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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훈 — 요가소년

굳은 몸이 좀처럼 풀어질 기색을 보이지 않는 이 계절, 요가소년을 만났다. 준비해 온 매트를 단정한 모양새로 펼쳐둔 채 몸을 곧게 뻗는 그를 보며 나를 돌아보았다. 저렇게 하늘을 들어 올릴 듯 팔을 든 건 언제일까. 볼이 발그레해질 만큼 근육을 풀고 새로운 숨이 온몸을 한 바퀴 돌도록 깊게 들이마신 건 언제였을까. 요가소년 한지훈의 말과 숨을 따라 지금, 이 자리에 머무는 우리를 들여다본다. 그 이후에는 그저 몸이 내는 소리를 따르면 된다.

사람이라도 매일 다른 상태가 되기 때문에
중요한 건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계속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는 거예요.
마침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한 거죠.
똑 부러지는 답을 얻지 못해도, 뾰족한 답을 발견하지 못해도 괜찮아요.

한국에는 바로 어제 도착하셨다고요.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안녕하세요. ʻ요가소년’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한지훈입니다. 저 스스로를 가리킬 때는 요가를 나누고 안내하는 사람, 요가 안내자라는 표현을 즐겨 쓰고 있어요. 미국 시카고에 살고 있어서 한국에는 2주 정도 머무를 예정인데요. 전쟁이 항로에 영향을 미친 탓인지 평소보다 두세 시간 더 걸려서 한국에 도착했어요. 

 

장거리 비행은 조금만 지연되어도 몇 배로 힘든데 피곤하셨겠어요. 한국에는 오랜만에 오신 건가요? 

올여름에 왔었어요. 1년에 한두 번 한국으로 오는데 보통 여름에 두세 달 정도 머물면서 아내와 함께 친구들, 가족들을 만나요. 틈틈이 찾아주시는 분들과 협업해서 요가 수련 클래스를 열기도 하고요. 어젯밤에는 도착하자마자 가족 모임으로 삼겹살을 맛있게 먹고 침대에 누웠는데 바로 잠들었어요(웃음). 오늘도 성수에서 클래스를 하나 진행했고, 내일은 대구 팔공산으로 요가 투어를 떠납니다. 

 

꼭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는데 운이 좋았던 거네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기뻐요. 저도 찾아주셔서 감사하고, 또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어 좋아요. 

 

갑자기 추워져서 놀라시진 않았나요? 한국은 겨울이 성큼 다가왔거든요. 

초겨울에 한국에 있는 게 7년 만이에요. 얼마 전에 한국에 사는 가족들과 통화했는데 반팔 입을 정도의 날씨라며 덥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사는 시카고는 바람이 많이 불어서 ʻ윈디 시티’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그 전에 살던 미시간은 길고 건조한 겨울이 찾아오는 곳이에요. 눈도 많이 내리고요. 두 지역에서 지내면서 추위에는 이골이 난 터라 따뜻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추워졌네요. 그래도 오랜만에 낙엽 떨어지는 거리를 봤어요. 

 

‘윈디 시티’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한데요. 

오대호라고 한반도가 잠길 만한 크기의 호수가 있어요. 그 줄기로 뻗어 나오는 미시간호가 보이는 곳에 살고 있죠.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다 보니 바다 같기도 해요. 수면이 잠잠할 때는 파도가 없는 바다처럼 보여서 낯설고 흥미롭죠. 패들보트 타는 사람들도 많고요. 미국에 살게 된 건 아내의 일 때문이에요. 어디서 살까 많이 고민했는데 미시간호의 풍경을 보고선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그곳에 머물고 싶었어요. 아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살고 있답니다. 

 

바다 같은 호수라니, 직접 보고 싶어지네요. 앞선 소개에서 직업이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게 인상 깊었어요. ‘안내’라는 것에 특별한 의미가 담긴 걸까요? 

일부러 어려운 길로 간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누구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거나 선생이라는 표현은 조금 무거운 것 같아요. 요가라는 단어에도 괜한 무게가 실리곤 하는데, 더욱 무거워진달까요. 제가 전하고 싶은 요가는 위에서 내려오는 시선이 아니라, 요가와 가까워지는 여정을 곁에서 바라보는 시선이에요. 가르쳐준다는 말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고 저와도 잘 맞지 않아서 ʻ안내’라는 표현을 쓰게 됐어요.

‘한지훈’이라는 이름보다 ‘요가소년’으로 더 자주 불릴 텐데요. 요가소년의 시작을 알려면 지훈 씨와 요가의 만남부터 들어봐야 할 것 같아요. 

첫 만남은 바야흐로 15년 전 이야기인데요(웃음). 친구들과 봉사 활동 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교내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인도라는 나라에 호기심이 들어서 한 달 동안 저를 포함한 남자 네 명이 그곳에 머물렀죠. 봉사 활동 이외의 시간에는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친구 하나가 “그래도 인도에 왔는데 요가 한번 해볼래?”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만 해도 저한테 요가란 은은한 노래와 함께 도를 닦고 있는 지도자의 모습이었어요. 조금 괴상한 자세와 해탈한 듯한 표정 같은 것들요. 

