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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것들 운하 따라 걸어보기
Canal
Saint-Martin
흘러가는 것들
운하 따라 걸어보기
사람들은 자신이 한동안 살던 동네를 떠난 후, 종종 그 모습을 떠올린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지난 추억에 잠기는가 하면 기억의 익숙함에 이끌려 그곳을 다시 찾기도 한다. 5년간 파리생활을 한 내게도 그런 동네가 하나 있다. 바로 생마르탱 운하. 이제는 생활 속에 묻어나는 풍경이 아닌 시간을 들여 찾아가야 하는 곳이 되었다는 것이 서글프지만, 가끔씩 찾아가 운하를 따라 걷다 보면 내 마음은 금세 기분 좋은 아득함으로 가득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리게 흐르는 시간이야말로 파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늘 같은 모양으로 나를 반겨주는 도시 파리. 그 모습이 주는 위로가 다른 누구의 것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컸던 적이 있었다. 그 때문일까, 나는 어느새 이곳에서 먹고 자며 이 도시의 사람들과 느린 호흡을 함께하고 있었다. 아마도 나는 그 숨을 따라 쉬려 파리에서 살게 됐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흔적 없이 시간이 흐른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소중했던 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계절은 늘 모습을 달리한다. 그렇게 우리들의 추억은 겹겹이 쌓인다. 사람들이 잘 알아채지 못했을 뿐, 이러한 리듬에 맞춰 파리의 구석구석에도 작은 움직임은 항상 있어왔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듯 말이다.
그중에서도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동네인 이곳 생마르탱 운하는 파리에서 가장 변화가 잦은 곳이다. 젊은 친구들이 작은 카페나 꽃집과 같이 소소한 가게들을 열거나 작은 공간을 빌려 대안공간으로 이용하는 등 자신들이 주도하여 이 동네를 만들어가고 있다. 때문에 파리의 다른 동네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지만, 어쩐지 그 움직임들이 어색하지 않다. 이곳에선 더 이상 에펠 타워와 세느강, 루브르 박물관 같은 것들이 파리를 대신해주지 않는다. 이 동네에서는 사람과 문화가, 정처 없는 이야기들이 현재의 파리를 보여주고 있다.
생마르탱 운하와 한강
유럽 거리를 걷다 보면 테라스나 공원에서 햇살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곳 운하도 마찬가지다. 해가 조금이라도 보인다 싶으면 젊은 친구들이 와인과 안주를 사 들고 몰려든다. 더운 날엔 낮이고 밤이고 관계없이 술판을 벌이는데, 아직 한강에서 치맥을 즐겨본 일이 없는 나는 ‘한강도 이러한 모습일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한강과 생마르탱 운하에는 실제로 비슷한 구석이 많다. 생마르탱 운하는 파리 10구를 가로지르는 운하로 1825년 완공되었다. 파리 시민들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단거리 교통수단이나 물건을 나르는 수송로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고속도로가 생기게 되면서 수송로의 기능은 거의 잃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의미의 운하가 되었다. 앞서 말했듯 파리 사람들에게 산책과 쉼의 공간을 마련해준 것이다. 한강에도 비슷한 ‘어제’가 있었고, 그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든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다가오는 봄에도 어김없이 한강에는 치맥을 즐기는 사람들이, 생마르탱 운하에는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다.
카페café에서
카페café를 마시는 일
주말이 오면 운하 근처 카페들은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프랑스식 카페에서 아침을 시키면 보통 크루아상Croissant과 팽오쇼콜라Pain au chocolat가 든 바구니를 내어주거나 구운 빵과 잼, 버터를 준다. 하지만 유독 생마르탱 운하에서만큼은 다양한 브런치 메뉴들을 볼 수 있다. 그건 아마도 이곳이 변화에 열려 있는 동네이고 그 때문에 외국에서 온 젊은 친구들이 자리 잡기가 수월한 탓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동네에서 불어보다 영어가 유창한 카페 주인을 만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파리의 카페 문화를 보여주는 것보다 개인의 취향을 살려 카페를 꾸미는 데 집중한다. 그 스타일이 파리의 예스러운 카페들과는 언뜻 봐도 다르다.
