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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나
BREAD AND ME
빵과 나
빵을 구우며 살아가는 정직하고 고된 삶에 대한 동경은 ‘나만의 방식’, ‘나다운 삶’ ‘진정한 나’를 찾으라는 이 시대의 과제에 대한 답이 아닐까. 그건 그만큼 이 세상이 자기 뜻대로는 살아가기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일 텐데, 문득 나만의 방식을 찾고 나답게 살면 다 되는 건지 궁금해진다.
나는 종종 빵을 굽는다. 몇 안 되는 내 장점 중의 하나는 겁 없이 덤빈다는 것이고, 또 잘 안 되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히 배짱이 좋다거나 의지력이 강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자신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에 잘 안 되어도 ‘그럴 줄 알았지’ 하고 생각해버릴 뿐이다. 게다가 상황에 따라 장점은 단점이 된다는 점을 잊어서도 안 된다.
빵을 굽는 일은 귀찮지만 즐겁다. 밀가루와 소금, 이스트와 물을 계량할 때만 해도 도무지 이것들로 뭐가 될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그것들을 대충 주무른 후 약간의 시간을 주면 어느 순간 반죽이 매끈하게 부풀어 오른다. 데이트를 앞둔 아가씨처럼 마음이 설레는 순간이다. 이제 뜨겁게 달군 오븐 속에 반죽을 넣어보라. 거의 마법 수준이다. 흰 반죽은 더 탱탱하게 부풀어 오르고 어느 순간 표면에 황금빛이 감돌기 시작하더니 곧 갈색으로 구워지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구수하고 달콤한 향기를 내뿜는다. 이제 집안에 감도는 온기와 냄새는 거의 천국의 그것이다.
다 구워진 빵을 오븐에서 꺼내 잠깐 식힌다. 곧 돌덩이처럼 단단했던 빵에서 열기는 빠져나가고 수분은 갇혀 겉은 바삭해지고 속은 부드러워진다. 빵을 대충 손으로 뜯어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다. 갓 구운 빵은 어떤 빵이건 최고로 맛있다.
빵을 구울 때 나는 특별한 능력이라도 가진 듯 으쓱해진다. 집 밖으로 나가 10분만 걸으면 내가 구운 빵보다 훨씬 그럴싸하고 맛있는 빵을 별로 비싸지도 않은 값에 사 올 수 있다. 빵 굽기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돈으로 환산한다면 이보다 더 비효율적인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빵을 만들 때는 더 뿌듯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빵을 반죽하고 부풀기를 기다리고 굽는 긴 시간에는 세상에 대항하여 나만의 작고 비밀스러운 반란이라도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아서다.
빵을 구울 때, 내가 구운 빵을 먹을 때, 나는 잘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른다. 하지만 정의는 내릴 수 없어도 예시는 들 수 있다. 빵 굽기도 그 예시 중의 하나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이런 작은 예시들로 풍요로워진다.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는 나카무라 요시후미라는 일본의 주택 전문 건축가가 홋카이도 시골 마을 작은 빵집의 건축 설계 의뢰를 받고 젊은 빵집 주인 진 도모노리와 주고받은 편지를 묶어 펴낸 책이다. 나는 좋은 글은 언제나 독백이 아닌 대화라고 믿는데, 그래서 전문 작가가 아닌 사람이 글 쓰는 연습을 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편지다. 또 편지는 읽기에 가장 편하고 흥미로운 형식의 글이기도 하다.
편지글을 쓰는 사람은 마음속에 편지의 수신인을 담아두고 있다. 편지를 쓸 때는 남이야 읽건 말건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아도취에 빠져 해독조차 어려운 글을 쓰지는 못한다. 이 글은 나 혼자만이 아닌 나와 수신인, 두 사람을 위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썼다고 해도 편지 속에 언제나 두 사람이 함께 있다. 딱딱하거나 여유 없어지기 쉬운 어조는 한결 부드러워지고, 상대가 제대로 이해하기를 원하기에 표현은 쉽고 배려 깊어진다. 편지는 마치 두 사람이 함께 추는 춤 같다.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젊은 시절부터 건축가로서는 소박하기 짝이 없는 야망인 ‘주택 건축’에 투신하기로 마음먹은 후 그 길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걸어가는 사람이다. 나는 그의 세계를 언제나 응원해 왔다. 빵집 주인 진 도모노리 역시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오랜 팬이었다. 설계 의뢰를 받고 홋카이도로 날아가 진 도모노리가 직접 지은 작은 집과 빵집, 그리고 그의 가족이 일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이 빵집의 건축을 맡기로 한다.
