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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본질, 수피
나무를 바라본다. 잎과 꽃과 열매를 바라본다. 이들은 나무의 삶 안에서 어느 순간 나타나 반짝 사라진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나무 그 자체라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무의 삶 속에서 늘 함께하는 또 다른 이가 있다. ‘수피’. 나무의 삶 그 중심에 있는 수피야 말로 나무의 본질이 아닐까.
모든 나무엔 수피가 있다
모든 나무에는 수피가 있고 그것은 종마다 다르다. 수피는 사람의 것과 비교하자면 피부다. 추위에 얼어 죽거나, 수분이 방출되거나, 세균이 침입하는 등 외부의 해를 막아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수피 안에는 나무를 지탱하는 심재와 뿌리의 수분을 잎으로 운반하는 변재, 나무를 생장하게 하는 형성층과 나무에 당분을 운반하는 체관이 존재한다. 수피는 이들을 모두 둘러싸 보호하여 나무가 존재하도록 한다.
수피는 하나의 종이 가진 공통적인 특성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한 변화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같은 종일지라도 어디에서 자라는지에 따라 수피의 색과 형태가 조금씩 다르기도 한 모습이 그 예다. 때문에 수피로 나무의 상태를 알아채기도 하고, 누군가는 ‘나무 스스로가 기록하는 자신의 일기’라 묘사하기도 한다. 나무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수피를 들여다보자. 그 안에 본질이 있다.
01. 까마귀밥여름나무
Ribes fasciculatum var. chinense
까마귀가 열매를 먹는다 하여 까마귀밥여름나무라 부른다. 갈색빛이 나는 회색의 수피를 가지고 있는데, 껍질이 길고 촘촘히 규칙적으로 갈라져 시간이 흐르면 벗겨지기도 한다. 껍질이 벗겨진 자리는 진한 갈색빛이 돈다.
02. 까치박달나무
Carpinus cordata Blume
단단한 나무라 하여 까치박달나무라 부른다. 수피가 울퉁불퉁하기에 들어간 부분에는 수분이 끼어 이끼가 퍼져있다. 이끼 때문에 멀리에서 볼 땐 쑥색에 가깝다. 환경이 맞지 않아 생육이 부진하면 수피가 지저분해지기도 한다.
03. 느티나무
Zelkova serrata Makino
수명이 길어 가지가 사방으로 뻗으며 관상, 목재 등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나무이다. 느티나무는 진회색의 수피를 가졌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변형되어 좁쌀 모양의 흔적이 남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오돌토돌한 질감이며 주황빛이다.
04. 단풍나무
Acer palmatum Thunb.
단풍나무 속에는 단풍나무와 비슷한 110여 종의 나무가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그 중 약 20여 종이 자생하고 있다. 이들은 비슷한 형태와 색의 수피를 갖지만, 종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단풍나무는 당단풍나무보다 덜 매끄러우며 습한 환경에서는 이끼가 나기도 한다.
05. 산딸나무
Cornus kousa F. Buerger ex Miquel
빨간 열매가 산딸기를 닮아 산딸나무라 부른다. 산딸나무는 연한 회갈색의 비교적 매끈한 수피가 시간이 흐르면서 불규칙적으로 갈라져 떨어지며, 그 자리엔 회색의 수피가 남는다. 시간이 흘러 회색의 수피가 갈라져 떨어지면 그보다 더 연한 베이지색의 수피가 남는다.
06. 잣나무
Pinus koraiensis S. et Z.
끈적끈적한 열매(구과) 안의 고소한 맛의 종자로 유명한 잣나무는 갈색의 수피에 불규칙적으로 겹겹이 쌓인 것과 같은 형태다. 다른 침엽수들보다 채도가 높아 눈에 잘 띈다. 껍질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얇게 떨어져 나가기에 잣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껍질 조각들이 많이 보인다.
