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A Slow Tempo

어느 보통날의 오롯한 빵들 : 훈고링고브레드 고훈 . 황지은

복작이는 동네를 살짝 비껴간 여기는 한산한 성산동. 5년간 이곳에 좋아하는 것들을 묵묵히 담아온 부부가 있다. 보통날 먹는 일상의 빵을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빚어내는 이들은 요란한 소란 속에서도 오롯한 속도를 지켜간다. 나는 이곳에서 늘 처음을 본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메뉴, 어제나 오늘이나 변치 않는 빵 맛, 수년 전이나 올해나 그대로인 초심. 나는 이 동네 빵집의 한결같음을 존경한다.

한여름의 애프터눈 티

집에서 만나니 새롭네요. 독자들에게 소개해 주세요.

훈고: 안녕하세요, 훈고링고브레드에서 빵 만드는 고훈입니다. 훈고링고브레드의 ‘훈고’가 저예요. 주변 사람들에게 이름 대신 훈고라고 불리고 있죠.

지은: 저는 훈고링고브레드에서 음료와 샌드위치를 만들고 디자인과 브랜딩, 그리고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하는 황지은이에요.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였는데 이젠 디자인 말고도 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어요. 

 

두 분은 훈고링고브레드 운영자이기 전에 부부로 연을 맺었죠.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지은: 소개팅이요(웃음). 처음 만났을 때부터 통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제가 남 이야기 듣는 걸 워낙 좋아하는 데다가 훈고 씨는 잡학 다식한 사람이라 이야깃거리가 많았거든요. 대화가 끊이지 않아서 그런지 함께 있는 시간이 편하고 즐거웠어요.

훈고: 처음 만난 지 벌써 15년이 지났네요. 지은이는 지금도 동안인데 그땐 나이보다 훨씬 더 어려 보였어요. 분명히 나이를 들었는데 그 나이로 보이지 않아 놀란 게 첫인상이에요. 저도 마찬가지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즐거워서 좋았죠. 둘 다 좀 마이너한 취향을 가진 것도 잘 통했고요. 그 당시 저는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 지은이는 그래픽 디자이너였는데 디자인적인 면에서도 둘 다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별난 구석이 있더라고요.

 

소개팅에 궁금한 게 많은데, 만나서 뭐 하셨어요(웃음)?

지은: 보통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평범하게 차 마시고 밥 먹었어요. 그 첫 만남을 기점으로 6개월 후에는 결혼을 결정했고요. 그 정도로 이야기가 잘 통했거든요. 저희를 소개해준 사람은 따지자면 세 명이 있는데요. 제 친구 A, 훈고 씨 학교 후배 B, 그리고 A와 B 사이에 C가 있었어요. 조금 복잡하죠? B와 C는 한때 홍대에 다방D’AVANT이라는 카페를 함께 운영한 사이고 A와 C는 사장과 아르바이트생으로 만나 친한 언니·동생이 된 관계였죠. 나중엔 저와 훈고 씨, A, B, C 모두 친해졌는데요. 결혼 소식을 전했더니 본인들이 소개해 줬지만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며 셋 다 놀라더라고요. 다 같이 모여 웃었던 기억이 나요.훈고: 소개팅하고 1년이 채 안 되고 결혼해서 더 그랬을 거예요. 제 후배 B가 요즘 화제가 된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쓴 황선우예요(웃음). 선우 덕분에 지은이를 알게 된 거죠.

 

(지은이 새로운 차를 내온다.) 차려주신 음식을 맛보기도 전에 새로운 음식을 내주시는 것 같아요. 이번엔 차네요!

지은: 오늘 진짜 더운가 봐요. 몇 마디 안 했는데도 목이 타네요. 따듯한 차는 마셨으니 차가운 걸 좀 마셔볼까 싶어서요. 이건 제가 여름에 냉차로 자주 먹는 마리아쥬 프레르Mariage Freres의 카사블랑카Casablanca라는 홍차예요. 카사블랑카는 모로칸민트와 베르가모트가 블렌딩 되어 청명한 향이 나요. 더운 날씨에 참 잘 어울려요.

 

와, 이 차 정말 맛있어요. 뒷맛이 시원하네요. 

지은: 이번 호 주제가 ‘건강한 식탁’이라고 해서 저희가 어울리는 사람들이 맞는지 좀 걱정했어요. 특별히 건강식을 챙겨 먹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바빠서 끼니를 거를 때도 많거든요. 그래도 디저트는 대접하고 싶었는데 신경 써서 준비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간단히 차려봤어요. 훈고링고브레드에서 판매하는 스콘이랑 마들렌, 그리고 사브레 쿠키예요. 스콘에 발라 먹을 사과잼이랑 클로티드 크림Clotted Cream이 냉장고에 있어서 함께 내왔어요. 제철인 체리랑 오렌지도 올려봤고요. 말로 하면 거창하지만 차려놓으니 별거 없죠(웃음)?

스콘이랑 클로티드 크림을 함께 먹는 게 영국식이라고 들은 적이 있어요. 근데 클로티드 크림이 정확히 어떤 거예요?

