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We Go On A Trip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은 학생들보다 선생님들이 더 좋아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비밀인데 선생님인 나는 이번 만큼은 전혀 신나지 않았다. 그 어느 해보다도 제약이 많을 거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된 여름방학이지만 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방학 특집은 필요했다.

여행의 키워드

방학이면 아이들에게 특별한 기억을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 키워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곤 했다. ‘수영과 채집’, ‘제주도 보름살기’ 등의 키워드로 지난해 여름을 보냈다. 주로 첫째 아이를 위주로 한 계획이지만 오히려 둘째 녀석이 적극적이었다. 큰애에게 이번 방학에 제일 하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어보니 소박하게 친구들과 수영장에서 물놀이 하는 거라고 한다. 안타깝지만 올해는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는 게 소박하지 않은 바람이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가족끼리 하는 물놀이는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의 키워드는 ‘안전한 물놀이’라고 혼자서만 생각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수 있기에. 

‘어디가 좋을까?’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엔 갈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시선은 국내로 옮겨졌다. 제주도에는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린다고 하니 패스, 섬진강 따라 구례와 하동 지역도 가보고 싶긴 한데 아무래도 장거리 이동이라 패스. 소박하게 물놀이를 할 수 있는 바다도 있고 숲도 있는 강원도로 마음을 정했다. 대신 서핑을 하고 싶어서 자주 발걸음 하던 양양이나 강릉이 아닌 다른 지역에 가고 싶었다. 아이들과 함께 머물기에 좋다는 평창의 어느 호텔에서 1박, 고성의 아야진해변은 수심이 얕아서 아이들이 놀기 좋다는 소문을 듣고 고성에서 1박을 예약하고 2박 3일간의 짧은 가족여행을 기다렸다.

여행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

하염없이 비가 내리던 8월. 뉴스에서는 기록적인 장마가 계속된다고 연일 보도되고 있었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과연 비가 그치긴 하는 걸까?’ 이미 코로나로 지쳐 있는데 날씨마저 도와주질 않는다고 생각하니 한없이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는 일들이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자연에게 돌려받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 가족여행 짐을 꾸릴 때는 최대한 일회용품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출발 전날 밤이 돼서야 짐을 꾸렸다. 옷가지, 속옷, 세면도구, 선크림, 수영복, 물안경, 튜브, 충전기, 카메라 등등 고작 2박 3일 일정이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에 물놀이 짐까지 챙기니 짐은 잔뜩 부풀어 올랐다. 여분의 마스크와 불안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손 소독제도 잊지 않고 챙겼다.

다음 날 아침, 눈 뜨자마자 일기예보부터 확인했다. 물놀이를 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긴긴 장마 끝에 맑은 날 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썩 괜찮은 출발이었다. 개인적으로 고속도로 여행의 꽃은 휴게소의 라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여행에선 포기하기로 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수 증가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테이크아웃으로 차 안에서 먹는 소떡소떡으로 아이들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을 포기하며 살아가게 될까? 우리의 삶이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글을 보았을 때 가슴에 구멍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하나씩 포기할 때마다 그 구멍이 자꾸만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서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분위기에 맞는 음악 선곡이다. 

쿨의 ‘아로하’로 여름 기분을 냈더니 아이들도 따라 부르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달라고 신청곡을 말했다. 큰아이의 신청곡은 웹툰을 드라마로 만든 <마음의 소리> OST 중 ‘딱 좋아’였다. “쓸데없이 깊게 생각하지 좀 말고 우리 마음마음 가는대로 가슴 답답할 땐 걱정 말고 함께해 …… 기분 좋은 일탈 기분 좋은 하루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말이라도 좋아 거짓말은 노 노 지금이 딱 좋아.” 흘러나오는 가사에 덩달아 기분이 딱 좋아졌다. 아이들이랑 후렴구를 목소리 높여 따라 부르니 남편이 허허허 하고 웃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발열 체크였다. 제법 규모가 있는 호텔이기에 출입문을 하나로 제한하고 들어오는 사람마다 발열 체크를 했는데 이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우리는 체크인을 하기도 전에 야외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복은 집에서부터 입고 온 터라 티셔츠를 훌러덩 벗어 던지면 그만이었다. 마침 내 친구(이자 내 아들의 친구)네도 같은 호텔로 휴가를 와서 함께 물놀이를 할 수 있었다. 첫째 아이의 소박한 바람이 이뤄진 것이다. 야외 수영장에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햇볕은 따갑게 내리쬐고 파아란 수영장 물은 더없이 시원해 보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 코로나 따위는 잊기 좋은 풍경이었다. 마스크를 쓰고 물놀이를 하는 모습이라니, 올해 본 풍경 중에 가장 어색한 풍경이지만 그 속으로 우리도 조심조심 들어갔다.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이 만나지 않는 것처럼 수영장 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거리두기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불안과 즐거움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따로 또 같이

