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A Better Tomorrow

김한정 식스티세컨즈 디렉터

잘 살기 위해서 잘 쉬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쉬는 일은 늘 뒷전이었다. 그저 눈앞에 주어진 일을 하면서 이번 일을 마치면, 아이가 잠들고 나면,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쉬는 날이 주어져도 잘 쉬지 못했다. 할 일이 없을수록 쉽게 자주 휴대폰을 들었고, 일과 육아, 쉼의 경계가 흐릿했다. ‘이건 쉰 것도 일한 것도 아이를 돌본 것도 아니야.’라는 마음이 들던 즈음 좋은 휴식과 깊은 잠을 소개하는 브랜드 ‘식스티세컨즈’ 김한정 디렉터의 일상을 들여다봤다. 브랜드를 만들며 두 아이를 키워낸 이의 집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고, 평일과 주말, 일과 쉼 사이 안정적인 루틴도 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며 쉼이 반드시 비움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방향을 틀거나 다른 일에 몰입하면서 몸과 마음은 숨 고르기를 한다. 그래서 일상 중 멈춤이라고 인지할 수 있는 나만의 리추얼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반복된 시간으로 삶에 여백이 더해지면 나와 가족의 하루는 조금 더 넉넉해질 테니.

알맞은 쉼으로 나를 지켜내기

“먹는 것과 자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처럼 가장 기본적인 걸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누군가 이렇게 하자고 안 해도 루틴하게 흘러가요.”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식스티세컨즈를 만들어가면서 겪는 고민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SNS에 나눠주셔서 자주 공감했어요.

안녕하세요? 쉼과 잠의 도구를 소개하고 만드는 식스티세컨즈의 9년 차 브랜드디렉터 김한정이에요. 이제 곧 중학생이 되는 시현이와 열두 살 시아, 반려묘 쿠마와 함께 엄마로서도 열네 번째 새해를 맞이했어요.

 

분명 아파트였는데 들어서니 단독 주택 같은 느낌이 들어요.

주택에 살고 싶었어요. 일이 급할 때 아이들을 봐주시는 부모님이 근처에 사셔서 아직은 이 동네를 떠날 수가 없는데, 이 동네의 주택은 마땅치가 않더라고요. 아파트를 알아보면서 교통이 불편해도 산과 가깝고 베란다를 확장하지 않은 집을 찾았어요. 베란다만 나가도 밖과 연결된 기분이 들거든요. 자연의 작은 움직임들을 발견하고 누리는 삶이 참 좋아요. 요즘은 날이 추워져서 가족들이 거실 난로 앞에 옹기종기 모이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마시멜로를 구워 먹거나 영화를 보고, 홈트도 하면서 지내요.

 

생활도 여러 시도를 하며 배우고 성장하는 거 같아요. 이사를 하면서 집이 어떤 존재이길 바랐나요?

회복의 공간이길 바랐어요. 누구나 익숙한 것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거 같아요. 밖에서의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집은 불편한 것들을 내려놓고 나답게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어요. 이사를 결정하기 전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지 가족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그렇게 우리에게 맞춰서 고쳤어요.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집 안에 들어서자마자 외투를 걸어놓고 싶어서, 드레스룸을 거실 맞은편 복도 양옆에 뒀어요. 잠귀가 밝은 우리 부부는 해가 잘 안 드는 방을 침실로 정했고요. 시아는 그네 의자를 자기 방에 놓아달라고 부탁했어요. 거기서 휴대폰을 보는 시간을 좋아해요.

 

인테리어나 자재, 공간 구성도 아름답지만 정리 정돈이 정말 잘되어 있어요. 살림도 많지 않고요.

저희 부부가 정리와 청소 궁합이 정말 잘 맞아요(웃음). 저는 정리에 진심이고 남편은 청소를 하루에 두 번씩 하거든요. 엄마가 되고 나서도 일을 거의 쉬지 않았기 때문에 늘 부모님과 이모님,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살림을 해왔어요. 그러다 보니 그분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집을 나서기 전 꼭 정돈된 모습으로 정리하고,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편이에요. 저에게 정리는 일종의 인수인계인 셈이에요(웃음).

 

일하는 엄마의 하루는 보통 어떻게 흘러가나요?

