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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책방 명유미 대표, 사진작가 채승우 부부
연희동의 좁고 높은 찬찬히 오르다가 고개를 들면 하얗고 동그란 달걀 모양의 간판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정겨운 담벼락과 꼭 어울리는 ‘달걀’이라는 이름,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해를 흠뻑 맞는 공간, 색다른 시선을 담아 큐레이션한 그림책까지 명유미, 채승우 부부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부부는 책방을 우연히 열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건 아마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두 분 소개를 부탁드려요.
승우 사진가 채승우입니다. 오랫동안 사진 기자 일을 했어요.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사진 작업을 해왔고요. 기자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강의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사진에 관련된 이야기도 나누면서 책 쓸 궁리도 하고 있습니다. ‘사진가’ 하면 보편적으로 떠올리는 일을 하고 있진 않지만 아무튼 스스로 사진가라고 생각해요.
유미 연희동에서 달걀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명유미예요. 이전에는 스틸로와 스틸북스에서 그림책을 고르는 일과 그림책과 관련한 전시,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했고, 그전에도 출판사에서 책을 편집하고, 잡지를 만들면서 지금과 비슷한 일들을 해왔어요.
책방 운영은 처음인 거죠?
유미 네. 제 이름으로 사업을 한다는 건 상상 불가능한 영역이었는데, 이 분야에서 여러 일을 해오면서 하고 싶은 걸 명확히 찾았어요. 꽤 오랫동안 책 만드는 사람이 될지, 기획, 편집, 큐레이션 같은 일로 책 곁에 있는 사람이 될지 고민하다가 확신이 든 거죠. 어딘가에 소속돼서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대기업의 시스템이 아닌 작은 규모 안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벌여보고 싶어 책방을 차리게 됐어요. 잠시였지만 독립출판물도 만들어 봤으니 결국 두 개를 다 해본 셈인데, 해보지 않았다면 미련이 오래 남았을 것 같아요.
그림책을 보고 자란 세대가 아닐 텐데 어떻게 이 세계에 매료된 거예요?
유미 취업 준비하던 시기에 디자인 공부를 조금 했어요. 잡지를 열심히 찾아보는 편이었는데, 《프로파간다》라는 잡지에서 그림책 창작가들에 관한 특집 기사를 보게 됐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일을 좋아했는데, 그걸 한꺼번에 하는 직업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신문만 봐도 취재 기자, 사진 기자, 편집 기자, 디자이너 다 따로 있잖아요. 물론 그림책도 그렇긴 하지만 그 사이의 대화가 훨씬 많거든요. 그런 게 좋아 보였어요.
승우 사람들이랑 같이 만들고 밖으로 내보이는 게 예술이라면 그림책도 예술의 한 분야고 확실한 위치에 있다고, 아내가 하는 일을 보면서 느꼈어요. 사진도 과학, 철학, 사회 현상에서 비롯된 다양한 분야의 사고방식들이 맞닿아서 결과물이 나오듯이 모든 예술이 혼자 동떨어져 있는다고 잘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유미 꼭 그렇지는 않아요. 처음에 일했던 회사는 그림책을 오직 예술로만 보는 곳이었어요.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있었어요. 그런데 스틸로에 가서 완전히 다른 매력을 발견한 거예요. 유료 그림책 도서관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어린이와 가족 방문객이 많았는데요. 어린이들과 직접 만나면서 그림책이 작가가 아닌 독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느낄 수 있었고, 아이들 시선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많아지니 제 안의 동심이 건드려지는 기분도 좋았어요.
그림책을 바라보는 시선에 전환점이 생긴 후에 달걀책방을 연 거라고 생각하니 이곳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져요. 어떻게 책방을 열게 된 거예요?
승우 저희가 지금 책방 위층에 살고 있는데요. 처음엔 아파트보다 적은 비용으로 마당이 있는 집다운 집을 갖고 싶어서 장모님 댁과 저희 집을 협소주택 형태로 같이 지어보려고 했어요.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결국 저희만 집을 지어 살게 됐고요. 여기를 1년 동안 임대 공간으로 비워 뒀는데 안 나가더라고요.
