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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K의 시시콜콜 인터뷰 예술가의 마지막 방, 죽음에 대하여
과거에 사는 것은 학자의 일이고 미래를 말하는 것이 예언가의 삶이라면, 오직 오늘만 사는 사람을 예술가라 부르고 싶다. 찬란과 고뇌의 시간을 통과해 자기만의 집을 지은 네 명의 예술가를 만났다. 그에게 당신의 마지막을 물었다. 당신이 잠든 마지막 방은 어떤 모습인지, 당신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잠깐만요. 낯이 익은데, 누구시더라….
2016년부터 올해 2112년까지 ‘서울메탈’이라는 금속공예 스튜디오를 운영한 조유리예요.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에 장수하는 예술가로 출연한 적이 있어요. 세상을 떠난 지 일주일 정도 됐네요.
앞으로 300년은 더 살 거라고 큰소리치던 게 기억나요. 당신도 결국 가는군요….
어릴 때만 해도 ‘100세 시대’라는 말이 있었어요.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을 80세 이상만 할 수 있도록 법으로 정한 지도 12년이 지났네요. 올해로 제가 126살이에요. 일주일 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겠구나 직감했어요.
죽음을 직감했다니, 그걸 알고 난 뒤에는 무얼 했어요?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깔끔히 비워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냉장고를 털어서 스튜를 끓여 먹고, 남은 음식은 깨끗한 그릇에 담아 급속 냉각시켜 두었어요. 아마 40년 정도는 상하지 않을 테니 누구든 맛있게 먹어준다면 좋겠네요.
그게 다예요?
스무 살 무렵, 사후에 장기와 몸을 기증한다고 서약했고, 그 후의 처리도 병원 매뉴얼에 따라 기본적인 절차만 밟아달라고 이야기해 두었어요.
몸이 사라지고 당신은 어디로 가게 돼요?
하와이 빅아일랜드 외진 곳에 작은 땅을 사서 오랫동안 정원을 꾸며왔어요. 다양한 식물이 튼튼하고 자유롭게, 아무렇게나 자라났어요. 나는 거기에 뿌려질 거예요. 아마 나에게는 풀 냄새가 나겠지요.
당신의 장례는 누가 치러줬어요?
나의 배우자예요. 그는 내가 죽고 일주일 후에 따라 죽겠다고 약속했어요. 저랑 다시 만나는 날이니 슬퍼하지 않을 거예요.
생전의 이야기를 해볼게요. 당신의 대표작을 알려주세요.
40년 전에 만든 ‘은으로 만든 전동 휠체어’예요. 들어봤어요. 작은 부품 하나까지 은으로 만들었어요. 작업 기간만 27년이 걸렸죠. 내 배우자를 위한 작업이었어요.
126년을 돌이켜봤을 때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어요?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네요. ‘예술가로서’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일이 이렇게 없을 줄 몰랐거든요. 하하하. 그래도 아주 소소하고 작은 나의 일상들, 친구들과 배꼽 잡고 웃으며 게임했을 때와 강아지와 뽀뽀하며 행복했던 순간, 배우자와 함께 가요를 마음대로 개사해서 부르며 깔깔거리던 일들이 기억에 남아요.
반대로 후회되는 일은요?
아니요, 없어요. 매우 홀가분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해요?
힘세고 오래 산 금속공예인이요.
오래 살았다는 데 굉장한 자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살고 싶어요?
이번 생이 저의 환생이었다고 미리 말을 안 했군요? 제가 해봐서 아는데요. 환생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좋아요. 이번 생이 마지막이길 바라며, 저승길에 함께하고 싶은 길동무를 알려주세요.
저를 외롭지 않게 해주던 많은 사람을 이미 하늘에 와서 다 만났어요. 덕분에 이곳에서도 외롭지 않아요. 그리고 내 배우자 정세현도 7시간 뒤면 만나게 되니 너무 설렐 뿐이에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냉장고에 소분해 둔 스튜를 버리지 말고 꼭 먹어주세요. 해동 30분 후 전자레인지 700W에 3분 30초 데우면 가장 맛있는 상태가 됩니다.
