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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저귀는 밤〉 전진희—뮤지션

깜깜한 방에서 희미한 불빛에 의존해 더듬더듬 [Breathing] 앨범을 찾아 재생하는 것을 좋아한다. 전진희의 음악은 어쩐지 밤을 닮았다. 단지 잠잠하고 고요해서만은 아닐 테다. 진짜 이유가 무얼까, 생각하는데 우연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러니까, 전진희가 밤과 잠을 닮았다는 게 나만의 생각이 아니란 거지?

항상 꿈을 꿔요.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꾸죠.

하루에 서너 개씩 꾸는데, 대체로 악몽이고, 매일매일 새벽 5시에 깨고….

그런 삶이 매일 반복되다 보니

언젠가부터는 괴롭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아져요.

“나쁜 꿈으로 눈 뜨는 새벽 다섯 시 시린 눈으로 하루를 시작해요.” 이번 호 주제어가 ‘잠’인데, 계속 이 노래를 흥얼거렸어요. 요즘 잘 자고 있어요? 

솔직히 얘기하면… 잘 못 자고 있어요. 7월에 앨범이 나왔는데 작업이 끝나면 ‘후폭풍’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오거든요. 한창 작업에 매진할 땐 모르다가 앨범이 나오고, 공연도 하고, 약간 소강상태에 접어드니까 그제야 올라오는 체력적인 힘듦과 정신적인 지침 같은 건데요. 그런 시기가 닥치니 잠이 잘 안 오더라고요. 한창 작업 중일 땐 매일매일 피곤하니까 오히려 잘 잤는데 작업이 마무리되니까 잘 못 자는 기간이 찾아왔어요. 

 

노랫말처럼 나쁜 꿈으로 눈뜨는 건 아닌지…. 

다행히 요즘엔 평소랑 다르게 나쁜 꿈은 안 꾸고 있어요. 안 꿨다기보단 잠을 계속 설친 건데요, 얼마 전에 강아지가 아팠거든요. 계속 간호하다 잠들고, 간호하다 잠들고, 하니까 오히려 꿈꿀 겨를도 없이 얕게 자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다행히 많이 회복돼서 경과를 보는 단계예요. (옆에서 강아지가 낑낑거린다.) 네 얘기 하는 줄 아는 거야(웃음)? 

 

참 착하고 순한 친구예요. 소개해 주실래요? 

제가 사랑하는 강아지 ‘모모’예요. 귀엽고 나이가 많고. 벌써 열세 살이 됐어요. 사람들이 모모만 보면 사랑에 빠져요. 사람을 보면 눈을 빤히 쳐다보고 있거든요(웃음). 모모는 새끼일 때 만났는데, 얼굴이 넙데데해서 모모라는 이름이 딱 떠올랐어요. 

 

모모, 오늘 계속 부르게 될 것 같아요(웃음). 2021년 [summer,night]를 낸 이후부터일까요, 진희 씨 음악에 여름을 소환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겨울 뮤지션인 줄 알았는데 여름도 접수했다.”는 리뷰도 왕왕 눈에 띄고요. 

[summer,night]를 발매한 이후로 그런 반응이 부쩍 많아진 것 같아요. 한동안 여러 인터뷰에서 여름이 사실은 비수기라고 이야기해 왔거든요. 저뿐만이 아니라 느리고 여백 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상대적으로 여름에 활동이 적어져요. 날씨가 더우면 기분이 업되는 음악을 듣고 싶잖아요. 그래서 불러주는 데도 상대적으로 적어서 여름엔 되도록 조용히 지냈는데요. 어느 날 문득 ‘내 음악을 여름에도 듣고 싶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런 마음으로 낸 게 [summer,night]였어요. 다행히 이 앨범이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 반응이 부쩍 많아진 것 같아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종종 하셨지요. 

일단 체력적으로 많이 지치고 무기력해져서 여름은 ‘보낸다’는 인상보단 ‘버틴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매 여름이 그랬죠. 그러다 딱 이맘때쯤 여름에 서운한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지면 ‘여름 갔어? 언제 갔지?’ 하게 돼서요. 매미 소리도 하루아침에 뚝 끊기고요. 너무 시끄러워서 밉던 매미가 어느 순간 싹 사라지면 아쉽고 서운해져요. 그게 여름이 주는 특별한 감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겪을 땐 되게 괴로운데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일이 많다 보니까 자꾸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곡도 쓰게 된 거죠. 

 

그럼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언제예요? 

딱 지금이요. 늦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이때가 참 좋아요. 하늘도 예쁘고 햇살 색감도 조금 달라지잖아요. 아주 쨍한 여름과는 좀 다른 빛깔이라 지금은 어디에 눈을 둬도 다 예뻐 보여요. 

 

“쨍한 햇빛과 살아있는 것 같은 나뭇잎의 색, 비 내린 후의 하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의 색은 여름에만 볼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죠. 그 말이 참 좋았어요. 이번 여름에 목격한 새로운 장면 있어요? 

한창 3집을 준비하면서 ‘장마철에 들어도 좋은 앨범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근데 이번 여름에 비가 유독 많이 왔잖아요. 비 내리는 걸 계속 생각하며 작업하다 보니 비 오는 날이 점점 더 좋아지더라고요. 물론 폭우로 안타까운 상황도 많았지만… 음악 작업하면서는 비 내리는 여름을 좀더 좋아하게 됐어요. 기억에도 많이 남게 됐고요.

