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KNOW ICN ?

어느 누구나의 인천

2001년, 1979년, 그리고 2019년의 인천. 누구는 찍고, 누구는 쓰고, 누구는 불렀다. 영화 속에, 문학 속에, 음악 속에 우리가 알고 있는 인천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있다. 엇비슷하게 닮은 이야기도 있다. 다른 형태의 기억들이 모여 있는 곳, 인천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ditor’s Story

라일락 향기의 도시

에디터의 인천, 1989~2007.

사랑에 빠지면 사랑에 빠지게 만든 대상만 보인다고 했다. 지독한 사랑은 겪은 적이 없어서 나의 시야는 언제나 넓었다. 그런 내게도 유난히 눈에 꽂히는 것은 있었는데, 다름 아닌 나고 자란 도시 였다. 책을 볼 때, 음악을 들을 때, 영화를 볼 때 익숙한 그곳이 등장하면 꼭 소리를 내 반응하곤 했다. “어? 인천이잖아.”

나에게 인천은 라일락 향기다. 겨울과 봄이 만날 무렵이면 집 안에 좋은 향기가 났다. 무슨 향기일까 궁금해하는 나에게 엄마는 해마다 같은 이야기를 했다. “라일락 향기. 봄이 오려나 보다.” 그 말때문에 나는 라일락이 좋았다. 1층에 살고 있어서 자라나는 라일락을 창으로 쉽게 볼 수 있었고, 창틈으로 라일락 향기가 풍겨올 때면 자연스럽게 봄을 떠올리곤 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활자와 소리와 장면 속에서, 나는 인천의 면면을 자주 마주했다. 하나의 대상이 유독 두드러지게 닿아오는 게 사랑이라면, 나는 필시 인천과 사랑에 빠진 것일 테다. 그렇게 선명 하게 보아오던, 작품 속 스쳐 간 인천을 모았다. 인천 전문가는 아니어서 분명히 나사 빠진 듯 삐걱댈 테지만 영화 속, 문학 속, 음악 속 인천의 모습을 사랑의 힘으로 그러모으고 그리운 손길로 보듬 었다.

여러 작품 속에서 타인의 시선으로 본 인천을 소개한다. 나에겐 온통 애틋한 기운으로 물든 장소가 누군가에겐 전혀 다른 결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음에 놀라워하며, 애향심을 담아 작품 속 인천을 들여다보았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부서질 이 도시의 모습을 생각하며, 가볍게 인천을 훑어보기로 한다.

Movie

발 디딜 곳 없는 도시

<고양이를 부탁해>, 2001.

인천의 부둣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여고생들의 모습에서 <고양이를 부탁해>는 시작된다. “전 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를 부르며 고무줄놀이를 하는 이들 뒤로 펼쳐진 풍경은 딱딱한 공장과 대형 선박. 어김없는 인천이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연인 태희, 혜주, 지영, 비류, 온조는 상업 고등학교 동창으로 학창 시절을 함께 보내온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갓 스무 살이 된이 다섯의 이야기를 담은 <고양이를 부탁해>는 인천의 구석구석을 조용히 드나들며 서사를 진행 한다. 인천 중에서도 구도심 지역이다.

서울의 증권회사에 입사한 혜주는 인천으로 퇴근할 때마다 “아저씨들이 풍기는 돼지 갈비 냄새” 에 코끝을 찡그리는 게 죽도록 지겹다. 서울로의 상경은 신분 상승과도 같아서 그는 하루빨리 서울로 가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또한 태희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맥반석 체험실 일을 도우며 일당도 받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데서 답답함을 느낀다. 무엇이든 주체적인 일을 하고 싶은 태희에게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있는 인천은 답답한 도시다. 선원들이 모인 당구장에 전단지를 돌리러 간 태희가 “저도 배를 탈 수 있을까요?” 하고 묻는 장면에서 탈향의 의지는 여실히 드러난다.

한편, 지영과 온조, 비류의 삶을 통해서는 경계지대로서의 인천의 모습도 굽어볼 수 있다. 신공항에 일자리를 얻은 지영은 조부모와 판자촌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신공항이라는 산업화의 산물과 발전의 빛에 가려 극명하게 어두워진 곳의 경계를 오가는 지영은 인천의 양면성을 몸소 겪으며 살아간다. 차이나타운에 살고 있는 쌍둥이 비류와 온조는 화교로서, 처음부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인천에 애정을 품고 있는 인물이지만 인천은 이들에게 냉정하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도시처럼 보인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의 인천은 혜주와 태희에겐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탈주의 공간이 며, 지영과 비류, 온조에게는 발전과 쇠퇴의 경계지대이자 이방인들이 머무는 장소, 더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물러나지도 못하는 사람이 모인 도시가 된다.

Literature

엄마만 남은 도시

오정희, <중국인 거리>, 1979.

