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ILY EVER AFTER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HAPPILY
EVER AFTER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나는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마을 보라보라에 살고 있다. 아마도 그 이름을 듣고 섬의 위치를 바로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항에서 탑승권을 발급해주는 직원조차 늘 어디에 있는 곳인지 묻고는 하니까.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 세계지도에서 찾아달라는 친구의 부탁에 남태평양 언저리까지 가서 방향을 잃고 헤매던 때가. 이건 그 즈음의 이야기이다. 한국을 떠나는 게 집에서 멀어지는 건지 가까워지는 건지. 보라보라에 도착하면 여행이 시작되는 건지 생활이 시작되는 건지. ‘그’가 외간남자인지 남편인지조차 아직은 모든 것의 경계가 희미했던, 나의 첫 보라보라, 그 시작을 함께 해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다의 맛

어느 소설의 제목처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세상에 둘도 없이 게으른 바다가 바로 마티라 해변이다. 바다 수영이 처음인 나에게는 더없이 다정한 곳. 실내 수영장과 같은 잔잔함, 완만하게 깊어지는 바닥, 햇볕에 따뜻해진 물까지. 이곳 보라보라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신기했다. 지금껏 내게 바다는 그저 바라보는 곳이었는데. 그는 오히려 그런 나를 신기해했다. “한국에 바다가 그렇게 많은데 왜 수영을 안 했어?” 그러게. 왜 안 했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물안경을 침으로 뽀득뽀득 닦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면 김이 덜 서려서 잘 보여.” 나는 물안경에 스노클 대롱을 끼워서 쓰고, 오리발을 신고, 구명조끼까지 다 입고서야 물 안으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재빠르게 숨는 물고기들이 보였다. 너무 긴장한 탓인지 자꾸 숨이 가빴다. 입에 물고 있는 대롱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는데 코가 숨을 뿜어댔고, 그럴 때마다 여기저기서 물이 들어왔다. 혀는 짜고 코는 맵고, 정신없이 물을 먹었다. 다행히 호흡법은 금세 익숙해졌다. 자전거 탈 때랑 비슷했다. 한번 알아차리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무엇. 쭈글쭈글해진 손으로 다시 구명조끼를 꽉 조이고 바닥을 찼다. 할 수 있다. 붕 하고 몸이 떠올랐다. 귀에 들어올 듯 들어오지 않을 듯 물소리가 찰방찰방 멀어지다 순간 고요해졌다. 숨소리만 귓속에서 색색 울렸다. 

언제부턴가 눈을 뜨면 그 고요함을 기다리게 되었다. 서울보다 한없이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곳에 살면서 어째서인지 나는 자주 또 쉽게 피로해졌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음할 수 없는 단어가 계속 나타났다. 이리저리 발음을 바꿔가며 말해도 상대가 알아듣지 못했고 하려고 했던 말과 전혀 다른 말을 해버리기도 했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웠다. 말을 하면 말에 숨겨둔 뉘앙스까지 귀에 탁탁 꽂히는 나의 모국어가. 그럴 때마다 그 사람은 바다에 가자고 했다. 조용한 곳에서 쉬다 오자고. 가만히 물 위에 누우면 또 귀에서 물소리가 찰방찰방 멀어지다 고요해졌다. 늘 그랬다. 그의 말이 맞았다. 바다에 오면 정말 쉴 수 있었다. 입도 귀도 다 쉴 수 있었다. 바다 아래선 낯선 말을 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결에 휘어지고 부서진 빛들을 손으로 당기면, 몸이 점점 앞으로 나아가며 쭈욱 펴졌다. 움츠러든 어깨도 등도 쭈욱쭈욱 펴졌다. 

구명조끼 없이도 물에 들어가는 게 편안해졌던 어느 날이었다. 저만치 앞에서 자기 쪽으로 오라고 수신호를 보내는 그가 보였다. 빨리 오라고 재촉을 했다. 거북이라도 나타난 건가. 오리발을 위아래로 몇 번 굴렀더니 그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묘하게 상기된 얼굴로 그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산호초와 형광색 립스틱을 바른 대왕조개, 숨어있는 물고기들 그리고 작은 동그라미가 보였다. 그의 얼굴을 봤다. 다시 동그라미를 봤다. 반지였다. 그는 입 모양으로 무언가 말을 하려 했다. 그런데 물속이라 자꾸 물방울만 꼬르륵 올라갔다. 웃음이 나왔다. 푸하. 아주 오랜만에 물을 먹었다. 짜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입 모양만으로도, 귀에 탁탁 꽂히는 나의 모국어처럼 들려왔으니까. ‘윌. 유. 메리. 미?’

