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d You Get My Message?

고수리 작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품고 있는 능력, 태도, 마음 같은 것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면서 돌아오는 에너지로 내면을 다시 풍성하게 채운다. 요즘, 직접 만난 적 없는 이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아침을 여는 고수리 작가도 받기보다는 내어주는 쪽이다. 그녀의 단단하고 다정한 메시지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사연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 그리고 모든 엄마들을 향해 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비로소 자기를 온전히 받아들인 그날부터 그녀는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도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저만의 프레임 속에 세상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진짜 쓰고 싶은 글이 뭔지 깨달은 거예요. 저는 제가 겪은 경험이나 고민을 쓰더라도 결국에는 그 안에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들고 위로를 주는 메시지를 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wee》의 연재 기사 필진과 담당 에디터에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만나게 됐네요. 새삼스럽지만 이야기 나누게 되어 기뻐요.

이런 자리에 마주 앉으니 어색하네요(웃음). 독자분들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것 같아 설레요.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근황부터 묻고 싶어요.

일단 두 달에 한 번 《wee》에 ‘엄마들의 글쓰기 수업’을 연재하고요(웃음). 다른 온오프라인 매체에도 주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어요. 2021년 한 해 동안 세종사이버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에게 에세이를 가르치다가 학기를 마무리했고, 강연도 하고 간간이 카피라이팅 작업도 하고… 얼마 전에는 밑미에서 리추얼 프로그램도 개설했어요. 매일 혼자 하던 리추얼을 여럿이 함께 하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했는데 더 즐겁게, 열심히 하게 되네요.

 

짐작보다 더 바쁘게 지내시네요. 그래도 지쳐 보이지 않아 다행이에요.

주말에는 무조건 일을 안 한다는 원칙이 있거든요. 가족들이랑 시간을 보내면서 쉬기도 하고 에너지를 채워요. 오늘도 일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재미있게 놀고 사진 찍자는 마음으로 왔어요.

 

최근에도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작가가 되기 전에도 영상 기획 PD, 방송 작가 등 여러 일을 거쳐 왔어요. 돌고 돌아 작가가 된 셈인데 언제부터 작가를 꿈꿨어요?

처음부터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어요. 글 쓰는 걸 좋아하기는 했는데 작가라는 두 글자가 저한테는 너무 대단해 보여서 감히 꿈으로 삼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국어 선생님이 되어볼까 했지만 성적이 안 됐고(웃음) 딱히 꿈은 없었어요. 한 번은 제가 방송 일을 왜 선택했는지 돌아본 적이 있는데요. 어릴 때부터 어딘가에 소속되고 사람들과 협업해서 무언가를 기획하고 창작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는 방송부, 그다음엔 교지 편집부, 그다음엔 연극부 소속이었어요. 스무 살 때는 교내 방송부로 활동했고요. 카메라로 세상을 보고 듣고 말하는 사람이 된 거죠. 글 쓰는 건 여전히 좋아해서 첫 직장에서 영상 기획 PD로 일할 때도 혼자 계속 써왔어요. 서른이 되기 전에 진짜 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직장을 관두고, 고개를 조금 돌려 방송 작가 일부터 시작한 거예요.

<인간극장>에서 구성 작가로 일하셨죠? 여러 인터뷰와 글에서 그때의 경험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어요.

