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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Around My Corner
어째서일까, 겨우 두 시간 남짓 날아왔을 뿐인데 이토록 낯선 풍경이 펼쳐지는 건. 공항을 나서는 순간 밀려드는 습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제부터 말도 통하지 않는 타지에서 미아처럼 헤매야 한다는 사실도 개의치 않는 상쾌한 기분. 여행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첫 번째 징후가 달뜬 마음이라면, 두번째 징후는 바로 분주한 시선이다. 대만은 건물과 거리, 간판 그 모든 게 잘 재단된 하나의 디자인 제품처럼 보였다. 고층건물 사이로 켜켜이 포개진 고가 도로와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는 오토바이가 직선과 곡선을 이루는 모습, 그 조화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서울에서 대만으로 날아온 항로는 거침없는 직선, 다시 돌아갈 곳이 있는 여행자의 믿는 구석은 커다란 궤를 그리는 곡선. 첫 발걸음을 뗀 순간부터 언젠가 다시 대만을 찾을 거라는 확신과 함께 유려한 직선과 곡선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었다. 곁에 있던 동행자에게도 서서히 징후가 나타났다. 시선이 멈추는 곳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그는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2년 6개월을 함께 보낸 전 남자친구였는데, 대만에 도착했을 땐 우리는 이미 3일 차 부부가 되었다. 그렇다, 우리의 신혼 여행이었다.
결혼 준비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었다.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 신이 나서 여행 계획을 풀어놓는 우리에게 돌아온 반응은 한결같았다. “몰디브도, 발리도, 푸켓도 아닌 대만이라니, 같은 섬이라지만 지구의 대표 휴양지와 대만은 거리가 멀잖니.” “리조트도, 호텔도 아닌 도미토리라고? 신혼여행이 아니면 언제 시설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쉬어보겠어.” 우리도 연애 시절, 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모습을 꿈꾸며 연습 삼아 관악산 둘레길 트랙킹에 나선 적이 있는가 하면, 한 달 정도 배낭을 메고 유럽 곳곳을 떠도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사업상 파트너가 되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던 우리에게 시간은 늘 부족하기만 했고, 주위에서 추천하는 신혼여행 코스를 그대로 답습하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했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때는 바야흐로 2006년, 독립영화제에서 일할 무렵이었다. 당시 사무실에는 아시아 감독들이 자주 들렀었다. 우리나라의 초대를 받아 한국에서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이었고, 그중 한 명이 대만에서 온 데 이먼Damon이었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데이먼과 다시 만나게 된 건 2013년. 그 사이 그와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7년이라는 시간을 거슬러 다시 마주한 그와의 자리에는 어느새 둘이 아닌 넷이 모여 있었다. 데이먼은 한국인 아내를 맞았고,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섬 펑후Pénghú에 호스텔을 차렸다. 지나간 세월을 추억하고 다가올 미래를 노래하며 미소가 번졌다. 데이먼과 그의 아내 크리스틴은 신혼여행지 선택에 골몰하던 우리에게 반가운 제안을 했다. “대만으로 오세요!”
인생에도 지도가 있다면 7년 전, 그 지도 어딘가에 세운 이정표가 인연이 되어 오늘로 안내했으리라. 인연은 전혀 다른 도시에서 다른 삶을 살았던 네 사람을 한자리에 모이게 하는 힘을 지녔다. 데이먼과 보냈던 짧은 여름, 그저 하루 하루 살아낸 것뿐인데 스쳐 지나간 순간이 차곡차곡 쌓여, 마치 지도 위에 흩 뿌려진 수많은 나라와 나라 사이를 연결하듯 하나로 이어졌다. 우리는 그들이 건넨 초대장을 기꺼이 손에 쥐었다.
팍팍한 서울살이가 힘들 때, 일주일의 피곤을 털고 침대에 누워 누군가의 여행기록을 뒤적이다 ‘지금 제주는 어떨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다 제주로 내려가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면, 나와 같이 피곤한 밤을 맞았을 그들을 조용히 떠올려보곤 했다. 우리에게 제주가 있다면 대만 사람에게는 펑후가 있다. 서울보다 집값이 비싼 대만에서 바쁜 일상에 쫓기던 데이먼에게도, 펑후는 생각만으로도 좋은 섬이었다. 펑후에 가면 마음의 평화를 찾아 삶이 한결 반갑게 느껴졌다고. 결국 그는 첫눈에 반했던 그 작은 섬에 뿌리 내리기로 결심하고 실천에 옮겼다. 그 후로 데이먼의 밤은 어땠을까!