숲에서 자란 아이들

어디선가 전화벨이 울렸다. 졸린 눈을 비비며 전화기를 찾았다. 침대 아래 떨어져 있었다. 마리오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그가 대뜸 물었다. “오고 있어?” 순간 늦잠을 잤나 싶어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은 오전 9시였는데 아직 7시도 되기 전이었다. “아니, 아직…. 9시까지 너희 집 앞으로 갈게.” 우리는 마리오와 함께 오테마누 숲에 놀러 가기로 했다. 마침 마리오의 집 앞에서 이어지는 숲길이 있어 그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삼십 분쯤 지나자 다시 전화가 왔다. “오고 있어?” 십 분이나 지났을까. 또다시 전화가 왔다. “오고 있어?” 약속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아있었다. 하지만 지금 가겠다고 대답했고, 십 분 만에 마리오의 집에 도착했다. 마리오네 엄마가 두 팔을 벌리고 걸어왔다. 우리도 두 팔을 벌리고 그녀를 안았다. 그녀는 비닐 배낭에 물을 넣어주며 첫 번째 포인트까지만 다녀오라고 당부했다. 자기보다 키가 작은 엄마를 내려다보던 마리오는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점심 전까지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출발하려는데 엄마 뒤에 수줍게 서 있던 꼬맹이가 울었다. 마리오의 사촌 동생이라고 했다. 그녀는 꼬마를 같이 데려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마리오도 꼬맹이도 슬리퍼를 신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녀가 말했다. “숲은 이 아이들의 놀이터니까.” 그렇게 네 명의 놀이터 원정대가 꾸려졌다.

숲길을 걸으며 마리오는 꼭 필요한 말만 했다. 큰 이파리들이 힘없이 늘어진 큰 줄기를 지나며 “바난(바나나).” 노란 알맹이가 주렁주렁한 나무를 지나며 “망그(망고).” 그에 반해 꼬맹이는 이런저런 질문을 늘어놓았다. 아무리 꼬맹이라도 현지어가 조금 섞인 불어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대꾸할 말들을 겨우 생각해내면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간 지 오래였다.
걸음도 엄청 빨랐다. 풀이 무릎까지 자라난 곳을 지나가니 드디어 숲이 나왔다. 나무가 하늘을 가릴 만큼 촘촘하게 자라있었다. 어디든 그늘이었다. 공기도 선선했다. 다들 원숭이처럼 잘도 올라갔다. 처음의 걱정과 달리 슬리퍼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마리오와 꼬맹이는 종종 나를 돌아봤고, 물을 마시며 나를 기다려줬다. 꼬맹이는 저만치 앞서 가다가도 입에 손을 대고 큰 소리로 물어봤다. “괜찮아?”

얼마나 올랐을까. 평평한 돌 바닥 앞에서 마리오가 말했다. “여기야.” 네 명이 앉아서 쉬기에 충분한 공간이었다. 바닥에 앉자 나무들 사이로 가려져 있던 작은 섬이 나타났다. 숨겨져 있었던 비밀의 낙원 같았다. 꼬맹이는 이것저것 가리키며 감탄을 했다. “이 나무만 잎이 다 떨어졌어.”, “모기가 엄청 빠르게 날아다니네.”, “자꾸 바람이 이쪽에서 불어.” 보이는 것을 그대로 읽어내는 말들이었다. 이렇게 하나마나 한 말들을 세상 신나서 하 다니.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게 되어버린 것들인데.

“조금만 쉬다가 돌아갈까? 지금 몇 시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마리오에게 물었다. 그러자 꼬맹이가 대신 대답했다. “마리오는 시간을 볼 줄 몰라.” 문득 아침에 계속 울렸던 전화기가 떠올랐다. 9시까지 데리러 간다는 말에도 계속해서 울렸던 전화. 사람들은 마리오에게 발달장애가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옳게 보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만 보는 건 아니었다. 마리오에게는 아주 좋은 어부의 눈이 있다고 했다. 가족들의 식탁에 올라오는 제일 큰 물고기는 늘 마리오가 잡는다고 했다. 나중의 일이지만, 멀리서 놀러 왔던 우리 아빠에게 문어를 선물한 사람도 마리오였다. 꼬맹이는 마리오가 자기 마음을 제일 잘 안다고 했다. 목이 마르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마리오는 늘 물병을 열어준다며 신기해했다.

지금 내 눈앞에 마리오가 앉아 있다. 하지만 이곳에 앉아 있지 않은, 그러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마리오가 훨씬 많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었다. 그는 한 단어로 정의 내려지기에 너무나 다채로운 존재였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럴 것이다. 문득 세상의 언어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더 필요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섬의 시간은 한없이 천천히 흘러가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파른 곳이 나올 때마다 마리오는 어디선가 두꺼운 줄기를 찾아 주었다. 그걸 잡으면 한결 거뜬하게 내려갈 수 있었다. 꼬맹이는 미끄러지듯 뛰어 내려가며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내심 보호자라고 생각하고 함께 왔던 속내가 민망했다. 숲에서 자란 아이들이야말로 도시 어른의 보호자였다. 잠시 멈춰서 숨을 쉬는 동안, 마리오와 꼬맹이가 빠르게 멀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기꺼이 멈춰 서서 걸음이 느린 나를 기다려줄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집에서 집으로

