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oming A Mom

우리의 변화를 사랑해

아기를 만나러 가는 여행은 계속되었다. 이 여행은 우리를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가게 하지 않았다. 우리와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게 하고, 뒤도 돌아보게 하는 여행이었다. 여전히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여름을 향해, 처음 만나게 될 자유를 향해.

오송민
남편과 함께 의류 브랜드 ‘원파운드’를 운영한다. 읽고 쓰는 일에 행복을 느끼며 인스타그램 계정 @ohsongmin을 통해 하루하루 편안하고 유쾌한 일상을 기록하고 공유한다. 쓴 책으로 《오케이 라이프》가 있다.

나에게 다정해지는 날들

엄마가 되었다. 딸과 아내, 언니와 며느리 말고 새로운 타이틀이 생긴 것이다. 임산부가 되면 삶의 모든 것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몸에 생기는 불편한 변화와 임산부가 하면 안 되는 것, 할 수 없는 것들을 먼저 떠올렸다. 나의 삶에 제한과 한계가 생길 거라고 지레 겁먹었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는 다르게 임신으로 생긴 변화가 즐겁게 느껴졌다. 나조차도 이상할 정도였다. 엄마라는 새로운 타이틀 덕분인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기분도 느껴졌다. 학생이 새로운 과목을 배우듯, 엄마라는 새로운 과목을 배우며 또 다른 존재로 성장하는 것 같았다.

아기와 나만 느낄 수 있는 교감과 기쁨. 임신으로만 느낄 수 있는 생명의 환희와 벅차오르는 설렘. 이런 감정들이 너무나 커서 살이 찌는 것도, 좋아하던 음식이 싫어진 것도, 갑자기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 기복도 그저 귀엽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모든 불편함도 그때의 순간에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들이 얼마나 황홀한 것인지, 얼마나 커다란 기쁨으로 가득 찬 일상인지 가끔은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 그래서 배를 더욱 동그랗게 내밀어 사진을 찍어보고, 쑥쑥 불러오는 배를 자주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이렇게 신비로운 시간 한가운데 서 있는 것을 감사해하며. 잘하고 있어, 임산부가 된 나를 매일 칭찬하며.

 

“언니, 임신해서 행복해?”

어느 날 동생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당연하지,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다정하잖아. 이런 일이 또 어디 있어. 내가 나한테 이렇게 살가웠던 적도 처음이고. 그리고 배 나온 거 너무 귀엽지 않아? 이렇게 행복하게 살찔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아.”

 

그동안 나는 나를 다정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피곤하고 할 일이 많아도 기어이 그 일들을 다 하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에너지를 다 꺼내서 탈탈 소진해야만 일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다 몸이 버거워 쓰러지듯 지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데 내가 나에게 무척이나 다정해졌다. 임신을 하고 가장 달라진 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내 몸과 마음을 살뜰하게 챙기고 아껴주며 보살펴 주었다. 힘들면 잠시라도 쉬려했고, 부족하거나 불편한 것은 없는지 구석구석 나의 삶과 생활을 살폈다.

가장 먼저, 매번 핑계를 대며 미뤘던 뜨개질을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는 고양이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고, 평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고요함과 충만함에 흠뻑 빠져 있기도 했다. 더욱 정성스럽게 푸릇푸릇 한 밥상을 만들어 나에게 소중히 대접했고,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한강에 가기도 하고, 조금 멀리 여행도 떠났다. 살이 많이 쪘지만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평소처럼 일상을 살아가며 불쑥 튀어나오는 불편한 변화도 그때만의 특별함으로 받아들이며 지내려고 노력했다. 오히려 임신을 하고 뜬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던 행복을 드디어 생생하게 만지게 된 느낌이었다. 나의 몸과 마음을, 배 속의 아기를, 우리의 특별한 시절을 마음껏 사랑하는 그런 날들이었다.