지금까지 제 인생의 변곡점이 세 가지 있는데요. 하나는 남편과 만나서 결혼한 일, 또 하나는 아이들을 낳은 일, 마지막 하나가 <인간극장>에서 일한 일이에요. 글쓰기의 시선이 그때 다 다져졌어요. <인간극장> 같은 휴먼 다큐멘터리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잖아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 들의 고유한 이야기를 잘 발견하고 어떻게 진솔하게 전할 것인지 고민하는 속성이 있어요. <인간극장> 일을 하기 전까지 저는 너무 내면으로만 침잠해서 회의적이고 냉소적이고 우울한 글만 썼어요. 쓰고 싶은 순간은 대부분 우울하거나 슬플 때였죠. 기쁜 일은 크게 말하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지만 슬픈 일은 혼자 삭이게 되잖아요. 글을 쓰는 목적이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쓴 글을 보면서 제가 되게 우울한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저만의 프레임 속에 세상을 어떻게 담을지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진짜 쓰고 싶은 글이 뭔지 깨달은 거예요. 저는 제가 겪은 경험이나 고민을 쓰더라도 결국에는 그 안에 세상을 좀더 따뜻하게 만들고 위로를 주는 메시지를 담고 싶은 사람이었어요. 목적이 생기고 시선이 달라지니 글도 달라졌어요. 전하려는 메시지도 확실해졌고요. 그 시기를 거치지 않았더라면 지금 아마 다른 글을 쓰고 있을 거예요.

 

작가님 글이 따뜻한 이유를 조금 알겠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는 중국집에 주문도 못 할 정도로 전화를 무서워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아무리 전화가 무서워도 출연자 섭외를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미리 적어둔 대본을 보고 전화를 걸었어요. “안녕하세요. 저 <인간극장>의 고수리 작가라고 하는데요. 다름이 아니라…” 아시죠? ‘다름이 아니라’ 꼭 붙여줘야 하잖아요(웃음). 생각해 보면 거절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거절당하는 상황에도 능숙하게 대처하게 되면서 넉살도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잘 들어주고, 좋은 질문을 던져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법을 많이 배웠어요. 출연자들 모두가 자기의 깊은 고민이나 오래 묻어둔 진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꺼내면서 상대방이 잘 들어주고 물어주길 바랐을 텐데, 다행히 어릴 때부터 그걸 잘했어요. 경청이요. 스무 살 때부터 후배들이 무슨 일만 있으면 저를 찾아오고, 저랑 얘기만 하면 그렇게 울더라고요.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어려서부터 드라마틱 하게 살아와서 삶의 경험이 남들보다 좀더 빨랐던 게 이유 같아요. 그게 타인의 삶을 좀더 공감하는 태도로 이어졌고요. 이야기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멋진 재능을 품고 첫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펴냈어요. 책을 보면서 저라면 작가님처럼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을까, 아픈 모습까지 보듬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보이는 게 두렵지는 않았어요?

사실 그 당시에는 제 얘기를 드러내는 데 두려움 같은 건 없었어요. “나는 이렇게 살아왔어. 너는 어때?” 하고 어디에라도 빨리 말하고 싶었거든요. 사적인 글쓰기와 공적인 글쓰기가 다른 점이 이것 같아요. 혼자서 아무리 많이 써도 뭔지 모를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고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그래서 브런치에 ‘나 앞으로 이런 글을 쓸 거야.’라고 선언하는 듯한 글을 시작으로 꾸준히 제 얘기를 썼고, 그걸 엮은 책이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예요. 브런치 첫 글이 책의 프롤로그로 실렸는데, 그 글을 쓰기까지 정말 많이 고민하고 퇴고한 기억이 나요. 한 번쯤은 나에게 사무친 이야기를 툭 털어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마음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그것도 <인간극장> 하면서 배웠네요. 전 국민이 보는 5부작 프로그램에 나와서 끝끝내 묻어뒀던 자기 이야기들을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오히려 이제 살 것 같다면서 후련해하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분들에게 ‘힘든 삶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았듯이 저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책을 내고 나니 어땠어요?

20대 때부터 쓰던 글을 다 모아놓은 거고 할 얘기를 다 쏟아내 버려서 앞으로를 걱정하기도 했는데, 책을 내고 나니까 너무 홀가분했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책 한 권에 담았으니, 이건 여기 두고 나는 또다시 잘 살아봐야지.’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요. 책을 낼 때마다 인생 한 권, 두 권, 세 권 두고 간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첫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아요. 그때의 나를 다시 보니 어떤 마음이 들던가요?