“시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길은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오정희의 단편 소설 <중국인 거리>는 인천역에서부터 시작한다. 탄가루가 날리고, 맡으면 골치가 아픈 해인초 끓이는 냄새가 진동하며, 곳곳에 포격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가 널려 있는 황량한 이곳은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인천의 끝, 중국인 거리다. <중국인 거리>의 주인공인 ‘나’와 그 가족이 피란 지에서 넘어와 살게 된 곳은 중국인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낡은 목조 이층집 중 하나다. 아홉 살 난소녀가 본 인천은 피란지에서 꿈꿔오던 도회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아이가 떠올린 도회지는 “밀대 끝에서 피어오르는 오색의 비눗방울 혹은 말로만 듣던 먼 나라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화려한 곳이었다. 그러나 인천은 초라하고, 지저분하고, 어수선한 활기로 가득한, 전후 풍경을 고스란히 가진 황량한 거리일 뿐이다.

<중국인 거리>는 전쟁 직후의 인천을 배경으로 중국인 거리에 살고 있는 다양한 여성 인물의 이야 기를 담고 있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나’의 눈을 통해 만난 여성들은 1950년대 인천이기 때문에 가능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특히 미군 기지의 양공주인 매기 언니의 삶이 그렇다. 매기 언니의 방은 미군들이 선물한 환상의 물건들(유리병, 화장품, 패티코우트, 속눈썹, 진주목걸이, 브로치, 귀고리….) 로 가득하다. 소녀에게 매기 언니의 방으로 그려지는 인천은 임신과 출산‘만’ 반복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의 도시고, 꿈의 물건이 가득한 환상의 공간이다. 계모라 부를 만큼 엄마의 삶을 경멸하던 소녀에게 매기 언니의 생활은 처음 보는 호화로운 삶이었기에 더욱더 그렇다.

그러나 매기 언니가 흑인 군인에 의해 살해당하면서 소녀가 동경하던 세계는 처절하게 끝이 난다.

출산의 고통으로 절규하는 어머니가 있는 집으로 돌아온 소녀에게 남은 것은 환상이 깨지면서 드러난 허무함뿐이었다. 망연자실한 소녀는 초조初潮를 맞으면서 엄마가 밟아온 여성의 삶, 아이를 낳고 기르는 행위만 반복하는 삶에 진입할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 소녀의 인천은 환상과 동경, 경멸이 한데 뒹굴던 공간에서 허무만 남은 비탄의 공간으로 변하며 막을 내린다.

Music

지극히 사적인 도시

열섬, ‘인천(ICN)’, [인천(ICN)], 2019.

“촘촘히 맞닿은 어깨를 비집고 시큰한 바람이 불 때에 멍하니 난 바랐지”

열섬이 노래 ‘인천(ICN)’에서 부르는 시큰한 바람이 부는 그곳은 인천의 월미도다. 이 노래는 “공연 뒤풀이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눈에 띈 첫 번째 택시를 잡아타고 홍대에서 월미도까지 달렸” 던 어느 겨울날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수년 전 그네들이 본 “춥고 어두운 인천 바닷가”와 “아무도 없는 놀이공원”은 추억이 어려 있는 애틋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멈춰 있는 회전목마를 빙글빙글 돌며 서로의 이름을 외쳐댄 기억과 숙소 한 방에 모두 들어가 청춘의 밤을 보낸 기억이 엉켜 있는 곳, 아주 사적인 인천에서 ‘오늘을 꼭 노래로 만들자.’는 약속이 시작되었다.

앞선 인천들이 희망을 앗아가는 피폐한 도시이자 황량한 공간이었다면, 열섬이 부르는 인천은 청춘의 날것을 그러모은 듯한 찬란한 공간이며, 지극히 사적인 도시다. 열섬이 말한 대로 ‘인천’이 “지난 시간이 고여 있고 앞으로의 시간을 잉태한 곡”이라면, 열섬이 지층을 쌓아 올릴 미래는 인천에 뿌리를 두고 단단함을 더해갈 것이다. 긴 시간 마음에 남아 오랫동안 빚어진 이 음악에는 충동적인 떠남이 준 미묘한 설렘과 큰 보폭으로 나아가는 단단한 걸음이 녹아 있다. 열섬에게 인천은 오래된 약속이고, 달뜬 청춘이며, 붉은 첫 걸음이 탄생한 시작의 도시다.

내가 그렇게 말해왔잖아 얼마나 좋을지 말이야 모두 가만히 눈을 감았네 사실은 깨어 있었으면서 어리석은 꿈이면 어때 몰래 기억하면 되잖아 바보 같은 약속이래도 언젠가는 꼭 지켜낼 거란 말이야 촘촘히 맞닿은 어깨를 비집고 시큰한 바람이 불 때에 멍하니 난 바랐지 조금 나를 기억해 달라고 좀더 나를 이해해 달라고 

                                                                                                                                                                                                           -열섬,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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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