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Mom

자유를 만나러 가는 길

아이를 기다리며 많이 울기도 했지만 결국에 우리는 용감하고 즐겁게 이 시간을 보냈다. 임신 성공에 관한 방법이나 그동안의 어려운 이야기보다는 아이를 만나러 가는 여행 중에 갖게 된 우리의 단단한 마음과 진심에 대하여.

오송민
남편과 함께 의류 브랜드 ‘원파운드’를 운영한다. 읽고 쓰는 일에 행복을 느끼며 인스타그램 계정 @ohsongmin을 통해 하루하루 편안하고 유쾌한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한다. 쓴 책으로 《오케이 라이프》가 있다.

새로워지고 싶어

첫 번째 시험관 시술에 실패했다. 과정이 힘들지라도 시험관은 시작만 하면, 당연히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0점에 가까운 실패를 마주했을 때 생각보다 더 많이 힘들었다. 시험관을 하기로 결심한 것도, 한 달 동안의 시술 과정도 모두 쉽지 않았지만 실패는 예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잘 안될 수도 있는 거고,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라고 쿨하게 생각해 보려 했지만 마음을 다잡아도 긍정적인 마음이 잘 생기질 않았다. 준비가 안 되었던 나에 대한 자책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매일 몇 대씩 맞는 주사도, 호르몬 조절이 안 되는 것도, 살이 찌는 것도 다 괜찮다. 나에게 힘든 건 불안함이었다. ‘만약에 계속 실패하면 어떡하지….’라는 내 안의 불안. 마음 한편에 자꾸만 스멀스멀 조급함과 불안함이 생겨났다. 시험관 성공에 정확한 방법이나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막막하고 두려웠다. 그저 자연스럽게 임신을 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병원에서 1차 시험관 결과를 듣는 날 교수님은 한 달 푹 쉬고 다시 시작하자고 하셨다. 담담하게 집으로 왔지만 이 막막함과 우울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눈물이 났다. 소리 내어 울면 걷잡을 수 없이 슬퍼질 것 같아서 울먹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참지 말고 실컷 울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펑펑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런 밤을 보내고 다음 날, 가만히 멍하게 창문을 바라보다 새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계속 우울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새로워지자 다짐했다. 그날부터 남산에 올라갔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이라도 하는 것. 나 자신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 싶어서 매일 올라갔다. 어느 날은 남산에 오르면서 혼자 몰래 울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날은 ‘오늘도 잘했다!’라며 나를 대견해했다. 꼭 임신만을 위해서는 아니었다. 예전과는 몸도 마음도, 생활도 완전히 달라지고 싶었다. 작은 성공을 매일 느끼고 싶었다. 운동을 거르지 않고 되도록이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충분히 기분 좋게 자고 아침에는 따뜻한 차를 마시고 명상을 했다. 도시락을 정성스럽게 준비하고, 즐겁게 산에 올랐다. 

불안과 걱정이 밀려오면 앞뒤로 팔을 흔들며 더 씩씩하게 걸었다.

용감하고 즐겁게, 출발!

9월, 두 번째 시술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안 된다 하더라도 괜찮을 만큼 마음이 강해졌다. 임신 준비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지만 마음이 달라지고 생활이 변하면서 우리의 삶이 단단해진 것이 느껴졌다. 나를 사랑하고, 나에게 관대해지면서 실패와 불안을 어느 정도 묵직하게 받아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 같았다.

병원에 가서 일정을 잡고 주사와 약을 받아왔다. 난자 채취부터 이식까지는 두 달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은 아침 여덟 시 삼십 분과 저녁 여덟 시 삼십 분 매일 같은 시간에 주사를 맞는 것. 출근 전과 퇴근 후로 시간을 정했다. 시작하기 전에는 걱정뿐이었는데 시작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덜 불안하다. 주사는 배꼽 주변의 뱃살에 맞는다. 내가 직접 주사를 놓아보다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 남편에게 부탁했다. 몇 번은 긴장하더니 이내 제법 잘하게 된 남편은 “자~ 이제 주사 들어갑니다. 조금 아파요 뿅~. 아이구 잘 맞았어요. 뱃살이 많아서 주사 놓기가 좋네요, 뿅~.” 병원놀이하듯이 주사를 놓아준다. 그런데 그의 장난스러운 말은 정말로 나의 마음을 가볍게, 무서움을 아무것도 아니게 만든다. 주삿바늘이 따끔해서 인상을 찡그리고 있다가도 “뿅~.” 유치한 그 한마디에 나는 매번 웃어버린다. 이 과정을 두렵고 힘든 싸움이 아니라 아기를 만나러 가는 여행으로 느끼게 해주어 고마웠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뿅~ 우리는 용감하고 즐겁게 이 시간을 보냈다.

내가 달라진 만큼 남편도 달라졌다. 아침밥과 영양제를 챙겨주고,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하루 두 번 주사 시간을 챙겼다. 밖에서 약속이 있는 날에는 가방에 따로 챙겨 가 사람들 몰래 화장실에 가서 주사를 맞기도 했다. 그런 날에도 어김없이 그는 말했다. “밖에서 맞느라 고생이 많아요~. 잘될 거예요 뿅~.” 그러면 나는 또 어김없이 웃었다. 우리에게 우정도 사랑도 애틋함도 더욱 쌓여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이식하는 날이 되었다. 남편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준 아침밥을 먹고 둘이 손을 꼭 잡고 병원으로 갔다.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준비해서 또 하면 돼. 서로를 다독이며 씩씩하게 병원으로 걸어가던 길.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우리가 보낸 시간 중에서 함께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던 시간이었다. 수술복을 입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멀뚱멀뚱 보다가 지금의 내 모습을 한 장 찍는다. 아마도 나보다 더 긴장했을지 모를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내 사진을 보냈다. 뭐라고 말을 덧붙일까 하다가 출발이라고 보냈다. 나는 이제 곧 수술방으로 출발한다고, 그리고 우리도 이제 부모의 삶으로 출발이라는 의미였다.

선생님께서 이식할 배아를 보여주셨다. 동글동글 예쁘게 생긴 눈사람 모양의 배아였다. 어릴 적 스케치북에 두 개의 동그라미로 그리던 바로 그 모양이었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눈사람이 우리의 아기라니.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신비로움이었다. 혹여 작은 눈사람이 스르륵 녹아버릴까 한 걸음 한 걸음에도 조심하며 소중히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하기도, 뭉클하기도, 막연히 걱정되기도 한 나의 복잡한 마음에 남편이 손 편지를 주었다. 아까 보냈던 나의 웃고 있는 사진을 보고 울었다고 했다. 앞으로 나에게 가장 좋은 남편이자 친구가, 그리고 아빠가 되겠다는 편지의 끝인사가 나를 울렸다. 지금까지 받은 편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과 깊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우리는 정말로 임신을 했다. 희미했지만 분명한 두 줄을 확인하고 펑펑 울었다. 이번에는 너무 행복해서, 꽉 차게 행복해서 펑펑 울었다. 눈덩이를 굴리면 점점 커다란 동그라미가 되어 눈사람이 되듯이 나의 동그라미도 조금씩 커져가는 것 같았다. 부모가 되는 것은 나의 동그라미를 더 크게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은 이제 셋의 삶으로, 점점 더 동그라미를 크게 만들며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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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사진 오송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