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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가치 한 켤레〉 성태민 — 삭스타

대화할 때 그는 자주 이렇게 말문을 텄다. “이건 성향 차이일 텐데요.”, “저의 경우에는”,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결코 쉽게 단정 짓지 않고, 무른 울타리로 둘러싸인 삭스타즈 대표 성태민은 언제든 허물어질 준비가, 변화할 채비가 되어 있다. 나는 그의 단단하고 느슨한 말들이 좋았다. 또렷하게 나의 지금을 말하면서도 틀렸을 땐 언제라도 새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말들을. ‘지금의 나’와 ‘내가 원하는 나’ 사이를 유영하는 그와 이야기 주고받으며 내 마음도 유유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알았다.

악보에 쉼표가 존재하는 건 그 앞에 음표가 있었다는 의미예요.

음표와 쉼표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일과 쉼은 반드시 동반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큰 일에는 큰 쉼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강아지가 올라타서 얼굴을 핥는다.) 반가워(웃음)! 이 친구가 ‘사월이’군요. 정말 사람을 좋아하네요. 

아유, 너무 좋아해서 문제예요. 하도 이래서 와이프가 오늘 데리고 출근하느냐 물어봤는데…. 사월! 그만, 왜 이렇게 신났어. 이러다 곧 지칠 텐데 오늘은 유독 에너지가 좋아 보이네요. 어릴 땐 더 심했는데 일곱 살이 되어도 얌전해지진 않는 것 같아요(웃음). 사월이는 파주로 이사 오면서 함께 살게 된 아이예요. 마침 동생이 수의사여서 입양 전에 이것저것 조언을 구할 수 있었는데요, 사월이 데려올 당시엔 아이를 계획할 때여서 만나자마자 점프하거나 올라타는 강아지는 피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또, 쓰다듬었을 때 털이 너무 많이 빠지면 관리가 어렵다는 조언도 들었고요. 근데 사월이가 여기에 다 해당하는 거예요(웃음). 하지만 얘 표정을 보고는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표정이 정말 좋잖아요. 4개월 때 데려왔는데 그땐 지금보다 더 초롱초롱했어요. 

 

모든 동물이 그렇지만 사월이는 표정이 특히 순하고 맑아요. 긴 시간 식구로 지냈는데 건강은 어때요? 

얼마 전에 허리를 삐끗해서 놀란 적이 있지만요. 갑자기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어서 가슴이 철렁했어요. 아무리 못 해도 허리가 부러졌겠구나 싶어서 저녁 늦게 24시 동물병원에 급하게 찾아갔거든요.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2차 병원에 진료예약을 잡아서 이것저것 검사도 했는데 허리를 삐끗해서 통증에 놀란 거지 큰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놀랐겠어요. 많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에요. 사월이 정말 똑똑한 것 같아요. “앉아!” 하니까 앉고, “그만!” 하면 행동을 멈추네요. 

“예뻐.”, “귀여워.” 같은 말도 다 알아들어요.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하우스.” 하면 자기 집에 가 있고, “돌아!” 그러면 뱅글뱅글 돌더라고요. 너무 똑똑해서 가끔은 얄미워요(웃음). 서랍이나 선반도 알아서 열고 그러거든요. 보시면 저희 집에 서랍이나 붙박이장에 손잡이가 하나도 없어요. 사월이가 있기도 하고, 너무 오래된 아파트이기도 해서 인테리어를 싹 바꾸었어요. 와이프가 여백을 좋아해서 군더더기 장식들을 없애고 벽도 허물어서 탁 트이게 만들었죠. 

 

그래서 이렇게 집이 깔끔해 보이는군요.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에요. 

이전 집이 워낙 폐쇄적이어서 이번 집에서는 꼭 개방감을 주고 싶었어요. 오래된 아파트라 대대적으로 고치고 들어왔죠. 사실 집에서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라 조심스러워요. 제안이 와도 거절했고,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거든요. 손님은커녕 이 집에 온 친구도 몇 안 돼요. 