요즘엔 어느 나라를 가도 다 이런 식으로 카페들을 만드는 것이 유행인가 싶기도 하다. 그 일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따지기에 앞서, 파리의 중심에선 찾아볼 수 없는 인테리어의 카페 안에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시공간을 초월하게 된다. 내가 지금 그리운 한국에 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파리에 머물고 있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제3국 어딘가에 와 있는 것은 아닌지 헷갈리는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곳 운하의 가장 큰 매력은 소위 말하는 ‘힙Hip한 카페’들이 속속들이 생겨난다고 해서 옛 프랑스식 카페들이 새로운 카페로 탈바꿈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리 시내에 있는 프랑스 카페의 경우 수십 년 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하며 그들의 전통을 지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 운하도 마찬가지로 새로 생겨난 카페들은 간판을 새로 달고 창을 더 크게 내는 등 새롭게 탈바꿈한다. 하지만 그 옆에 자리한 오래된 카페는 아무런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은 채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손님을 맞는다. 과거 지식인들은 파리 구석구석에 위치한 카페에 모여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몇 시간씩 토론을 하곤 했다고 한다. 그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고 중요한 일이기도 했는데 때문에 ‘카페café라는 장소’ 혹은 ‘café에서 café를 마시는 일’은 이곳의 문화와 예술에 있어 어떤 상징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마도 과거의 이러한 문화와 그 장소가 지닌 은밀한 그림자들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서 오래된 카페들은 계속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곳 운하에서는 그런 과거를 지니고 있는 공간들은 그들 나름대로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새로운 상점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한다. 이렇게 서로 이웃이 되어 오래된 것들과 새로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참 자연스럽다. 아마도 이 모습이 파리의 지금을 대신 말해주고 있지는 않을까. 때문에 운하 주변에 난 길을 그저 걷기만 해 보아도 금세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01. CAFÉ SÉSAME 세잠
운하를 걷다보면 오렌지색의 카페가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세잠이다. 벽쪽에는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를 하고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다양한 메뉴가 있다. 샐러드 종류가 다양하고 케이크나 타르트도 맛있다. 직접 그 자리에서 갈아주는 생과일주스가 특히 인기있다.
51 QUAI DE VALMY, 75010 / 화~일 10:00~19:00
02. ARTAZART 아르타자르
젊은 아티스트들을 위한 패션과 디자인, 사진 분야에 관한 책을 판매하는 예술 전문서점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책을 보유하고 있는 이곳에서 크리에이터와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이 영감을 얻어가곤 한다. 숍의 한쪽에는 작은 전시공간과 함께 사진집이 진열되어 있다.
83 QUAI DE VALMY, 75010 / 월~금 10:30~19:30, 토~일 14:00~20:00
03. HOTEL DU NORD 호텔 뒤 노르
1938년 개봉한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영화 <북호텔>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진 곳이다. 현재는 호텔로 운영되고 있진 않지만, 당시에 사용하던 카운터와 소파를 그대로 두어 멋스러운 레스토랑이 되었다. 탱고와 재즈 등의 음악 공연도 수시로 열리며 야외석은 특히 인기가 많다.
102, QUAI DE JEMMAPES, 75010 / 월~일 12:00~~14:30, 20:00~23:30
04. DU PAIN ET DES IDÉES 뒤 페인 에 데 이데
1889년에 오픈한 빵집으로 외관에서도 그 오랜 세월을 짐작할 수 있다. 주인은 1900년대 빵집의 분위기를 유지하려 오랜 건물, 대형 거울, 시대 분위기가 풍기는 유리 천정의 인테리어를 고수하고 있다. 크루아상, 쇼콜라, 커피 등 프랑스 전통 빵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34 RUE YNES TOUDIC, 75010 / 월~금 06:45~08:00
에디터 박선아
글 강아름 사진 강아름, 김이경 그림 황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