저는 원래 제가 쓴 글을 다시 안 보는 편이거든요. 처음 다시 보자마자 “얘 이 이야기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지?” 그랬어요. 이렇게 작가로 계속 살아갈 줄 알았으면 글감 좀 아껴둘 걸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웃음). 한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고스란히 옮겨 놓은 책이잖아요. 그것도 무겁고 큰 이야기들을요. 벌써 7년이 지났는데, 다시 봐도 너무 솔직하고 용감하고 자기 연민도 심했어요. 하지만 씩씩했어요. 나답게 살려고 노력한 모습이 참 예쁘고 좋아서, 따뜻한 국물 있는 밥 한 끼 사주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엄마도 됐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어른의 마음으로 보게 돼요. 과거의 ‘나’가 아니라 제가 낳은 아이 같은 느낌이에요.

 

그때도 지금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기를 챙기고 있네요. 요 몇 년간은 리추얼로 자기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요? 

맞아요. 엄마들의 글쓰기 수업 기사에도 소개한 아침 글쓰기리추얼을 2년 가까이 해왔어요. 밑미에서 새로 오픈했다는 프로그램도 같은 거고요. 말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마음 내키는 대로 책을 읽고 글쓰기로 이어지는 과정을 하나의 리추얼로 정해 실천하고 있어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거예요?

2019년에 글쓰기 강연을 정말 많이 했어요. 수업마다 무겁고 깊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이 오갔는데, 거기에서 오는 우울이나 슬픔, 상실에 관해 나누는 게 어느 순간 감당하기 힘들어졌어요. 그런 상태로 아이들이 잠들면 무조건 글을 썼고,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요. 한참 일을 못 하다가 아이들이 처음 어린이집에 간 시기여서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했거든요.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상했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글 쓰는 여자들이 도대체 어떻게 자기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지 책을 뒤져가며 알아갔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일하는 엄마 작가들은 정말 간절하게, 틈틈이 일을 해야 한다는 걸 받아들였고, 그때 생활 패턴을 확 바꿔 버렸죠.

 

아침에 일어나는 일을 자세히 듣고 싶어요.

해가 쨍하고 뜬 아침보다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보는 걸 좋아해요. 어두웠다가 푸르스름해졌다가 밝아지는 흐름을 보고 느끼고 싶어서 그 시간에 맞춰 눈을 떠요. 계절마다 해 뜨는 시간이 달라서 하절기에는 다섯 시, 동절기에는 여섯 시쯤 일어나죠. 뜨는 해 보는 거, 물 마시는 거 그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으신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천천히 저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창밖을 보고 있으면 깜깜하다가 불빛 하나가 탁 켜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 순간이 참 반갑고 특별하게 여겨져요. 여행지에 온 것 같기도 하고요. 해가 뜰 때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깔, 공기, 냄새와 바람을 느끼면 내 몸 자체를 깨우는 기분이 들어요. 물을 천천히 꼭꼭 씹어서 넘길 때도 그렇고요. 리추얼 시간에는 해야 하는 작업 말고 읽고 싶은 책을 아무 데나 펴서 읽고,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놓치지 않고 수집해요. 생산성이나 합리성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자유롭게 보내는 거예요.

스스로 바라보는 시간이라니… 저는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여유를 가지고 시작하면 확실히 하루가 충만해져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계속해서 물어보고 오로지 나에게만 쓰는 시간이잖아요. 아침이라 조용하고 아무런 방해도 없어서 명상이 주는 느낌과도 비슷해요. 충만함이 작업으로 이어졌을 때 성과도 많이 내게 돼요. 마음가짐 자체가 다르니까요. 나이가 들면서 주어지는 책임과 역할이 많아질수록 내면의 여유가 있어야 역량을 더 끌어낼 수 있어요.

 

지금 불끈불끈 의지가 솟고 있는데, 동시에 실패에 낙담하는 미래의 제 모습이 그려져요. 작은 부분부터 시작해 보면 도움이 될까요?

