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ic Value Of Life

예술로 더해진 인생의 소중한 가치 : 카를라 소차니

카를라 소차니Carla Sozzani는 밀라노, 서울, 뉴욕, 상하이에 매장을 둔 세계적인 편집숍 10코르소코모10 Corso Como의 오너다. 1947년생으로 대학 졸업 후 이탈리아 《보그》 에디터를 거쳐 1990년 밀라노에 갤러리를 오픈, 다음 해 같은 장소에 10코르소코모를 런칭한다. 단순히 물건만 판매하는 매장이 아닌 갤러리와 카페가 공존해 문화적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오늘날 편집 매장 콘셉트의 시초가 되었다. 2019년 10월에는 파리에 단독 갤러리를 오픈했고, 앞으로 젊은 사진작가들을 지원하는 일을 펼쳐나갈 예정이라고 전했다.

‘빈티지’란 오래된 것을 넘어 변하지 않는 가치를 지닌 것을 칭하는 단어다. 즉 다른 말로 ‘클래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가치를 물건뿐 아니라 사람에게서 발견하기도 한다. 나이를 넘어 항상 광채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 인터뷰를 위해 만난 카를라 소차니는 누구나 한때 지니고 있던 젊음의 광채를 여전히 은은하게 발산하는 사람이었다.

편집숍 10코르소코모10 Corso Como의 창립자로 알려졌지만, 이탈리아 《보그》 에디터를 거쳐 갤러리도 운영하셨어요. 소차니 재단을 통해 정기적으로 전시를 기획하고 있고요. 에디터, 사업가, 갤러리 운영자라는 타이틀 중에 무엇이 가장 잘 어울릴까요?

저도 저한테 정확한 타이틀을 부여하는 게 어려워요. 갤러리스트부터 10코르소코모의 창립자까지 꽤 많은 일들을 했죠. 아무래도 한 가지로 정의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 다양한 이력 사이에 예술은 늘 존재해왔어요.

맞아요. 제 인생은 아트와 패션 중간에 걸쳐 있어요.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것들에 둘러싸여 지낸 시간들 덕분이겠죠. 아름다운 미술관, 건축물들과 함께할 수 있던 건 이탈리아인으로서 가진 자연스러운 특혜라고 생각해요. 밀라노와 볼로냐 사이에 위치한 작은 마을 마투아Matua에서 태어났는데 가족들은 주말이면 뮤지엄과 성당을 보러 다녔죠. 부모님이 동생1)과 저를 데리고 성당을 다닌 건 종교 때문이 아니라 예술을 관람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만큼 예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교육의 결과로 우리 자매 둘 다 경영 전문 대학을 나와 금융계가 아닌 패션계로 입문하게 되었죠.

 

첫 커리어를 패션 잡지로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시대적으로 맞아떨어진 우연한 계기랄까요. 1968년에 대학을 다녔는데 그때는 이탈리아에 정치혁명이 있던, 매우 불안정한 시기였어요. 학교에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공부에 집중할 수도 없었죠. 당시 찾아간 부모님 댁에서 아버지가 소리치던 일도 기억나요. 당장 돌아가서 네가 할 일을 찾으라면서. 그렇게 일거리를 찾던 중 친구 어머니가 발행하는 잡지 회사에서 우연히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아동복부터 오트쿠튀르, 요리, 여행 등 수십 종의 잡지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그때 패션 잡지 에디터 일을 처음 알았고 그 경험을 계기로 자연스레 패션이 제 삶의 중심이 되었어요.

 

패션지 에디터를 거쳐 갑자기 갤러리를 운영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에디터라는 직업으로 17년을 보내다 보니 그 시간만큼 성장한 안목을 발견했고, 그걸 잡지 밖으로 적용해보고 싶어 1987년 《보그》를 떠나 제 이름의 작은 출판 회사를 열고 원하던 책들을 출판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1990년에 갤러리를 오픈했죠. 제가 가장 잘 알고, 또 자신 있는 ‘사진’ 작품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하지만 1990년 첫 전시는 사진전이 아닌 크리스 루스Kris Ruhs의 회화 전시였어요.

맞아요. 크리스는 사진이 아닌 회화를 선보이죠. 제가 갤러리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아트, 포토그래프, 디자인, 그리고 패션 이 네 가지예요.