유미 집을 지은 시기가 스틸로를 그만둔 뒤였는데, 그게 결정적이었어요. 사실 여기를 사무실로 내놓으면서 둘이 그랬거든요. “여기 서점 들어와도 좋겠다.” 동네 분위기도 그렇고 집과 붙어 있는 공간을 차리기에 서점이 어울리는 업종이기도 했고요. 그렇게 해서 저희가 직접 책방을 차리게 된 거죠.
책방의 담벼락, 입구, 작은 마당과 커다란 창, 진한 우드 색감이 참 조화로워요. 인테리어도 직접 하셨다고 들었어요.
승우 비용이 비싸기도 했지만,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싶지 않아서 직접 하기로 결정했어요. 일터에 나가기 위해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집을 짓는다는 게 어딘가 순서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대로 집을 만들고 가꾸는 일이 주가 되는 게 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요. 집을 직접 짓는 일 자체가 삶이라고 생각하니 할수록 더 재미있었어요. 마루 까는 것부터 시작해서 벽면을 빙 둘러싼 수납장, 서가까지 모두 저희 손이 닿아 있어요. 사실 어려운 결정이고 일인데, 둘 다 삶에 고분고분한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 의견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유미 그래서 결혼했나(웃음)? 사실 인테리어가 힘들었지, 책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건 늘 해오던 일이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는 않았어요. 같이 여행 다니면서 서점 찾아다닌 기억들도 도움이 됐고요.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A부터 Z까지 직접 해낸 거네요.
승우 그렇죠. 저나 아내나 계속해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책방도 집도 그 과정에서 이어져 나온 거고요. 사람이 사는 동안에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사진가라는, 사진가로 살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회사를 그만두지 못했을 거고 책방도 열지 못했을 테니까요. 아내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자기 확신이 있었군요. 이곳에 어떤 분들이 찾아주기를 바랐나요?
유미 20~30대가 그림책을 보러 많이 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램책은 아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강하기 때문에 독자층이 더 넓어졌으면 했죠. 좀 외진 곳이지만 다행히 SNS로 알고 다 찾아오시더라고요.
승우 처음부터 서점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럼에도 찬성했던 이유는 아내를 믿었기 때문이에요. 저희가 지금까지 거쳤던 일들을 보면 아내가 일을 벌이고 제가 수습하는 패턴이거든요. 결혼하고 세계 여행을 떠났던 것도 혼자라면 안 했을 거고, 집 짓는 일도 혼자서는 안 했을 일이죠. 그런데 결과적으로 모두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저지르는 일을 동의해 주겠다 했어요. 제 인생이 그렇게 됐네요(웃음).
큐레이션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유미 테마를 정하고 거기에 맞는 책을 고르는 걸 좋아해요. 같은 책이어도 다른 테마를 잡으면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거든요. 지금은 유령 책을 모아 뒀는데, 깊이 읽다 보면 유령이나 괴물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도 있어요. 일반적으로 괴물을 생각하는 기준에 관해 새롭게 생각해 보게 하는 점이 읽는 사람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그림책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서 어린이·청소년 문학도 같이 놓고 있고요.
책을 고를 수 있는 양질의 선택지가 더 생기는 거네요.
유미 그렇게 느끼신다면 좋겠어요. 대형 서점에는 이용객이 많고 그게 매출로 직결되니 베스트셀러와 신간 위주로 세팅을 해놓지만 여기는 오는 사람의 수가 적기 때문에 그렇게 해봐야 소용이 없어요. 테마에 맞추다 보면 구간, 신간 관계없이 내놓게 되니 다른 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거죠.
승우 독자들에게 책을 잘, 제대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게 큐레이션의 힘인 것 같아요. 대형 서점에는 신간과 베스트셀러로 선택에 제약이 생긴다면, 도서관은 또 달라요. 딸 윤지와 도서관 유아 코너에 가면 책이 엄청나게 많은데 도무지 뭘 골라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무의미하게 가득 나열된 책들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큐레이션의 위력은 그런 데서 발휘되는 거죠.
재미있네요.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과 동네 책방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를 거예요. 달걀책방에서도 클래스나 모임을 통해 다른 방향을 찾고 있는 것 같아요.