일반적인 직장인과 비슷해요. 오늘을 잘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잠이 온전히 깨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아침을 준비해요. 아이들을 깨우고 같이 식사를 하는데, 보통은 아이들 식사 시간이 길어서 그사이 청소와 정돈을 해요. 모든 물건이 제자리에 있어야 비로소 출근을 하거든요. 정리하느라 종종 지각하기도 해요(웃음). 집과 직장의 거리가 꽤 있어서 출퇴근하며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저 혼자만의 시간인데요. 이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고 오디오북으로 듣고 싶은 강연이나 음악을 들어요. 업무 시간은 꽤 밀도가 높아요. 야근을 안 하려고 굉장히 계획적이고 촘촘하게 일하는 편인데, 동료들과 대화하며 새로운 일이나 문제의 방향성을 잡는 일들이 많아 수다를 자주 나눠요. 퇴근 후엔 보통 집으로 와서 씻고 정리하고 별다른 것 없는 생활을 해요. 일할 때와 엄마일 때 상황이 바뀌면 거기에 몰입하는 편이에요. 일주일에 한두 번 좋아하는 친구들이나 지인을 만나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나누는 일을 좋아해요. 일보다 잡학에 더 가까운 얘길 좋아하고, 그런 시간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일을 놓지 않은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이후 많은 변화를 맞이했을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오랫동안 나를 돌보지 않고 기준을 타인한테 두는 삶을 살았어요. 이번에 일 잘해서 고객들 피드백 좋았으면 좋겠다, 팀장님이 칭찬해 주면 좋겠다, 이게 잘 쌓여서 내년에 승진 좀 했으면 좋겠다, 이런 거를 지표로 삼고 달렸어요. 20대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느 속도로 일해야 하는지, 어떤 스타일로 일해야 나한테 맞는지를 먼저 고민해 보거나 인턴 같은 제도를 경험해 보고 결정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는 그걸 못 했어요. 그래서 속도가 점점 빨라졌죠. 더 잘하고 싶고 더 완성도 높게 일하고 싶으니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거예요. 번아웃이 왔는데 ‘무슨 말이야? 이 산만 넘으면 승진이야.’ 하고 회사에서 막았어요.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어요. 감사하게도 부모님이랑 같이 살다 보니까 안심하고 육아는 부모님께 맡기고 회사로 돌아갔죠. 그때는 출산 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었고요. 한 4년 동안 숨 가쁘게 달리다가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어요.

 

쉼 없이 달려온 일에 처음 브레이크를 걸었네요.

그렇죠. 사실 육아휴직도 제가 쓰겠다고 한 건 아니었고 회사에서 제안한 거예요. 둘째 출산을 얼마 앞두고 남자 팀장님이 오시더니 “두 아이를 낳고 돌아온 전례가 없어. 너도 그만둬야 될 거야.”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당시 제 바로 위 선배도 출산을 한 달 앞두고 있었거든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제가 그만둔다는 걸 알고 ‘어차피 나도 곧 있으면 그만둬야겠네. 그렇다면 육아휴직이라도 한번 써봐야겠어. 우리 둘이 같이 육아휴직 쓰게 해줘요.’ 하면서 홀로 잔 다르크처럼 싸우셨대요. 그 선배 덕분에 육아휴직을 썼어요. 그 시간은 제 인생에서 처음으로 계획을 하지 않고 보낸 시간이었어요. 

 

어떻게 바뀌던가요?

처음엔 너무 불안했어요. 120~150킬로로 달리던 사람이 갑자기 10킬로로 달리게 됐는데 얼마나 겁나겠어요. ‘돈은 어떻게 벌지? 내 커리어는 여기서 끝나나? 도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달 두 달 지났는데, 이렇게 사는 거 괜찮은 거예요. 옷도 딱 두 벌만 필요했어요. 실내복, 외출복(웃음). 다른 사람 신경 하나도 안 쓰고 내 속도로만 살았는데, 그 생활이 너무 좋았어요. 첫째랑 손잡고 하원하면서 “오늘은 뭐 먹었어? 친구랑 무슨 얘기 했어?” 도란도란 얘기하며 돌아오면 갓난아이가 누워 있어요.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까 얘가 이렇게 예뻤나 싶은 거예요. 그전에는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애들을 봤던 거 같아요. 사랑하는 마음은 기저에 있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아이와 나에게 더 좋은 선택인지에 대한 고민보다 투두리스트 해치우듯이 ‘기저귀는 이런 게 좋대. 이걸 사자. 다음은 유치원 알아보기. 유치원은 이런 종류가 있군.’ 이러면서 표를 만들고 엑셀 파일로 정리하고, 일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대한 거예요. 누구도 컨펌하지 않는데 보고서를 쓰면서 말도 안 되는 짓을 한 거죠.

 

그게 아이를 잘 키우는 거라 생각한 거죠.

맞아요. 당시에 ‘슈퍼맘’이었나 그런 단어가 있었어요. 일도 양육도 똑소리 나게 잘하는 엄마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저도 슈퍼맘이 되고 싶었어요(웃음). 일도 밀도가 너무 높으면 폭발하고 번아웃이 오는 것처럼 양육도 비슷했어요. 열심히 잘하다가 어느 순간 막 소리 지르고 악마로 변하는 저를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어요. 그러면 울고, 괜히 남편한테 화내죠. 이런 상황들이 반복되던 일상의 고리가 육아휴직을 경험하면서 한 번 끊어졌어요. ‘이렇게 안 살아도 괜찮네.’를 알게 된 거죠. 삶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사람에겐 무엇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 일을 쉬면서 처음으로 생각해 본 것 같아요.

이후에 이직했어요?

아니요. 복직했어요. 마침 키즈 리테일 가구 개발하는 자리가 빈 거예요. 티오가 생기면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있잖아요. “최근 아이도 낳았고 브랜드에 필요한 가구들을 디자인하고 제안하는 B2B 디자인을 오래 했으니 네가 이 자리에 잘 맞는 거 같아.” 하면서 제안이 들어왔고 어찌어찌해서 육아휴직 6개월 만에 다시 회사로 돌아갔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요.

 

어떻게요?

