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o Book

하태웅·송현정 — 아시 하우스

그림 같은 집을 보았다. 잘 익은 밤의 색을 닮은 산등성이를 어깨에 두른 그곳은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모습이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은 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집을 채운 부부의 취향만이 나긋한 목소리를 내며 흘렀다. 그 모습이 참으로 슴슴하고도 안온하다. 서울을 훌쩍 떠나 가평 산골에 집을 지은 하태웅·송현정 부부는 오늘도 단정한 마음으로 오는 이를 기다린다. 부부의 아름다운 기억을 꺼내둔 아시 하우스에서.

누군가는 심심하지 않은지, 고립된 기분이 들지 않는지 묻곤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왜 여기서 보내는 시간이 지겹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게 이곳에 있기 때문이에요.

그걸 만끽하면서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

흔히 떠올리던 가평의 모습보다 평화로운 곳이네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현정 안녕하세요. 어제 눈이 많이 쏟아져서 오시는 길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늘 햇살이 좋아서 꽤 녹았어요. 

태웅 가평이 위아래로 긴 지형인데 중간에는 자라섬처럼 친근한 곳이 많고, 여기는 위쪽이라 갈수록 포천과 접할 정도로 깊숙이 들어가거든요. 오는 길에 명지산, 운악산을 보셨을 텐데 보통 등산하러들 오세요.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 와보는걸요. 집과 스테이를 아울러 ‘아시 하우스ASI House’라고 부르고 있죠. 문을 연 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태웅 스테이는 작년 12월 23일에 오픈했어요. 연말과 연초에 쉬러 오는 분들이 많아서 바쁜 새해를 보냈죠. 문을 연 지 얼마 안 됐는데도 찾아와 주시는 게 고맙고 신기하더라고요. 정신없이 보내다가 이번 주부터는 조금씩 여유를 찾고 있어요.

 

따끈따끈한 곳이었군요. 오늘은 머무는 손님들이 안 계신가 봐요. 

현정 맞아요. 아직 쉼과 일의 루틴을 파악 중이긴 하지만, 보통 주말이 가까워질 즈음 손님들이 몰렸다가 그다음 주 초반에 빠지거든요. 오늘 같은 수요일이나 목요일은 주로 스테이 관리 작업을 해요.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웰컴 푸드와 조식용 수프를 만들거나 마당과 공간 정비를 하죠. 먼저, 커피를 좀 드릴까요? 이건 웰컴 푸드로 내어드리는 마들렌이에요.

 

직접 구우셔서 더 맛있겠어요. 그럼 소개부터 시작해 볼까요?

현정 아시 하우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송현정, 하태웅입니다. 사실 이런 말보다 요즘 제 직업은 ‘청소부’라고 하고 싶어요. 시골에서 청소하면서 가끔 빵 만들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이라, 이전과는 좀 다른 삶을 살고 있거든요.

태웅 그럼 저는… 정원사나 농부?

현정 오, 더 멋있는데?

 

고양이 친구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네요.

현정 첫째 밤이랑 둘째 벼루인데요. 밤톨 같은 얼굴인 밤이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고양이 루틴상 낮잠 잘 시간이에요. 아마 잠이 깨면 슬슬 나올 거예요. 벼루는 까만 고양이라 먹을 가는 벼루에서 따왔는데, 낯선 사람을 무서워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 어디선가 지켜보면서 안전한지 파악 중일 거예요.

 

부디 저를 안전한 사람으로 느끼길요(웃음). 공간 구성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어요.

태웅 카페 겸 스테이 리셉션으로 쓰이는 공간의 옆문을 열면 집으로 이어지는데요. 보조 주방을 지나 거실로 들어오면 차례대로 주방과 침실, 화장실과 세탁실이 보여요. 세탁실 옆에는 야외로 나가는 현관이 하나 더 있는데 거기다 청소 도구를 모아두었어요. 보통은 그쪽 문으로 출입하곤 하죠. 원래 여기가 90년대 벽돌로 지어진 고깃집이었는데, 리모델링해서 지낸 지는 7개월 정도 되었어요. 