<쇼미더머니>에 나온 그 루피가 맞죠? <원피스> 루피 아니죠?
네, 맞아요. 제 이름은 루피고 본명은 이진용이에요. 래퍼나 리코딩 아티스트라고 불러주세요.
완전 팬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마지막을 맞은 거예요?
제 나이 99세, 포르투갈 북부의 해변에 자리 잡은 작은 집, 가장 큰 방, 목재로 된 벽장 옆 흰 싱글 사이즈 침대, 그 위에 주황색 이불을 덮고 누운 채 잠이 들었어요. 노환이죠. 평생을 애연가로 살아왔으나 다행히도(제발) 노환으로 가게 됐네요. 저는 쓰던 베개가 아니면 잠을 잘 못 자는데, 마지막까지 제가 사용한 베개와 이불을 덮었어요.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관 속에 제가 담겨 있네요.
다이아몬드 관, 루피다운 최후 같아요. 장례가 끝나고 다이아는 어떻게 처리해요?
저와 함께 화장해요. 뜨거운 건 싫지만 가루가 되어서 넓은 해변에 흩뿌려지면 낭만적일 것 같아요.
장례에 참석한 사람은 누구예요? 누가 가장 슬퍼해요?
가족들이에요. 친구가 많이 없어서 소중한 가족이 함께해주네요. 지금 장례식에서 가장 슬픈 사람은 다름 아닌 홀로 남은 아내가 걱정되는 저일 거예요.
저승길에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아니에요. 혼자 갈 테니까 멀리 나오지 마~
만약 환생할 수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죽었거든요.
평소에 루피의 음악을 좋아했어요. 본인의 대표작은 뭐라고 생각해요?
고마워요. 그렇지만 저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Some Good Shit.”
래퍼로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예요?
아주 오래전, 2015년에 ‘메킷레인(힙합 레이블)’을 결성하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의 풍경과 바이브를 마주했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요. 비가 내렸고, 부모님의 집 앞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사서 지붕 밑에서 피웠거든요. 기대와 불안, 포부, 안도, 영감이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예술가의 두뇌를 가진 기분이었어요.
그 뒤로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지금 돌이켜 후회되는 게 있어요?
그게 무엇이든 평생 동안 받은 만큼 돌려주지 못한 거 같아요. 그래서 슬프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루피를 어떻게 기억해주면 좋겠어요?
쉼 없이 발전하는 아름다운 예술가로 기억해준다면 좋겠어요.
끝으로 남은 이들을 위해 명언 하나 부탁해요.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아. 한평생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해. 삶은 비극이니 진정 널 위한 희극의 것들을 찾아 떠나라.
머리의 꽃이 화려한데 끝이라니 아쉽네요. 마지막은 어떤 모습이에요?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50)에 집에서 죽음을 맞이했어요. 아무 이유도 없이 냅다까라 귀신이 데리러 왔어요. 하늘에서 보니 핑크색 이탈리아 대리석 관에 제가 누워 있고, 조니 미첼Joni Mitchell의 [Blue]와 [Hejira] 바이닐이 함께 들어 있네요.
지금 누가 당신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어요?
고양이 모모와 남편이 있어요. 무엇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이라 크게 슬퍼하지는 않는 모습이에요.
혹시 장례는 어떻게 치러지는지 들었어요?
곱게 갈아서 남편의 폐나 뼈 혹은 낭심에 고이 삽입하기로 했어요.
마지막까지 예술가로 가는군요. 살아생전 당신의 대표작을 말해주세요.
뉴욕 LA MAMA에서 공연한 뮤지컬 <13 Fruitcakes>예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올랜도》의 주인공 올랜도와 자작나무, 드랙 예수, 흑조, 춤추는 무희, 루스벨트의 역할을 맡았어요. 성소수자가 탄압받던 시절, 뉴욕의 한 게이 바에 모인 13인의 성소수자(과일 케이크)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에요. 2,600년간의 시간 여행을 통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0세기 스톤월 항쟁까지를 이야기하죠.
예술가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예요?
