <Gilberto/Getz>. 하지만 한국에서도 즐겨 들었던 익숙한 멜로디에 이내 지루함을 느낀 나는 새로운 음악을 찾아 클래식 쪽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고른 음반은 파질 세이라는 피아니스트의 <1001 Nights
in the Harem>이라는 음반이었다. 단지 음악가의 이름과 음반의 타이틀에 끌려 음악을 듣기 시작했을 뿐인데 음반에 관한 설명을 읽다가 살짝 놀랐다. 파질 세이, 그는 터키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였다. 터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고른 음반이 터키 뮤지션의 것이라니, 그 우연한 일치가 퍽 낭만적이라는 생각에 음반의 곡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음미하며 들었다. 수록곡 가운데 ‘Summertime Variation’이라는 곡은 지금껏 들은 ‘Summertime’ 피아노 연주 중에서 가장 과감하고 변화무쌍했고, ‘Patara Ballet’은 어찌나 감미로운지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였다. 이날처럼 비행기 안에서 시간이 빨리 갔던 적이 있었을까. 재미있는 책을 아끼고 또 아껴서 읽으려고 해도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는 통에 안달이 나는 것처럼, 터키로 가는 길이 심상치 않았다.

터키의 풍경

새벽 다섯 시에 이스탄불 아타튀르크Ataturk 공항에 도착했다. 호텔에서 체크인하고 나니 해가 뜨고 있었다. 동틀 무렵의 술탄아흐멧Sultanahmet 지역을 산책하면서, 나는 곧장 이곳의 풍경에 심취해 버렸다. 터키 전통의 이즈니크문양으로 장식된 오래된 건물의 벽, 복잡하게 새어 나오는 전통 전등의 빛, 곳곳에 널려 있는 고양이들은 모두 이상하리만치 낭만적이고 환상적이었다. 이스탄불Istanbul을 포함해서 부르사Bursa, 안탈리아Antalya, 파묵칼레Pamukkale, 카파도키아Cappadocia 같은 터키의 도시들을 보름 동안 돌아다녔다. 다니면 다닐수록 이 나라의 구체적인 장면보다는 희미하고 추상적이지만 강렬한 인상에 계속 이끌렸다.

그건 아마도 터키에는 인간의 문명이 어쩌지 못하는 대자연의 숨결이 살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부르사의 울창한 숲, 안탈리아의 투명한 바다, 파묵칼레의 하얗고 푸른 바위들, 카파도키아에 솟아난 기암괴석들, 그런 것들은 고작 인간에 지나지 않은 내가 명확하게 파악할 만한 인과관계를 가진 것들이 아니었다. 터키의 풍경들은 자연이라는 문자 그대로 그저 스스로 그러한 것뿐이었다. 그 담대하고 신비한 위용에 한동안 몸을 떨었다.

풍경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하여

다시 이스탄불로 돌아왔을 때 길을 지나다 어느 카펫 가게에서 쇼윈도에 내건 한 문구를 발견했다. “In Turkey, I am beautiful.” 그 문장은 호주 시드니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의 칼럼니스트인 브랜단 샤나한Brendan Shanahan이 터키에서 겪은 일들을 담은 여행 에세이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내가 터키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 명씩 저 문장을 읊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들의 건강한 살갗에 서서히 와 닿는 태양 빛, 평생 하나의 일에 몰두해 온 이들의 숙련된 자세, 순진함을 오래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의 수줍은 눈빛 같은 것들이 모두 애틋하게 아름다웠다.

저 문장을 속으로 읊다가 자연스럽게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통하는 케말 아타튀르크Kemal Atatürk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그는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자 터키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다. 본명은 무스타파 케말이지만 그의 인덕 때문에 ‘터키의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타튀르크라는 칭호가 붙었다. 이스탄불의 공항에 붙은 아타튀르크라는 이름 역시 그에게서 따온 것이다. 그는 침략국으로부터 국민들을 지켜내었고, 국민들의 인권신장을 위해서도 많은 애를 썼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1938년 8월 11일 9시 5분 자신의 집무실에서 눈을 감았고, 그의 집무실이 있던 건물의 모든 시계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9시 5분에 맞춰져 있다. 터키인들에게 그가 죽은 이후의 시간은 아무 의미도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 테다. 터키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이토록 아름답게 여겨진다. 

그동안 온통 터키의 추상적인 풍경으로만 향했던 시선의 방향을 단번에 사람들에게 돌린 나는 비로소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이스티클랄 거리Istiklal Cad를 걷다가 나를 위한 선물 하나를 샀다. 터키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들었던 파질 세이의 음반. 그의 화려한 연주를 들으면서 언제든 터키를, 또 그 속의 나를 기억할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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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

글·사진 김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