지은: 클로티드 크림은 저온 살균 처리하지 않은 우유를 가열해서 얻은 진하게 농축된 노란 크림을 말해요. 시중에선 저온 살균 처리하지 않은 우유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유지방 함량이 50퍼센트 이상인 생크림으로 만들죠.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 먹는 우유는 유지방 함량이 낮아서 크림으로 만들 수가 없거든요.

 

레시피를 물어봐도 되나요?

지은: 어렵지 않아요(웃음). 먼저 생크림을 냄비에 담고 끓여요. 거품이 오르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조절하고 그대로 뭉근하게 끓이는데요. 그럼 생크림에 크림 막이 생기거든요. 그 막을 계속 걷어내서 적당한 용기에 담은 뒤 냉장고에서 반나절 정도 식히면 완성이죠. 어렵지는 않은데 번거롭고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에요. 원래 만들어 먹곤 했는데 요새는 수입이 잘 돼서 사두었어요. 홍차와 스콘, 과일잼 그리고 클로티드 크림을 곁들인 오늘 같은 식탁을 영국에서는 ‘크림 티Cream Tea’라고 불러요.

 

은은하고 부드러워서 입이 즐겁네요. 이 집이랑 잘 어울려요.

지은: 너무 좁고 뭐가 많죠? 집에서 인터뷰한다고 해서 정리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구석구석까지 촬영하실 줄은 몰랐어요. 불안불안하네요(웃음). 저는 작고 오래된 물건을 좋아해서 여행 가거나 산책하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하나둘 사 오는 게 취미거든요. 그렇게 모아온 게 어느덧 이렇게 많아져서 집 안을 가득 메우게 됐네요. 둘 다 시간의 흔적이 쌓인 것들을 좋아해서 집이나 가게에도 그런 물건이 많아요. 저렴하게 구입한 것들이라 사용할 때마다 좀 뿌듯하기도 해요.

(고양이가 의자에 올라온다.) 어머, 이 친구는 누구인가요?

지은: 저희 집 둘째 고양이 예티예요. 훈고 씨가 털 색깔이 히말라야 설인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죠. 저희 고양이들은 저희가 테이블에 앉으면 꼭 옆에 있는 의자에 올라와 함께 앉더라고요. 오늘은 손님이 와 있어서 어쩔 줄 모르더니 역시 빈 의자가 생기자마자 올라오네요(웃음). 그러고 보니 예티가 앉아 있는 이 의자도 제가 결혼 전부터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스툴이에요.

훈고: 집 안에 있는 작은 소품들이 지은이의 컬렉션이라면 LP와 CD는 제 소장품이에요. 음악을 좋아해서 오래전부터 모아왔거든요. 제 음악 취향이 대중적이지는 않아서 아마 낯선 아티스트가 더 많을 거예요. 요새는 다들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들어서 이런 걸 모으는 게 별나 보일 거 같은데, 저희 부부는 오래된 물건에 애정이 있어서 이렇게 집에 물건을 쌓아 두고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집도 신혼 때 구한 집이에요. 14년 동안 이사 한 번 안 하고 살고 있네요.

 

맨션인데 현관문이 여기만 빨간색이더라고요. 방문도, 화장실 타일도 특이하던데 직접 인테리어 한 건가요?

훈고: 시공은 전문가에게 맡겼지만 모든 디자인과 계획은 저희가 직접 했어요.

지은: 지금 인테리어 한다면 절대 이렇게 안 할 것 같지만 당시엔 이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어요. 하도 오래돼서 이젠 누굴 초대해서 보여주기 민망하네요. 많이 낡고 해졌어요.

 

그래서 더 근사한걸요. 집에선 주로 어떤 일을 하세요?

훈고: 누워 있어요(웃음). 일 끝내고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서 의자에 앉을 틈도 없이 침대에 눕게 돼요. 요즘은 누워서 스마트 티브이로 유튜브, 왓챠, 넷플릭스 같은 걸 열심히 봐요. 닌텐도로 하는 ‘동물의 숲’에도 푹 빠져 있고요. 티브이도 게임기도 다 침실에 있어서 집에 오면 침실에서 나가질 않아요(웃음).

지은: 가게를 하기 전에는 집에 있는 작은 물건들을 꾸미고 돌보는 시간을 좋아했는데 가게를 시작하고부터는 그런 시간을 누린 게 언젠지도 모르겠어요. 일 마치고 돌아와서 고양이들이랑 조금 놀다가 자고, 눈뜨면 또다시 출근이죠. 그래도 올해부터는 쉬는 날을 이틀로 늘려서 하루 정도는 온전한 제 시간이 생겼어요. 쉬는 날엔 둘이 대화도 안 해요. 조용히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다가 밥 먹을 때만 테이블에서 만나죠. 일할 땐 늘 같이 있으니까 이럴 때라도 따로 있어 보려고요(웃음).

Grows Old With Me

손을 맞잡고 고이 낡아가는 일

훈고 I 초록이 무성한 집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14년을 이 집에서 살아왔어요. 처음 들어올 때 전체적으로 손을 봤는데도 이제 많이 낡았네요. 이 집에 꼭 들어오고 싶던 이유는 나무가 한가득 보이는 창 때문이었어요. 요즘 서울에서 합리적인 금액으로 나무가 보이는 집을 구하기가 쉽지는 않거든요.”