2017년 5월 24일, 장미가 흐드러지게 핀 한강에서 오월의 신부가 됐던 날. 2019년 6월, 브로드웨이 타운 홀 에서 나의 아이돌 존 캐머런 미첼John Carmeron Mitchell과 함께한 무대. 2020년 4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최초로 드랙퀸으로서 드랙 퍼포먼스 공연을 펼친 일. 2021년, 나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毛魚(모어)>까지. 좀 많네요.
그럼 반대로 이루지 못해 아쉬운 것이 있어요?
발레리나가 되지 못한 게 아쉬워요.
당신은 죽었지만 사람들에게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기를 바라요?
변방에서 끼 떠느라 애쓴 사람으로 기억된다면 좋겠어요.
환생할 수 있다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찰나만 알다 갈 수 있는 하루살이였으면 해요. 인간의 피를 하염없이 빨아 먹다 맞아 죽는다 해도 하루살이라면 고통 없이 아스라이 사라질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길동무를 마련해줄게요. 저승으로 데려가고 싶은 사람을 골라주세요.
인간은 알몸으로 나서 혼자 가는 거예요. 가는 길마저도 비위 맞춰가며 말 섞을 기력도 없고, 이만저만 피곤할 것 같으니 루부탱 빨간색 하이힐이나 신고 끼스럽게 걸어갈래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꼭 한 명을 꼽아야 한다면 남편을 데려갈래요. 저승에서 부부가 랑데부하는 거죠.
끝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집은 남편에게, 보험금과 은행 잔고는 모모에게, 옷 보따리와 헤드피스 같은 소장용 레어 아이템은 은평문화재단에 기증할게요. 유언을 한마디 하자면, “나는 없었다”.
먼저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김무무는 ‘없을 무無’의 반복으로, 없고 없음은 곧 없지 않다, 즉 ‘있을 유有’의 뜻을 가져요. 저는 평소에 사소한 것에 연민을 느끼며 살아요. 지금은 지나가 버리고 없지만 기억 속에 흐릿하게나마 존재하는 것들을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붉고 짙은 형상으로 만들어내고 있어요. 또 무무가 사전적 뜻으로 무당이 추는 춤을 의미하는데, 무무도 시간과 기억을 엮어 현재에 두는 중간자 역할을 하는 셈이거든요. 제가 하는 작업도 무당의 행위와 같아요. 그래서 주로 붉은 형상에 끌리는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종종 무당의 죽음이 궁금했어요. 마지막 순간은 어땠어요?
한때는 단명하길 바랐으나 어느 순간 멋지게 늙은 제 모습이 궁금했어요. 어찌 살다 보니 90이 넘었네요. 이렇게 삶을 중단하지 않고 살아온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목표를 잘 이루고 가는 거 같아요. 마지막 날에는 해가 잘 비치는 오후 창가에 앉아 그동안의 기록을 훑다 잠에 들었어요. 제 삶에서 가장 긴 꿈을 꾸게 되었어요. 나름대로 멋진 삶을 살고 떠나게 된 거 같아요. 붉은 그림과 조각이 많은 방에서요.
지금 누워 있는 마지막 방은 마음에 들어요?
제 마지막 방은 향이 짙은 나무로 만들어 부드러운 천으로 전체를 감고, 붉은 천과 꽃으로 장식을 했어요. 장례식의 꽃은 백색 국화가 아니라 종류 상관없이 붉은 꽃을 놓고 싶다 했는데, 잊지 않은 이들에게 감사해요. 죽기 전 마지막으로 넘겨 보던 그동안의 기록이 담긴 수첩을 함께 넣어주었네요. 그리고 부탁한 대로 수첩 사이사이에 써둔, 사랑하는 이들에게 전할 편지의 주인을 찾아주고 있어요.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의 표정은 어때요?
제 죽음을 가장 슬퍼할 것 같은 이는 이미 먼저 떠나버렸고, 남은 이들 중에선 내가 잘 모르는, 멀리서 나를 봐주던, 제가 내보인 것에 같이 울고 웃고 마음 보내오던 이가 진심으로 슬퍼해주는 거 같네요.