그전에는 삶의 중심이 일에 있었고 가치 역시 일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수행하느냐에 있었죠. 보람도 있었지만 나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하지 않는 사람들이 미웠어요. ‘팀장인데 왜 저 모양이지?’ ‘이 친구는 왜 이렇게 역량이 부족하지?’ 자꾸 사고 치고 꾀부리고 편 가르는 사람들이 꼴 보기 싫고, 이해하기 어려웠죠.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마음에 깔려 있으면 행동으로 나오잖아요. 근데 아이를 키우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다가 복직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궁금해지는 거예요. ‘저 사람은 어떤 성장 과정과 아픔이 있었길래 저런 괴물이 되었을까? 이 사람은 참 잘 컸다. 어떻게 큰 거지?’ 사람은 자라는 과정에서 환경과 기질에 따라 다양한 관점이 생기고 다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걸 엄마가 되고서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일의 완성도보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어떤 과정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낸 건지, 다름을 인정하고 나서야 포용력이 생겼어요. ‘네가 그거 못해? 그럼 내가 채워줄게. 내가 그거 잘할 수 있어. 근데 내가 이거 부족해. 네가 그거 해줄 수 있어? 너 못하면 다른 사람 불러오자.’이게 되기 시작한 거예요.

 

나와 다른 존재를 키워내는 일이 다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연습이 된 거네요.

맞아요. 누구한테는 어느 한순간에 쫓겨난 불쌍한 사람처럼 보였을지 모르겠는데 저는 그 과정을 겪으면서 비로소 어른으로서 한 발자국 성장한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복직해서 사람들하고 일하는 법이라든가 혹은 나의 밸런스를 찾기 시작한 거죠. 전에는 워킹맘이라는 것도 눈치가 보였어요. 실제로 “아이 엄마라서 어쩌고저쩌고할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여자 선배에게 듣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대로 가다간 내 후배들은 더 일을 못 할 것 같은 거예요. “왜 그러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들면서 반대로 해보기 시작했어요. “너 아빠 됐어? 그럼 일찍 가.” 사회적으로도 분위기가 바뀌기도 했고 저도 시도해 볼 만한 나의 회사가 생겼잖아요.

 

그즈음 식스티세컨즈가 시작된 거군요?

복직해서 키즈 리테일 가구 개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키즈용 매트리스를 접했어요. 가구와는 또 다르게 공부해야 할 것들이 많았죠. 매트리스는 용어도 기능도 어렵잖아요. 사용자가 나한테 맞는지 판단하고 선택하기 꽤 어렵게 느껴질 거란 생각을 했어요. 더구나 아이가 사용하는 거라면 성장과 면역 관점에서도 잠은 매우 중요한데, 당시 고객들은 대부분 예쁜 침대를 고르고, 가장 저렴한 매트리스를 옵션처럼 사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아이들은 배변 실수도 하고 예민하지 않으니까 싼 거 쓰다가 어느 정도 크면 바꿔주자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아이들만 자지 않는다는 거예요. 엄마가 같이 자요. 그 좁고 불편한 침대에서 자고 나면 엄마는 허리가 나갈 것 같죠. 그래서 바닥에 요를 깔고 지내다가 더 크면 수면 독립한다고 침대를 바꾸는 등의 여러 과정을 거쳐요. 그걸 보면서 침대가 기술적으로 솔루션을 주는 것 외에 라이프스타일적으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자기로 했다면, 바닥에서 불편하지 않게 잘 수 있는 토퍼를 만들면 어떨까, 둘이 잘 때 좁아도 편안한 방법은 없을까, 어떤 가드가 안전할까, 하는 것들을 고민하던 차에 지금 함께 일하는 조재만 대표가 매트리스 사업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사업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특히 매트리스 사업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더라고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새로운 형태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아이들하고의 시간을 좀 더 잘 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있었죠. 그렇게 2013년 식스티세컨즈를 만들게 되었어요.

 

브랜드를 돌보는 일과 아이를 키우는 일이 참 비슷한 점이 많죠?

맞아요. 브랜드와 아이를 같이 키우는 분이라면 공감하실 텐데, 브랜드도 생물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잘 모를 때는 ‘물만 잘 주면 크는 거 아니야?’ 그랬는데 해마다 영양 주사 맞춰야되고 햇빛 돌려줘야 되고, 필요할 때는 리본도 달아서 올려줘야 되고… 그런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더 섬세하고 촘촘하게 생기는데 애들도 똑같잖아요. 의식주만 해결해 주면 되던 나이를 지나 친구하고 놀 때 “그렇게 말하면 안 돼.” 이런 것도 말해줘야 되고, 영어 공부도 시켜야지, 사춘기 시작되면 감정을 다루는 것도 부모를 보고 배워야 하기에 나의 컨트롤도 필요하고요.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에 따라 성장의 결이 달라진다는 맥락이 정말 비슷하더라고요. 저는 일과 육아가 상호 보완이 잘 되는 편이었어요.

어떤 식으로요?