유미 책방을 운영해 보니, 동네 책방이 멀리 가지 않고도 책을 살 수 있게 해준다는 편리성의 차원을 넘어 다른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더라고요. 저도 모임이나 클래스를 열면서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큰 규모의 서점에서는 저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서비스 수준이 일정해야 하잖아요. 오시는 분들에게 개인적인 견해를 드러내는 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고요. 여기서는 그런 거 다 상관없이 누군가 재미있어하는 일에 관해 같이 이야기 나누고 뭔가를 시작할 수 있어요. 작년 12월에 모임을 했는데 여섯 명 중 다섯 명이 경기도에서 오신 분들인 걸 보면 ‘동네 책방’은 더 이상 ‘동네’에 국한되지 않는 것 같아요. 물리적인 거리와 상관없이 네트워킹이 될 수 있는 시대라는 걸 느껴요.
승우 느슨한 공동체 같은 거죠.
달걀책방 문을 연 지 1년 정도 되었더라고요. 한 해를 돌아보니 어때요?
유미 시작할 때를 생각해 보면, 어떤 목표를 세우느냐보다 얼마나 하고 싶은지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당장 수익을 내고 기대치를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별로 없었어요.
승우 옆에서 보면 정말 열심히 일해요. 책방 운영에 프로그램 기획에… 그런데 좋아하더라고요. 제가 도와주는 거라곤 아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랑 놀고 설거지하는 정도지만, 지지해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유미 할 일도 많고 그만큼 속도도 느리지만 제 일이니까 열정을 쏟아부어서 하게 되네요(웃음).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부모로서, 어린이를 곁에 두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두 분은 어린이를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유미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바로 아동 문학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참 좋아해요. 아이들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이런 세상을 선택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 세상이 내 아이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괜찮게 느껴지기를 바라요. 아이들 눈높이를 하나하나 맞추기는 어렵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그런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승우 저는 ‘어린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어린이에 대한 태도’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경험을 한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딸 윤지를 떠올려 보니 어렴풋이 알겠어요. 윤지를 나와 같은 한 명의 사람이라고 여기고 평등한 관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온 것 같아요. 저와 어린이 사이에는 그저 제 아이, 채윤지와의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밖에는 없기 때문에 거기에 충실하려고 해요.
함께 일을 하신 게 달걀책방이 처음은 아니죠? 두 분이 세계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엮은 《여행 관광 방랑》이라는 책을 함께 쓰신 걸로 알아요.
승우 2014년에 1년간 세계 여행을 다녀와서 쓴 책이에요. 여행기라기보다는 부부 싸움을 어떻게 하는가에 관한 책이죠(웃음).
유미 저는 늘 외국에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었어요. 결혼하기 전에도 꼭 그렇게 하자고 다짐했는데, 막상 어디에서 살지 모르겠더라고요. 아는 데가 너무 없다 싶어서 여러 나라를 다녀보고 고르자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살던 집 전세도 끝나가던 시기였고 일도 그만두려고 생각하던 때여서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해요.
유미 남편이 부부 싸움에 관한 책이라고 했는데, 정말 맞아요. 책에 보면 싸우고 나서 각자 여행 다닌 코스가 표시되어 있어요. 서울에서는 싸우고 나면 기껏해야 엄마 집에 가는 게 다였는데 비행기를 타고 다니다 보니 스케일이 커졌어요. 아예 다른 나라로 가버리는 거죠(웃음). 그런데 여행 기간이 길다 보면 그 감각이 되게 비슷해져요.
뭐 때문에 싸우셨어요?
유미 보통 커플이 여행을 가면 어디를 가고 싶었는데 못 갔고, 먹고 싶었는데 못 먹어서 싸우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내일 가면 되고 내일 먹으면 되니까 그런 건 아무렇지 않았어요. 그냥 평소와 같은 이유로 싸웠죠. 그때는 여행이 삶 자체였으니까요.
승우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 공용 냉장고에 사람들이 먹지 않은 새 음식들을 놓고 가잖아요. 통조림 세 캔이 있길래 횡재다 싶어서 하나만 남기고 두 캔을 가져가자고 했죠. 그랬더니 아내가 두 개를 남겨놓고 하나만 먹자고 하는 거예요. 저는 아내에게 왜 이렇게 아낄 줄을 모르냐고, 아내는 저에게 왜 이렇게 다른 사람 생각을 안 하냐고 하면서 다툰 게 기억나요.