지은 I 엄마가 기록한 어린 날들

“사진 찍기가 취미인 엄마가 찍어준 어린 시절 사진이에요. 본가에 걸려 있던 액자 그대로 가지고 이 집으로 왔어요. 액자 틀이나 매트지로 채워진 여백 구성이 지금 봐도 근사하죠? 요즘은 이런 원목 액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요. 단순해 보이지만 멋스럽고 희귀해서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죠. 사진 속 배경은 어릴 때 살던 집 마당인데, 쓰고 있는 모자는 아마 인형 모자였던 것 같아요.”

지은 I 인터넷에서 찾은 보물

“빈티지 물건은 주로 여행지에서 사지만 집에서도 해외 빈티지 사이트를 눈여겨보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이 나오면 구입하고 있어요. 이 냄비도 그렇게 구한 거예요. 빌레로이 앤 보흐Villeroy And Boch의 아카풀코ACAPULCO 시리즈 에나멜 냄비인데, 디자이너인 크리스티안 로이터Christian Reuter가 멕시코 아카풀코를 여행하며 영감을 받아서 디자인했다고 해요.”

지은 I 산책길에 우연히 만난 곰 인형

“<미스터 빈Mr. Bean>에 등장하는 테디베어예요. 산책하다가 작은 숍에서 발견했는데, 하나만 있는 거라 안 판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너무 아쉬워하니까 저렴하게 내어 주셔서 감사히 데려왔어요. 함께 지낸 지도 벌써 13년이나 되었네요. 첫째 고양이 아쌈의 애착 인형이에요.”

소박하고 씩씩한 동네 빵집

‘빵을 만들면 잘할 것 같다’는 친구의 추천으로 제빵을 시작했다고 들었어요.

훈고: 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로 10년 정도 일하면서 꽤 열심히 커리어를 쌓았어요. 팀을 책임질 자리까지 왔지만 언제나 마음 한편에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죠. 그러다 본격적으로 전직을 생각한 건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팀이 해산됐을 때였어요. 그 당시에는 그간 만들어온 모든 작업이 컴퓨터라는 가상 세계에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결핍을 느끼기도 했어요. 옆에서 지은이가 물성이 있는 멋진 것들을 디자인하는 걸 보면서 저게 진짜라는 동경도 생겼고요. 손에 잡히는 걸 만들고 싶단 마음 때문인지 옥상에 작은 텃밭을 꾸리기도 했는데, 즐거움과 감동을 느껴 시골에 가서 농사짓자는 얘기도 농담처럼 하곤 했어요. 그때 프랑스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가까운 친구가 제빵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저를 잘 아는 친구이기 때문에 가볍게 하는 제안이 아니란 걸 알았어요. 그렇다고 바로 퇴사하고 제빵을 배운 건 아니에요. 시간을 두고 지은이와 의논하던 시기부터 전문적으로 제빵을 배우고 빵집에 취직해 실무를 익히기까지 5년이나 걸렸거든요.

 

해보니까 어땠어요?

훈고: 친구가 제빵을 왜 추천했는지 알겠더라고요. 빵은 저랑 닮았어요. 어떤 일이든 진득하고 묵묵하게 하는 제게 잘 맞는 일이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요령을 부리기보다는 시간이 흐르는 걸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리는 점이 특히 그랬어요. 제빵은 서두르지 않고 정확한 온도와 시간을 지키는 태도가 중요하거든요. 빵이 왜 이렇게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어요.

 

빵의 역사는 얼마나 됐나요?

훈고: 글쎄요….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웃음). 무발효 빵은 수천 년 전에 시작됐을 거예요. 이스트로 부풀리기 시작한 빵만 해도 역사가 꽤 길 거고요. 책에서 쌀과 밀에 대해 읽은 적이 있는데, 쌀이 나는 동아시아는 상대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았대요. 끓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으니까요. 반면에 밀은 익히더라도 소화가 어려워 제분과 반죽을 통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빵이 탄생하고 지역마다 독자적인 빵의 형태로 발전된 것 같아요.

 

두 분은 원래 빵을 좋아했나요?

지은: 저는 심플한 샌드위치나 담백한 빵을 좋아했어요. 물론 지금도요. 프리랜서로 일할 땐 점심으로 가장 많이 먹은 게 아마 샌드위치일 거예요. 사실 빵은 먹지 않고 보기만 해도 좋아요(웃음). 빵집에 빵이 가득 쌓여 있는 걸 보면 굳이 사 먹지 않더라도 행복해지잖아요.

훈고: 제빵을 하기 전엔 어릴 때 즐겨 먹던 단팥빵이나 크림빵, 야채 크로켓 등을 사 먹는 정도였어요. 근데 제빵을 배우고 나니 기본 재료인 밀가루, 물, 이스트, 소금 네 가지로만 만드는 담백한 빵들이 좋아지더라고요.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건 있어요. 식사빵에 치즈와 버터, 새우까지 올린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어도 밥 먹었다는 기분이 잘 안 든다는 거. 식사는 밥으로 해야 비로소 먹은 것 같아요(웃음).

