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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을 공짜로 즐기는 법
암스테르담을 공짜로 즐기는 법
계절과 계절 사이, 가을은 늘 진한 아쉬움이 되어 흐른다. 특히 여름이 뿜어낸 뜨거운 열정과 겨우내 계속될 차가운 냉정함이 만나는 길목에서 네덜란드의 가을은 유독 짧게만 느껴진다. 맑은 가을 하늘에 해가 나는 며칠, 잎은 빠르게 물들고 그 고운 머리칼을 금방 떼어내야 하는 나무의 마음처럼 나는 그저 아쉽고 또 아쉽다.
사잇계절, 뭐하고 보낼까
돌이켜보면 가을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한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즐길 수 있는 날을 충분히 허락받지 못한 사잇 계절,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시간.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게 이곳의 가을은 한국을 가장 닮은 계절이기도 하다. 어쩌면 짧은 가을에 대한 아쉬움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쌀쌀한 바람이 콧잔등을 스치는 저녁, 낙엽이 삭아가는 숲 내음 그리고 발아래서 서걱거리며 부서지는 잎사귀들. 오감을 자극하며 깊어가는 가을에는 유독 커피 맛이 깊고 클래식 음악이 가까이 들린다. 이제야 ‘가을 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외로워서 감성적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가을을 타고 즐긴다’ 라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다. 얼굴을 마주하는 모든 것이 평소와는 다르게 다가오는 계절이기에 해야 할 일도 많고 즐겨야 할 것도 가득한 날들. 얼마 전 영국 <가디언>지에서 암스테르담에서 공짜로 즐길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대다수가 이미 잘 알려져 있거나 검색엔진에 나오는 구태의연한 것들이었고, 몇 가지는 ‘공짜’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곤란한 것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인이 꼽은 ‘암스테르담에서 공짜로 즐기는 법’에 대해 정리해보기로 했다. 한 두 가지는 겹치지만 조금 더 사적이고 유용한 팁이 될 것 같다.
01.
가을의 숲
Amsterdamse bos
암스테르담의 진짜 가을을 보려면 숲으로 가야 한다. 한국에서는 산이 가을을 타지만 이곳에선 숲이 가을을 탄다. 다른 말이 필요가 없다, 그저 숨을 크게 들이마셔보길. 나에게 숲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변함없이 편안하고 다정하지만 가을의 색으로 물든 숲의 진한 풀 내음은 정말 끝내준다. 타국 생활에 속이 답답해질 때 어김없이 향하던 곳, 공항과 가까운 탓에 손에 잡힐 듯 지나는 비행기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곳도 여기였다. 한번은 변죽 좋은 친구 덕분에 숲을 그리던 화가 아저씨와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캔버스 속의 주인공이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숲으로 진입하는 길은 아주 다양한데, 숲이 세 도시를 걸쳐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차를 가지고 이동한다면 무료 주차장이 숲을 에둘러 아주 여유롭게 마련되어 있어 따로 주차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객이라면 5번 트램을 타고 반 보스하우즌스트라트Van boshuizenstraat나 아울렌스테이드Uilenstede 역에서 내려 10~15분 정도 걸으면 숲을 만날 수 있다.
www.amsterdamsebos.nl / Bosbaanweg 5, 1182 DB Amstelveen
02.
점심 공연
Concert Gebouw Lunch Concert
뜨거운 여름이 식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9월에 시작하는 이 프로그램은 매주 수요일 낮 12시 반부터 30분 동안 열리는 점심시간 콘서트다. 우리나라로 치면 예술의 전당쯤 될까, 소리의 질로 유럽 3대 음악당에 꼽힌다는 이곳에 나는 참 많이도 들락거렸다. 클래식에 특별히 조예가 깊거나 고상한 취미를 갖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그저 공짜라기에 가볍게 들리곤 했다. 우연히 시간이 맞아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도 들렀다. 그렇게 오고 가며 자꾸만 들으니 점점 더 좋아졌다. 한번은 음악을 전공하는 언니와 함께 찾았다. 그녀로부터 왜 바이올린이 첼로보다 섬세하다고 하는지, 지금 협연하고 있는 연주자가 사실 뉴욕 지하철에서 연주했던 일화로 유명해진 사람이라더라 하는 숨은 이야기를 듣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이처럼 고맙게도 무료 연주회를 열어준 덕분에 클래식 문외한인 나의 귀가 즐거워졌다.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정보를 좀 나누자면, 최근에 달라진 규정 때문에 좌석 이상의 사람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적어도 30분, 안전하게는 1시간 전에 도착해 줄을 서야 여유롭고 우아하게 공연을 즐길 수 있다. ‘내일 떠나는데 제발 들여보내 주세요, 언제 또 올 수 있을지 몰라요’ 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일본인 관광객을 많이 봤는데 관리자는 아주 강경한 태도로 안 된다고 말한다. 법이 그렇다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최근에는 아쉬워서 문 앞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스크린을 설치했다. 그것만으로도 괜찮다면 늦어도 좋지만 세계 랭킹 1위에 빛나는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오픈 공연만큼은 예외일 것이다. 보통 40만원을 호가하는 티켓 가격으로 명성을 입증하는 콘서트 흐바우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공짜로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그렇게 날릴 순 없지 않겠나.
www.concertgebouw.nl / Concertgebouwplein 10, 1071 LN Amsterdam
03.