새벽 세시의 군산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텅 비어버려 한없이 고요한 도로. 나를 태운 아빠의 낡은 차가 덜덜거리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차표를 사려는데 아빠가 지갑을 열었다. “아빠가 살게.” 물을 하나 사는데도 “아빠가 살게.” 사람 둘은 거뜬하게 들어갈 이민 가방을 버스에 옮겨 실을 때도 “아빠가 할게.” 이제는 내가 돈이 더 많다든가 몸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든가(치욕) 하는 건 아빠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버스가 떠나려면 시간이 남아서 앞에 나와 기다렸다. “아빠 먼저 들어가.” 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날이 쌀쌀했다. 사람들은 담배를 피웠다. 담배도 끊어버린 아빠는 할 일이 없었다. 누군가 직원에게 인천공항에 언제 도착하느냐고 물었다. 서너 시간은 걸린다고 했다. 새삼스레 핸드폰에 받아둔 티켓을 다시 확인했다. 돌아오는 편이 없는 편도 항공권이었다. ‘우리 이제 언제 봐 아빠?’ 같은 말을 하려다 그만뒀다. 울음보는 늘 말 주머니가 터뜨리는 법이니까. 나는 아직 울 준비가 되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에야 아빠는 처음으로 ‘아빠’가 들어가지 않은 문장을 말했다. “거 도착하면 엄마한테 전화 넣어라.”

여유롭게 출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탔다. 혼자였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뭐 혼자서 비행기를 타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기내식을 먹고 잠을 청했다. 얼마나 잤는지 일어났을 땐 기내의 불이 다 꺼져있었다. 보조등을 켰고, 고요했고, 웅웅거리는 비행기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람에게 가까워지는 일은 가족에게서 멀어지는 일이라는 것이 새삼 실감났다. 아빠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빠가 살게. 아빠가 할게. 아빠가…. 나는 서둘러 보조등을 껐다. 

“이 비행기는 잠시 후 보라보라 섬에 착륙하겠습니다.”

창문을 올리자 빛이 쏟아졌다. 인천공항을 떠나고 비행기만 두 번을 더 갈아탔다. 이착륙을 반복하며 멍해진 귀에도 승객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목에 꽃 목걸이를 걸고 있는 신혼여행객이 비행기 창문에 바짝 기대어 사진을 찍었다. 구름 아래로 솟아오른 오테마누 산이 보였다. 초록이 촘촘하게 채우고 있는 섬의 끝에는 바다가 있었다. 섬 둘레에 흰 우유를 둥굴게 쏟아 부은 듯 파랑의 경계가 번지고 있었다. 그 위로 비행기 그림자가 보였다. 승무원은 경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을 나무줄기를 엮어 만든 듯한 움막으로 안내했다. 작은 공항이었다. 더운 바람에서 희미한 단내가 났다. 티아레 꽃 향기였다. 유리문을 지나자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벌써부터 서로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사람, 달려가 부둥켜안는 사람, 보드에 적힌 이름을 확인하고 악수하는 사람, 떠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설레었다가 긴장이 되었다가 설레었다가.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끝에서 그를 발견했다. 나보다 더 긴장한 얼굴로 두리번거리고 있는 그. 사람 무리에 던져진 한 마리의 미어캣 같았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마침내 나는 울 수 있었다.

내 손 위에 그 사람의 손이 포개졌다. 시장님은 무슨 말인지 모를 복잡한 서류를 읽고 있었다. 내가 태어난 곳, 아빠와 엄마의 이름을 읽을 때조차 낯설게 들렸다. 므슈 킴 그리고 마담 팍. 왜 김 씨와 박 씨는 바다를 건너면 김 씨와 박 씨가 되지 못하고 이 고생을 하고 있을까, 같은 생각들을 하다가 시장님의 말을 완전히 놓쳤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축복의 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장님이 우리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을 때, 마침내 익숙한 문장이 들려왔다. “맞다면, ‘네’ 하고 대답하세요.”, “네” 증인으로 와준 친구들이 웃었다. 반지를 교환했고 키스했다. 그렇게 혼인서약이 끝났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를 믿는 어른이 있을까. 그 누구도 영원을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사랑을 할 때 하는 약속들은 헤어지기 전까지만 유효하다고 했다. 사랑을 해보고 잃어보고 잊어본 사람이라면 ‘영원히 사랑해’라는 말에 더 이상 속지 않게 된다. 그러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아주고 싶은 사람을,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된다. 여기서 진짜 어른들의 동화가 시작된다. 비극일지 희극일지 모르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애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사랑이 허락되는 동안 사랑하는 것뿐이다. 내일의 일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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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김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