 

이렇게 다른 두 분이 함께 빵집을 만든 셈인데 어떤 곳을 만들고 싶었어요?

지은: 동네에 있는 작은 빵집을 생각했어요. 특별한 빵들이 있는 곳보다는 일상을 채워가는 소박한 구움 과자와 식사빵, 샌드위치가 있기를 바랐어요. 맛있는 커피와 즐길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거 같았고요. ‘우리 동네에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싶은 공간이길 바랐죠. 

훈고: 빵을 굽는 사람은 저 혼자라서 메뉴를 다양하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오후에도 계속 빵을 굽는다면 종류를 조금이나마 늘릴 수 있겠지만, 베이커리의 구색을 갖춘 빵집을 생각한 건 아니거든요. 일상적인 빵들을 단출하게 차려놓고 편하게 오가면서 사 갈 수 있는 빵집… 정도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5년 동안 빵 메뉴에 큰 변화가 없는 것도 인상 깊어요.

훈고: 사실 제빵을 추천해 준 친구랑 처음에 이야기한 건 크루아상만 하는 빵집이었어요.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시작하는 일이다보니 한 가지에 집중해서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을 택한 거였죠. 그런데 제가 지금껏 먹어온 크루아상의 맛이 정확한 맛일까 싶더라고요. 크루아상 빵집을 하려는데 본연의 맛을 모르면 안 될 것 같아서 파리로 한 달 정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죠. 거기서 방향이 확 틀어졌어요. 파리에서 빠져버린 게 크루아상이 아니라 바게트였거든요. 그때 ‘다른 건 몰라도 이 빵집 바게트는 맛있어!’라는 말을 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어요. 

 

오픈하자마자 이른바 ‘핫 플레이스’가 되었어요. 그때 인기 있던 빵은 파운드케이크였던 걸로 기억해요.

지은: 오픈 초기엔 생각보다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솔직히 놀랐어요. 이렇게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실 줄은 몰랐거든요. 공간이 아담하다 보니 조금만 사람이 몰려도 금세 대기자가 생기고 북적북적해졌죠. 우리가 예상한 그림과는 많이 달랐어요. 쉴 새 없이 셔터 소리가 들리고 빵들이 금세 다 팔리는 모습은 생각해 본 적이 없거든요. 

훈고: 파운드케이크가 입소문을 탄 건 아마 가게 오픈 전에 몇 번 출점한 플리마켓의 영향이 클 거예요. 훈고링고브레드를 사람들에게 알린 첫 빵이 바로 파운드케이크였으니까요. 

 

왜 파운드케이크로 플리마켓에 출점하게 됐나요?

훈고: 어떤 빵이 좋을지 고민하다가 홈베이킹하기 좋은 빵 중에서 평소에 저희가 좋아하는 파운드케이크는 어떨까 싶었어요. 사람들이 파운드케이크엔 크게 관심이 없을 때여서 심플한 빵 맛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파운드케이크를 직접 굽는 카페나 빵집이 없었고, 팔더라도 홀 케이크만 다뤘기 때문에 조각으로 판매한 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지은: 베이킹을 시작하고 훈고 씨가 가끔 파운드케이크를 구워줬는데 제가 그걸 참 좋아했어요. 아주 오래전에 먹어본, 기억 속에 있는 ‘맛있는 파운드케이크’가 재현된 것 같았거든요. 소박하고 간단해 보여도 제대로 만들려면 정성이 많이 필요한 파운드케이크는 저희와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훈고링고브레드라는 이름은 리듬이 참 좋아요. 첫 플리마켓 때도 이 이름을 사용했나요?

지은: 플리마켓 전부터 가게를 준비 중이었지만 마땅한 이름은 없는 상황이었어요. 진지하고 무거운 이름보다는 귀에 잘 들어오는 걸로 해보자며 후보만 몇 개 만들어둔 상태였죠. 그러다 플리마켓을 앞두고 문득 ‘훈고링고브레드’라는 이름이 떠올랐어요. 링고는 저희 집 막내 고양이 이름인데, 훈고 씨랑 링고랑 라임이 잘 맞아서 부르기에도 좋았어요. 그렇게 고민할 땐 마 땅한 게 없더니 몇십 초 만에 불쑥 떠오른 이름이었죠. 훗날 가게 이름은 바뀔 수 있단 여지를 두고 사용한 건데 의외로 손님들 반응이 좋아서 그대로 자리 잡게 됐어요.

훈고: 처음엔 제가 ‘선베이딩Sunbathing’이라는 단어의 어감과 이미지를 좋아해서 가게 이름에 사용하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한글로 적었을 때 그 느낌이 잘 안 살아서 선뜻 맘이 안 가더라고요. ‘일광욕’이라니(웃음). 훈고링고브레드는 근사한 이미지를 떠올렸던 선베이딩에 비해 훨씬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손님들이 가게 이름 부를 때마다 훈고링고브레드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집에 고양이가 세 마리 있는데 훈고링고브레드의 ‘링고’는 어떤 친구인가요?