자리와 역할을 이동하면서 객관화되는 부분이 있어요. 아이랑 아침에 투덕거리고 출근했는데 팀 리더님이 와서 “요즘 이 친구 좀 잘하고 있는데 칭찬 한번 해주세요.” 하고 얘기하면, ‘맞아 우리 아이도 되게 잘하고 있는데 내가 안 되는 것만 지적했네.’ 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어 괜히 전화 한 번 해보면서 관계가 개선되는 일들이 대부분이에요. 또 사회생활하니까 공부가 다가 아니라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 게 보이잖아요. 입시 관점에서만 보지 않고 똘똘한 친구들 보면 저 친구는 엄마 아빠랑 어떤 관계에 있었길래 이렇게 잘 자랐을까 하면서 우리 아이들한테도 많이 적용해 보고 싶고요.

 

허둥대며 두 가지 다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불안하고 답답한 시간도 있었어요?

불안하고 답답한 건 언제나 그래요. 늘 부족한 엄마인 거 같고, 일에 집중하지 못할 땐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그렇죠. 다들 그렇겠지만, 나란 사람은 하나인데 역할은 여러 개잖아요. 역할마다 호흡도 다르고, 무게도 다르죠. 에너지를 고르게 분배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생활에 필요한 루틴은 지키되, 단기적으로는 지금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몰입이 과해져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멘탈이 무너질 때면 차에서 혼자 고막이 터지도록 볼륨을 높이고 <카우보이 비밥> OST나 서태지 음악을 틀어놓기도 하고 악 울어버리죠. 좋아하는 친구들과 먹고 싶었던 걸 일부러 찾아 먹고 기운 받는 얘기를 들으며 많이 회복되는 편이에요. 그래도 안 풀린다 싶으면 모든 걸 내려놓고 동면에 들어가요. 주변에 “나를 방해하지 마라. 나는 좀 쉬어야겠다.”라고 미리 말해두죠. 근데 2년 전에 그게 다 소용없는 시기가 있었어요. 사업과 육아에 대한 책임감과 잘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과해서 멘탈이 무너졌어요. 조직이 커지면서 구성원들이 늘어났고, 거기에 대응하는 방식을 몰라 허둥지둥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였어요. 엄마 아빠가 불안하고 싸우면 아이들이 무너지는 것처럼 조직도 비슷한 상황이었죠. 얼핏 보기엔 괜찮은 것 같지만 살얼음판처럼 조금만 빗나가도 무너지고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고 심폐소생술을 해도 다음 날 또 무너지고… 이런 과정들이 계속 있었거든요. 그때 심리 상담을 열 번 정도 받았어요. 조직원들과의 관계가 왜 힘들었을까, 여러 상황을 들여다보니까 저에게 중요한 키워드를 발견했어요.

 

그게 뭐였어요?

균형이요. 어떤 조직장의 경우 매출, 브랜딩의 피드백, 조직원들 간의 관계, 방향성 중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에 집중하여 회사를 운영하는 분도 있을 텐데 저는 욕심쟁이라 어느 하나가 기울어지면 많이 힘들더라고요. 사실 멘탈보다 체력이 문제였어요. 멘탈과 체력을 회복하는 데 꽤 많은 에너지를 투자하고 나서, 무의식적으로 맞추던 균형을 지금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몸이 흐트러진다 싶으면 간단한 홈트나 러닝 정도의 근력 운동을 하고, 가급적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요. 일고여덟 시간씩 꼬박 자는 편이죠. 이사하고 나서 깊이 잘 자다 보니 건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진 거 같아요. 요즘 회사가 매장을 이전하면서 폭풍우처럼 일이 휘몰아치고 있어요. 일에 휩쓸리다 보면 아이들이나 가족에게 신경을 못 쓰게 되잖아요. 그럴 때는 주말에는 완전히 셧다운을 해버려서 균형을 맞추려 해요. 일에 관한 자료를 거의 안 보고 주말의 루틴을 하면서요. 

 

주말에도 루틴이 있는 거예요?

네. 평일과 비슷한데 속도는 좀 달라요. 조금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맛있게 차려 먹고 청소를 하고 커피를 마셔요. 남편하고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에요. 그러고 나서 두세 시간 정도 각자 할 일을 해요. 남편은 운동을 하고 애들은 자기 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자요. 저는 같은 공간에서 가족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해요. 요리하고 빨래를 해서 잘 개어 두고 뒷산을 오르죠. 먹는 것과 자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처럼 가장 기본적인 걸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다 보니 이제는 누군가 이렇게 하자고 안 해도 루틴하게 흘러가요.

 

실장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왜 루틴이 필요한지 깨달았어요. 저도 루틴을 만들어 가던 때가 있었는데, 코로나19 이후 ‘내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게 뭐가 있어?’ 하면서 다 무너졌거든요. 그때그때 닥친 일과 육아를 하면서 2년 정도 살았는데, 문제는 셧다운이 안 되더라고요. 주말에 쉰다고 해놓고 할 일이 없으면 평일에 하던 생각과 일의 잔재가 주말로 넘어와 너무 쉽게 휴대폰을 잡고 자료 검색을 해요. 가족에게 집중도 못하고 쉬어도 쉰 게 아닌 게 고민이었는데, 쉴 때도 루틴이 있어야 일과 휴식의 분리가 잘 되는 거였군요.

