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Twinkling in Heaven

별이 된 배우들

소혹성 B612에서 명을 받았다. 어린 왕자가 채 둘러보지 못한 행성들을 방문하란 임무였다. 물과 필기구를 챙겨 들고 우주선에 올랐다. 그가 보낸 곳은 배우들이 모여 있는 동쪽 하늘 저편. 유난히 눈이 부신 그곳에 착륙해 알록달록하게 빛나는 네 개의 별에 들렀다. 모든 별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표정으로, 독특한 포즈로 우리는 안부를 나눴다. “잘 지내고 있어요?”

첫 번째 착륙, 사랑과 박애의 행성

오드리 햅번

 
 
 
Hoe gaat het met je? 
잘 지내고 있어요? 
 
Ja, ik ben met schattige kinderen. 
네, 귀여운 아이들과 지내고 있어요.

아이들이 그녀를 에워싸고 조잘조잘 떠들고 있어서 안부를 묻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귀여운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며 해사하게 미소 지어 보이는 오드리 헵번은 살아생전 모습보다 한층 더 아름다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오랜만에 이 별에 온 손님이라며, 지구는 안전한지 묻는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여생을 보내면서 아프리카에서 생활한 그녀는 우주에서도 아이들과 함께였다. 날개 달린 아이들을 품에 꼭 안고 나무 아래서 쉬다가 열매를 따 먹고, 다시 누워 책을 읽는 헵번은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크고 맑은 눈, 작고 동그란 얼굴, 대충 묶어도 아름다운 머리, 요정이라 불린 모습 그대로, 천사 같은 얼굴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있는 그녀. 잘 지내느냔 안부 인사가 무색할 만큼 헵번은 한눈에도 퍽 행복해 보였다.

<더치 인 세븐 레슨>(1948)으로 데뷔한 헵번은 <로마의 휴일>(1953)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검은 이브닝드레스에 팔목을 감싸는 긴 장갑을 끼고, 짧은 앞머리에 높이 틀어 올린 머리, 긴 파이프를 입에 문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어떻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 <마이 페어 레이디>(1964) 등 유수의 작품을 통해 만인의 연인으로 불리며 아름답게 늙어간 그녀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한다. 세기가 지나도 저물지 않는 그 찬란한 모습을.

만지면 부서질 것처럼 연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단단한 마음씨를 가졌던 헵번. 그녀는 배우의 삶에서 물러난 뒤 유니세프의 어린이를 위한 대사가 되어 헌신적인 삶, 박애주의자의 모습으로 살아갔다. 나는 우주 어딘가에서 주워온 마음을 비추는 거울을 그녀에게 선물한다. 그녀의 마음이 사랑을 담고 활짝 웃어 보이는 것이 만져질 듯 선명하게 비친다.“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많은 사람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들을 사랑할 차례입니다.” 헵번은 우아하게 손을 흔들고 다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사랑은 하늘에서도 지치지 않고 활짝 빛을 발하고 있다. 헵번과 만나고 돌아가는 길, 멀리서 그녀의 행성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분명한 하트 모양을 띤 채 천천히 궤도를 돌고 있는, 아름다움의 완결인 저 행성을.

두 번째 착륙, 지혜와 지식의 행성

마릴린 먼로

 
 
How are you?
잘 지내고 있어요?
 
Yes, there are too many books to read in the universe. 
네, 우주에는 읽을 책이 정말 많아요.

키 높이만큼 쌓인 책으로 가득한 행성. 그녀를 찾기 위해 걸음을 떼는 족족 높게 쌓인 책이 넘어질까 봐 마음을 잔뜩 졸였다. 잘못 건드려 책 탑이 무너지면, 저 책들이 발등으로 쏟아지면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할 텐데, 우주 병원은 알 길이 없어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금발에 빨간 입술, 매력적인 점과 육감적인 몸매의 그녀를 상상하며 행성의 한가운데 이르자 기다리던 그녀가 보인다. 의외로 흰 티에 반바지를 입고 머리도 아무렇게나 내려 묶은 수수한 모습이다. 전 세계의 섹시 아이콘으로 기록된 배우, 마릴린 먼로를 만났다. 

<7년 만의 외출>(1955)에서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드레스 자락이 들리는 모습은 지금도 각종 예능, 드라마, 영화 등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유명한 장면이다. 아찔하고도 관능적인 이 모습은 세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눈을 감고 시원스럽게 웃는 얼굴, 가지런한 치아, 치맛자락을 붙들기 위해 가지런히 모은 손. 아름다운 그녀를 향한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을까, 육감적인 몸매를 가진 사람에게 으레 붙곤 하는 수식어 ‘백치미’가 살아생전 그녀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다녔다. 그러나 사실, 먼로는 백치미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전문 서적부터 문학 작품까지 안 읽은 책이 없을 정도의 다독가이자 애서가였던 그녀는 지혜로 가득 찬, 더는 없을 당당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생각하도록 그냥 내버려 둬요. 그들이 내 행동에 신경을 쓴다면, 이미 그들보다 내가 더 우월하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지혜로운 그녀는 우주에서도 아름다운 미소와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은 채 책을 꼭 쥐고 읽는 데 몰두하고 있다. 높다랗게 쌓은 책을 무너뜨리지 않는 요령과 그 많은 책을 읽고 흡수하는 방법을 몽땅 아는 듯한 우아한 자세.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미모와 지식을 두루 갖추고 우주에서도 황홀하게 빛나는 그녀의 별은 커다란 네모, 견고한 책을 닮아 있다.