 

영광이에요.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있잖아요. 아, 이번에 <양파인> 정말 재미있게 들었어요. 삭스타즈에서 팟캐스트를 시작하다니! 

전부터 해보고 싶은 일이었어요. 잘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아요. 이제 에피소드 하나 업로드한 상태지만요(웃음). 

 

프로그램 마지막을 “오늘 무슨 양말 신었나요?”로 맺던데 저는 인트로로 여쭤볼게요. 오늘 어떤 양말 신으셨어요? 

지금 신은 건 톰슨가젤이 담긴 양말이에요. 오늘 몇 켤레 갈아 신어 보려고 하는데, 이 양말은 밝은 양말도 실용성이 좋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골랐어요. 전보다는 패션 양말이 남녀노소에게 두루 사랑받는 것 같지만, 아직도 남성분들은 밝은색 양말을 조금 부담스러워해요. 묵직한 하의로 눌러주면 밝은 양말도 편히 신을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정장에도 제법 잘 어울리고요. 

 

잠잠한 매력도 있고, 귀여워요(웃음). <양파인> 콘텐츠를 유튜브로도 고려했는데 ‘꾸준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다 보니 팟캐스트가 맞겠다 싶었다고요. 대표님이 13년간 삭스타즈를 통해 이야기해 온 많은 것에 ‘꾸준함’이란 가치가 눈에 띄어요.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되는 걸 못 참는 성격이에요.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스트레스가 정말 심하거든요. 그래서 뭔가를 시작할 때 “나 이런 거 한다!” 하면서 일부러 주변에 알리려고 해요. 제가 워낙 싫증을 잘 내서 ‘난 이것도 분명히 싫증 낼 거야.’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뭐든 ‘꾸준히 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것 같아요.

정반대의 모습을 원하시는 거네요. 최근에 싫증 난 상황이나 물건 있으세요? 

창문 닦는 로봇이요(웃음). 신기해서 샀는데 딱 한 번 하고 질려서 안 꺼내게 되더라고요. 동그랗게 생겼는데 벽에 딱 붙어서 유리를 닦으며 지나가요. 로봇 청소기처럼 돌아다니는 건데, 자주 쓰겠지 생각했지만 막상 사니까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내 성향과 반대를 생각하며 일을 해나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지속성을 위해 팟캐스트에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할까.’를 생각하기보다는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하나.’를 생각했다고 하셨죠. 

사람마다 다를 것 같지만, 저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소거하면서 해결하는 편이에요. 어떤 사람은 단번에 해답을 찾아내기도 하고, 목표를 향해 가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해요. 근데 저는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걸 고려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제 방식이 정답은 아니지만 저한테는 잘 맞아요. 대체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을 먼저 작성하고 그다음에 ‘해야 할 것’을 쓰거든요. 오답 노트로 공부하는 타입이죠(웃음).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책보다는 실패한 에피소드, 잘 안된 일들에 관심이 생기고 잘된 사람 이야기는 굳이 안 보려고 해요. ‘저 사람은 저렇게 성공했구나, 나도 힘내야지!’보다는 ‘저 사람은 저래서 망했구나, 조심해야지.’에 집중하는 거죠. <백종원의 골목식당> 보면, 저 식당이 왜 망해가는지 전 국민이 아는데 본인만 모르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저한테 실패에 대한 강한 거부 반응과 실패의 이유를 나만 모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하는데 대표님께는 실패를 방지하는 게 실패나 성공보다도 우선인 것 같아요. 

맞아요. 성공하고 싶은 욕구보다 실패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커요. 제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건 큰 성공을 거둬서라기보다는 이 가정과 내 직원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예요. 그래서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회사가 너무 효율적으로만 돌아가거든요. 효율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 못지않게 효과적인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효과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실패하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돼요. 