저는 등만 대면 자는 편인데, 어쩌다 한 번씩 잠이 안 올 때면 음악부터 찾아서 듣거든요. 그럴 때 듣는 게 [Breathing]이에요. 피아노 연주곡으로만 이루어진 앨범이어서 편안해지더라고요. 이 앨범에 “호흡처럼 자유로운 소리를 내고 싶다.”는 소개 글이 있죠. 저한테 호흡은 꼭 해야 하는 거고, 규칙적인 행동이어서 그런지 자유롭다니까 생소한 느낌이에요. 

포니테일 머리를 묶고 달리면 기분 좋은 흔들림이 생기잖아요, 근데 그 걸음을 멈추면 머리의 흔들림도 멈춰요. 호흡도 똑같은 것 같아요. 호흡이 멈추면 끝이 나잖아요. 자유로움 속에서 계속 호흡하는 거니까 규칙도 생길 수 있다고 봐요. 

 

아, 그 자유라는 건 내 호흡을 내가 관장한다는 데서 오는 거로군요. 

맞아요. 호흡은 사람의 심정에 따라 바뀌어요. 긴장했을 때 호흡과 편안할 때 호흡, 행복할 때와 슬플 때 호흡은 다르잖아요. 그럴 때 일종의 흐름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래서 잠이 안 올 땐 누워서 호흡에 집중해요.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내쉬면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거예요. 몇 년 전에 불안 장애가 심하게 온 적이 있어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저한테 “할 수 있는 건 호흡밖에 없다.”고 하셨거든요. 너무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 할 수 있는 호흡법을 알려 주셨어요. 길게 내쉬고, 길게 들이마시는 것의 반복이죠. 사람이 긴장하면 호흡을 잘 못한대요. 거기서 오는 극도의 불안감도 있는데, 그걸 해소하기 위해 내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 호흡법을 하면 실제로도 잠이 잘 와요? 

잠이 잘 온다기보단 잠들려고 노력하는 거죠. 안 하는 거보단 물론 나아요. ‘내가 지금 많이 긴장되어 있구나. 뭔가에 정신적으로 몰려 있구나.’ 싶을 때 호흡을 상기하면 조금 나아져요. 

 

불안하다는 건 끊임없이 뭔가가 움직이는 일 같아요. 온 세포가 바들바들 떨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서요. 가만히 있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아서 휴식이 절실해져요. 

맞아요. 불안 장애가 심할 때는 휴식은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서 병원도 다니고, 상담도 받고, 여러 노력을 했는데 선생님이 “진희 씨 몸이 타고 있어요.” 하시는 거예요. 사람이 걷거나, 달리거나, 뭔가 활동을 해야 에너지도 분출되고 감정도 바깥으로 뻗어 나가는 건데 불안감이 너무 끝까지 차 있으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자꾸 흘러넘쳐서 몸이 타는 상태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걸 체험하고 나니까 다시는 겪고 싶지 않더라고요. 

 

많이 힘들었겠어요. 불안을 잠재우는 휴식법을 좀 알게 됐어요? 

전혀요. 시간이 해결해 줬어요. 한 번 경험하고 나니까 다시 그런 불안이 찾아오면 ‘진희야, 그거 아니야.’ 하고 저 스스로 말하게 되고, 다독이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면 그 정도가 조금씩, 조금씩 옅어져요. 

 

뮤지션 강아솔 씨랑 나눈 대담 인터뷰 참 좋았는데 거기서 “내가 쓰는 곡들은 곡을 시작하게 만든 이야기가 있다.”고 하시잖아요. 요즘 마음에 둔 이야기 있어요? 

3집 작업할 때부터 줄곧 생각한 건데 모모를 보면서 존재가 꺼져가는 과정에 관해 자꾸 생각하게 됐어요. 안쓰럽고 슬픈데,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동물의 시간은 인간에 비해 정말 짧잖아요. 근데 시간만 다를 뿐 결국 사람도 똑같은 것 같아요. 그런 걸 자꾸 생각하게 돼요. 

 

요즘 화두는 생과 사로군요. 

(웃음) 너무 거창한걸요. 그렇지만 분명히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무언가 사라져가는 과정을 볼 때마다 자꾸 생각하게 돼요. 

그간 음악으로 기록해 온 것들을 “대부분의 이야기가 미움이다. 혹은 분노 상처 버림받았던 아픈 일들이었다.”고 하셨는데, 소화하고 휘발하면 좋을 감정을 음악으로 기록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저는 취미가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느낀 감정들을 풀어낼 방법이 음악밖에 없더라고요. 취미를 만들고 싶어서 계속 고민하는 중인데요. 여태 없던 게 갑자기 생길 리도 없고, 애써 찾아보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감정을 풀 창구는 계속 음악뿐이어서 자연스럽게 피아노로, 음악으로 기록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음악으로 감정을 풀어내는 거네요. 

그래서 제 노래 가사를 보면 일기 같기도 하고… 좀 사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잖아요. 특히 1, 2집. 저도 그렇게 들리도록 표현해 왔던 것 같아요. 

 

일기장에 기록하는 일은 저한텐 모아놓는다는 의미거든요. 해소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남겨두는 느낌이 강해요. 그래서 오히려 좋았던 걸 더 많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정말요? 저는 나쁜 얘기밖에 안 쓰는데(웃음). 그런 감정을 기록해 두면 다시 한번 비슷한 감정이 찾아왔을 때 펼쳐보게 돼요. 처음 겪는 감정은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도 있고, 이전에 이겨내려고 노력해 봤다는 데서 느끼는 위로도 있어요. 그때보다 더 잘, 더 빠르게 헤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전보다 나아졌다는 걸 느끼는 것도 좋아요. ‘한 번 빠져나온 감정이니까, 이번에도 그럴 수 있겠지.’ 하면서 위안 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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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