맞아요. 브랜드를 연구하면서 ‘잘 쉰다.’라는 개념을 정의해 봤는데, 일반적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갔을 때 뭔가를 빼는 걸 쉬는 걸로 생각하잖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자자, 다 내려놓고 퇴사를 하자, 멀리 훌쩍 떠나자.’ 이렇게 어떤 걸 빼내는 걸로 밸런스가 맞춰지는 사람이 있지만, 쉼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갖고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보니까 실제로 쉰다는 감각은 뭔가를 더하는 데서 오는 게 꽤 많더라고요. 저도 그런 편이고요. 저는 밤 열한 시 반이 넘으면 잘 준비를 하거든요. 자연스럽게 잠옷으로 갈아입고 책을 들고 다녀요. 침대에 들어가서 책을 몇 쪽 읽으면 기절하듯이 잠이 들어요. 잠자리 루틴이 명확하게 생기면서 깨어있는 시간을 더 밀도 있게 쓰고 있어요. 습관을 만드는 것까지가 조금 힘들지만 그다음부터는 몸이 기억해요. 비슷한 예로 친구들이 여러 명이 있는데 어떤 친구는 한 달에 한 번 만나고 어떤 친구는 1년에 한 번 만나는데 관계가 유지되잖아요. 한 달에 한 번 다이어리에다 써놓고 ‘오늘은 이 친구를 만나야 해.’ 하지 않아도 정신없이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친구 잘 지내나?’ 생각이 나죠. 그 루틴이랑 비슷해요. 자연스럽게 돌아보면 내가 걸어온 길에 발자국이 찍혀 있더라고요. 루틴이 몸에 익으면 그 흔적을 따라가면서 전보다 무계획적으로 움직여도 괜찮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안 마시면 ‘정신이 하나도 없네.’ 하면서 커피를 마시고, 체력적으로 좀 힘들면 의식적으로 스쾃을 해요. 하루에 몇 개를 할지 정하고요. ‘월요일, 금요일에 무조건 운동을 할 거야.’가 아니라 내 몸이 무너지는 감각이 생길 때 하는 거예요. 요즘은 하루하루 잘 살자는 생각만으로도 루틴하게 흘러가요.

 

밸런스가 무너지고 있을 때를 감각하고, 필요한 거를 더해주는 거네요?

맞아요. 뭘 더한다는 개념을 고민해 봤는데 두 가지로 설명이 되더라고요. 하나는 내 그릇이 작아서 더 담을 수 있는 한계를 마주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늘 넘치고 지치고 피곤해요. 내 역량이나 그릇을 조금 넓히면 똑같은 게 들어와도 여백이 살짝 생기잖아요. 그럴 때 사람이 굉장히 평안해지거든요. 그런 작업이 자기 개발일 수도 있고, 혹은 나의 취향을 늘리는 작업일 수도 있어요. 그런 과정을 통해 내가 조금 괜찮은 어른으로 성장한 것 같다는 마음이 들 때 여백이 좀 생기는 것 같아요. 또 하나는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생각을 비우는 거예요. 불안함과 괴로움과 잘하고 있나에 대한 의심이 들 때면 저는 그동안 하던 거와 완전히 다른 거에 몰입해요. 지난달 식스티세컨즈 매장 앞에서 심란하게 통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밖에 나와 통화를 하면서 손으로 작은 마당에 있는 잡초를 뽑았어요. 전화를 끊고도 그 잡초를 계속 뽑다 보니까 무아지경이 된 거예요. 비슷한 예로 물레를 돌리면 내 손끝을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얘가 막 이렇게 됐다, 저렇게 됐다 하니까 내 손의 감각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얘를 예쁘게 만들어야 해.’가 아니라 손의 감각에 몰두하는 거죠. 그 순간에 주변에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단순노동을 하고 나면 힘든 일도 잠시 잊게 되더라고요.

아이들이 중학생과 초등학교 고학년이에요. 교육에도 신경 써야 할 시기죠?

요즘 저의 제일 큰 고민이에요. 곧 중학생이 되니 주변은 정말 바쁘게 움직여요. 코로나 때문에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못했는데, 저녁 여섯 시부터 열 시까지 학원에서 지낸대요. 오늘은 영어, 내일은 수학, 모레는 과학. 체육도 해야 한다면서 운동도 배우더라고요. 지금 우리 집 두 아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거든요. 주변을 보면 내가 아이들 공부에 너무 소홀했나 불안하다가도 공부할 나이가 되었으니 당연하다는 듯 학원에 가는 것보다 어른으로 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공부법을 시도해 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직 완성도 안된 아이들한테 “언제까지 영어는 끝내놓고 수학은 얼마만큼 선행을 해야 해.” 하고 일방적으로 정하는 게 저는 조금 잔인하게 느껴졌어요. 남들이 잘하고 있어도 나와 아이에게 맞지 않으면 안 해도 되는 세상인데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쏟아지다 보니까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할 것 같이 느껴져요.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인데 교과 공부에 시간과 에너지를 다 쓰면 어디 한쪽은 불균형이 생길 테고요. 그게 가족과의 시간일 수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거, 잘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탐구의 시간일 수도 있죠. 저도 40대가 됐는데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고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서 이 속도에 못 맞추겠고, 여러 가지 고민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나의 속도와 나의 가치를 맞추는 작업을 해야 내가 건강해지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요. 40대가 되어 보니까 20대 때 이것저것 잘하던 친구들이 30대 때 기울어진 경우도 있고, ‘쟤는 어떡하려고 그래?’ 했던 친구들이 차분히 자기 속도대로 잘 큰 경우도 많아요. 여러 사람을 보니 잘하고 못하고의 큰 차이가 느껴지진 않아요. 다만 자기 삶을 대하는 태도가 어떤지에 따라서 조금 다른 것 같아요.

