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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슬기로운 문화생활
가족의 얼굴이 다르듯 그들이 누리는 여가 시간의 모양도 다르다. 어느덧 훌쩍 자라버린 아이의 취향을 존중하며 가족이 함께 누리고 있는 문화생활을 소개한다.
엄마 김현정, 박우주 10세
가족은 여가 시간에 주로 무얼 해요?
회사원 남편과 바구니를 만들고 가르치는 저, 세상 모든 만들기에 관심 있는 열 살 아이가 한마음으로 좋아하는 건 여행과 캠핑이에요. 캠핑이나 여행을 가지 않는 주말에는 가고 싶던 빈티지 숍 혹은 작은 독립서점이나 미술관에 가기도 해요. 아이를 위한 곳을 일부러 찾아가기보다는 제가 궁금한 곳을 가는 편인데요. 신기하게도 아이는 어떤 곳에서든 자기 관심사에 딱 맞아떨어지는 걸 찾아내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서촌의 ‘Ofr.Seoul’이라는 유럽의 중고 책들을 판매하는 중고 서점에 갔을 때도,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잡지와 화보집 사이에서 일본의 전통 종이접기 책을 찾아내서 사줄 수밖에 없었죠(웃음). 제가 좋아하는 빈티지 가구와 조명을 보러 가면 아이는 그 빈티지 숍에서 빈티지 토이 자동차를 구경하는 식이에요. 요즘은 여행지에서 작은 독립서점들을 일부러 시간 내서 방문하는 게 저희 가족만의 루틴이 되었어요. 아이는 그림책 코너를 찾아보고 저와 남편은 관심 분야의 책을 고르며 같은 공간을 따로 또 같이 경험해 보면서 우리 가족만의 경험을 쌓아가고 있어요.
어느 곳이든 자기 관심사를 찾아낸다니 멋진데요?
저와 우주는 뭔가 하나에 빠지면 헤어나오질 못하는 ‘덕후’기질이 닮았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아주 어린 아기일 때부터 우주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동그라미에 빠져 있었어요. 그 동그라미가 음악이 흘러나오는 CD였다가, 바퀴가 굴러가는게 좋아서 자동차를 좋아했고, 자동차가 좋아서 매일 레고로 자동차를 만들었어요. 동그라미와 네모를 그릴 줄 알게 되자마자 버스를 그렸고, 재활용할 종이 상자를 가져다가 잘라서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기도 했고요. 팽이가 너무 좋아서 색종이로 팽이를 접고, 레고로 팽이를 만들고, 좋아하는 팽이 장난감(베이블레이드)을 보고 펜드로잉을 하기도 해요. 그리기와 만들기 어느 한 활동으로만 그치지 않고 하나의 주제로 여러 가지 재료와 방법으로 접근하면서 노는데, 이런 게 융합교육이지 별건가 싶어요. 다양한 활동을 미리 찾아보고 준비해 주지는 못하고 아이가 무언가 만들려고 씨름하고 있으면 어려운 부분을 같이 해결해 보거나 다른 재료로 만들어보는 정도의 보조적인 역할만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놀이가 확장되는 것 같아요.
아이가 주도할 수 있게 따라가는 거네요.
맞아요. 아이는 늘 현재 빠져 있는 것에 대해 제게 이야기하고 싶어 해요. 새로 만든 레고 작품을 가져와서 설명해 주고 사진으로 남겨달라고 하기도 해요. 엄마인 제가 할 일은 충분히 빈둥거리다가 재미난 놀이를 생각해 낼 만큼의 시간을 확보해 주고, 놀이의 결과물을 보고 감탄해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의 인정과 칭찬이 아이에게는 가장 큰 원동력이더라고요. 사실 집안일이 많을 땐 건성으로 들을 때도 많은데 남편은 늘 진심으로 감탄하고 칭찬해 주는 편이라 그 모습을 보고 반성하기도 해요. 그리고 아이의 그림 조각들, 레고 작품들을 집 안 곳곳에 전시하는 편이에요. 제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는데, 아이의 흔적을 모두 숨기고 깔끔하기만 한 집은 매력이 없더라고요. 아이가 처음으로 그린 버스 그림, 우산 그림, 레고들이 집 안 곳곳에 있어요. 아이가 그린 그림으로 접시를 만들어서 아직도 잘 사용하고 있고요. 일상에서 늘 아이의 작품과 함께하고 있어요.