아빠의 편지

남편은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연애 시절에도 꼭 편지를 받고 싶다고 말해야 짧게나마 쓰곤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좋아하지 않고, 잘하는 일이 아니었지만 받을 때마다 내가 너무 좋아해서 점점 편지 쓰기가 좋아진다고, 지금보다 더 잘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과 편지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오래전 대화 속에 멈추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불현듯 남편이 말했다. 앞으로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계속 편지를 쓸 거라고. 몇 년을 알고 지냈지만 너무나 의외의 모습이었다. 꼭 해야 하는 일도 아닌데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물으니 자신의 방식대로 우리의 임신 시절을 기록하고 싶다고 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시간을 일기 쓰듯이 남겨보겠다고 했다.

임신으로 나에게만 큰 변화가 생긴 줄 알았는데 남편도 남편 스스로 나름의 책임감과 즐거움으로 이 변화의 파도를 타고 있었다. 한두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편지 쓰기는 임신 기간 내내 이어졌다. 아무 날이 아닌 날에도, 초음파 사진을 보고 온 날에도, 산책을 하거나 책에서 좋은 글귀를 발견했을 때도 그의 편지 쓰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남편의 편지를 읽으며 자주 운다. 아빠가 되어가는 그의 하루하루가 새삼 감동스러워서 울고, 그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맑은 진심이어서 운다. 어느 날 그의 편지는 모든 아빠의 마음, 세상에 먼저 온 어른의 마음이고, 어느 날은 세상을 먼저 떠나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쓴 열 살 어린아이의 그리움이기도 하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 바람도, 오늘 하루의 반성과 고백도, 미래의 다짐도, 삶에 대한 애틋함도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이 편지가 지금의 나에게, 우리들에게 하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편지가 아기에게 닿기도 전에 나의 마음을 보듬어 주어서, 읽다 보면 눈치 없게도 불쑥불쑥 눈물이 나온다.

13주 2일의 편지


아빠는 스무 살 무렵부터
매일을 즐겁게 보내야 평생의 후회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어.
그래서 그런지 아빠는 별로 후회가 없다.
그럴 시간에 내일을 더 즐겁게 살 궁리를 해.
아빠의 매력 포인트야.


나의 자유야, 아빠랑 같이 아빠처럼 살아가자.
세상에는 뛸 듯이 기쁜 일이나
가슴 찢어지는 슬픈 일이랄 게 별로 없단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드는 파도일 뿐이지.
세상은 사실 생각보다 고요하단다.


그러니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말고
너의 하루를 기쁨으로 채워나가라.
자유가 태어나서 할 일은 그것뿐이야.


사랑과 자유를 보낸다.
– 아빠가 –

27주 0일의 편지


사랑하는 내 아들 자유야.


사람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사는 것 같지만
사실은 또 다르게 산다.


어떤 사람은 매일 똑같이 가는 출근길을 그저 무겁고 지겨워하면서 살고
어떤 사람은 매일 똑같이 가는 출근길에 핀 꽃을 보며 행복해하면서 살아.


자기 마음에 따라 지겨운 길이 되기도, 꽃밭이 되기도 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웃기지? 그런데 사실이야.


우리 자유는 어디에서 살고 싶니?
아빠는 꽃밭에서 살 건데.


사랑과 자유와 꽃밭에서 사는 법을 보낸다!

– 아빠가 –

남편의 편지 중에서 특히 마지막 인사를 좋아한다. ‘사랑과 자유를 보낸다. 아빠가.’

세상살이에 아무리 상처받아도 아빠가 과거에 미리 보내놓은 사랑과 자유로 모든 어려움을 날려버릴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아빠가 이런 편지를 남겨 두었다면 지치고 힘들 때 편지 속으로 달려가 따뜻하게 위로받고 씩씩하게 걸어 나왔을 것이다. 그렇게 위로받을 미래의 나의 아들이 벌써부터 부러웠다. 내가 이 세상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도착한 나를 위한 편지들. 그것은 편지가 아니라 완벽한 사랑과 자유 그 자체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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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글·사진 오송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