 

대표님이 이야기하는 실패는 단순히 매출이 안 나온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놓지 않고 계속하면 무엇이든 사실 실패란 건 없어요. 돌아가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죠. 저는 어릴 땐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어요. 성공을 향한 갈망이 무척 커서 관련된 책이나 강연을 찾아보곤 했죠. 지켜야 하는 가족과 직원이 없을 때는 두려울 게 많지 않았어요. 하다가 잘 안되면 제 몸 하나만 책임지면 됐으니까요. 근데 이젠 그게 아니에요. 

 

사람과 책임이 더 중요해진 거군요. 

당연히 회사의 목적은 이윤 추구인데 요즘은 저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즐거운 삶, 행복하고 즐거운 삶 없이 회사만 성장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손님들이 삭스타즈에서 소소한 기쁨을 얻어 가는 거, 그게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죠.

팟캐스트에서도 “직원들이 저녁 있는 삶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근데 정작 대표님은 삶 안에 일이 있고, 일 안에 삶이 있는 ‘워라일체’의 삶을 살고 있다고요. 그럼 쉼은 어디 위치하고 있어요? 

쉼도 일에 속해 있죠. 일하다 잠시 중단하고 한숨 돌린다든지, 하늘을 본다든지, 바람 쐬러 나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산다든지, 정말 단순하게는 일하다 기지개 한 번 켜는 것도 저에겐 쉼이에요. 그 사이사이 빠르게 충전해 나가거든요. 저는 ‘지금부터 일하는 시간, 이제부턴 쉬는 시간.’ 하고 이분법적으로 나누기가 어려워요. 일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하고… 그게 제 삶인 거죠. 부부가 같이 일하고 있어서 더 그럴 거예요. 어떻게 보면 사업 이야기도 부부의 일이고, 부부 일이 사업이기도 하거든요. 육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다음 시즌 얘기하는 게 저희 대화 패턴이어서요. 그러다 강제로 반나절 정도 전원을 내리고 각자의 시간을 갖기도 하죠. 

 

잘 자거나 잘 쉬고 나면 “아, 정말 푹 쉬었다!” 할 때가 있잖아요. 워라일체라면 그런 기분은 언제 느끼세요? 

최근에 ‘취향전’이라는 마켓을 했는데 그때 정말 쉬는 느낌을 받았어요. 당일 매장을 지켜야 하는 직원을 제외하고 퇴사한 이전 직원부터 지금 직원까지 한자리에 모였거든요. 외부에서 마케팅하는 친구, 본사에서 운반 업무 하는 친구,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는 친구 등 만날 일 없는 직원이 모두! 마켓이었는데 저희 부스엔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웃음). 

 

마음이 좋았을 것 같아요.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시절 불문하고 모인 거니까요. 앞서 실패와 약점을 소거하면서 일을 시작한다고 하셨는데요. 삭스타즈를 시작할 때도 실패한 사례를 먼저 살펴보셨다고 했어요. 그래도 가끔은 성공을 꿈꾸게 되지 않나요? 

실패를 고려한다고 해서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저는 의심도 많고, 말하자면 부정적인 성격인데요. 하나씩 의심하고 소거한다고 해도 그 근본엔 잘될 거라는 기대와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요. 단지 머리를 쓰는 과정에서 냉정해지는 거예요. 

 

나에 관해 곰곰 생각해야 알 수 있는 지점 같아요. 대표님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나다움’인데요, 그게… 뭘까요? 어떻게 알아갈 수 있을까요? 

나한테 솔직해지면 나를 이해할 수 있어요. 가끔 타인과 대화하다가 “사실 난 이런 사람이야.”라거나 “내 성격이 이래.”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잖아요. 나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알게 되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고, 나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거든요. 의식적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나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의식적으로 저를 알아가고 싶어서 사색도, 명상도 자주 해요. 메타 인지를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공감 능력이 좀 떨어지고 사회성도 부족한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교감하기보다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런데도 주변에 사람을 많이 두고 소통 잘하는 사람들을 동경해요. 제가 바라는 제 모습은 좀더 사회성도 있고, 공감도, 소통도 잘하는 사람이죠. 그 지점을 맞춰 가면서 점점 제가 되고 싶은 제 모습 쪽으로 향해 가는 게 나다움을 찾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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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