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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 And Machine
나는 무엇으로 채워진 물건일까. 완두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문득 생각해 본 건강에 관한 짧은 생각들.
완두의 주식은 사료, 나의 주식은 쌀밥이다. 그런 우리가 아침 산책을 마치고 늘 먹는 음식은 빵과 버터, 달걀이다. 늘 그럴 리야 없지만, 일주일에 세 번 정도는 그렇게 먹는 것 같다. 내가 먹는 양의 10분의 1 정도를 완두도 먹는다. 구운 빵에 버터와 잼을 발라서, 달걀 노른자를 터트리고 가끔은 이것저것 다 넣은 샌드위치로. 완두는 식탐이 그다지 없는 편인데, 아침 먹을 때만은 내 옆에 와서 나눠 먹자며 앞발로 나를 툭툭 친다.
창이 넓은 집에서 그 창들을 다 열어 놓고 무얼 먹는 시간. 도시에서도 아침에는 새소리와 차 지나가는 소리가 번갈아 들린다. 한 조각 남은 빵을 다시 반으로 자르면서, 거의 다 마신 커피에 뜨거운 물을 더 부어 옅은 커피를 만들어 가며 우리는 시간을 길게 늘린다.
“없다!” 내가 두 손을 쫙 펴서 더 이상 먹을 게 없다고 말하면, 완두는 휙 돌아서서 침대로 올라가 낮잠을 자기 시작한다. 그때 쓰다듬어 보면 완두 털은 산책에서 막 돌아왔을 때보다 훨씬 부드럽다. 내 피부처럼, 완두 털에도 이런저런 변화가 있다. 모르긴 몰라도 부드러운 것은 좋은 것 아닐까? 그릇 치우는 걸 미뤄두고 완두 옆에 잠시 누워서 오늘 무얼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그려본다. 과장을 조금 하자면, 나는 그때부터 다음 날 아침을 다시 기다리는 기분이다.
빵을 나눠 먹는 나지만, 개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인터넷으로 가끔 찾아본다. 내 손에 쥐어진 먹이가 완두에게 들어가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알아내야 하기 때문에. 얼마 전 무턱대고 말린 오징어를 줬다가 완두가 속을 게워냈다. 속상했다. 나는 내가 좀 미웠고, 가려 먹어야 하는 음식의 정보를 공유해 준 이들에게 문득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 생명이 너무 쉽게 죽어버리는 일을 막아주는 것이니까. 그런데 내 안에는 이런 사건과 생각들이 여럿 공존한다. 반대되는 것도 있고 비슷한 이야기들, 의외의 일들이 서로 뒤섞여 있는 게 나라는 주머니인 것이다.
완두의 어미개 이름은 진주였다. 주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사람 먹는 걸 진주에게 주는 엄마와 개는 사료만 먹어야 더 건강하다는 아빠는 늘 시시하게 말다툼하곤 했다. 나는 옆에서 어떨 땐 아빠 말이 맞다고, 어떨 땐 엄마가 더 좋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알겠어. 이제 안 줄게.” 대답만 그렇게 하고 엄마는 또 음식을 따로 챙겼다. 늘 그런 식이었다. 아빠가 밥에 다른 곡물을 넣지 말라고 거듭 말해도 엄마는 가끔 어쩔 수 없다는 듯 잡곡밥을 지었다. 신경질이 난 아빠가 하루는 소리를 꽥 질렀다. “곡물 넣지 말랬지!” 거기에 대고 엄마는 귀리는 곡물이 아니라고 더 크게 대답했다. 어이가 없어진 아빠가 그럼 귀리가 도대체 뭐냐고 묻자, 엄마는 말했다. “귀리는, 건강!”
뭐 지난 일이지만, 나는 엄마와 아빠 둘 중 한 사람만이 진주를 사랑했다는 걸 이제 안다. 아빠가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한다. 누가 사랑을 의무라고 하나. 아빠는 다른 무언가를 사랑했을 것이다. 다만 이제 없는 진주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엄마가 떠오를 뿐이다. 엄마는 진주를 통해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굳어져, 완두나 다른 동물들도 진주처럼 안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여하튼, 우리 가족과 가장 가까웠던 개, 진주를 둘러싼 여러 추억 속에는 아주 어렵고 아름다운 수학 문제 같은 게 숨어 있는 것만 같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짧은 소설 《아르헨티나 할머니》에서 주인공 미쓰코는 엄마의 주검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린다. 영혼이 빠져나간 엄마의 몸을 이제는 운전할 사람이 없는 빈 차로 묘사하는 대목. 복잡한 내용을 단순한 비유로 적어낸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어딘지 부족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에 오래 남아 종종 내 몸을 스스로 따져볼 때 머릿속에 맴돌곤 했다. 자동차라니, 투박한 사물을 골랐는데 묘하게도 거부감이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위약효과Placebo effect’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약효가 없는 비활성 물질이 약의 형태로 환자에게 투입됐을 때, 심리적인 효과로 병이 낫거나 상태가 호전된다는 실험 결과가 그것이다. 결국 약물의 효과는 환자의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얘긴데, 이때의 몸이라는 건 더 이상 자동차로 비유될 수 없는 것이었다. ‘휘발유를 가득 넣고 쌩쌩 달려 먼 곳에 닿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경유차였다.’ 자동차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뇌를 가진 생명체의 몸에서는 이런 일들이 종종 일어나는 모양이다. 좋다고 판명이 난 음식을 먹고도 비만과 질병에 시달리고 몇 년째 라면만 먹으며 연명했다는 이의 얼굴에서 묘한 빛이 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문구와 ‘몸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과연 맞는 말일까, 틀린 말일까. 내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될 줄 예전에는 몰랐다. 당연한 것이 쌓여가고 있는 세상인 줄 알았는데, 당연한 것은 쌓이지 않고 늘 바뀌고 있다. 가장 명료해 보이던 문장을 가까이서 봤더니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이 보이는 꼴이다.
과학으로도 수학으로도, 미래에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간은 여태 알아낸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동서양의 의학이 서로 교류하며 발전하는데도 여전히 명상하기가 유효한 시대다. 무언가를 읽고 깨우칠수록 나라는 사람은 두께가 얇은 책이 되어간다. 정답은 영원히 없고 가설들로 한평생 살아야 하는 운명. 하여, ‘모름’이 늘 더 아름다운 이 세계에서, 건강은 과연 뭘까. 얼른 이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으면 좋겠다. 완두랑 빵 나눠 먹게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