유미 다녀오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좁힐 수 없는 문제로 싸워봤자 소용없구나…. 사실 가치관이나 성향은 비슷한 편이에요. 남편이 말했듯이 삶을 정해진 대로 따라가지 않아요. 하고 싶은 건 꼭 하려고 하고요. 서로에게도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웃음).
큰 방향이 맞는다는 게 중요하니까요(웃음). 그래서 가장 살아보고 싶은 곳은 어디였어요?
유미 칠레랑 브라질이 정말 좋았어요. 저는 스물일곱에 해외여행을 처음 가봤는데, 그전에 제가 미디어와 책을 통해 쌓아 놓은 ‘외국’이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주로 미국과 서유럽 쪽이었는데, 직접 갔을 때 상상하던 것과 좀 다른 정도의 놀라움이 있었다면 남미는 완전히 처음 보는 세계였어요. 사람도 식물도 풍경도 전혀 접해보지 못한 문화였던 거예요.
승우 사람들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물론 그들도 열심히 살고 있겠지만 눈치 보면서 아등바등하는 느낌이 아니라 느긋해 보였어요. 말끝마다 ‘따봉’을 달고 살더라고요. 딱 여행한 만큼만 그 나라의 모습을 본 것이기 때문에 살고 싶다고 말하는 건 좀 섣부를 수 있지만요.
여행 다녀오고 나서 바로 윤지가 태어났다고요. 어떤 아이인가요?
유미 윤지는 적극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예요. 어딜 가도 친구 사귀는 걸 제일 행복한 일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요. 놀 거리가 아주 많은 키즈카페를 가도 친구를 못 사귀면 재미없어하더라고요.
승우 놀이터에 데리고 가면 언니들 틈에 어떻게든 끼어서 놀고, 말이 안 통하는 외국 아이들, 축구하는 초등학생 남자애들 사이에서 막 뛰어다녀요. 축구하면서는 기어코 골키퍼 자리를 따내더라고요. 저라면 거절당할까 봐 두려워서 다가가기 어려울 것 같은데 전혀 굴하지 않아요.
유미 너무 신기해요. 저희보다 잘난 거죠(웃음).
윤지 태어나고 나서 두 분 모두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 어땠나요?
유미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어요. 지금 생각나는 것 하나는 제가 모든 생활에 의식적으로 모범을 보이려고 한다는 거예요. 예전에는 그냥 편한 대로 살았는데 지금은 아이가 절 보고 있잖아요. 원래 주변을 잘 안 치우는 편인데 아이 앞에서는 잘 정리하려고 하는 식의 노력들을 해요. 아마 아이도 제 마음을 알고 있을 거예요. 모범적인 모습을 일관되게 지키면 좋겠지만, 좋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감정을 느끼는데 좀 느린 편인데 윤지를 키우면 키울수록 내가 이렇게까지 누구를 사랑할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아요.
일하는 것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일단 시간이 없어지잖아요.
유미 그렇죠. 지금도 일하다가 아이 올 시간이 되면 밥을 차리러 가요. 다행히 일터와 집이 붙어 있지만 맥이 끊기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아이와의 시간이 일하는 데 방해요소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얻는 게 훨씬 많거든요.
승우 다큐멘터리 사진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돌아다니고 사람 만나는 일을 전혀 못 했어요. 물론 아쉬웠지만 아이와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경험도 예술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은 모르겠지만 나중에 좀더 큰 틀에서 본다면 분명 그렇게 될 거예요.
‘아이에게 이런 엄마, 아빠가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을 것 같아요.
승우 음…. 사실 저희가 아이 갖는 게 좀 겁이 났었어요.
유미 저도 결혼과 출산에 뜻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20대 때 사교육에 대한 안 좋은 샘플을 가까이에서 봤거든요. 학교 다닐 때 교육열이 높은 동네에서 과외를 여러 개 했는데요. 자녀에게 전 과목 과외 시키는 부모님의 이미지는 뭔가 욕심에 가득 차 있고 피도 눈물도 없이 애를 잡는 사람일 것 같잖아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세계 최고의 엘리트를 바라는 게 아니라 반에서 뒤처지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친구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는 게 그들의 바람이었어요.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아이에게 그런 행동으로 가닿는다는 게 무서웠어요. 대화를 나눌수록 오히려 설득이 되니까 더 무섭더라고요. 그런데 여행 다녀오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모두 그렇게 치열하게만 살지 않는다는 걸 직접 봤거든요. 여전히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우리 둘이 경쟁과 입시, 교육열이 과열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마음만 잘 먹는다면 아이를 키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육아가 그때의 마음먹은 대로 잘 흘러가고 있어요?