지은: 첫째 아쌈과 둘째 예티 다음으로 들어온 막내 고양이예요. 구조된 유기묘였죠. 그 당시 친하게 지내던 동네 병원 카페 제너럴닥터에서 임시 보호 중이라며 SNS에 링고 사진을 올렸는데, 보자마자 ‘얘는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수많은 유기묘를 보았는데 왜 유독 링고만 눈에 밟혔는지 모르겠어요. 고양이가 이미 두 마리나 있는 데다가 집도 좁아서 고민스러웠지만 자꾸 마음이 가더라고요. 반대하던 훈고 씨를 설득한 끝에 링고를 보러 갔는데, 보자마자 데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어요. 링고는 눈이 잘 안 보이는 아이예요. 그런데 이 집에 오자마자 스캔하듯 한 바퀴를 쓱 돌더니 곧장 적응해서는 원래 살던 곳처럼 지내기 시작했어요. 눈이 안 보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씩씩했죠. 지금은 꼭 다 보이는 고양이 같아요(웃음). 링고를 구조한 분이 가끔 가게에 손님으로 오시는데 뵐 때마다 90도로 인사드리고 싶어요.

 

패키지에 들어가는 훈고와 링고 일러스트도 이름이랑 참 잘 어울려요. 디자인도 직접 하고 있죠?

지은: 디자이너로 일할 땐 주로 브랜딩이나 패키지 디자인 작업을 했어요. 그때 클라이언트들이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힘준 디자인을 요구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강하게 드러내는 디자인은 제 기본적인 성향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제 가게는 되도록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첫 플리마켓 때 그린 일러스트를 지금껏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고민 없이 하루 전에 쓱쓱 그린 그림이었거든요(웃음). 제가 저의 클라이언트니까 더 자유롭고 유연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지금도 가게에서 직접 제 디자인을 활용하고 경험하면서 계속 발전해나가고 있는데, 디자이너로서도 큰 공부가 돼요.

 

부부가 매일 함께 일하는 건 어때요? 

훈고: 좋은 점은 역시 가장 신뢰하는 사람과 일한다는 거예요.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든든할 거란 믿음이 있죠. 디자인적인 부분에서도 훈고링고브레드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의 작업이니까 안정적이고요. 단점은… 역시나 싸운다는 거? 가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근 10년간 싸운 적이 거의 없는데, 함께 일하면서부터 자주 다투게 됐어요. 일터에서는 아무래도 쉴 때와는 다른 스트레스가 있으니까요. 빵집은 늘 행복한 기운이 가득할 것 같은데(웃음).

훈고: 사람들 생각이 대부분 그래요. 티브이나 영화에서 만들어진 이미지가 있어서 빵집 주방은 부드럽고 밝을 것 같다고 생각하죠. 그렇지만 결코 아니거든요. 저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예민한 상태로 빵을 만들며 엄청난 노동량을 수행해요. 지은이가 출근할 즈음엔 이미 체력이 소모된 상태여서 날카롭게 반응하다가 싸우기도 하고요. 각자 직장에 다닐 땐 퇴근하고 만나는 일상이니까 같이 있는 시간은 온전한 휴식이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어요.

 

주로 어떤 부분에서 다투나요?

지은: 저희 둘은 취향은 비슷해도 성격은 아주 달라요. 쉴 때는 맞춰나갈 여유가 있었지만 일이 되니까 자기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싸우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5년동안 함께 일하다 보니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춘 것 같아요. 서로의 생각을 헤아리고,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은 포기하고, 내 의견과 달라도 믿고 맡길 수 있는 부분이 생기면서요. 

 

손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있을 것 같아요.

지은: 하던 일이 아니다 보니까 낯설고 생각과 다른 지점도 많아요. 초반에 힘들어하던 이유 중 하나였죠.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안 좋은 점은 점차 옅어지고 좋은 점을 더 많이 보게 되었어요. 지금은 손님들에게 특히 고마운 마음이 커요. 한 번 오신 분들이 또 오면 반갑고, 자주 보는 얼굴이 많아질수록 행복하고…. 단골이 생기면서 스트레스가 많이 정리된 것 같아요.

훈고: 저는 상대적으로 손님과의 스트레스는 적어요. 직장에서 팀 매니지먼트를 해왔어서 상사나 부하 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일이 많았거든요. 또 인상 자체가 편한 사람은 아니어서 조금만 친절하게 대해도 손님들이 ‘친절한 사장님’으로 기억해 주시더라고요(웃음). 주로 손님 응대는 지은이가 하지만, 자주 오시는 분들과는 저도 친분이 생겼어요. 단골 손님이 한동안 보이지 않으면 걱정되기도 하고요. 단골이 뜸해지는 이유는 대부분 이사 때문인데요. 그래도 잊지 않고 들러서 “이사 가서 자주 못 오게 됐어요.” 하고 소식을 알려주면 그걸로 안심이 돼요. 신혼일 때 저희 가게에 오셨다가 지금은 다섯 살이 된 아이와 함께 오는 단골도 있는데, 이런 손님들을 보면 이젠 동네 빵집의 정체성이 생긴 것 같은 기분도 들어요.

부부가 품은 유연한 고집

훈고링고브레드에서 다시 만나게 됐네요. 갓 만든 빵을 차려 주시다니! 맛있게 먹을게요.