음… 사실 조금씩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뒷전이 될 수 있어서 단번에 시작하는 걸 추천해요. 일단 시작하고 기간을 단기적으로 늘려보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습관은 만들어질 수 있거든요. 한 달도 길어요. 시작은 일주일만, 그다음에는 2주, 3주로 늘려가는 방법이 좋은 것 같아요. 나에게 하는 중요한 약속이라고 생각하고요. 아마 엄마들은 잘하실 거예요. 아이들 때문에 어차피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15분 동안 책을 읽어보는 거죠. 잠들기 전에 구체적인 약속을 하는 것도 팁이에요. 혼자서 시작하기 어렵다면 제가 리추얼 프로그램에서 멤버들을 만난 것처럼 여럿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봐도 좋아요. 저도 혼자 할 때는 좀 외롭기도 했는데,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멤버들이 ‘저도 지금 일어나서 책 읽고 있어요.’라고 응답해 주니까 힘이 나더라고요. 동료가 생겼다는 즐거움이 있어요. 어떤 분들은 중간에 리추얼을 못 지켰다고 미안해하거나 아예 잠적하시기도 하는데, 그럴 때 저는 늘 ‘다시 하면 된다’고 말씀드려요. ‘다시’ 라는 말이 리추얼엔 정말 중요해요.

 

원래 자기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편이에요?

오히려 즉흥적인 편이었어요. 30년 넘게 야행성이었고요. 방송 일을 오래 했던 게 영향이 컸어요. 내일은커녕 한 시간 후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계획을 세워놓기가 어렵기도 했고, 밤새서 작업하는 일도 많았거든요. 계획성보다 순발력이 더 중요한 직업이었는데 지금은 강의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직업으로 바뀐 거죠.

 

작가님에게 매일 쓰고 읽는 ‘꾸준함’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져요.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요. 오래 하려면 꾸준해야 하죠. 문보영 시인이 ‘재능이라는 건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지구력이 아닐까’라는 얘기를 했는데, 저한테는 꾸준함이 재능인 것 같아요. 글을 잘 쓰는 건 반짝이지만 금방 사라져버리는 재능이라면 꾸준함이야말로 작가에게 제일 필요한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글쓰기뿐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에세이가 1인칭 문학이다 보니 제가 살아온 대로 쓰게 되거든요. 그래서 호기심을 유지하는 동시에 글쓰기라는 행위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요. 지금까지 아동문학, 애니메이션, 휴먼 다큐 등 여러 분야의 글을 써왔듯이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 내 삶, 가족, 주위 사람들을 돌보면서 글도 잘 쓰고, 삶도 잘 가꾸고 싶어요.

기다리고 지켜보며

“자기가 고유한 존재라는 걸 명심하고, 각자 잘하는 것,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고 인정하면 좋겠어요. 본인들이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개별적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애니메이션 <토닥토닥 꼬모>가 만들어지는 디자인에그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요. 꼬모와 작가님이 깊은 관련이 있다고요?

<토닥토닥 꼬모>는 제가 시나리오를 쓰고 남편의 회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에요. 여기가 회사 사무실이고요. 얼마 전에 이사를 했는데 분위기가 따뜻하죠?

 

그러네요. 꼬모의 시나리오를 작업했다는 걸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2015년에 결혼했고, 2016년에 첫 책이 나왔는데 그 즈음에 남편이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 했어요. 같이 일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해 줘서 시나리오를 쓰게 된 건데요. 마침 그때가 제가 아동문학을 공부하고 청소년 소설을 쓸 때여서 그럼 한번 해보자고 했죠.

 

아동문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한 시기가 있었군요?

남편이 결혼 후 1년 동안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서포트를 해줬거든요. 글을 너무 쓰고 싶은 마음이 보이는데 생계형으로만 쓰니까 안타까웠나 봐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라고 응원해 줬어요. 그래서 지금 엄청 뿌듯해해요. 고작가 내가 키웠다고(웃음).

 

남편분의 서포트가 없었다면 꼬모가 탄생하지 못했겠어요. 어떤 이야기인가요?