 

맞아요. 다리를 들어 목 뒤에 얹는다든가, 만만치 않은 인상이죠. 

궁금하긴 하니까 요가를 가르쳐주는 센터에 갔더니 보통 한 달씩 프로그램을 수강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에게 남은 건 단 3일뿐이라 포기하고 가려는데, 저희를 꼭 잡더니 한 달치 금액을 내면 특별히 3일 만에 모든 과정을 알려준대요. 솔깃해서 등록하긴 했는데 다짜고짜 여러 가지 ʻ아사나Asana’를 해보라고 했죠. 

 

아사나는 ‘자세’라는 뜻이죠? 

맞아요. 산스크리트어예요. 어쨌든 요가 선생님이 보여주는 대로 열심히 따라 하긴 하지만 될 리가 없죠. 그래도 계속 잘한다며 다음 자세로 넘어갔어요. 중간에 친구랑 저랑 서로 눈이 마주치면서 “이거 맞아?”, “아닌 거 같은데.”라며 웃던 기억이 나요. 선생님은 무슨 말인지 모르실 텐데도 저희를 따라 웃더라고요. 그때 아주 조금은 우리가 속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죠. 

 

(웃음) 사실 첫 만남에는 별로 감흥이 없었네요. 바가지까지 썼고요! 

요가를 경험했다고 말하기에도 부족했죠.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서 잊고 지내다가, 당시 여자 친구였던 제 아내가 요가원 가는 걸 엄청 좋아했어요. 저를 만나기 이전부터 꾸준히 했고요. 어느 날, 요가를 다녀오더니 요가원을 잘 만난 것 같다고 또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도대체 어떤 곳이길래 그럴까, 궁금했죠. 하루는 저에게 같이 가자길래 데이트하는 느낌으로 따라나서 첫 수업을 들었는데, 너무 괜찮았어요. 

 

어떤 부분이 괜찮게 느껴진 거예요? 

수업 진행은 딱히 특별한 건 없었어요. 수련생들이 쭉 앉아 있고 앞에서 움직임을 보여주면서 따라 하도록 하는 거요. 그때 제가 첫 수업이다 보니 신체 능력이 부족하고 낯설어서 동작이 잘 안됐어요. 끙끙대고 부끄러워하는데 선생님이 제 모습을 보곤 조용히 오시더라고요. 그리고는 저만 들릴 정도로 말씀하셨죠. “무리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 한마디가 거창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 지닌 배려의 표본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세심함이 담긴 한마디네요. 매번 끙끙대고 부끄러운 운동 열등생들은 동작을 억지로라도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는 건 존중의 한 방식 같아요. 그런 태도가 공간을 구성하는 사람들에게 배어 있다면 기꺼이 이곳에 자주 오고 싶더라고요. 처음에는 3개월 등록해서 부지런히 나가보고 뭐가 뭔지 잘 모르지만 열심히 따라 해봤어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수업을 듣고 나가지 않는 시간에도 요가 생각을 했죠. 

 

요가 생각이라는 건 잘하고 싶다는 생각인가요? 

어떤 아사나를 안내하셨을 때, 그 언어들을 다 알아듣고 싶었어요. 아무도 저한테 숙제 내주지 않았고, 그걸 하라고 압박한 것도 아닌데 제가 제 시간을 할애해서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사람들은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들이 있는데, 좋아하는 대상에게 하는 것처럼 저는 요가에게 한 거예요. 요가원에 나가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하는 분들이랑 소통하고 싶어 하고요. 

 

몸에서 먼저 신호를 주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마음이 먼저 동했던 건가 봐요. 

물론 그때 몸에서도 삐거덕거리는 부분이 많았어요. 위장이 불편하고 퇴행성 관절염이 시작됐고 두통도 심했죠. 일에 빠져 살던 때라 식사도 거르고 잠도 잘 못 잤고요. 근데 바쁘면 당연한 수순처럼 그렇게 지내고, 그게 맞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회복하기 위해 요가원에 갔던 게 아니라, 요가원에 갔더니 내가 회복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 거예요. 회복의 시작은 알아차리는 거예요. 내가 지금 이 부분을 불편해하고 있구나, 이런 부분이 아프구나. 요가 수련할 때 나의 몸과 숨에 완전히 몰입하게 되는데요. 그러면 복잡하고 어지럽고 시끄럽던 머릿속이 아주 단순해져요. 그제야 비로소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생기는 거죠. 

 

좀더 설명을 듣고 싶어요. 나의 현재를 살펴보는 것… 어떻게 하나요? 

예를 들어 오른 무릎이 많이 아프다는 걸 인식했어요. 그럼 ʻ그쪽이 아픈 건 항상 무거운 걸 들고 오래 걷기 때문이고, 서 있을 때 짝다리를 짚었기 때문이네.’라고 곱씹어 보는 거죠. 요가 수업을 들어보면 지금 여러분의 호흡은 어떤지, 지면에 닿아 있는 신체 부위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자세를 수행할 때 몸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어떤 느낌인지 계속 물어보세요.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거나 지면에 닿는 발바닥 같은 건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쉬워요. 그래서 더욱 열중하는 시간으로 되짚어봐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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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명주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