레고나 종이접기는 아이가 익히는 많은 배움 중 하나일 텐데요. 아이의 성장에서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부분도 궁금해요.
남아 미술 교육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남자아이들은 못하는 과목을 보충해 주는 방식보다는 잘하는 과목을 더 잘하게 부추겨주면 그 과목에서 경험한 성취와 자신감으로 결국 못하는 다른 과목도 극복해 내는 경향이 짙다고 하더라고요.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인 저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관점이라 무릎을 탁 쳤어요. 실제로 저희 아이는 일곱 살이 끝날 때까지 한글에 관심이 없어서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겨우 가나다라를 뗀 수준이었어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 잘 읽고 쓰지 못해서 주눅이 들거나 자존감이 낮아질까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1학년 내내 학교를 너무 재미있게 다니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반에서 종이접기를 제일 잘해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이 몰려와서 접어달라, 가르쳐달라고 했대요. 그래서 한글을 조금 못 읽어도 전혀 개의치 않고 “난 종이접기 천재니까!” 하고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고, 한글도 금방 따라잡은 우스운 경험이 있어요. 아이의 성향이 뭘 하나 빠지면 끝까지 파는 성격이라서 레고나 종이접기를 할 때도 원하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는다고 울면서 될 때까지 하고, 반면에 관심 없는 분야는 전혀 안 하려고 해서 걱정이었는데,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낸 경험이 있으면 나중에 어떤 분야에서 일을 하더라도 도움이 되겠다 생각하게 되었어요. 대신 스트레스 받을 정도까지 빠져들면 잠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다시 즐겁게 작업하도록 유도하고 있어요.
엄마 이민지, 송채은 8세
가족은 여가 시간을 어떻게 즐기고 있어요?
저희 가족은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듣고 서로 좋아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해요. 건축을 전공한 남편과 디자인을 공부한 제 관심사와 취향이 함께 살고 있는 집과 일상 속에 스며들었어요. 자연스럽게 아이도 다양한 공간을 탐색하고 낯선 도시로 떠나는 여행을 즐거워해요. 호기심이 많고 감정 표현에도 적극적인 아이의 시선을 통해서 저와 남편도 세상을 배우고 영감을 받으며 함께 성장하고 있어요.
가족이 각자의 취향을 나누는 방식이 궁금해요.
일상 속에서 아이가 관심 갖는 주제의 책이나 미디어 콘텐츠를 함께 찾아보고 때때로 엄마의 관심사도 공유해요. 엄마 아빠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지금 읽고 있는 책을 궁금해하면 열심히 설명을 해주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아이는 호기심이 생기고 관심사가 확장되기도 해요. 주말엔 대부분 전시를 보러 가거나 가까운 공원에 가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를 위해 재료도 살 겸 화방과 문구점에도 종종 놀러 가고요. 동네를 산책하고 좋아하는 서점과 문구점에서 보내는 소소한 시간들이 쌓여 서로의 취향이나 생각을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관심사가 비슷해서 생기는 즐거운 일이 많을 것 같아요.
보통 아이의 하루 일과로 시작해 그날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는데 서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공평하게 순서를 정해 놓고 대화를 시작하기도 해요(웃음). 남편과 제가 일 이야기를 할 때면 옆에서 듣던 채은이가 뜻밖의 아이디어를 던져주기도 하죠. 순수하고 창의적인 발상에 놀라고 함께 고민해 주는 아이에게 고마워요. 여행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머무는 공간이에요. 아파트에 살아서 여행할 때만큼은 새롭고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싶거든요.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니 아이도 낯선 동네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특히 도착한 첫날엔 외출보다는 천천히 머물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아이는 탐색한 것들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남편은 가볍게 평면도를 그려요. 두 종이를 나란히 모아 둔 스크랩북을 펼쳐 볼 때면 그 공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되고, 열심히 그리던 남편과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요.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로 자라고 있는 것 같아요.