 

나와 아이에 맞는 방향과 속도에 고민이 많을 거 같아요.

단계마다 필요한 공부도 있겠지만, 어떻게 방향성을 잡아야 내가 좀 심지가 생길까 고민하고 있는데, 강연을 통해서 교육관을 객관화하는 작업을 종종 해요. 심리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오은영 박사님의 솔루션을, 학습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때는 리사 손이나 김누리 교수의 강연을 들으며 마음을 다 잡아요. 아이들이 학원에 3~4년 다녀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얻은 것보다 혼자 공부하면서 얻은 것이 더 많대요. 경쟁 상황에 있을 때 크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아이들은 그런 상황에 위축이 돼서 본인이 더 실력 발휘 못 하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케이스였어요. 첫째가 혼자 공부를 해보겠다고 하는데, 사실 중학생 공부는 꽤 어렵거든요. 저와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우리는 조금 봐주다 자러 가버리니까 아이가 불만족인 거예요. 과외 선생님을 알아봐 달라고 해서 지난 일요일에 선생님들 면접을 봤어요. 수학은 다 잘 가르치실 거 같아서, 교과 외적으로 청소년기를 돌아봤을 때 내가 부모로서 이 아이한테 지금 수학 말고 제공해 줘야 하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아이들은 이 시기에 부모보다 주변 어른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잖아요. 이 시기에 불안한 어른을 만나면 어른의 세계는 이런 것인가 하고 잘못된 선입견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한 선생님께서 우리 삶에 있어서 단계적으로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알려주는 유일한 트레이닝이 수학이라고 하더라고요. 수학을 풀이할 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수학을 풀었다, 정답을 맞혔다 보다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지를 연습하는 거라고요. 저도 공부하면서 왜 이걸 풀어야 하는지 몰랐고 수학을 그렇게 접근해서 설명해 준 사람이 없었어요. 이걸 배우면 어디에 도움이 되는지를 설명해 주고 개념과 풀이 과정을 알려주는 선생님과 함께 공부하면서 어른이 돼서 스스로 배움을 찾아야 할 때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는다고 헤매는 사람이 되진 않았으면 해요.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문제를 자기답게 다룰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요. 

 

아이가 좋아하는 분야도 있을 텐데요.

제가 최근 어떤 학원 알아본 줄 아세요? 보컬 학원이요(웃음). 중학생이 되는 첫째가 노래를 배우고 싶다고 해서요. 누가 봐도 노래는 아닌 것 같은데, 본인은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부딪혀 봐야 할 거 같아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배우기 시작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게 ‘이거 시작하면 끝까지 해야 해.’ 하고 강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아닌가?’라고 판단할 수도 있고, 의외로 ‘나 보컬은 별로인데 작곡은 좀 잘하는 것 같은데? 코드 만지는 거 괜찮은 것 같아.’ 해서 그쪽으로 진로를 정할 수도 있는 거고요. ‘해보니까 안 되네. 그럼 이거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하는 게 뭐 하나 꾸준히 하는 게 없다고 보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언젠가는 스펙트럼이 넓은 경험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믿어요. 사실 분야가 너무 다양하잖아요. 요즘에는 자기가 스스로 직업을 만드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뭘 좋아하는지가 제일 중요한데 그걸 스스로 찾아가고 있으니까 고마워요. 결국에는 정말 좋아하지 않으면 못 버틸 힘듦이 모든 직업과 삶에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일이 많아서 힘들고 에너지가 거의 바닥까지 떨어져도 ‘저건 뭐지? 재밌을 것 같은데?’ 하는 마음이 들면 불나방처럼 뛰어들거든요(웃음). 이게 반복이 되다 보면 나의 한계도 알게 되고 이 정도까지 하면 무리구나 하는 것도 깨닫게 되고 그 적정선 안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꾀도 생겨요. 그러면서 생활이 좀 안정되고요. 아이들도 그 과정 없이는 온전한 삶을 배울 수 없을 거예요.

대한민국에서 아이의 속도에 따라 교육하는 게 가능한가요?

입시라는 단어를 빼면 가능해져요. 많은 분이 열아홉 살에 입시라는 팻말을 딱 꽂아놨기 때문에 조급함과 불안함,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는 상황이 생기는 거 같아요. 입시를 빼면 많은 상황이 자유로워요. 어차피 엔딩이 아니니까요. 반면 입시를 통해서 본인의 최고점을 한번 겪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인생에서 언제 그렇게 전력 질주해 보겠어요. 그 끔찍했던 경험이 살면서 ‘내가 그것도 해봤어. 거기까지 가봤어. 한계를 느껴봤어.’ 하는 감각을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길이든 아이가 자주적으로 선택하면 저는 그 속도에 따르면서 곁에 있어 줄 생각이에요.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고 느꼈어요. 관계를 위해 시도한 리추얼도 있어요?