둘째 날 아침, 아이들과 남편이 자고 있는 사이 조용히 호텔 방을 빠져나와 아침 산책을 했다. 산자락 사이로 은은하게 비치는 햇살, 차분히 내려앉은 공기, 물기를 머금은 초록, 자박자박 흙길을 밟는 내 발자국 소리에 천천히 잠을 깬다. 혼자만의 아침 산책은 나를 위한 일종의 거리두기다. 체크아웃을 하고 아이들과 호텔 정원에 있는 숲 놀이터에 들렀다. 나무 그늘 아래의 숲 놀이터에는 실개천이 흐르고 타이어로 만들어진 그네와 그물 침대, 모래 놀이터, 나무로 만들어진 미끄럼틀이 있었다. 자연물로 꾸며진 숲 놀이터는 자연스러워서 좋다. 

둘째 아이에게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쥐여 주었다. 아이의 시선이 궁금했다. ‘드르륵 드르륵 띡!’ 하고 필름을 감으면 주저 없이 ‘팅!’ 하고 아이는 셔터를 누른다. 경쾌하다. 결과물과 상관없이 아이와 사진 찍기 놀이를 하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그런데 자동차가 이상했다. 엔진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고 에어컨은 먹통이 되어 우리는 찜통 안에 담긴 꼴이 되었다. 한여름 창문을 열고 고속도로를 달려본 적이 있는가?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고성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자동차 정비소를 찾아갔다. 마침 숙소 근처에 정비소가 있었고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오늘 부품을 주문하면 내일 오전에 도착해서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뭐든지 빠른 우리나라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순간이었다.

고성 숙소는 천진해변에 있었다. 아이들과 놀기 좋은 아야진해변까지는 차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깔끔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부슬비까지 내리니 아이들도 바다를 고집하지 않았다. 대신 숙소 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스파를 즐기기로 했다. 어쩌면 코로나 시대의 여행법으로는 그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파도를 보고 있으니 서핑 생각이 간절해졌다. 차츰 파도가 들어오는 게 초보 서퍼인 내 눈에도 보였다. 차트를 보니 1.3미터 정도의 파도였다. 두근두근. “나 서핑 할까?” “그래!”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남편도 거들었다. 저녁 무렵이라 간간이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도 물 밖으로 나오는데 나는 물에 들어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서핑숍에 전화를 했더니 시간이 늦어서 보드 대여는 어렵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에 둘러보기라도 할 생각으로 수영복을 입은 채 바닷가로 나갔다.

로컬 서퍼들은 파도를 잡으러 바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두근두근. 내 발걸음은 천진해변 끝자락에 있는 서핑숍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전부터 가보고 싶던 카페이자 서핑숍인데 왠지 그곳에 가면 해결이 될 것 같았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서핑 해보셨어요?”
“네!”

테이크오프는 장담할 수 없는 초보 서퍼지만 서핑을 해봤냐는 질문에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회색 보드에 올라 1미터의 파도가 밀려오는 잿빛 바다로 팔을 저어 들어가는 일은 매번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면 바다는 나를 제법 근사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다. 파도를 잡아 타진 못했지만 출렁이는 바다에 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숙소 창으로 아이들과 남편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코로나19라는 불안을 안고 시작한 가족여행에는 자동차 고장이라는 또 다른 불안이 더해졌다. 심지어 불안이 해결되지 않은 채로 서울까지 창문을 열고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지만, 각자의 신청곡을 크게 틀고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었기에, 커피든 산책이든 스파든 서핑이든 각자가 원하는 것들을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었기에 우리 가족다운 여행이 완성될 수 있었다. 내년에도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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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 ·사진 전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