예술적 감성을 바탕으로 한 경험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다양한 시각과 열린 사고를 갖는 데 도움을 줘요. 외출할 때나 여행을 떠날 때도 아이는 작은 스케치북을 꼭 챙겨요. 그날의 소소한 관찰들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스케치북에 기록하고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쌓인 기록들은 아이의 생각과 경험, 자기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보물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아이에게 처음 선물한 장난감은 레고예요. 아이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지금까지도 꽤 오랜 시간 몰입하며 가지고 놀아요. 그 시간을 절대 방해하지 않으려 해요.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모든 사물과 순간의 경험에서 세상의 다양함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경험이 공감하고 배려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게 할 거라 믿으며 우리 가족의 리추얼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이러한 방식들이 아이의 취향이 되어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하고 함께 나누고 싶어요.
엄마 이시원, 김하람 8세
아이가 악기를 다루는 모습을 종종 봤어요. 집 안에 음악이자주 흐를 것 같아요.
요즘 티브이가 없는 집이 많잖아요, 저희 집도 마찬가지예요. 분위기는 적막하지만 가족에게 서로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더라고요. 조금 특별하게 생각하는 우리만의 루틴은 저녁을 먹고 나서 아이의 피아노, 바이올린 과제에 남편과 제가 합류해서 관심을 쏟고 있다는 거예요.
여덟 살 하람이는 악기를 언제부터 배우기 시작한 거예요?
아이가 18개월 때 파리에 살았는데, 48개월부터 바이올린 전공자에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함께 배우기 시작했어요. 모래놀이를 하고 악기를 배우는 게 하루 일과의 대부분이었죠. 악기를 좋아해서 시작한 것은 아닌데, 시켜보니 의외로 집중을 잘하더라고요. 순한 성향이라 뭐든 시키면 곧잘 하는 편인데요, 선생님도 의아해하시며 이 나이에 이렇게 집중하는 아이가 별로 없다며 30분 수업을 한 시간으로 늘리자고 권유하셨어요. 나중엔 한 시간 반으로 늘렸고요. 악기에 대단한 재능을 타고나서라기보다 집중을 잘해서 이어온 거 같아요.
즐기지 않으면 이렇게 꾸준히 이어오긴 힘들 것 같은데요. 음악과 관련된 유쾌한 경험이 있을까요?
아이가 16개월 때 오스트리아 빈에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악사들이 연주하는데 그 앞에서 박자에 맞춰 춤을 추더라고요. 꼬마 아이가 앞에서 흥에 겨워 춤을 추니 그들도 신기한지 무대로 몇 번 데리고 올라갔어요. 재미있는 경험이었죠. 그때 ‘아이가 음악을 즐길 줄 아는 구나.’ 하고 조금 특별하다는 걸 느꼈어요. 흥이 많고 개그 본능도 있어요(웃음).
부부도 아이가 배우는 음악을 응원하는 듯해요.
저희 부부는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해박한 지식은 없어요. 악기를 배운 적도 없고요. 전 바흐 곡을 출산 후 아이에게 자장가를 틀어주면서 처음 접했거든요. 유럽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인종과 언어는 모두 다르지만 악기 하나로 상대방에게 마음을 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점을 느꼈어요. 그리고 하나가 될 수도 있잖아요. 아이가 감성이 풍부하고 내면이 부드러우며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이해하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라서 악기 교육을 시작했죠. 아이가 나중에 커서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남편은 아들과 유럽 여행을 다니며 버스킹을 해보는게 꿈이라고 하네요(웃음).
유년 시절의 배움이 자연스럽게 삶의 태도로 이어지겠네요.
모든 배움에는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공부하는 뇌와 악기를 배우는 뇌의 기억을 저장하는 회로가 다르다고 하잖아요. 좀더 늦게 배워도 상관은 없지만, 아이가 더 커가면서 학교수업 비중이 높아지면 정성스레 악기를 배우거나 다루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겠죠. 좀더 이른 나이에 배우고 나중에는 학교 공부와 병행하며 텀을 길게 줘서 취미로 즐기게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에디터 김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