현정 집과 달리 스테이는 완전히 새로 지은 건물이에요. A동과 B동으로 나누었는데, 구옥의 예스러운 건물과 신축의 세련된 모습이 어긋나지 않고 조화로워서 만족해요.

아시 하우스에 대해 듣기 전에 가평으로 오기 전의 삶이 궁금해요. 두 분, 어떻게 만나셨어요?

현정 연애 프로그램 인터뷰 같은데요(웃음). 대학교 같은 과 선후배 사이였는데, 나이 차이가 나서 함께 다니진 않았고 졸업한 후에 아는 선배한테 소개받았어요. 그때 둘 다 회사에서 디자인 업무를 했다 보니 이야기가 잘 통하더라고요. 유머 코드도 비슷하고 영화를 좋아하는 취미나, 싫어하는 것도 비슷했어요. 둘 다 친구가 많이 없어서 집에 있는 거 좋아하고요. 

태웅 깊게 생각하고 이야기 나눌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은데, 현정이랑은 그게 가능했어요.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결혼까지도 자연스러웠고요. 무얼 할 때 맞지 않았고 어떤 위기가 있었고… 이렇게 말할 만한 거리가 없어요. 

 

그럼 결혼 후 첫 집은 서울에 있었어요? 

현정 월곡역 주변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어요. 전세 가격도 저렴했지만 근처에 홍릉숲이 있어서 숨이 트이는 기분에 선택했어요. 한 4년 정도 살았는데, 그동안 공간을 꾸미는 시각부터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까지 많은 게 변했어요. 

태웅 그 집에서 우리가 좋다고 느끼는 걸 계속 모으고 팔기를 반복했거든요. 미드 센추리부터 동양풍 아이템, 프렌치 모던까지 웬만한 스타일을 다 직접 해보고 질리면 또 바꿨어요. 

 

한 번 바꾸기도 힘든 공간을 왜 여러 가지 스타일로 바꿔가며 채웠어요? 

현정 그때는 뭔가 물건을 사고 또 사도 만족이 안 됐어요. 마음에 들어 구입했는데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둥둥 떠 있고요. 지금 생각하면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 집이라 너무 답답해요. 가평으로 터전을 옮길 때는 아시 하우스에 두고 싶은 것들만 추리고 나머지는 다 팔았어요. 이곳에 오면서 물욕이 사라졌는지, 집 안에 가구나 오브제도 빽빽하게 채우고 싶지 않고 옷을 사지 않은 지도 꽤 되었어요. 

 

그때는 무언가 만족스럽지 않거나 공허함을 느꼈던 걸까요? 그러고 보니, 태웅 씨는 서울에서 어떤 일을 하셨어요? 

태웅 저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디자인을 시작으로 여러 경력을 쌓다가 인테리어 스타트업인 ‘아파트멘터리Apartmentary’의 창업 멤버로 함께했어요. 경영진과 실무진을 조율하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일을 맡았죠. 8년 가까이 일했는데, 그때는 일상의 목표가 곧 회사의 성장일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사람이 머무는 공간의 변화를 끌어내는 브랜드다 보니 나의 공간에 대해서도 여러 번 생각할 수 있었는데요. 이것저것 다양한 취향을 보다 보니까 우리와 잘 안 맞는 것도 알게 되더라고요. 

 

현정 씨는요? 

현정 저도 디자인을 전공해서 작은 스튜디오에 입사했어요. 특이한 게, 회사 대표님이 취미로 고급 자전거를 수입하셨는데 그걸 다시 비싸게 되팔기 위해 옷 입히고 매장 꾸리는 일을 맡았어요. 그런데 저는 자전거 탈 줄도 모르거든요. 에너제틱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척 일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후에 좀더 큰 교육 회사로 가서 수험생 대상 프로그램을 디자인할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회사 크기의 문제일까 싶어서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대기업에 들어갔는데, 저와 맞지 않는 캐릭터 제작 업무를 맡게 된 거예요.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끝날 줄 알았던 고민이 다시 시작된 거죠. 

 

여러 시도를 했지만 잘 맞진 않았네요. 

현정 대기업으로 옮기면서 결혼하고 신혼집도 꾸렸는데, 그때 계속 뭘 샀다고 했잖아요. 일과 삶이 일치되지 않으니까 거기서 큰 공허감을 느꼈나 봐요. 주변에서 일과 삶을 분리하라고 조언하길래 완전히 떼어놓았는데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서 더 불행해졌죠. 