요르단 지역
Jordaan
네덜란드의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암스테르담의 북쪽 지역 요르단. 몇 번 소개한 적이 있지만 아직도 이 곳을 들르는 한국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작은 숍들이 즐비하고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이 점령한 거리를 걷노라면 유럽의 여유로움이 물씬 느껴진다. 아름다운 주변의 풍경도 이곳을 찾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물길을 따라 구시가지에 내린 가을은 한 폭의 그림이다. 나 역시 이곳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동네를 거닐며 ‘이 집도 사자, 저 집도 사자’ 하며 한껏 단꿈에 부푼 아내 때문에 힘들어하는 남편도, 왠지 공감하는 눈치였다.
한번은 어느 카페에서 부산과 제주도로 이어지는 한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을 만났다. 그는 카페 주인이었는데 친근하게 말을 걸더니 불쑥 내게 가게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처음 본 동양인에게 가게를 맡기고 가야 한다니 아주 급한 일인가 보다 했는데, 그가 원한 건 단지 옆집 아줌마 가게에서 케이크를 맛보는 일이었다.
www.jordaaninfo.com
04.
빈티지 마켓
Noordermarkt
평소 예쁘고 멋진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내게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만큼 강렬한 향기는 없다. 사람 구경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새로운 에너지를 받고 싶을 때 북교회 빈티지 마켓으로 향한다. 암스테르담의 패션 피플은 여기 다 모인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차림새는 개성이 넘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마켓에 나오는 물건들은 흔히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과 확연한 수준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물건을 찾고, 나는 그들을 구경한다. 월요일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만 짧게 열리고 마감되기 때문에 이곳을 가는 날은 좀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길에 따라 늘어선 일반 시장보다 교회 뜰에서 열리는 시장으로 가보자. 규모는 작지만 질 좋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는 보물 상자와 다름없을 테니.
www.noordermarkt-amsterdam.nl / Noordermarkt, 1015 MV Amsterdam
05.
도서관
Openbare Bibliotheek Amsterdam
유럽 최대의 장서를 자랑하는 암스테르담의 공공 도서관은 네덜란드의 가을을 느끼기 위해 가 볼 만한 장소임에 분명하다. 외국 서적만 가득한 이곳에서 실제로 책을 읽지 못하면 무슨 소용인가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책 읽는 문화는 아무 데서나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다. 1700만권에 달하는 장서들 사이를 걷다 보면 언어와 국경을 넘어 꼭 한 번쯤 펼쳐보고 싶은 책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일명 OBA로 불리는 이 도서관은 수준 높은 전시회가 자주 열리기로도 유명하다. 게다가 암스테르담 내에서 열리는 다양한 문화이벤트 중에서 마감이 임박한 티켓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구할 수 있다.
www.oba.nl / Oosterdokskade 143, 1011 Amsterdam
Ⓒ HOTEL LLOYD
06.
호텔 투어
Lloyd Hotel Tour
이 아름다운 호텔을 ‘공짜’라고 이야기할 건 아니다. 아쉽게도 무료 숙박권은 제공하지 않으니까. 단지 상업적이고 호화로워 보이는 호텔도 또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음을 소개하고 싶었다. 스스로 ‘문화사절단’이라고 지칭하는 로이드 호텔은 하루 묵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먼저 박물관이나 관광지에나 있을 법한 투어 코스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MVRDV 건축 그룹이 디자인한 방을 구경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리셉션에 연락해 미리 예약을 하면 가이드의 인솔 아래 객실의 내부 구조부터 가구 하나까지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다. 호텔은 가난한 예술가들을 위해 전시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가 하면, 오래된 건물과 네덜란드의 역사를 연계한 어린이 역사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 4층에 아트 서적 도서관을 개방하고 시간제한이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www.lloydhotel.com / Oostelijke Handelskade 34, 1019 BN Amsterdam
07.
디자인 스토어
Droog
드로그Droog의 쇼룸을 둘러보다 보면 현대 미술을 보러 모던아트 미술관을 찾지 않고도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된다. ‘삶이 곧 예술’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이곳은 디자인 숍과 스튜디오에 이어 근래에는 호텔까지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하며, 어디에 머무는지에 대해 총체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드로그는 지금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주목받는 공간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새로 생긴 호텔과 연결되어 있는 정원은 아주 독특하다고. 내게도 이번 가을이 지나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다.
www.droog.com / Staalstraat 7b 1011 JJ Amsterdam
08.
호프
Hofje
네덜란드 시내 중심가에는 호프Hofje라는 것이 있다. 이는 과거에 가난한 이들을 위해 부유한 사람들이 돈을 걷어 집을 짓고 구제에 힘쓴 흔적이다. 주로 반듯한 네모 모양의 건물이 그 중심에 거주민들이 공유하는 정원을 둘러싼 형태다. 지금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입지조건이나 유독 아름다운 중앙 정원의 모습,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한적한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부자들의 공간이 된 지 오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공간들을 대외적으로 개방해서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지만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원을 특정 소수의 즐거움으로 남기긴 아쉬웠던 모양이다. 암스테르담에도 현재 27개의 호프가 남아있다고 하니 거주민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조용히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
www.amsterdamsehofjes.nl
에디터 오혜진
글·사진 지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