유미 사교육은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기도 했어요. 제 기준에서 안 하려는 것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주입식 교육이든 뭐든 아이를 틀에 넣는 게 똑같이 안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가려는 방향을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승우 얼마 전에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다가 봤는데 제가 애를 안고 있는 아빠들 사진을 찍어놓은 게 꽤 되더라고요. 아이 생기기 전에 찍은 거니까 동경 같은 감정은 아니었는데… 왜 그런 사진을 찍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봤죠. 꼭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막연히 아이가 생긴다면 내가 아이의 방향을 정하려고 하지는 말아야지, 했던 것 같아요. 윤지를 키우면서 예측하고 기대하는 대로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점점 더 깨닫게 되고요.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그림책과 가까운 만큼 그림책이 윤지에게 일상으로 자리 잡혀 있을 것 같아요.
유미 물리적으로 가까운 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일 때문에 주문하는 책이 집으로 오니까 자주 접하기도 하고 책방 프로그램에 참여도 많이 해요. 아빠랑 도서관 가서 책 빌리고, 집에서 자연스럽게 책 읽고요. 저와 남편은 각자 앉아서 읽는 걸 걸 좋아하는데 윤지는 엄마나 아빠랑 같이 읽는 걸 더 좋아해요.
승우 글자를 뗀 건 아주 최근이라 엉터리로 읽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누가 읽어주는 게 더 좋은가 봐요.
윤지는 일하는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유미 일단 엄마가 일하는 모습 자체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아요. 엄마, 아빠가 함께 일하니 자연스럽게 자기도 책방에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책방 연 지 얼마 안 됐을 때 손님이 되게 없는 날이 있었어요. 윤지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나가서 “달걀책방 열었어요! 책 사러 오세요!”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더라고요(웃음).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동네이니 꽤 홍보가 됐겠는데요(웃음). 이 동네가 가족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유미 맞아요. 처음 이사 와서는 일 때문에 동네를 잘 못 누렸는데, 요즘 많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같이 뒷산 산책하고 놀이터 가서 노는 게 낙이에요. 집 바로 뒤에 산이 있으니까 약간의 주인의식 같은 게 있어요. 여기 사니까 눈앞에 보이는 새랑 곤충의 종류가 훨씬 많아졌어요. 꾀꼬리나 딱새가 어떻게 생긴지도 몰랐는데 자꾸 보이니까 궁금해지고 알아보게 돼요. 윤지는 아빠랑 둘이 자전거 타거나 캠핑 가는 것도 좋아해요.
승우 멀리 가서 멋진 풍경을 봐야만 자연을 느끼는 게 아니더라고요. 가까이서 계절마다 바뀌는 꽃을 볼 수 있는 게 더 좋은 일인 것 같아요.
두 분 모두 그림책과 사진이라는 한 가지 일을 오래 해오신 걸 보면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해나가는 걸 중요하게 여기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싶어요?
유미 책방 연 지 얼마 안 됐으니까 당분간은 여기에 매진하려고요. 코로나19 영향을 덜 받게 되면 프로그램을 좀더 많이 해보고 싶어요. 밤에 하는 성인 대상 독서 모임도 마련해 보고 싶고, 지하 공간에 전시도 더 다양하게 하고 싶어요.
승우 작게 말하면 서점도 잘되고 윤지 학교도 잘 다니면 좋겠어요. 저도 책을 내든 작업을 하든 일을 계속 해나가고요. 좀더 크게 말하자면, 윤지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사람 만나는 걸 즐기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는 윤지와 지내면서 뭔가 계속 배워가고 있어요. 배움에는 끝이 없고, 그게 무엇보다 중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점점 더 하게 돼요. 윤지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우리가 잘 도와줘 보자고 아내와 이야기하고는 해요.
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