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LECT MOMENTS NOT THINGS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즐거움에 대하여

COLLECT MOMENTS NOT THINGS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즐거움에 대하여

처음 와 보는 동네. 한 번도 오른 적 없는 언덕. 비슷한 듯 모두 다른 골목길. 목적도 이유도 없이 그 구석구석을 걷다가, 가끔 빼꼼히 열린 문틈으로 누군가의 삶을 짐작해보기도 하는 일.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일을 좋아하게 됐다.

아직 낯선, 그러나
차차 익숙해질 동네에서

굳이 마음먹지 않아도 낯선 동네를 산책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아마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왔을 때일 것이다. 짐 정리를 끝낸 이튿날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장 먼저 산책에 나서게 된다.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앞으로 2년 동안은 마음을 붙이고 살게 될 동네. 구석구석을 파악하는 일에는 늘 차분한 설렘이 있다. 이제부터 하나씩 알아갈 것이 많은 사이라서일까. 

첫날 기억해두게 되는 것들은 주로 나의 행동반경을 따른 것들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와 카페는 어디쯤인지, 편한 차림으로 나와 맥주 한 잔 할 만한 집은 있는지, 밤바람이 좋은 날 가볍게 달리기 좋은 개천이나 운동장은 있는지 꼼꼼히 알아두게 된다.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게 발견하게 된 장소마다 나를 그려 넣고 흐뭇해하는 일도 좀 즐겁다. 그 후에는 모든 ‘첫’을 하나씩 지워가며 낯선 동네에 차츰 익숙해져 가게 된다. 

두 마리 강아지가 있는 세탁소에 처음으로 옷을 맡긴 날, 개천가를 처음으로 달리며 적당한 반환 지점을 마음속으로 정해둔 날,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동네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책을 빌린 날 등이 차례로 일상을 지나간다. 그러는 동안 세탁소 강아지의 이름을 알게 되고, 빌라와 빌라 사이로 난 지름길을 파악하게 되며, 동네 도서관의 커피 맛도 알게 된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익숙해진 동네에도 늘 모르는 구석은 남아 있기 마련이란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 동네’는 또다시 처음 만난 날의 낯선 동네가 된다. 한 동네에 터를 잡고 몇십 년간 살아온 토박이가 아니어서일까. 그곳에 살게 된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문득―이를테면 부슬비 속에서 우산을 들고 산책하다가 (나만 빼고 다들 이용하고 있었던 것 같은)―뒷산으로 향한 오솔길 같은 것을 발견하고 놀라고 마는 것이다. 여태 내가 몰랐던 구석이 있다는 것은, 아직 내가 모르고 있는 구석이 더 많으리란 걸 짐작하게 한다. 

그러니 ‘알 만큼 안다’는 말은, 사람에게도 장소에도 함부로 쓸 수는 없는 말이 아닐까. 누군가를 알려거든 네 개의 계절을 모두 함께 지내보란 말 역시.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낯설어지는 동네를,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동네를, 나는 아직 다 안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차차 익숙해질, 그러나
영영 낯설 도시에서

돌이켜 보면 이 산책의 시작은, 열아홉 겨울에 있는 것 같다. 그해 겨울, 부모님 집을 떠나 서울에 홀로 올라왔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말하자면 그때는, 서울이란 도시 전체가 내가 앞으로 살게 될 ‘낯선 동네’였다. 모든 것이 낯설었으므로, 모든 곳을 알고 싶었다. 어쩌면 그저 시간이 너무 많아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열아홉에서 스물 사이, 십 대의 마지막 겨울방학이자 어른이 되기 전 잠시 머무르는 대기실 같았던 그 시간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어서 무엇을 해도 느리게 흘렀다.