얼마 전에 첫째 아이와 말다툼을 했어요. 논리적으로 공격하는데 틀린 말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궁지에 몰린 저는 “너는 엄마를 그렇게까지 만들어야겠어? 내가 너한테 밥도 해주는데, 왜 말을 그렇게 해?”라고 말했어요. 그러고 나면은 내가 너무 한심하고 바보 같고 멍청해 보인단 말이죠. 아이에게 가서 “엄마가 미안해.” 하면서 사과하다 눈물 흘리고… 아, 정말 별로예요(웃음). 이렇게 해서는 아이하고의 관계도 엉망이 될 것 같고, 나라는 사람을 바꾸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리사 손의 강의에서 메타인지라는 개념을 들었어요. 또 다른 내가 나를 지켜보는 거래요. 그날 인스타그램 비공개 계정을 하나 만들었어요. 어떤 행위를 하고 돌아보면서 기록을 하면 그게 아카이빙 되면서 엄마로서의 나를 객관화하고, 더 잘 알게 될 거 같더라고요. 오늘 있었던 어떤 사건을 적는 일기 형식의 글인데 보통은 아이들이 새로운 경험을 해서 마음이 쑥 자랐다고 느끼거나, 싸우고 난 뒤에 쓰곤 해요. 아이들과 있었던 일을 쓰고 그때 내 감정이나 생각이 어떠했는지 적는 게 되게 중요하더라고요. 이렇게 쓰고 나면 꼭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있어요. ‘저렇게 나를 공격했지만 논리적으로 잘 커줘서 고마워. 어디 가서 지지는 않겠네(웃음)? 이렇게 잘 크고 있는 애한테 내가 못나게 굴어서 미안해.’ 이런 식의 어떤 패턴이 생기더라고요. 저를 팔로우 할 수 있는 이는 두 아이밖에 없어요. 종종 아이들에게 읽어주면서 당시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아이들 생각은 어땠는지 물어봐요. 때로는 아이들끼리 읽어보고 저한테 물어보기도 하고요. 부모와 자식의 관계라는 게 참 불안정하잖아요. 엄마가 어떤 때는 나를 너무 사랑해 주다가, 어떤 때는 막 잔소리 폭탄을 해요. ‘엄마가 나 되게 미워하고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이런 마음이었구나. 그냥 좋아하는 마음이었구나.’를 아는 것과 모르는 거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 인격체를 길러내는 생애주기를 거치면서 새롭게 깨닫거나 신념이 바뀌는 점이 참 많더라고요. 어린아이를 키우던 때와 중학생 엄마로서의 육아관은 좀 다를 거 같아요.

저도 제가 어떤 엄마로 변해갈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떤 때는 아이의 성장 속도를 제가 못 따라가요. 엄마의 성장 속도가 아이의 성장 속도보다 훨씬 느려요. 그래서 어느 순간 부딪침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다른 엄마들도 그렇기 때문에 계속 헤매는 거고 돌아보니 그게 별로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와요. 하지만 육아는 시행착오를 할 수가 없어요. 다시 이 아이와 세 살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엄마라는 역할은 계속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서 나도 성장하고 아이도 성장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성장 과정에서 옆에 있어주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아이랑 싸우면서 논리에 밀리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내가 끌어줄 수 없는 단계가 왔구나.’ 어릴 때 ‘그거 하면 안 돼, 혼자 길 건너면 안 돼.’ 이런 정해진 답을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너무 다양한 경우가 생기고, 관계같이 정답이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럴 때 엄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건 건강한 멘탈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일 같아요. 부모를 통해서든, 주변 좋은 어른을 통해서든, 안 좋은 케이스를 유튜브로 보든지 정신이 단단한 아이들은 잘 헤쳐 가더라고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아이들은 여기저기서 끊임없이 삶을 학습하고 있어요.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나도 모르고 아이도 모르죠. 그런데 스스로 판단을 해야 할 타이밍이 왔을 때 감각적으로 ‘이건 좀 이상한데?’가 생기겠죠. 어쩐지 그건 아닌 것 같아, 하는 감각을 키워주는 게 엄마라는 생각이 들어요.

 

‘계속 어쩌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나도 성장하고 아이도 성장하는 게 엄마의 역할’이라는 말이 참 와닿네요.

아이들이 살다가 어딘가에 부딪혀 지혜를 구하거나 위로받고 싶을 때 떠오르는 존재이길 바라요. 의외로 너무 사랑하니까 힘듦을 애써 내보이지 않으려고 하는 자식들이 많아요. 제 주변에 암 진단을 받았는데 엄마한테 말을 못 하겠다는 친구가 있었어요. “당연히 엄마 힘든데, 수술 다 받고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엄마 마음은 더 찢어질 거야. 자식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엄마는 무너져. 꼭 얘기해.” 하고 말한 적이 있거든요. 엄마가 너무 완벽하거나 엄할 때 이런 상황들이 생기더라고요. 빈틈이 조금 있어야 ‘엄마도 실수할 수 있고 나도 실수했으니까 공감해 줄 것 같아.’라고 다가올 수 있을 텐데 제가 틈을 잘 못 두는 편이라 그런 엄마가 안 되려고 노력해요. 여기 살림살이 정리해놓는 거 보면 아실 거예요(웃음).

