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리사 씨,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벼랑 위의 포뇨>의 ‘리사’라는 캐릭터를 좋아한다. 현실의 나는 이 쿨하고 멋진 엄마보다는 짱구 엄마 ‘봉미선’ 씨에 가깝지만, 그런데도 나는 고민이 생길 때마다 리사 씨를 소환한다. 리사 씨, 이럴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벼랑 위의 포뇨

6학년인 아들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중에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가장 좋아한다. 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가장 좋다. 아들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재밌었지, 하지만 <벼랑 위의 포뇨>는 별로야.”라고 말한다. 나는 “<벼랑 위의 포뇨>가 두 번째로 좋은데!” 하고 대꾸한다. 생각하면 신기한 일이다. 금수 같던 아이들과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게 되다니. 그보다 더 신기한 것은 우리가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눈 뜨자마자 ‘뽀로로’와 ‘뿡뿡이’와 ‘라바’와 ‘짱구’의 향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과거를 떠올리면 감개가 무량하다. 차만 타면 만화 주제가 테이프를 귀가 멍멍해지도록 들어야 했던 아아 옛날이여, 눈물이 날 것 같다. 이제 나는 웬만한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도 아이들과 함께(‘그’ 장면에서 눈과 귀를 막게 하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자란다는 건 멋진 일이다. 내가 늙는다는 사실을 빼면. 아이들의 귀여운 얼굴과 목소리를 더는 보고 들을 수 없다는 것을 빼면. 

아무튼 내가 <벼랑 위의 포뇨>를 좋아하는 이유는 주인공 ‘소스케’의 엄마 리사 때문이다. 나는 리사가 좋다. 벼랑 위의 집에 살며 요양원에서 할머니들을 돌보는 일을 하는 리사가 좋다. 리사의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도, 무시무시한 운전 실력도 좋다. 모처럼 집에 오기로 한 선원 남편이 못 오게 되었다고 연락하자 화를 내며 프라이팬을 집어 던지고 맥주캔을 따고 냉장고 문을 발로 걷어차는 불같은 성미가 좋다. 난데없이 나타난 아들의 금붕어 친구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으로 들이고, 아이들 몸에 묻은 물기를 커다란 타월로 닦아준 후 따뜻한 차를 끓여주고, 저녁으로는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는 다정함과 시원시원함이 좋다. 마을이 물에 잠기자 아직 어린 아들을 집에 홀로 두고 요양원의 할머니들을 구하러 떠나는 것도, 그 아들이 끝내 자신을 찾아오자 활짝 웃으며 두팔을 벌려 아이를 꼭 껴안아주는 것도 좋다. 나도 꼭 그런 엄마가 되고 싶었다. 리사 같은 엄마가.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당연한 듯이 지식 노동자로 일했다. 일은 흡혈귀처럼 내 기력과 정력을 빨아갔지만, 그래도 나는 꽤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니 나는 그저 초라한 동네아주머니일 뿐이었다. 가계는 심각하게 휘청였고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면서도 벌벌 떨어야 했다.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도 쉽지 않았고 이 암담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은 아무리 눈을 비벼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마트에서 일하거나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되어야겠다고 쓸쓸히 다짐했다. 부끄럽게도 그런 다짐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밝힌다. 쿨하게 그럴 수 있었더라면 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정말이지 쉽지 않았다. 그런 내 눈에 일하는 엄마 리사는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바닷가 마을의 요양사이자 한 남자아이의 엄마. 씩씩하고 용감하고 앞뒤 재지 않으며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여자.

ⓒ벼랑 위의 포뇨

유년기부터 이어온 나의 은밀한 버릇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일종의 비겁함일 수도 있지만 뭐 상상만으로 끝나는 거니까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의기소침해질 때, 무감각해질 때, 무기력해질 때, 세상만사 짜증만 솟구칠 때, 내가 싫어질 때,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상상을 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나의 상황을 그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그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상상해 본다. 내가 좋아하는 명랑하고 씩씩한 사람들의 시선으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눈으로 내 인생을 본다.