세 번째 착륙, 유난히 바람이 많은 행성

이소룡

 

你好吗? 
잘 지내고 있어요?

是的,我在研究反抗重力的武术。
네, 중력을 거스른 무술을 연마 중이죠.

앞선 행선지가 아이들과 책으로 뒤덮인 밀도 높은 행성이었다면, 세 번째 행성은 유난히 휑하다. 스산한 바람이 불고, 여기저기 움푹 팬 흔적으로 가득하다. 도대체 여기엔 누가 있지? 왜인지 모르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뵤~” 맞아, 나 이소룡을 찾아왔지! 노란 추리닝과 특유의 자세, 코를 쓸어 넘기는 엄지손가락, 단단한 쌍절곤…. 다양한 이미지가 이소룡이란 단어와 함께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정작 우주에서 만난 그는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이다. 단단해서 믿음직스러운 자세와 달리 땅 위를 둥둥 떠서 허공을 헤엄치듯 나아가는 브루스 리. 그 엉성한 포즈에도 근육과 신경은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재빠르게 반응한다. 나는 공중 멀미를 견디느라 정신이 없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하여 홍콩에서 성장한 이소룡은 경극 배우였던 아버지 이해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아역배우로 지내왔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무예를 배우면서 실력을 쌓아갔고,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유형의 절권도를 완성하면서 스승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익힌 무예 실력으로 할리우드를 전전하던 그는 노력에 비해 별다른 성과가 없는 그곳을 뒤로하고 조국인 홍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소 <당산대형>(1971)의 정조안과 <정무문>(1972)의 첸, <맹룡과강>(1972)의 당룡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당신, 지구에서 보낸 32년 어땠어요?

아뵤! 말은 필요 없다. 몸으로 대화하자.

 

멀리서 본 이소룡의 별은 그네를 탄 듯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유난히 그 주변에서 우주선이 자주 흔들린 건, 우주의 숨결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네 번째 착륙, 오색빛깔 청명한 행성

로빈 윌리엄스




 How are you?
잘 지내고 있어요?

Yes, I am free.
네, 전 자유예요.

안경을 쓰고 점잖게 걸어오는 그를 보자 왈칵 눈물이 고였다. 내가 가장 존경한 선생님, 내가 가장 사랑한 선생님, 키팅의 모습 그대로였다. 안경을 추켜올리는 그의 손을 보며 준비해온 한국의 시집을 건네려고 쭈뼛대는데, 그는 책을 펼치는 대신 컴퓨터 책상에 앉는다. 그러고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게임을 한다. 살아생전 딸 이름을 게임 ‘젤다의 전설’의 젤다로 지었다더니, 뜬소문이 아니었잖아!

내가 가장 사랑한 로빈 윌리엄스는 <죽은 시인의 사회>(1989)의 키팅 선생이지만, <패치 아담스>(1998)의 빨간 코 패치 아담스와 <플러버>(1997)의 골똘한 교수 필립 브레이너드, 순식간에 초현실로 안내하는 <쥬만지>(1996)의 알랜 패리쉬, <굿 윌 헌팅>(1997)의 숀 맥과이어… 감히 어떤 캐릭터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랴. 선하고 인자한 이미지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그는 스토커, 아줌마, 왕초, 로봇, 그리고 <알라딘>(1992)의 지니까지 갖은 배역을 수행하며 뛰어난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였다.

그와 헤어지기 직전, 나는 눈물을 꾹 참고 꼭 전하고 싶던 한마디를 건넸다. “한국의 한 포털 사이트에서 <쥬만지>를 검색하면 이런 한 줄 평을 읽을 수 있어요. ‘누군가 주사위를 던져 5나 8이 나오면 그가 다시 돌아올까요….’ 많은 사람이 당신을 그리워해요.” 로빈은 예의 그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모니터에서 고개를 돌리고 말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로빈의 별에서 멀어지면서 그의 행성을 오래도록 들여다봤다. 계속해서 색이 바뀌던 이유는 그의 다채로운 이력이 온 우주에 퍼지고 있는 까닭일까, 우주에서도 게임에 몰두하는 그만의 카르페 디엠이 반영된 바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나, 당신을 만나서 정말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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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주연

일러스트 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