아무튼 그 무렵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녔다. 아무 동네를 아무렇게나 걷고서, 나중에 내가 걸어온 길이 어떤 이름의 동네였는지 지도로 확인할 때면 이 도시와 조금 친해진 기분이 들곤 했다. 익숙해지면 그치게 될 줄 알았던 산책은 그 후로도 내내 이어져서, 지금은 서울을 살아가며 누리는 작은 즐거움 중 하나가 되었다. 처음처럼 부러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일은 줄었지만, 취재를 하러 혹은 약속이 있어 오게 된 동네가 처음 와 보는 곳이면, 일을 마친 후나 누군가와 헤어진 후에 습관처럼 골목골목을 걸어보곤 한다. 그때처럼 무언가를 알고 싶어서라기보다 여전히 이 도시를 오늘 처음 도착한 이방인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어 하는 여행자처럼 걸을 수 있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어느 곳을 걷든, 낯선 동네를 산책하는 즐거움은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넌지시 짐작하는 데에 있다. 오월의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담벼락 아래 누군가 내놓은 의자를 보면 이곳에 나와 볕을 쬐며 앉아 있을 마음을 짐작하게 된다. 집 앞에 유난히 화분이 많은 집을 지나칠 때면 이 대문의 안쪽에서 살아갈, 화초 키우는 것이 삶의 낙인 이는 누구일까 궁금해하게 된다. 양철 간판에 세월의 때가 잔뜩 낀 지붕 낮은 식당을 보면 낮이나 밤이나 이곳에서 반주를 기울이며 매양 비슷비슷한 얘기를 나눌 어르신들을 짐작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내가 모르는 순간에도 이곳에 쌓이고 있었던, 그러므로 앞으로도 그렇게 쌓여갈 시간이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모든 구석이 그럴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도 삶은 흐르고, 누군가는 웃거나 울거나 다투거나 화해하며 매일을 이어간다. 결코 모든 골목을 걸어볼 수는 없는 우리를 대신해 시간이 그곳을 대신 걷고 있는 것일까.

이 이야기를 기억해두었다가
언젠가 들려주어야지

그래서인지 내 사진 폴더 속에는 낯선 동네의 한구석을 찍은 사진들이 많다(실은 이 글을 쓰며 깨달았다). 시간이 오래 쌓여야만 만들어지는 낡은 풍경들이 가장 많고, 담벼락 아래나 대문 앞이나 옥상에 내어둔 빈 의자 사진이 그다음으로 많으며, 화분이나 나무처럼 누군가 공들여 돌보는 식물을 찍은 사진들도 있다. 개중에는 찍을 때 느꼈던 작은 흥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진들도 있다. 그것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나는 왜 이런 사진들을 찍어두었을까, 생각해보면… 결국 나는 이 이야기를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거기, 이런 골목이 있었어. 두 사람이 지나가려면 한 사람이 담벼락에 어깨를 붙이고 기다려주어야 할 만큼 좁은 골목들이 유난히 많은 동네였는데, 아이들은 누구 하나 길을 잃는 법 없이 그 골목에서 나오고 또 들어가곤 했어. 자전거를 타고 멀어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반대편에서 다른 자전거가 오지나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했지. 좁은 골목길들이 한 점으로 모이는 곳에는 그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슈퍼가 있었어. 슈퍼라기보다 구멍가게였는데, ‘할머니 슈퍼’라는 이름을 달고서 정작 앉아 있는 건 젊은 아저씨여서 의아했었지. 아마 그 아저씨가 엄마라 부르는 이가 간판 속의 ‘할머니’일 테지. 그런 슈퍼는 얼마나 오래된 가게일까. 그 좁은 골목이 낳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슈퍼로 뛰어들어와 “할머니!”라고 불렀을까.

낯선 동네를 산책하며, 한 자리에 조금 오래 앉아 있기만 해도 짐작할 수 있는 것들. 지나치며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닌 의자와 화분이지만 실은 그냥 있는 의자, 그냥 있는 화분은 하나도 없다는 것.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 그래서 나는 더 기억해두고 싶었나 보다. 별것 아닌, 그러나 분명 누군가가 살아낸 삶의 자리들을 세세하게 기억해두었다가 ‘언젠가 생각나면 들려주어야지’ 마음먹었나 보다. 멀리 다녀온 친구가 여행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도 삶이 흐른다는 것은 새로울 것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는 순간은 늘 새롭게 온다. 누군가의 삶을 짐작하는 일 역시 늘 실패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 짐작만이 그 순간 서로를 들여다보게 한다. 그러니 이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낯선 동네로의 산책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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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글·사진 김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