애도의 시간이 끝나고 당신은 어디로 가나요?
저는 한 줌 재가 되어 날아가 버려요. 캄캄한 흙 속은 싫다고 말했거든요. 멋진 나무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지만 역시나 자유롭게 날아가서 이리저리 내려앉아 떠돌고 싶어요. 무무의 이름과 같은 일이죠. 사라지고 없으나 계속해서 있다고. 저는 사라지고 또 사라지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그리고 내려앉는 어딘가에 꼭 있어요. 거창한 장례네요, 하하.
생전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작품을 만들 때 어떤 마음이었어요?
내내 유서 같은 작품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차곡차곡 모아 내가 돌아갈 날에는 그것들이 전부 내가 되어 있기를 바란다고 했었죠. 이제 생을 마감하며 돌아보니 순간순간 저에 대한 기록이 짙어져 매일 무무로 잘 존재했어요. 전부 다 애정이 가지만 스스로 생각하는 대표작은 ‘무무’예요. 붉은 것들에 대한 찬사를 표하는 작업이자 곧 저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작업이에요. 따뜻한 붉음을 말하죠.
예술가로 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거창한 순간보다 무무로의 시작을 알리던 때가 기억나네요. 첫 개인전인 2016년 혜화동 지하실 폐주차장의 전시가 기억에 남아요. 처음 관람자를 살피고 또 매일 순수하게 고민하던 순간이었어요. 어설펐지만 마음만은 가장 완벽하게 쏟았죠. 그날 그곳 제 작업물 앞을 거닐며 눈물 흘리던 관람자도 잊을 수 없네요. 제 언어를 읽어주고 마음을 알아봐 주는 눈들이 저에게 큰 원동력이 되어주었어요. 그때의 공기와 분위기를 또 언제 경험할 수 있을까요.
이루지 못한 꿈이 있어요?
글쎄요. 후회가 싫어서 어느 순간 가까운 미래마저도 계획하지 않는 삶을 살았어요. 계획은 어차피 마음대로 실행되지 않으니까요. 작은 실패감을 느끼며 살지 않으려 노력했거든요. 후회라는 것이 있다면, 너무 마음 썼던 것 그리고 더 마음 쏟지 않던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네요.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마음의 질량을 재보지만 최선의 답을 찾지 못했어요. 마음이란 참 어렵단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에게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었으면 해요?
시리도록 붉고 따뜻한 예술가요. 저녁에 지는 노을처럼 쌀쌀하고 동시에 따뜻한 것. 어떤 기억을 불러내는 예술가로 기억되기를 바라요.
훗날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날카로운 눈과 발톱을 따뜻한 털 사이에 숨긴 한없이 자유로운 고양이요. 조금 더 보태자면 저와 제 고양이가 서로 바뀌어 만나면 어떨까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바다의 큰 돌이 되고 싶어요. 위로는 하늘을 아래로는 바다를 두고, 빛과 물결을 번갈아가며 받으면서 주어진 낮과 밤을 한없이 보낼 수 있었으면 해요.
누군가 가는 길을 함께 하고픈 이가 있어요?
누군가의 남은 생을 제 마지막 외로움을 달래려 쓰지 않을래요. 먼저 가서 차분히 기다리겠어요. 떠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저승이 어떻게 나뉠까 잘 모르겠지만, 하나 기대를 안고 있는 건 먼저 떠나간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 염이가 정말 마중을 나올까 궁금해요. 저를 기다릴 그들만 생각하면 가는 길도, 가서도 외롭지 않을 거 같아요. 얼른 가서 너무 보고 싶었다고 전하고 싶어요.
마지막 말을 남겨주세요.
“무무. 언제나 없고 언제나 있음으로 곁에서 사라지더라도 영원하도록.” 한때 비석에 쓸 글을 미리 생각해 둔 적이 있는데 저는 비석을 세울 일이 없으니 누군가의 마음에 이렇게 새겨지길 바랍니다. 곧 잊히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영원한 사람이고 싶어요. 생전 제 자취들이 한 사람에게라도 작은 울림으로 영향을 미치길 바랍니다.
글 김건태
일러스트 마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