 

밀라노에서 첫 갤러리를 오픈한 후 30년이 지난 오늘, 파리에 갤러리가 열렸고 이전과 동일하게 크리스가 오프닝을 맡았어요.

당연하죠. 크리스는 저에게 성공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상징과도 같거든요(웃음). 농담이에요. 진지하게 말하자면 그의 작업은 정말 솔직해요. 그가 작업에 사용하는 언어들을 좋아하고, 평면 작업만이 아닌 3D로도 확장하면서 보이는 형태는 단순 예술작품 이상으로 특별한 느낌이 있어요.

 

10코르소코모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아서 하신 것만 보아도 그의 훌륭한 감각이 느껴져요.

맞아요. 사실 제가 크리스에게 간곡히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하게 된 작업이에요. 10코르소코모를 시작하면서 그에게 한 점, 두 점 인테리어에 필요한 작업들을 부탁했는데 이 협업을 통해 아트가 리테일Retail 환경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흥미로운 장면을 연출하는지 깨닫게 되었어요. 단순히 가구들을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예술을 담는 거죠. 그게 그대로 10코르소코모의 아이덴티티가 되었어요. 크리스에게 가장 고마운 점은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함께 일하면서 모든 요구를 즐겁게 받아주었다는 거예요.

 

30년간 함께하면서 서로 뮤즈가 되어준 셈이네요.

정확히 29년이에요(웃음). 제 인생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이죠.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함께 즐기면서 서로 존경하고 있어요. 그는 저에게 틀림없이 훌륭한 뮤즈예요.

 

10코르소코모는 소비만 장려하는 공간을 넘어 문화를 공유하는 편집숍으로 알려져 있어요. 지금은 이런 종류의 편집숍이 많이 생겼지만 30년 전에는 10코르소코모가 유일했어요.

제가 진행하는 모든 프로젝트에는 ‘아트’가 늘 함께해야 해요. 그 신념은 계획된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저를 표현하는 방법이었어요. 제가 좋아하고 관심 있는 것을 함께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에디터로 일하는 동안 제 관심 분야가 문화 전반으로 넓어지기도 했고요. 패션이나 아트 분야 외에도 전반적인 사회현상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요. 10코르소코모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담은, 살아 움직이는 잡지인 셈이죠. 종이에 인쇄된 것이 아닌 공간에서 펼쳐지는 출판물이요. 잡지 페이지를 넘기면 새로운 콘텐츠가 보이듯 매장의 코너를 돌면서 온갖 새로운 주제를 발견할 수 있죠.

1) 동생은 2016년에 작고한, 전 이탈리아 《보그》 편집장을 지낸 프랑카 소차니Franca Sozzani다.

파리의 갤러리 공간은 밀라노와 많이 달라요.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 예정인가요?

파리는 소차니 재단에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갤러리예요. 앞으로 여러 전시를 꾸준히 진행하면서 신진 디자이너와 사진작가, 아티스트를 후원할 예정이고요. 70세를 넘긴 인생의 이 시점에서 지금껏 제가 배운 지식과 콘텐츠를 나누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눔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기자님도 아마 제 나이가 되면 후배들을 위해 베푸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고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파리 18구 주변은 문화 공간과는 동떨어진 장소라고 생각했어요. 이곳에 갤러리를 열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주변에 갤러리도 없고, 예술 문화 분야와 조금 먼 장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이유 때문에 갤러리 오픈을 결정했어요. 근처에 무척 아름다운 극장 ‘테아트르드라샤펠Théatre de la Chapelle’이 있는데, 최근 샤넬에서 이 근처 대지를 구매했다고 해요. 앞으로 문화 발전이 기대되는 지역이죠. 지금도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어 무척 재미있는 공간이에요. 진정한 파리를 여기서 느낄 수 있어요.

 

개인적인 질문을 해볼게요. 패션계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 바로 선생님이에요. 알고 계시나요?

