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방에서 일상을 꾸리는 시기가 온다. 내가 일곱 살 무렵 지은 집이 평생 터전이라 생각하는 우리 아빠가 그렇고, 그 집을 떠나 처음 2인실 기숙사의 반을 가졌던 열일곱 살의 내가 그렇다.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들이 저마다의 공간을 찾고 있을 때, 어떤 이는 제주도의 감자밭으로 갔다. 한 달 후 그곳에는 한 평 남짓한 오두막이 생겼다.
세화리 감자밭에 가면
봄이 꾸물거릴 때부터 규호 씨의 오두막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내 생활이 꾸물거리는 통에 계절이 한참 지나고서야 제주 가는 비행기를 탔다. ‘가고 싶다’거나, ‘하고 싶다’는 욕망이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사소하고도 운명적인 여러 가지 상황이 작용한다. 왜 오두막을 짓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도 한 가지 이유만을 내놓지는 않았다. 야영을 좋아했고, 가끔 구글에 ‘Cabin’이나 ‘Tiny house’를 단어를 검색해 사진을 즐겨봤다.
블로그 이웃 중에는 서울 근교에 오두막을 지은 남자도 있었다. 그러다 친누나가 언젠가 제주에 내려오려는 마음으로 땅을 샀고, 그는 때마침 일을 그만뒀다. 집을 짓는 동안 근처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방 대신 텐트를 칠 수 있는 마당을 내주었다. 이 정도는 눈에 띄는 일일 테고, 자신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이 그가 오두막을 짓는 것을 도왔을지도 모른다.
몸 뉘일 오두막 한 채
오두막은 제주 동쪽 세화리에 있다. 천천히 동네를 둘러보다 보면 오두막이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수통을 들고 나타난 그가 안내해주기 전까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듬성듬성 집이 있는 마을 길을 따라 밭이 펼쳐진 곳으로 향했다. 그가 멈춘 밭에는 감자가 아무렇게나 나 있었다. 푹푹 들어가는 흙을 밟고 이리저리 감자를 피하며 오두막 앞에 닿았다. 서울에 사는 그도 꽤 오랜만에 찾았다는 오두막의 문을 여니 바닷가의 습기를 머금고 있던 나무에서 눅진하면서도 편안한 냄새가 났다.
간이 침대와 테이블, 딱 손가락 두 마디만큼 튀어나온 선반, 직접 받아온 물로 사용해야 하는 세면대, 사다리를 올라가면 있는 복층 공간, 이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집. 간이침대에 앉아 그에게 오두막을 지은 과정을 물었다. “제일 처음에 왔을 때 한 일은, 감자를 뽑은 거예요. 온 데 감자가 심겨 있었거든요. 삽으로 파고 땅을 평평하게 했죠. 다음에 주춧돌을 사서 여섯 군데에 세웠어요. 그리고 바닥에 들마루식 평상을 만들어요. 평상 위에 뼈대 모양으로 벽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거죠. 지붕은 방수포를 깔고 양철 지붕을 올려서 박은 거예요.”
문 위에는 그가 오두막을 지은 시간을 새겨 놓았다. 앞뒤로 제주를 여행한 시간을 빼면 딱 한 달이 걸렸다고 한다. 그 시간이 외롭지는 않았냐고 물으니, 다행히 그럴 때마다 그가 묵던 게스트하우스 사람들이 다녀갔고 한참 벽을 세우던 때에는 놀러 왔던 친구와 함께 페인트칠하고 오두막에서 잠도 잤다고 했다. “어쨌든 바람은 막아주었으니까요.” 그는 그렇게 말했다. 바람만 겨우 막아주는 집. 한 평안에 들어가는 물건. 공간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내게 정말 필요한 것과 소중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에게 오두막에서 좋아하는 물건을 네 가지 골라달라고 부탁했더니 결국 그는 오두막에 있는 물건 거의 전부를 골랐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일종의 의무
그는 서울에 살고, 가끔 제주에 내려온다. 겨우내엔 한 번도 오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만 존재하는 공간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저한테 집 키가 있잖아요, 키가.” 라고 말하며 웃었다. ‘내가 지은 나의 집’이라고 오두막을 칭하는 것도 듣기 좋았지만 일 년에 몇 번 내려오기 힘든 곳에 집을 짓는 일이 굳이 할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거니까요. 그게 의무는 아니지만, 때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의무 같기도 하거든요.”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을 의무라는 말로 묶기에는 무거운지도 모른다. 그래도 한 번쯤은, 좋아하는 일을 굳이 해보는 짐을 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의 작은 오두막에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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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의 네 가지 풍경
01 복층 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세면대 옆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공간이 나온다.
02 대문 유리를 사러 갔던 상점 마당에 버려져 있던 것을 들고 와 대문으로 썼다. 평상 밑에 장식도 그때 함께 주워온 것이다.
03 간이 주방 작은 세면대가 놓인 간이 주방이다. 물은 수통에 담아 와서 쓰고 배수구를 통해 내보낸다. 주방의 역할과 간단히 세수할 수 있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04 반구형 창문 복층에 난 작은 문. 동그랗게 생기기만 한 줄 알았는데 반구 형태로 안이 오목해 밖을 관찰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오두막살이에 필요한 네 가지 물건
01 등유 랜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오두막에서 유용한 물건. 인터넷에서 산 것으로 반대편에는 물통을 달아 높이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다.
02 드림캐처 매달 5일과 20일에 세화리에서 열리는 벨롱장에서 만원에 산 것. 벨롱은 불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이란 뜻의 제주 방언으로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잠깐 열린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03 책 목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매거진 《우드 플래닛》과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하며 만난 대자연의 이야기를 그린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 그의 선반에 있다.
04 칼과 칼집 물건을 많이 들여놓기 힘든 오두막에서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할 수 있는 물건이 제격이다. 칼집은 그가 취미 삼아 직접 만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