지은: 가게가 집보다 훨씬 밝죠? 식사도 못 하고 오셨을 것 같아서요. 편히 드세요. 그린티 파운드케이크와 바게트 샌드위치예요. 음료는 과일향이 나는 영국의 탄산음료 플랭클린Franklin과 태국의 탄산수 싱하 소다 워터Singha Soda Water인데 취향껏 골라 드세요(웃음).

 

갓 구운 거라 그런지 바게트가 바삭바삭하고 고소해요. 이 빵들은 몇 시부터 만들어지나요?

훈고: 가게에 오전 7시까지는 도착해야 빵을 만들고 12시에 오픈할 수 있어요. 업무에 루틴이 잡혀 있어서 출근 시각을 어기면 모든 게 어긋나죠. 몇 시엔 어떤 빵을 반죽하고, 몇 시엔 어떤 빵을 굽고, 분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꽤 예민한 상태로 작업해요. 빵 반죽, 발효, 성형과 굽는 일 중간에 카넬레나 스콘 같은 구움 과자의 반죽과 굽는 일이 맞물려 돌아가죠. 틈틈이 사용한 그릇들 설거지도 해야 하고요. 5년째 하는 일이지만 언제나 오픈 전엔 정신없어요. 야단법석이죠(웃음).

 

기대에 못 미치는 빵이 나온 적은 없나요?

훈고: 많죠. 그럴 땐 팔지 말라고 해요. 제 기준에 안 맞는 걸 손님에게 내어드릴 순 없으니까요. 지은이가 괜찮다고 해도 제가 안 돼요.

지은: 제가 보기엔 모양도 맛도 괜찮은 거 같아도 훈고 씨 의견에 따라요. 빵에 대해서는 엄격할 만큼 완벽하려고 하거든요.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잘못 만든 빵들은 집으로 가져와서 저희가 먹어요. 지인들은 근사한 브런치라고 부러워하지만 사실 저희는 잔반 처리하는 느낌이에요(웃음). 

훈고: 제빵은 이스트라는 생물의 활동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제과와 달라요. 우리나라에선 제빵과 제과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지만 프랑스는 제빵을 뜻하는 ‘블랑주리Boulangerie’와 제과를 뜻하는 ‘파티스리Patisserie’를 철저하게 구분해요. 제과는 화학 반응이라서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지만, 제빵은 살아 있는 미생물인 이스트가 발효 과정을 전담하기 때문에 변수가 훨씬 많죠. 이스트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제 역할이에요. 날씨에 따라 다른 조치를 취해서 매일 똑같은 빵이 나올 수 있도록 살펴보는 거죠.

 

제빵과 제과가 다르다는 건 처음 알았어요. 빵집과 제과점이 같은 곳인 줄 알았거든요.

지은: 우리나라에서 제빵과 제과가 혼재된 건 빵이 주식이 아니어서 더 그럴 거예요. 빵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들어보면 제과를 좋아하는 사람도 적지 않아요.

훈고: 케이크나 쿠키, 비스킷 같은 건 제과예요. 서양인이 주식으로 먹는 빵류가 주로 제빵 종류죠. 한국인은 빵을 간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서 제빵과 제과를 통틀어 간식으로 여기는 거 같아요. 최근에는 한국에도 전문적인 빵집이 늘고 진지하게 즐기는 분들도 많아졌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제빵과 제과가 자연스럽게 구분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 훈고링고브레드에서는 어떤 빵이 가장 인기가 많아요?

훈고: 디저트를 먹으러 온 손님들에겐 파운드케이크나 카넬레가 여전히 잘 나가지만, 자주 오는 단골들은 주로 샌드위치를 주문해요. 새로 나온 고등어 샌드위치도 맛있어요(웃음). 종류가 많은 건 아니어도 빵마다 어울리는 샌드위치 메뉴를 하나씩 만들어서 판매하고 있어요. 

지은: 그중에서도 시그니처라고 생각하는 건 바게트 샌드위치예요. 방금 드신 그 메뉴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샌드위치에 가장 가까운 메뉴죠. 파리에서는 점심시간이 되면 빵집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쌓아놓고 파는데, 몇 가지 재료만 심플하게 올라간 게 인상 깊었어요. 바게트의 맛이 확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좋았고요. 가게를 시작하면 꼭 이런 샌드위치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그동안 먹어온 한국의 샌드위치는 속 재료가 너무 많아서 한 입에 먹기도 힘들고, 소스 맛도 너무 강해서 빵 본연의 맛이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거든요.

 

파리에서 훈고 씨는 바게트에, 지은 씨는 바게트 샌드위치에 반해서 돌아온 거군요.

지은: 그러네요(웃음). 프랑스에선 바게트가 일상적인 빵인데 한국인들은 유난히 어렵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식사로도 간식으로도 애매하다고,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손님도 있었고요. 그래서 특별한 재료 없이도 균형이 잘 잡힌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바게트의 매력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얼마 전에 훈고링고브레드의 토마토 바질 치아바타를 먹었는데 그 조합도 참 좋았어요.