07. 칠엽수
Aesculus turbinata Blume
일본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로 알려졌는데, 일곱 개의 손가락 모양의 잎을 가진 나무라 해서 칠엽수라 부른다. 진회색에 암석과 같은 단단하고 건조한 질감의 수피를 가진다. 전체적으로 칼로 흠집 낸 것과 같은 옅은 굴곡이 있다.
08. 복자기나무
Acer triflorum Kom.
잎의 색이 화려해 관상수로 사랑받고 있다. 흑갈색의 수피에 길고 불규칙적으로 갈라진 흔적으로 움푹 팬 부분이 많다. 다른 단풍나무들에 비해 껍질이 잘 벗겨진다고 알려졌으며 껍질이 떨어진 자리는 갈색빛의 새로운 수피가 생긴다.
09. 당단풍나무
Acer pseudosieboldianum(Pax) Kom.
단풍나무와 비슷하지만, 단풍나무는 꽃잎이 5장, 당단풍나무는 꽃잎이 4장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이들은 수피 또한 비슷한데, 당단풍나무는 단풍나무보다 더 진한 회백색에 매끈한 수피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10. 화백
Chamaecyparis pisifera (Siebold & Zucc.) Endl.
일본 원산의 화백은 홍갈색의 껍질이 얇고 길게 갈라져 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긴 결대로 껍질이 벗겨진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짙은 갈색의 껍질이 있으며 황금실화백과 비슷한 색과 형태를 가졌지만, 결이 더 크다.
11. 독일가문비
Picea abies (L.) Karst.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으로, 크고 화려해 조경수로 인기가 많다. 붉은빛을 띤 갈색의 껍질이 불규칙적으로 갈라지는데, 이는 벗겨지기보다는 떨어져 나가는 것에 가깝다. 아래쪽 수피에서 가지가 자라기도 한다.
12. 목련
Magnolia kobus ssp.
봄을 맞이하는 대표적인 꽃나무다. 다양한 꽃과 열매, 잎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수피만큼은 비슷하다. 고동색의 매끈한 수피에 무언가에 찍힌 듯한 모양의 상처가 나 있으며, 습한 부분에는 이끼(지의류)가 많이 생긴다.
13. 소나무
Pinus densiflora Siebold & Zucc.
흔히 볼 수 있는 정원수 중 가장 거친 수피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진회색이며 껍질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갈색빛을 띤다. 햇빛에 노출되면 회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표면이 거칠고 굴곡이 많아 껍질이 두껍게 떨어진다.
14. 청괴불나무
Lonicera subsessilis Rehder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한국 특산식물로, 괴불나무와 비슷하지만 수피가 괴불나무보다 흰 것이 특징이다. 비슷한 종으로는 왕괴불나무와 올괴불나무가 있다. 모두 비슷한 형태의 수피를 가졌지만 색이 조금씩 다르다.
15. 호랑가시나무
Ilex cornuta Lindl. & Paxton
사계절 푸른 잎을 가지는 상록수로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만 자란다. 특히 호랑가시나무와 유사종인 서양호랑가시나무는 서양의 크리스마스에 인기가 많다. 호랑가시나무의 수피는 회갈색으로 갈라짐 없이 매끈하다.
16. 황금실화백
Chamaecyparis pisifera cv. Filifera Aurea
화백을 화려하게 품종 개량한 것으로, 황금실화백은 화백보다 얇고 노란 잎을 가지고 있다. 수피는 홍갈색으로 세로로 얇게 벗겨지는데 화백과 비슷한 모양이지만 화백보다 결이 더 얇은 모습을 볼 수 있다.
17. 히어리
Corylopsis coreana Uyeki
순우리말인 히어리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소중한 나무다. 꽃과 열매가 아름다워 도시의 정원수로 심기도 한다. 멀리에서 보았을 땐 흑갈색으로 매끈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긁힌 듯한 모양의 곡선들이 있다.
에디터 박선아
글·사진 이소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