 

사실 분리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루 중 일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긴데요. 

현정 그러니까요. 나와 맞지 않은 공간에서 보낸 시간을 보상받듯 무얼 사서 집에 가져다 두기는 하는데 만족이 안 되는 이유를 그때는 몰랐어요. 회사에서 야근하고 오느라 내가 고른 가구나 티팟은 볼 시간도 없었고요. 회사를 다니는 것에 대해, 우리의 삶이 어떤 노선을 타야 하느냐에 대해 남편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죠. 

태웅 일과 삶은 다른 게 아니라 삶 안에 일이 있는 거잖아요. 그 사이의 이질감을 덜고, 둘을 함께 보기로 인정했어요. 저도 브랜드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다 보니까, 이 일의 궁극적인 도달점은 어딜까 생각했을 때 회사는 아닌 것 같더라고요. 회사에서는 늘 새로운 걸 보여줘야 하고 변화를 만들어야 하는데, 저희는 언제나 그대로인 브랜드가 좋았거든요. 브랜드가 한 사람 같았으면 좋겠다는 게 저희의 새로운 지향점이었어요.

브랜드가 하나의 사람 같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태웅 저와 현정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떠올려봤을 때, 그 안에 머무는 사람이 연상된다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망원동 ‘스몰커피’나 ‘훈고링고브레드’, 서촌 카페 ‘mk2’처럼 공간과 어긋나지 않은 사람이 일하고, 그들이 만들 것 같은 음료를 팔고, 또 그걸 좋아할 것 같은 손님들이 찾아오는 거요. 한 사람의 취향이 진득이 묻어 나오는 걸 좋아하다 보니 해외여행 가서도 으리으리한 호텔보다는 작은 에어비앤비에서 묵거든요. 현실적으로 서울에서는 우리 두 사람이 가게도 하고 고양이도 함께 살 공간을 찾는 게 불가능에 가까워서, ‘그렇다면 꼭 서울이 아니어도 되잖아?’ 싶었어요. 직장만 아니었다면 서울에 살지 않았을 테니까요. 거기서 하고 싶은 건 이미 충분히 경험했어요. 

현정 그래서 그 주 주말부터 빠르게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죠. 좋은 땅을 찾아보자며(웃음). 

 

그렇게나 빠르다니(웃음)! 그럼 왜 스테이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유를 들으면 삶에서 무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전해질 것 같아요. 

태웅 우리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가게는 정확한 시간에 열고 닫아야 하고 휴무일도 지켜야 하지만, 스테이는 손님을 응대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잖아요. 

현정 그리고 우리의 취향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애정을 담은 소품들과 가구, 음악, 향기까지 차려두면 그걸 좋아하는 분들이 와서 향유해 주길 바랐어요. 사람들이 한 공간에 온전히 젖어들려면 하룻밤을 보내는 형태가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소수를 위한 초대의 개념이었죠. 

 

공간이 머무는 사람에게 주는 힘을 이미 알고 있었나 봐요. 

현정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서 마구간을 개조해서 만든 에어비앤비에 머문 적이 있어요. 가는 길도 불편하고 오래된 벽돌로 지어서 컴컴한데다가 안에는 말안장 같은 게 걸려 있는 독특한 곳이었죠. 옆에는 주인이 직접 운영하는 레스토랑과 수영장이 붙어 있었고요. 되게 이상한데, 모든 곳에서 주인이 느껴지는 거예요. 백 년 넘은 고택에서 주인이 열심히 쓸고 닦은 구석들이 보이고,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컵과 테이블이 있었어요. 음식도 별것 아닌데 맛있어서 그때의 기억이 참 좋게 남아 있죠. 

태웅 아시 하우스의 슬로건으로 “우리의 아름다운 기억을 통해서”라는 말을 쓰는데요. 저희도 공간에 기억들을 꺼내두고 행복했던 마음을 녹이면, 그걸 알아봐 줄 사람들이 올 것 같았어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AROUND Club에 가입하고 모든 기사를 읽어보세요.

AROUND는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합니다.

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