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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작은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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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작은 숨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화분이나 토요일 오후 산책하러 나간 숲에서 식물을 보는 일은 즐겁다. 그러다 보니 익숙하기도 하다. 어떤 식물은 그것의 정수리가 익숙하고 또 어떤 것은 무릎 정도가 익숙하다. 그리고 이들을 보며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면, 단단히 뿌리내린 채로 참 고요하다는 것이다.
식물의 움직임이라 할 만한 것은 위로 가지를 뻗고 옆으로 잎을 늘어뜨리는 정도가 전부처럼 보인다. 어쩌다 잎이 흔들리거나 가지가 휘청거린다면, 그것은 식물 자신의 움직임이 아니라 날아오르는 새나 불어오는 바람, 그들의 구역을 침범한 사람의 움직임에 의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바깥(외부적인 요인)에 관한 이야기로, 식물의 삶 전체를 대변해 주는 얘기라고 할 수는 없다. 만약 우리가 안(내부의 활동)을 들여다본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식물을 인식하게 될지도 모른다.
식물은 정말 고요할까?미처 우산을 챙겨 나오지 못한 날에 갑자기 비가 내리면 우리는 지붕 아래로 달려간다. 들판에 있는 동물은 아마 근처의 동굴이나 큰 나무 아래서 비를 피할 것이다. 그러나 식물은 주변이 어떻게 달라지든 뿌리내린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비뿐만 아니라 몰아치는 바람, 잎을 갉아먹는 벌레의 공격, 구역을 침범해 오는 다른 식물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가지를 뻗어 성장하고 적당한 때에 꽃을 피우며 열매를 떨어뜨린다. 비를 피하기 위해 동굴로 달려가진 못해도 햇빛을 향해 고개를 들고 바람을 견디기 위해 미리 기둥을 단단히 하며, 해충을 막을 독성물질을 만들어낸다. 주변의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식물의 바깥만 보던 내가 그들의 안쪽을 우연히 들여다봤을 때, 그 시선은 곧 다른 쪽으로도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우리는 새로운 환경을 찾아 나서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을 보며 보통은 ‘변화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전의 환경과 관계 속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을 보며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라고 성급한 결론 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제자리를 지키는 식물이 그러하듯, 어쩌면 그들도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유연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모른다.
몰랐던 것을 발견하는 일은 보물찾기 놀이처럼 즐겁다. 보물은 어느 틈에 숨겨져 있는데, 그 틈이라는 것은 내가 앉았던 바위 아래일 수도 있고 키보다 조금 높은 담장 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찾아내지 못하는 틈이라는 건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많은 보물들이 숨겨진 채로 남겨진다는 것이다. 깊게 관심을 두지 않거나 다른 쪽만 열심히 보는 경우에 그렇다. 지금 나는 몇 개의 보물을 우연히 발견했다. 식물의 안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아직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식물들의 정교하고 부지런한 변화들을 좀 더 오래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도무지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비밀이 슬쩍 고개를 돌렸을 때 눈앞에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들에 핀 여러 꽃들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혹은 좀 더 빠른 길로 가기 위해 풀숲으로 들어갈 때가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풀숲을 이리저리 헤집어다니다 빠져나오면, 그제야 뭔가 쿡쿡 찌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바지 끝에는 어김없이 짙은 갈색의 작고 뾰족한 가시가 잔뜩 달라붙어 있다. 인상을 쓰면서 휙휙 털어내 보지만, 한번 달라붙은 것은 쉽게 떨어지지 않아서 일일이 떼 내는 수고가 필요하다. 다 털어낸 듯싶어도 집에 돌아와 보면 하나씩 발견되는 이 끈질긴 식물은 바로 도깨비바늘이라는 야생초다.
식물은 동물들과 달리 종을 번식하는 방법이 다양하다. 어떤 식물은 바람에 홀씨를 흩날리는가 하면, 동물의 먹이가 되어 변을 통해 종을 번식시키는 식물도 있다. 그리고 사람의 옷이나 동물의 털에 달라붙어 이동하는 것이 바로 도깨비바늘이 택한 번식 방법이다. 좁고 긴 모양의 끝에 거꾸로 달린 가시가 있는 도깨비바늘은 옷이나 동물의 털에 곧잘 달라붙어 먼 곳까지 퍼져 나간다.
우리는 길가에 핀 예쁜 꽃을 꺾어 유리병 안에 담아 잘 보이는 곳에 놓는다. 정원의 나무가 보기 좋게 자라도록 수시로 가지를 잘라낸다. ‘이 모든 행위를 식물이 느끼고 있진 않을까?’ 생각해본 적 있을 것이다. 물론 식물은 알고 있다. 특히 사람의 손길에 크게 반응하는 식물이 바로 ‘미모사’다. 잎의 끝 부분을 살짝 건드려도 전체가 1~2초 만에 재빨리 오므라든다. 몇 분이 지나면 다시 잎이 펴지고, 자극을 가하면 또 오므라든다.
이런 습성 때문에 ‘신경초’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모사의 이러한 반응은 팽압운동에 의한 것으로, 세포벽을 긴장시키고 자신의 모양을 유지하려는 움직임의 일종이다. 외부 자극에 따라 빠르게 변화해 해충이 다가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팽압운동은 특히 콩과의 식물이 활발하며, 그중에서도 미모사는 예민한 축에 속한다.
식물의 줄기는 하늘을 향해 위로 자라고, 뿌리는 땅을 움켜쥐며 아래로 뻗어나간다. 이는 어쩌면 단순하고 당연한 일이지만 항상 그런 곳에 새로운 대답이 숨어 있는 법이다. ‘만약 식물을 거꾸로 둔다면 어떨까?’ 하는 질문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과학자들은 실험을 통해 식물을 거꾸로 두었을 때도 뿌리는 아래로, 싹은 위로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덩굴 식물은 스스로 줄기를 직립시키지 못하고, 다른 물체에 부착하거나 휘감는 방법으로 생장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주변의 다른 물체를 감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실제로 가시박이라는 식물은 인간보다 10배나 더 민감한 촉각을 지니고 있어 0.25그램밖에 되지 않는 끈의 무게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꼭 가시박이 아니더라도 식물 대부분은 자신이 똑바로 서 있는지 알고 있으며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최선의 위치를 찾아간다.
글·그림 박소언
참고문헌 『식물은 알고 있다』 대니얼 샤모비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