꼬모는 세상에 태어나기가 무서운 내성적이고 겁 많은 병아리예요. 그래서 알 껍질을 기저귀처럼 차고 있어요. 엄마가 먹으라고 준 지렁이도 차마 먹지 못하고 모자 속에 숨겨놨다가 단짝 친구가 되죠. 착하고 다정한 아이예요. 친구들이 아프거나 상처가 생겼을 때 ‘토닥토닥’ 해주면 치유가 되는 초능력을 갖고 있어요. 무해하고 자극이 없는 콘텐츠죠. 친구들 여럿이 모이면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서로 이해하면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위로, 배려, 공감 등을 키워드로 잡았어요. 꼬모가 방영을 시작할 때쯤 서안, 지안이가 태어나서 아이들과는 함께 자란 친구 같은 캐릭터예요. 

 

작가님의 글과 결이 닮아 있네요.

맞아요. 꼬모처럼 갈등이 일어나는 걸 두려워하고 내성적인 친구들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고요. 그렇게 내 아이 키우듯이 키운 꼬모가 어느새 유튜브 구독자가 200만이 넘어 많은 분께 사랑받고, 착한 캠페인들에 앞장서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까지 받을 줄은 몰랐어요. 정말 잘 자라주어 뿌듯해요(웃음).

서안이와 지안이가 지금 여섯 살이죠? 아이를 낳은 일이 인생의 변곡점 중 하나라고 했잖아요. 어떤 면이 많이 바뀌었는지 궁금해요.

엄마가 되고 나서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요. 사실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육아는 저랑 다른 세계 이야기라고만 여겼어요. 깨어진 가정 안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제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스스로 자주 물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 함께 지내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낳았다는 느낌보다는 아이들이 저에게 와줘서 만났다는 느낌이에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독립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나는 나고, 너희는 너희다.’ 특히나 일란성 쌍둥이라서 많은 분들이 둘을 거의 똑같다고 여기시는데, 그럴수록 저는 둘을 더 개별적으로 대하려고 해요.

 

두 아이는 어떻게 달라요?

첫째 서안이는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좋아하고,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아이예요. 엄마와 상호작용하는 데서 기쁨을 많이 얻고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런데 속마음을 돌려서 얘기하는 면이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줬으면 하고, 화가 나도 속 시원히 얘기하지 않아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많이 하고 있어요. 지안이는 호불호가 정말 확고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요. 무언가에 몰두해 있을 때 말 붙이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고요. 서안이는 외향적이고, 지안이는 내향적이죠. 다른 성향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대하려고 했다면 고민이 많았겠지만 제가 아이들에게 헌신하거나 너무 잘하려고 노력하는 엄마는 아니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잘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건가요?

맞아요. 저는 요리도 청소도 다 잘하지 못하고 항상 온화한 엄마도 못 되거든요. 다만 매 순간 진심으로 대하려고 해요. 다정하기도 엄격하기도 한, 아이들에겐 인간적인 엄마예요. 아이들과 제 관계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으면 해서 육아서는 잘 안 봤어요. 대신 몇 가지 규칙은 세워뒀죠. 아이들 밥은 절대 따라다니면서 먹여주지 않았어요. 밥 먹을 시간을 주고 손으로 주무르든 안 먹든 정해둔 식사 시간이 끝날 때까지 지켜봐 줬어요. 아이들은 젓가락질을 하다가 마음처럼 안 되면 화를 내고 던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화가 나는구나. 그럼 너는 손으로 먹어도 돼. 대신 천천히 먹는 거야.” 하는 거죠. 그런 식으로 생활 습관을 들이고 어린이집에 보냈더니 선생님이 아이들이 혼자서 밥을 너무 잘 먹는다고 놀라시더라고요. 사람을 지켜보고 기다리는 걸 잘하는 제 성격이 육아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 같아요. ‘아이가 지금 바라는 게 뭘까, 하려는 말이 뭘까?’ 많이 질문하고 지켜보려고 해요.

 

‘아이들을 만났다’고 표현한 게 다시 떠올라요. 아이들과 이미 어느 정도는 분리가 되어 있는 것 같아서요.