훈고: 저희도 좋아하는 재료들이에요. 훈고링고브레드에서는 드라이 토마토가 중요한 재료예요. 토마토 바질 치아바타랑 바게트 샌드위치의 포인트 재료거든요. 또 캄파뉴 빵에 고트치즈와 드라이 토마토가 메인으로 올라가는 오픈 샌드위치도 있죠. 드라이 토마토는 저희가 직접 말려서 만드는데 원재료 맛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토마토의 퀄리티가 중요해요. 그래서 맛없는 토마토를 받으면 심란해져요. 항상 토마토만큼은 꼭 좋은 걸로 보내주셔야 한다고 당부하지만, 과일도 제철이 있다 보니까 철이 아닐 땐 당도가 떨어지더라고요.

지은: 그런 점 때문에 음식이 재밌는 것 같아요.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고, 요리하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지니까요. 재료 본연의 맛이 가지는 의미가 크다 보니 아무래도 맛있는 재료가 중요하죠. 저희는 제철 재료를 사용하는 걸 좋아해서 시기에 따라 사용해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매년 때가 오면 잠깐씩 선보이는 아오리 샌드위치가 대표적인데요. 딱 한 달짜리 메뉴여서 철이 올 때마다 반가워요. 사용하고 싶은 재료가 언제 가장 맛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더 맛있는 메뉴를 만들 수 있게 되는 건, 가게를 하면서 알게 된 재료가 주는 기쁨이에요. 

 

이야기 나눌수록 두 분만의 신념이 확고하단 생각이 들어요. 보통 고집 있는 사람들은 나만의 길을 간다는 인상이 있는데 훈고링고브레드는 가깝게 지내는 가게들이 많은 것 같아요.

훈고: 훈고링고브레드를 시작하고 나서 친해진 가게도 있지만 저희가 손님으로 다닌 가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아요. 원두를 납품받는 대루커피도 훈고링고브레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연이 이어져 온 곳이에요. 

지은: 대루커피가 지금은 망원동에 있지만 이전에는 연남동에 있었어요. 아주 작은 공간이었죠. 저희는 그 부근 산책하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골목길 전체에 커피 향기가 고소하게 퍼지더라고요. 대루커피의 주인인 대루 씨가 갓 볶은 커피콩을 체에 들고 나와서 키질할 때 나는 냄새였죠. 한가득 퍼지는 커피 향이 좋아서 무심코 카페에 들어갔다가 단골이 되었어요. 그땐 아무 계획도 없이 ‘카페를 하게 되면 여기 커피 쓰고 싶다.’는 이야길 하기도 했는데, 정말 대루커피 원두로 카페를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웃음).

 

진한 인연이네요(웃음). 두 분은 언제 훈고링고브레드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훈고: 일단은 손님들이 제가 만든 빵을 맛있게 먹을 때, 우리와 취향이 맞는 손님을 만나 그분과 단골이라는 관계로 가까워질 때죠. 그게 최고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에요. 또, 이건 빵과는 별개 이야기인데요. 제가 좋아하는 유튜브 콘텐츠 중에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악기를 들고 프랑스 골목길을 노래하며 걷다가 작은 카페에서 몇 명 되지 않는 관객 앞에서 공연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설정일지언정 그 장면이 참 좋아서 늘 마음에 품고 있었는데, 훈고링고브레드를 운영하게 된 김에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마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몇 번 초대해서 공연을 연 적이 있어요. 공연 날엔 영업을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온전한 공연장으로 탈바꿈해요.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우리 공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걸 보면서… 가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순수하게 기뻤거든요.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고민도 많을 것 같은데 요즘은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나요?

훈고: 저는 나이 먹고 나서도 계속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제빵을 시작했는데, 이 일이 녹록지만은 않더라고요. 오래 하려면 몸과 마음의 건강, 그리고 체력이 중요한데 하루에 15시간씩 일하다 보니까 앞으로도 가능할지 잘 모르겠어요. 쉬는 날을 이틀로 늘렸지만 이대로 괜찮을지(웃음)….

지은: 저희가 원하는 스타일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늘 고민스러워요. 빠른 트렌드 속에서 저희가 고집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방법을 찾는 게 앞으로 해야 할 일 같아요. 유지하고 싶은 만큼 변해야 할 부분도 있을 거예요. 그걸 민감하게 알아채고 대응할 수 있어야겠죠. 매출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코로나19도 그렇고 여러모로 현실적인 고민도 병행해야 해서 늘 답이 없는 고민 속에 있는 기분이에요.

먹고사는 문제가 다 그런 것 같아요. 좀 이상한 질문이지만… 먹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어요?

훈고: 저는 먹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요. 먹을 수 있다는 게 늘 기쁘고 감사하죠. 먹을 걸 수확한 사람에게 감사하고, 요리하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곡물이든 동물이든 재료가 된 모든 것에 감사해요. 그래서 음식은 맛이 없더라도 남기지 않아요.

지은: 남기지는 않지만 다 먹고 매번 투덜거리죠. 그럴 거면 다 먹지 말든지, 그릇은 싹싹 비워놓고(웃음). 성격적으로 남기는 게 잘 안 되나 봐요.

훈고: 어떻게 요리했든 소중한 재료라고 생각하면 남기는 게 잘 안 돼요. 재료 자체가 없으면 인간이 생존할 수 없으니까 맛과 별개로 감사히 먹게 되죠. 먹는다는 건 즐거움인 동시에 세상에 대한 감사인 것 같아요.