오, 그런가요? 몰랐어요. 여성들이 자아를 찾고 본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건 아주 중요하죠. 저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분주하게 지내는 걸 좋아해요. 이런 성향이 자연스럽게 갤러리와 편집숍을 운영하는 커리어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고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구글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고, 실제 사람들 간의 물리적 교류만이 존재했죠. 이런 교류 속에서 우리는 서로 돕고 배우며 더 빠르게 성장했어요. 그래서 제 공간을 방문하는 요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자연스레 생각을 공유하고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소통의 장을 꾸리는 것이 제 목표이기도 해요.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인터넷을 조금 멀리하고 물리적인 만남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SNS는 매우 훌륭한 서비스이긴 하지만 실질적 삶의 대용으로 사용될 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우리가 눈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을 수 없죠.

 

시간이 지날수록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저는 예전보다 지금 선생님의 모습이 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보여요.

그런가요(웃음). 늙는다는 건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인생의 과정이고, 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어요. 바라는 건 그저 건강뿐이죠.

 

선생님도 롤모델이 있었나요?

그럼요.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제 사무실에는 주름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 사진이 있는데, 오래전 그 사진을 처음 본 순간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하고 감탄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지금 거울 속 제 얼굴을 보면 잠시 ‘어이구(웃음)’ 하지만 금세 조지아의 얼굴을 떠올리고 미소를 지어요. 뭔가 멋진 걸 가진 기분이 들거든요. 인생이란 그런 거죠.

 

선생님 눈은 여전히 반짝이는 것처럼 보여요. 소녀의 눈처럼 꿈꾸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아름다운 일을 지속하려면 계속 꿈꿔야 하지 않을까요. 파리에 갤러리를 열고 싶은 소망을 이뤘으니 다음은 교육기관을 만들고 싶은 꿈을 향해 달려가고 싶어요. 51년간 패션과 예술계에서 일한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누기 위해 현재 《보그》 이탈리아의 수석 에디터인 딸 사라 마이노Sara Maino와 밀라노에 작은 교육기관 설립을 구상 중에 있답니다.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주말은 어떻게 보내는지도요. 

아침 8시에 일어나서 필라테스로 하루를 시작해요.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하는 걸 좋아해서 신문과 컴퓨터, 핸드폰을 한꺼번에 올려놓고 천천히 아침 식사를 하죠.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출근해서 밤 11시까지 있어요. 늦은 시간이긴 하지만 사무실에만 가면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르거든요! 주말에도 밀라노에 있다면 늘 사무실로 나가죠. 사실 사무실이라고 부르기 애매해요. 저에겐 또 다른 집이에요. 그리고 고양이 네 마리를 돌보고 있어요.

수집하는 물건들이 있나요?

방대한 사진과 옷, 약간의 디자인 물건을 모아요. 모두 개인적인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라서 소유하는 거예요. 마치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거나 일기장에 기록하는 것처럼요. 편집숍을 운영하니 사람들은 어쩌면 제가 새로운 물건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줄 알지도 모르겠네요. 새로운 물건들을 좋아하는 건 제 호기심이고, 그것을 마구 소유하는 철없는 시기는 지났어요. 각각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수집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유의 의미가 없죠.

 

새로운 물건도 시간이 지나면 빈티지가 되고 영원히 간직되기도 해요.

보통 20년 혹은 40년 이상 지나면 빈티지라고 불리는데 시간을 넘어 영원히 세상에 남는 물건들은 나의 기준으로 시로 쿠라마타Shiro Kuramata의 미스 블랑쉬Miss Blanche 의자 같은 거예요. 시로 쿠라마타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인데, 그의 작품들은 디자인과 아트의 경계에 있는 영원히 존재할 ‘타임리스’ 피스예요. 디자인을 아트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디자이너들을 매우 존경하죠.

 

우리 삶에서 꼭 가져야 할 빈티지 오브제 한 가지를 추천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꼭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빛을 밝히는 조명이 좋을 것 같아요. 삶에서 빛은 꼭 필요하니까요. 그중에서도 세르주 무이Serge Mouille 조명을 선택하고 싶네요.

에디터, 갤러리스트, 비지니스우먼 등 다양한 타이틀로 일흔이 넘는 나이에도 분주하게 활동하는 그녀는 지금이 가장 할 일이 많은 인생의 황금기라고 말했다.

 

소차니 재단
A. 22 Marx Dormoy 75018 Paris
H. fondazionesozzani.org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Jean 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