생활의 균형을 맞추는 데 남편과의 조화도 중요할 텐데요.

타고난 성향이 저는 주도적인 편이고 남편은 뒤에서 서포트하는 걸 좋아해요. 시현이가 보컬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을 때 제가 알아보고 플랜을 짜면 남편은 일상적으로 언제 가서 언제 오고, 어떤 걸 지원해야 되는지를 잘 챙기는 편이에요. 제가 조금 지쳐 있을 때 남편이 투입되고 남편이 일로 바빠지면은 제가 조금 나서죠. 중간중간 힘들 때 서로 조금 힘을 뺄 수도 있고 기댈 수도 있지만 어쨌든 동등한 관계로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덜 하길 바라는 건 잔소리예요. 깔끔한 사람들의 특징이 “어지르지 마, 뭐 떨어뜨리지 마.” 이런 거거든요(웃음).


두 아이와 식스티세컨즈를 잘 키워왔는데요, ‘먼 훗날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바라온 그림이 있나요?

저는 오랫동안 플래너로 살았어요. 어떤 목표를 이뤄야 한다는 압박이 굉장히 컸어요. 실제로 그렇게 안 되는 경우도 많고, 반대의 길로 가서 새로운 기회를 만나 빵 터질 때가 훨씬 더 재밌더라고요. 10년 후에도 큰 그림 정도만 그려봤어요. 그때까지 일을 하기를 바라고, 지금처럼 돈을 벌면서 일하는 게 아니라, 돈을 쓰면서 일하고 싶어요.


어떤 일로요?

《wee》를 만드신 목적도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아이 하나만 잘 키워가지고 될 일이 아니더라고요. 부모는 아이의 성장 단계마다 부족한 일투성이고, 어느 순간 돌아보면 놓쳐서 챙겨주지 못한 것도 많아요. 많은 에너지와 비용, 시간을 들여도 불안정하지만 간신히 설 수 있는 어른 한 명이 세상에 나가는 거 같거든요. 그런데 이런 케어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거예요.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모든 게 그 아이 탓이 되잖아요. 건강한 생각과 몸을 가진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야 좋은 사회가 될 텐데 말이죠. 지금은 내 아이 하나 키우기도 바쁘고 벅차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좀 크고 나면 어느 방향으로든 세상을 위해 돈을 쓰면서 일을 하고 싶어요. 직접적으로는 좀 두려워요. 저는 여전히 부족한 사람이니까요.


정말 비슷해요. 《wee》는 다양한 가족의 이야기가 쌓이면 조금 더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식스티세컨즈도 방향을 좀 수정했어요. 초반에는 좋은 재료와 제대로 된 프로세스, 정말 완성도 있는 제품을 쉬운 언어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좋은 제품은 세상에 널렸고, 잘 만드는 사람도 너무 많잖아요. 5년쯤 지나 우리가 이 브랜드를 지속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해 보니 좋은 제품이 아니라 ‘좋은 잠’이 되어야겠더라고요. 좋은 매트리스가 매개가 될 수도 있고, 작은 휴식의 도구들이 누군가에게 쉼을 돌아보게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일의 커리어를 쌓는 것처럼 쉼을 돌아보면 건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겠다, 그러면 어쩌면 사회에 조금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가족의 모습도 그려볼까요?

저는 늘 자기 삶을 살려면 가족 울타리를 떠나야 한다고 말하곤 해요. 어릴수록 괜찮은 것 같다고요. 각자의 삶을 살다가 한 달에 한 번 혹은 3개월에 한 번 보고 싶은 친구처럼 “우리 어디서 볼까?” 약속 잡고 만나서 그동안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맛있는 걸 먹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독립된 네 기둥이 서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많은 걸 들고 있거나 엄마의 짐이 무거워 한쪽으로 기울어진 집이 아니라 비슷한 힘으로 삶을 나눠 갖는 모습이면 좋겠어요. 각자 그 기둥들을 세우고 균형감 있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편안함을 줘요. 두께나 모양이 달라도 함께하고 있다는 것, 그게 저한테 정말 중요한 모습이에요.

쉼의 리추얼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에 대해 종종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요. 짤막해도 나에게 맞는 쉼이 일상 중간중간에 있으면 같은 일을 해도 심리적인 완충재 구실을 하더라고요. 원두를 갈아 드립으로 커피를 마시고, 심장이 두근거릴 때까지 달리곤 해요. 그 외엔 잠을 충분히 자는 걸로 회복의 시간을 보내요. 단출하게 침대만 있는 작은 방에 은은한 조명과 가습기 정도만 두고, 따끈하게 데운 팥 주머니를 안고 잠자리에 들어요. 파자마도 중요한 수면도구 중 하나예요. 파자마로 갈아입으면 뇌가 슬슬 잘 준비를 해요. 자기 전 책 읽는 습관도 깊은 수면을 도와줘요. 책을 보면 그렇게 졸음이 쏟아지더라고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표기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