조립식 패널로 간소하게 지은 집은 빵집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예산이 부족한 점도 있었지만 그보다 우리가 사는 곳 정도는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더 강했지요. 벽돌로 지은 빵 가마 역시 어떻게 빵이 구워지는가, 하는 근본적인 부분을 실제 체감하고 싶은 마음에서 지은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 간 편지를 읽다 보면 그들이 하는 일과 추구하는 삶의 방식, 그리고 살아가는 자세가 닮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빵 굽기, 그리고 집을 설계하기.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일하며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 아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담아낼 그릇처럼 소박하고 정직하며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어내는 것. 그런 것들.
왜 사람들이 빵을 굽거나 요리를 하고 싶어 하는지, 자신의 집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가꾸고 싶어 하는지를 알 것 같다. 그건 나에게도 해당한다. 그 일들은 우리가 차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복잡한, 그리고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이 세상에서 나만의 요새를 짓는 일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떤 것에도 휘둘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힘으로, 가장 나다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러한 삶은 얼마나 아름다우냐는 말이다. 그래, 좋아. 그렇다면 이제 다른 이야기를 읽어볼까.
우치다 타츠루의 책을 읽을 때면 속이 시원해지는데, 물론 그의 의견에 매번 100퍼센트 동의하지는 못한다. 따지고 보면 누가 누구를 100퍼센트 신뢰하고 따르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부모도, 남편도, 자식도 100퍼센트보다는 79퍼센트 정도 믿는 편이 훨씬 건강하다. 아무튼 나는 어떤 주의나 당파나 흐름에도 휩쓸리지 않고, 특정한 프레임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믿는 가치와 자신이 겪어온 삶,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방식을 통해 터득한 진실을 이야기하는 우치다 타츠루의 방식이 마음에 든다. 우리 주위에서 이런 어른을 찾기란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그는 《어른 없는 사회》의 한 장인 ‘자아 찾기의 함정’에서 21세기의 화두인 ‘자아 찾기’가 부유한 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지는, 계층사회 또는 격차사회를 공고히 하기 위한 교묘한 선전방식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결정을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내려놓고 정해진 진로를 조용히 따르면서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여 성공했습니다. 그들의 성공 비결은 자기 이익이나 ‘자기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공동체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충실하게 연기해 온 것입니다.
자기답게 살고 싶은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지며 늘 실패라는 벼랑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발을 내딛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거기에는 노력 말고도 엄청난 인내와 의지, 그리고 행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자기답게 살려다가 도리어 불행해질 수도 있다.
빵을 굽는 것, 내가 살고 싶은 공간에서 사는 것,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방식과 속도로 해나가는 것, 나 자신답게 사는 것, 모두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누구도 집에서 빵이나 구우며 살 수는 없을 테니까. 집 안에서야 나는 작은 왕국의 정복자일 테지만 밖으로 나가면 다시 모든 것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서는 묵묵히 빵을 굽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면, 빵집 주인 진 도모노리가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채 장작가마 앞에 서 있는 사진 아래에 달린 이 문장을 달리 보게 된다.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담담하게 생지를 가마에 넣고 묵묵히 구워진 빵을 꺼내고 있는’이 아니라, ‘이 담담한 모습 뒤에는 오랜 경험으로 몸에 밴 주도면밀한 준비 작업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문장이 더 진하고 크게 보인다. 노력을 가볍게 칭송하기는 쉬워도 그 과정을 길게 상상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각자의 희망과 열망과 실망과 고통과 상처와 슬픔과 분노와 피로를 처리하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돈을 쏟아부으며 살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는 언젠가 ‘‘나’라는 감옥에서 탈출하는 상쾌함’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너무 많은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자기 결정’ 대신 스승이나 따르고 싶은 사람을 찾아 그를 추종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고 제안한다. 나도 그 방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나처럼 개인적인 사람에게 조금 힘든 것 같다.
대신 나는 집에서 빵을 굽고 벽에 페인트를 칠하는 수줍은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조용하고 소박한 사회를 떠올린다. 외적 기준이 아니라 내적 기준에 빗댄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조금씩 나아질 것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집착하는 유아적인 삶이 아니라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데 미미하게나마 보탬이 되는 삶이다. 그건 어쩌면 우치다 타츠루가 제안한 진짜 어른의 삶과도 통할 것이다.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나카무라 요시후미ㅣ더숲ㅣ204쪽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자신의 빵을 만드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진 도모노리의 편지를 받게 된다. 약 2년에 걸쳐 완성된 건물을 마주하기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편지와 팩스, 이메일을 주고받았을까.
어른 없는 사회
우치다 타츠루ㅣ민들레ㅣ304쪽
혼자 살기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다 함께 어울러 살 수 있는 기술을 가르쳐 준다. 공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야말로 생존의 기술인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공중으로 사라지는 듣기 좋은 말이 아닌, 하나의 가치관이고 철학이다.
글 한수희
일러스트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