지은: 저희는 좋은 걸 유별나게 챙겨 먹는 사람들은 아니에요. 우리 눈에 좋은 거, 우리 입에 맛있는 걸 찾아 먹곤 하는데 평소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그마저도 제대로 못 하고 지내죠. 그래도 쉬는 날엔 좋아하는 걸 간단히 차려 먹거나 외식도 하고 그날그날 당기는 음식들을 챙겨 먹으려고 해요. 그건 소박한 식탁일 때도 있고, 근사하고 훌륭한 요리일 때도 있어요. 느긋한 식탁을 자주 누릴 수는 없지만 어쩌다 만끽하는 그 시간에 위로받는 것 같아요. 훈고 씨가 맛없는 걸 먹고 투덜대는 것도 내 소중한 시간을 망쳤기 때문일 거예요. 누구나 먹는 시간은 오롯한 기쁨이길 바랄 테니까요.

 

그렇다면 빵은 우리의 식탁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훈고: 빵과 밥과 국수는 모두 같은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나라에선 밀이 나서 빵이나 국수가 주식이 된 거고, 동양에선 쌀이 나서 밥이 주식이 된 거니까 모두에게 공평하고 중요한 주식인 거죠. 

지은: 예전에는 먹는 걸 소홀히 생각했는데 바빠지고 나니 귀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귀한 시간을 잘 쓰고 싶은데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선 빵처럼 간편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물론 굽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요. 그저 좋아하는 빵을 사서 그 자체로 즐겨도 되고, 조금 여유가 있다면 토스트나 샌드위치를 해 먹는 것으로도 즐겁잖아요. 한식이나 공이 많이 드는 요리와 달리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행복. 그게 빵이 할 수 있는 역할 아닐까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함께 먹은 빵들은 정말이지 맛있었어요. 앞으로의 훈고링고브레드를 상상하며 인사 나눌까요?

지은: 여기는 빵집이고 카페지만, 저희 둘의 생각과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브랜드이기도 해요. 작아도 디테일이 있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까지 묵묵하게 해온 걸 계속해 나가는 지구력이 필요할 테죠. 5년 동안 우리의 취향을 정돈하고 알렸다면, 이젠 그 취향에 깊이를 더하면서 단단한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훈고링고브레드를 시작할 때부터 굿즈를 만들고 싶었는데 힘에 부쳐서 아직 시도를 못 했거든요. 앞으로는 굿즈도 조금씩 선보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훈고링고브레드를 찾아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생각을 많이 정리할 수 있었어요.

훈고: 훈고링고브레드를 운영하면서 종종 메뉴가 고정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하지만 트렌드를 따라 쫓기듯 신메뉴를 만들고 싶진 않았죠. 지금까지는 있는 것에서 조금씩 변형하는 식으로 알게 모르게 변화를 시도했는데, 앞으로는 좀더 집중해서 좋아하는 재료를 찾아보려고요. 계속해서 생활과 경험을 쌓아가며 천천한 속도로 나아가고 싶어요. 지금껏 5년을 걸어온 것처럼 앞으로의 10년도 꾸준히 이 속도를 지켜가려고요. 일단은 그게 당장의 목표인데 말이 쉽지 실천하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지치지 않으려고요.

Baguette
훈고와 지은이
반한 빵

“바게트 그 자체만으로 담백하고 고소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어요. 겉은 바삭하면서도 속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식감도 매력적이죠. 다른 재료를 곁들일 때는 그 재료들의 맛을 힘있게 받쳐주고 모아주는 그릇이 되는 것 같아요. 마치 우리 식탁의 밥처럼요.” 바게트의 매력을 알리고 싶다는 부부에게 살짝 전해 들은 바게트 팁!

바게트 보관법
유지나 설탕이 들어 있지 않아서 하루만 지나도 질기고 딱딱해지는 바게트는 되도록 구입한 날 먹는 게 가장 맛있다. 하지만 꼭 보관해야 할 경우라면 적당한 사이즈로 썰어서 냉동하자. 먹을 때마다 상온에 잠시 해동해서 오븐이나 오븐 토스터에 살짝 구워 먹는 것이 좋은데, 스팀 기능이 있는 오븐이면 맛이 더 좋다. 오븐이 없는 집이라면 프라이팬에 오일을 두르지 않고 토스트 해서 먹는 것을 추천! 한 번 토스트 하면 더 바삭해진다. 참, 냉장실에는 보관하지 말 것.

 

더 맛있는 바게트
잘 만든 바게트와 좋은 버터만 있다면 더 필요한 게 없다. 이 간단한 조합만으로도 훌륭한 한 상을 차릴 수 있다. 물론 조금 더 시간을 들인다면 얼마든지 다양하게 즐길 수도 있는데, 좋아하는 재료를 올려 브루스케타를 만들거나 든든하게 샌드위치를 만드는 것을 추천한다. 간단하게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도 맛있다.

훈고링고브레드

 

A.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130 2층
H. instagram.com/hungoringobread
O. 수-토요일 12:00-21:00, 일요일 12:00-17:00, 월-화요일 휴무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