저와 엄마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어릴 때 저는 엄마를 가여워하고 항상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만 아니었으면 엄마가 자유롭게 살았을 텐데, 나는 왜 태어난 걸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했죠. 지나고 나서 보니 그런 마음을 품은 순간부터 자기다움을 찾는 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엄마가 되고 나서 생각이 달라진 것도 있어요. 나를 낳은 것, 키운 것 모두 엄마의 선택이었고, 그렇다면 행복했겠구나 싶어요. 저희 엄마 혼자서도 되게 씩씩하게 잘 지내시는 분이거든요. 작년 연말에도 내려간다니까 자기 좀 자유롭게 놔두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항상 뭔가를 배우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서 바쁘세요.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아이들도 나중에 제 걱정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일부러 더 자주 말해요. “엄마는 밖에서 일하는 게 너무 즐거워.”

엄마가 일할 때 아이들은 잘 기다려 주나요?

일하는 시간과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분리해 두긴 하는데, 작년엔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면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에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를 틀어주고 “엄마가 작가님 일을 다 못 마쳤는데 좀 기다려 줄 수 있어? 일만 하려는 게 아니라 얼른 마치고 너희랑 놀고 싶어서 그래. 너네 좋아하는 거 보고 있으면 엄마도 좋아하는 일 하고 올게.” 하고 충분히 설명해 줘요.

 

작가님이 자신을 지키기도 했지만 가족들도 작가님 일을 아주 많이 응원하고 있네요. 

맞아요. 아이들, 남편, 엄마 모두가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특히 평소에도 남편과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눠요. 남편이 여섯 살 연상이고 사회 경험도 더 많다 보니 일하는 태도나 방향에 대해 많이 가르쳐줘요. 일을 시작하고 포지션을 바꿔가는 과정을 지켜봐 왔으니까 꿈이 향하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확실히 알잖아요. 서로 일 얘기도 많이 하고,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조언하기도 해요. 아주 잘 맞는 콤비예요.

 

부부 콤비가 아이들에게 가지는 바람이 있다면요?

주체적으로 자기를 챙기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공부든 좋아하는 분야를 찾든 앞으로 뭘 할 건지 오래 생각하든, 그건 스스로 찾아야 하는 거잖아요. 아무리 부모가 원하는 게 있다고 해도요. 남편이나 저나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좋아하는 걸 오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어서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다 겪어봤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너희는 똑같다’고 말할 수도 있고, 그게 쌓이면 자기도 모르게 정체성이 헷갈릴지도 몰라요. 자기가 고유한 존재라는 걸 명심하고, 각자 잘하는 것, 원하는 것이 다르다는 걸 알고 인정하면 좋겠어요. 본인들이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개별적으로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요.

네 식구의 의미가 담긴 리추얼

일주일에 한 번, 교보문고에서 책 한 권
일주일에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교보문고에 가요. 아이들에게 한 시간을 주고 원하는 책을 딱 한 권씩 고르게 해요. 종류나 연령대에는 제한을 두지 않아요. 너무 어렵거나 재미없는 책도 스스로 보고 느끼도록 두는 편이에요. 그런 다음엔 꼭 아이스크림을 먹어요. 책 고르는 것도 좋지만 단 걸 먹으면 기분이 더 좋아지니까요!

생일마다 기부와 선물

아이들 생일마다 서안, 지안이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책 한 권을 선물해요. 세이브 더 칠드런의 ‘좋아서 하는 기념일’로 특별한 날에 기부할 수 있거든요. 제가 아동 문제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생일을 좀더 의미 있게 보냈으면 해서 아이들 스무 살 생일 될 때까지는 계속 해주려고요.

한 달에 한 번, 엄마의 바다

엄마가 계신 곳이 바다 마을이어서 한두 달에 한 번씩 꼭 바다로 가요. 아이들은 바다를 보자마자 달려 나가서 모래 위에 널브러져요. 여름엔 바닷가 들어가서 놀고 여기저기 흩어진 조개껍질을 주워 와요. 그리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요. 자연만큼 아이들에게 다채로운 자극을 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