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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보는 드라마
밤마다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본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의 삶에서 나 자신을 본다. 드라마를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완벽한 취침 의식이다.
내 잠들기 전 의식은 침대에 모로 누워 아이패드를 옆으로 세워둔 채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상상해 보시라. 매우 추하다.) 내 방 침대 위에 모로 누운 자세로 나는 멕시코 카르텔의 돈세탁을 하는 중년의 미국 남자와, 매달 만화 잡지를 마감해야 하는 젊은 일본인 편집자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세 한국인 자매를 지켜본다. 나는 거의 모든 OTT 서비스를 구독하는지라 매달 납부하는 구독료를 생각하면 마음이 살짝 무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여유 시간이라고는 없이 일하고 또 집에 와서는 집안일까지 하는데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돌보는 (불쌍한) 내게 이 정도 사치는 허용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건 낭비가 아니라 투자라고 합리화를 한다.
아무튼 잠들기 전 보는 드라마가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유혈이 낭자하면 잠이 달아나버리거나 악몽을 꿀 수도 있으니 곤란하다. 이 시간에 전개가 너무 빠르거나 복잡해도 곤란하다. 잠들기 전에 보는 드라마는 소곤소곤 느릿느릿 귓속을 간지럽히는 조용한 심야 라디오 방송 같은 것이 좋다. 그래서 요즘 나는 <나의 눈부신 친구>의 새로운 시즌을 보며 잠들곤 한다.
왓챠에서 볼 수 있는 HBO의 드라마 <나의 눈부신 친구>의 원작은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의 연작 소설이다. 1권 《나의 눈부신 친구》부터 이어지는 총 네 권의 연작 소설은 주인공들의 고향인 나폴리가 주된 배경이라 나폴리 4부작으로도 불린다.
두 여자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기까지 이어지는 이 방대한 이야기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나의 눈부신 친구》는 기본적으로 레누와 릴라라는 두 소꿉친구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이 나고 자란 가난하고 거칠고 위험한 나폴리, 그곳의 폭력과 어둠, 그리고 서민들의 천박한 삶의 태도는 체취처럼 몸과 마음에 배어 있다. 레누는 나폴리를 떠나 부유한 북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가도 결국 다시 나폴리로 돌아가고, 릴라는 아예 평생 나폴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20세기 후반의 세계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 역시 그 물결에 함께 휩쓸릴 수밖에 없다.
소설의 화자인 레누는 착실한 모범생이다. 가난한 집에서 자랐지만 언제나 우등생 자리를 놓치지 않으며 상급 학교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인 그녀는 언제나 타인의 인정과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구둣방 딸 릴라는 다르다. 누구보다 똑똑한 릴라는 남들이 자신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개의치 않는 제멋대로인 성격에 심보까지 못됐다.
레누는 자유롭고 매력적인 릴라를 동경하며 평생에 걸쳐 릴라에게 상처받으면서도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심지어 릴라는 레누가 오랫동안 짝사랑한 첫사랑 니노를 가로채기까지 한다. 나는 이 나쁜년놈들, 하고 이를 갈면서도 이 이야기가 도대체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해 읽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드라마를 볼 때도 똑같다. 이 나쁜년놈들, 하고 이를 갈면서도 보는 것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보통 원작에 흠뻑 빠지고 나면, 후에 제작된 영화나 드라마에는 십중팔구 실망하게 마련이다. 내 머릿속으로 상상한 이미지와 감독이 구현한 이미지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지문, 마치 주인공의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촘촘한 독백의 문장들을 드라마에서 어떻게 온전히 구현할 수 있겠는가. 주인공과 나, 우리 둘이서 맺은 지면 위의 은밀한 관계를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렇지 않았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던 주인공들의 이미지가 배우들의 이미지에 착 붙는다고 해야 할까. 물론 책에서는 더 사납고 무서웠던 릴라가 드라마에서는 왠지 좀 힘이 빠진 느낌이기는 했지만, 덕분에 레누의 캐릭터가 더 매력 있어졌다. 나는 책 속 레누보다 드라마 속 레누가 더 좋다. 글자 속에서는 납작했던 레누가 드라마에서는 매끄러운 피부와 근사한 눈동자와 탄탄한 몸을 움직이며 말하고 웃고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즐겁고 기쁘다. 1960-70년대식의 패션도 그녀에게 찰떡같이 잘 어울린다. 물론 단번에 눈길을 끄는 쪽은 더 화려한 미모의 릴라지만, 그런데도 이 이야기가 레누의 시점에서 진행되기에 나는 레누에게 더 깊은 호감을 느낀다.
아마도 내가 레누를 좋아하는 이유는 레누와 나 사이의 공통점 때문일 것이다. 모범생 레누.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레누. 그럼에도 열등감에 시달리는 레누. 자신의 장점과 강점을, 자신이 이룬 것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레누. 늘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레누.
레누는 선생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릴라를 데리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릴라에게서 잔인할 정도로 공격을 당한다. 릴라는 레누를 비웃고 레누가 애써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지식인들을 조롱한다. 그러나 릴라가 말로 비수를 꽂을 때마다 그저 굳은 얼굴로 지그시 고개를 돌리는 레누를 보고, 나는 릴라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다.
그와 동시에 그런 레누에게서 나를 보았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와 비슷한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내게 상처를 주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공격하는 상대 앞에서, 나는 너무 얼이 빠져서 제대로 자신을 방어하지조차 못했다. 아마 레누의 내면은 많은 여자들의 내면을 닮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삶이 지닌 씁쓸하고 아름다운 모순의 순간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릴라가 학업과 미래를 포기하고 그다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의 결혼을 준비할 때, 그녀는 레누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이야기의 제목 ‘나의 눈부신 친구’의 주인공은 릴라가 아니라 레누다. 레누에게 릴라가 나의 눈부신 친구였던 것처럼, 릴라에게 레누도 나의 눈부신 친구인 것이다. 그리하여 릴라의 모사판에 다름 아닌 것 같던 레누는 내면의 릴라를 끊임없이 의식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그들의 삶에서는 수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들은 결혼을 하고 바람을 피우고 아이를 낳고 이혼을 하고 성공하고 실패한다. 이 여자들은 착하지도, 올바르지도, 희생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때로는 견딜 수 없이 못되고 이기적이고 어리석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깜짝 놀라다가도 이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차마 입 밖으로는 꺼낼 수 없는 욕망과 악한 마음을 거침없이 내뱉는 이 여자들을 미워하면서도 사랑하게 된다.
나는 언젠가 작가 엘레나 페란테가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다. 이 이야기를 쓰는 동안 독자가 이것을 읽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야 했다는 말을. 그 집요한 성실성 덕분에 이 이야기는 한 번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드라마를 한 번 틀었다가는 잠은커녕, 밤을 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이 칼럼을 쓰기 위해서, 소설의 첫 부분을 다시 읽는다. 시작은 레누가 릴라의 아들 리노에게서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는 장면이다. 레누는 깨닫는다. 결국 릴라는 바라 마지않던 대로 증발해 버렸다는 사실을. 어딘가로 떠나거나 도망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이어지는 장면은 레누가 릴라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부분이다. 이제 네 권의 책과 네 개의 드라마 시리즈로 이어질 그 기나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느닷없이 눈물이 후드득 떨어질 것 같아 감정을 추스른다. 결말을 안 채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언제나 슬픈 것이다.
글 한수희
일러스트 서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