그렇게 나는 그 시기를 버텨냈다. 세상의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던 육아의 시기를, 가난하고 의기소침하고 앞날이 캄캄하던 그 시기를,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으로는 도무지 헤쳐나갈 수 없던 그 시기를 나는 리사의 도움으로 버텨냈다. 화가 날 때는 냉장고 문을 걷어차면서, 매일 아이들을 꼭 끌어안아 주면서, 아이들의 친구들이 틈만 나면 놀러올 수 있도록 대문을 활짝 열어놓으면서, 아이들이 제 힘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끔은 무책임해지면서, 그렇게 버텨냈다. 리사가 아니었다면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극장에 가서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을 봤다(포켓몬 극장판을 더는 안 봐도 된다니 감개무량!). 1990년대, 와이셔츠 차림의 남자들이 사무실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상고를 나온 고졸 여사원들은 유니폼을 입고서 그들의 심부름을 한다. 여사원들은 남자 직원들의 커피를 타고 구두를 닦고 담배를 사다 준다. 전화를 받고 서류 복사를 하고 영수증 내역을 입력한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그들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 후 자연스럽게 퇴사 권유를 받게 될 것이다. 그들에게 승진의 날이란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선배도 후배도 아닌 그저 미스 김, 미스 리일 뿐이다. 그러나 이 똑똑한 여자들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토익 시험에서 600점 이상을 받으면 대리로 승진시켜 준다는 공고를 보고 영어토익반에 들어가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회계팀에서 일하는 고졸 여사원 ‘보람’은 학창 시절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우승한 수학 영재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는 일은 이른바 ‘가라 영수증’을 만드는 일. 그런 그를 딱히 여긴 나이 든 부장은 이런 말로 보람의 용기를 북돋워 준다. “사람들이 요만큼이다 하고 정해놓은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지마. 뭐든 본인이 재미있는 걸 하고 살아.” 지금껏 누구도 보람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보람은 요만큼이다 하고 정해놓은 세상이 전부인 줄로만 알고 살았다. 하지만 부장님의 그 말 때문에 보람은 요만큼의 세상을 벗어날 용기를 낸다.

부장님은 또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묻는데, 보람은 좋아하는 것이 뭔지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러자 부장님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본다.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 보람은 한 트럭도 더 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부장님은 이렇게 말해준다. “그럼 아무거나 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몇 년 전 나는 중학교를 돌아다니며 학생들에게 진로 수업이라는 걸 했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물었다. “영화를 만들거나 영상을 만드는 것이 꿈인 사람이 있나요?” 그러면 한두 명이 손을 든다. 대부분은 가만히 있다. 나는 그 애들에게, 꿈이 없다는 애들에게 말해준다. “지금 나이에 꿈이 없는 건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까 꿈이 없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아요. 열네 살, 열다섯 살에 어떻게 꿈을 정하나요? 그건 정말 신기한 일이에요.”

그 애들에게 정말로 꿈이 없을까. 꿈은 과연 온 세상에 당당히 공표되어야 하는 것일까. 꿈은 커야 하는 것일까.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놓을 수 있는 것일까. 수줍게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둔 작은 꿈도 있는 게 아닐까. 그 애들이 정말로 아무런 꿈도 없는 아이들이었다면, 어떻게 몇 년 전에는 대통령이니, 의사니, 연예인이니 하는 꿈들을 남 부끄러운 줄 모르고 외쳤던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너희들은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품었던 꿈과 실제 너희가 부딪친 세상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거야.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너희가 사실은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는 중인 거야. 그러면서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로 자라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거야. 그건 너무나 당연해. 그런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면 사람은 진정으로 자라날 수 없단다. 그러니 초조해하지 않아도,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좋아. 어른들이 너희에게 꿈을 가지라며 등을 떠밀어도 그냥 웃어 넘기렴. 그 어른들도 너희들 나이에 되고 싶었던 그 사람이 못 되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니까. 심지어 대부분은 꿈조차 없었을 테니까.

자, 문제는 여기부터다. 이제 내 아이가 열다섯 살이 되었다. 그 애 역시 “나는 꿈이 없어.”라고 중얼거리는 무기력한 청소년으로 자랐다. 이럴 수가. 나는 너를 실컷 뛰어놀게 하고 쓸데없는 짓을 장려했으며 공부 따위는 시킨 적이 없고 학원에도 한 번 보낸 적이 없다. 나는 너를 생기 넘치는 아이로, 독립심 넘치는 아이로, 그 누구의 말보다 자기 자신의 마음이 건네는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아이로 키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된 것이냐.

꿈이 없다는 말을 할 때 내 아이는 좀 부끄럽고,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것 같기도 하고,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나의 실망감과 불안감을 혼심의 힘으로 누르며 그렇게 말해준다. 다른 열다섯 살들에게 한 것과 같은 말을. “꿈이 없는 건 당연해. 꿈이 없어도 괜찮아.”

보람의 부장님처럼, 누군가의 인생에서 한 걸음 떨어져야 그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의 채 발현되지 못한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러니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애들의 삶에서 한 발짝 떨어져주는 것이다. 그렇게 그 애들의 뒤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애들이 넘어져 구를 때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품이 되어주는 것이다. 자기만의 삶을 발명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그 애들이 내게는 뻔히 보이는 쉬운 길을 둘러 갈때마다 조바심이 난다.

그럴 때 나는 리사를 생각한다. 씩씩하고 앞뒤 재지 않고 용감하고 따뜻한 리사를. 독립적이고 사랑이 많은 리사를. 리사라면 이런 일들을 어떻게 헤쳐나갔을지를 생각한다. 리사라면 어떤 엄마로 살아갈지, 어떤 여자로 늙어갈지, 끝내 어떤 할머니가 되었을지를 생각한다. 그제야 머릿속에서 안개가 걷히는 듯하다.


<벼랑 위의 포뇨> 미야자키 하야오 | 애니메이션, 모험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이종필 |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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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에디터 김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