펑후에 두 발을 딛자마자 섬사람 데이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옷깃을 흐트러뜨리는 바람 소리, 대만 사람들 특유의 기분 좋은 억양, 천천히 달리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어우러지는 곳. 펑후의 소리는 소음을 배척했다. 그저 높고 낮은 소리들이 평화로움을 연주할 뿐. 데이먼은 호스텔 투숙객 픽업용 차를 몰고 와 능숙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차 안에는 1990년대 한국 가요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한국과 대만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던 당시 크리스틴이 데이먼에게 보내준 노래들이란다. 그의 유별난 선곡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 대한 배려임을 알고 있었다. 서툰 한국어 발음에 독특한 흥을 섞어 따라 부르는 데이먼의 노랫소리가 이 평화로운 섬과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두 사람을 닮은 편안한 호스텔에 짐을 풀고, 일일 가이드를 자처하는 그들을 따라 나섰다. 데이먼 부부는 여행책자에 등장하지 않을 현지 음식점,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비밀스러운 아지트로 우리를 이끌었다. 이름 모를 사찰에 들러 한국에서 온 신혼부부의 행복을 빌어주던 뒷모습, 대만의 토속 점을 풀이해주던 경쾌한말투, 두 사람 사이에 대화가 필요할 때 찾는다는 작은 찻집을 공유하는 배려까지. 펑후에서 만들어온 그들의 꿈 같은 일상에 끼어든 우리는 오래오래 흐뭇했다.
이튿날, 소란스럽지는 않지만 밝게 살아가는 펑후 사람들의 일상을 보고 싶어 무작정 길을 나섰다. 지도는 진작부터 배낭 주머니에 찔러 넣어두었다. 고요한 섬은 따뜻했다. 마음껏 길을 잃어도 불안하지 않고, 발길이 이끄는 대로 헤매도 넉넉한 기분이 드는. 정서적인 고요함은 마음의 평정을 이끌어낸다. 그렇게 주의를 살피면 매일 보는 것들조차 다르게 보인다. 설레는 걸음으로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의 맨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대만에서 보낸 시간들 중 유독 펑후에서 보낸 순간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전기 스쿠터를 빌려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마을 곳곳을 누볐다. 맛있는 음식을 하나라도 더 입에 넣어주려는 엄마 같은 주인 아주머니가 있는 식당에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짓궂은 꼬마들처럼 돌아다녔다. 그런데 전기 스쿠터의 배터리가 바닥이 났는지 서서히 멈춰버리는 게 아닌가. 우리는 스쿠터를 끌고 근처 편의점에 도움을 청했다.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은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지인에게 전화해 우리가 난처해하는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어떻게든 도와주려 했지만 그도 스쿠터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었고, 별 소득 없이 돌아서는 우리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도로에서 승합차 한대가 우리 옆으로 멈춰 섰다. 그들은 스쿠터 배터리를 교환하러 왔다며 충전된 새 배터리로 바꿔주고 유유히 떠나갔다. 아마 편의점의 청년이 배터리 회사에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화사한 미소와 선한 눈빛으로 낯선 여행자의 말을 경청하던 그들의 말간 얼굴을 잊을 수 없을 거라고 직감했다. 우리는 스쿠터를 타고 야트막한 동산에 올라가 작은 항구의 야경을 지켜보기로 했다. 버려진 대만 전통 가옥이 즐비한 동네에 멈춰 타국의 선조를 떠올렸다. 어쩌면 펑후 사람들은 옛 것을 부수는 대신 반쪽이라도 간직하며 역사를 곁에 두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방파제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는 어촌 사람들 사이로 한동안 수평선 너머를 바라봤다. 한강 이쪽에 서서 한강 저쪽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는 것처럼.
펑후의 마지막 밤, 호스텔 지척에서 일렁이는 바다를 그리며 침대에 누웠다. 둘이 누우면 어깨가 겹치는 좁은 공간에서 각자 한 침대씩 차지하고 누워야 하는 도미토리는 신혼여행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우리는 손만 뻗으면 앞으로 오랜 시간을 함께할 서로의 체온이 닿았다. 딱 이만큼의 거리, 어쩌면 우리가 평생을 살면서 자기 자신을 유지하려 애쓰며 지켜낼 거리가 아닐는지. 두 개의 이층침대와 여덟 개의 캐비닛이 반겨주는 호스텔 방을 둘러보며 앞으로 살아갈 인생도 이정도 무게면 어떨까 생각했다. 필요 이상 소유하지 않고 소박하게 산다면 이곳의 고요한 삶과 맞닿지 않을까? 아마도 도미토리의 좁은 침대가 아니면 쉽게 꺼내지 못했을 용기다.
여기는 대만의 섬 펑후, 잊지 못할 신혼여행지.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만큼 떨어진 침대에 나란히 누워 덜어내고 비워내며 살아갈 우리를 그려본다. 귓가에 멀어졌다 이내 달려오는 파도 소리가 들린다.
대만의 지하철
Mrt
대만의 지하철 Mrt은 엄격한 통제 하에 운영된다. 특히 열차 내 음식물 섭취는 금지되어 있으며, 물을 비롯한 음료조차 허용되지 않으니 여행 중 벌금을 내는 경험만큼은 피하도록 하자. 대만은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다. 대체로 달며, 차 문화가 발달해 음식점에서 물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드물다.밤 9시가 되면 대부분의 식당이 문을 닫으므로 야식을 챙기는 것이 좋다.
베이하우스
Bay House
www.bayhouse.tw
대만의 제주라 불리는 섬 펑후에 묵고 싶다면 베이하우스를 추천한다. 유쾌한 에너지로 가득한 대만인 남자 데이먼과 한국인 여자 크리스틴이 운영하는 호스텔이다. 섬 전체에 깃든 아늑하고 포근한 분위기는 색다른 대만 여행의 정취를 더하고, 호스텔 주인 부부의 경쾌함은 피로를 잊게 해준다.
글 사진 조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