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Me In My House

Time For My House
또 다른 내가 있는 곳

집은 자아가 담긴 공간이다. 바깥에선 드러내지 않는 나의 모습, 나만의 추억이 있는 물건, 소중한 사람을 초대해 내 공간을 소개하는 따뜻한 시간까지. 살아가면서 생긴 나의 취향은 집 안에 켜켜이 쌓여 온전한 스스로를 지켜준다. 그렇게 또 다른 나의 오늘을 만드는 일. 그리하여 집과 함께 나는 ‘우리’가 되어간다.

정혜윤 | 서울 | 원룸&오피스텔

어제의 집

넓은 창과 하나의 공간

“안녕하세요. 마케터이자 작가, 여행가로 저 자신을 정의하고 있는 정혜윤입니다. 주 5일 출근을 벗어나겠다는 결심과 함께 8월에 회사에서 독립했어요.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하며 글도 쓰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은 다능인을 위한 커뮤니티이자 뉴스레터 사이드 프로젝트sideproject.co.kr를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엔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고, 집 앞이 바로 한강으로 이어져 달리기도 시작했죠.”

 

사는 곳에 나를 닮은 이름을 지어주는 일. 혜윤은 자신의 공간에 ‘융지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곳에 오롯한 자신을 담아가고 있다. 융지트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나 오피스텔 구조가 아닌, 넓은 원룸 형태로 층고가 높고 창문이 벽 한 면을 가득 메우는 독특한 구조를 가진 집이다. 이곳에서 혜윤은 글을 쓰고 음악을 들으며 친구들을 초대해 칵테일을 만들어내어 주기도 한다. 살아 있는 식물들 사이에서 오래된 피아노를 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다채로운 일상도 만들어가고 있다. 공간에 구분이 없어 그녀가 아끼는 모든 것들이 한눈에 들어와 융지트는 마치 혜윤 그 자체로 보인다. 어쩌면 또 다른 그녀를 어딘가에 꽁꽁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파티션 없이 가구로 공간을 구분해 주었어요. 원룸이지만 나름대로 공간의 역할이 다 있고, 가구 배치도 제 동선에 최적화되어 있어요. 가구 하나, 소품 하나도 제 마음에 쏙 드는 좋아하는 걸로만 들이겠다는 생각으로 융지트를 채우는 모든 과정을 진정으로 즐긴 것 같아요. 융지트는 제 속도에 맞춰 조금 느리게 채워진 공간이에요.”

오늘의 집

음악, 여행, 우주, 오래된 것

“음악, 여행, 우주, 오래된 것을 좋아하는 제 취향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 네 가지 모두 어릴 때부터 제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고, 저에게 영감을 주며 오랜 친구처럼 일상을 함께해 온 취향이에요. 돌이켜보니 음악은 항상 제 가까이 있었고, 어릴 때 천문학자를 꿈꿀 정도로 우주를 좋아했어요. 내가 누구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우주 관련 작품이나 책에서 좋은 생각을 떠올릴 때가 많아요. 지금까지 28개국을 여행하기도 했고요. 종종 이 네 가지 단어로 저를 소개하곤 해요.”

 

이토록 삶에 아끼는 것이 많은 사람에게 사는 공간은 어떤 역할을 할까. 그녀가 집을 채우는 시간은 곧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과 같았다. 융지트를 만나기 전까지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혜윤은 집 안을 조금씩 자신의 물건으로 채워가면서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자신을 걱정해 주는 가족과 친구들, 창밖에 일렁이는 나무, 파란 하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나의 공간까지. 융지트를 구석구석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우는 과정은 그녀 안에 무너지고 구멍 난 부분을 다시 메꾸는 작업이었다. 홀로 자기 자신을 좀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혜윤에게 하루 동안의 루틴을 물었는데, 돌아온 답은 아주 기분 좋은 영화의 한 장면같았다.

 

“융지트에 온 이후로 소소하지만 아주 많은 루틴이 생겼어요. 쉽게 행복해지는 순간을 저에게 자주 선물하기 시작했죠. 매일 밤 컵에 물을 채워서 침대 옆에 두고 자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그 물을 마시고, “오케이 구글 좋은 아침”이라고 얘기해요(웃음). 그러면 구글홈이 오늘의 날씨와 제 일정을 얘기해 주고, 제가 설정해 둔 음악(〈마녀 배달부 키키〉(1989) OST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틀어줘요. 매일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거죠. 음악이 나오면 이불 정리를 하고요, 그 위에 엎드려서 노트에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요. 그리고 짧은 요가를 마친 후엔 아침을 챙겨 먹고 모든 루틴을 완료한 저 자신을 칭찬해 줘요. 이 모든 루틴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자 에너지가 되어주고 있어요.”

내일의 집

나를 공간으로 말할 때

“융지트에 관해서 가장 듣기 좋았던 말은 ‘너를 공간으로 옮기면 이 모습일 거야.’라는 말이었어요. 제 관심사나 일에 따라 변하겠지만 융지트는 저를 닮은 모습으로 늘 같은 풍경을 유지할 거예요. 융지트에 와서 몸도 마음도 더 잘 관리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이곳에서 제가 생각하는 재미와 멋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어 가고 싶어요. 제 모든 주변에 작게라도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더 나은 사람’으로,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며 꾸준히 성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배경은 언제나 융지트가 되겠죠.”

 

 

융지트에는 늘 음악이 흐른다. 아침에 일어나서 듣는 음악, 식물에게 물을 주며 듣는 음악, 설거지나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면서 듣는 음악, 그저 가만히 멈춰서 듣는 음악까지. 모두 다른 음악으로 공간은 변화한다. 혜윤은 음악을 듣는 순간이 곧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때로는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며 마음을 보살피는 일이라 말한다. 이 모든 순간이 모여 그녀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오늘을 만들 것이다. 내일의 융지트는 더욱더 확장된 혜윤을 대신 말하고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그녀에게 온전한 하루를 선물하는 공간으로, 융지트는 매일 아침을 맞이한다.

사계절을 품은 집

정혜수 | 서울 | 빌라

열한 살 반려묘 구미오와 살고 있는 옥금. 마당과 나무로 둘러싸인 집에서 사계절을 가까이 마주하며 건강한 삶을 바란다. 거실 한쪽 유리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무척 아름답다. 여름이면 흩날리는 꽃잎, 가을엔 차분한 색감의 단풍, 겨울이면 고요하게 쌓인 눈의 장면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든다. 옥금의 집에선 매주 금요일마다 요가 모임이 있는데, 친구들과 함께 명상과 간단한 요가 동작을 한 후에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 이 모임의 루틴이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작은 위로를 주고받는, 그야말로 ‘건강한’ 시간이 옥금의 집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얼른 코로나19가 끝나 친구들과 모여 요가도 하고 건강한 음식도 나누고 싶어요. 좋은 에너지는 나눌수록 커지고 밝은 소식을 가져온다고 하죠.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소중한 모임은 모두를 아름답게 만들 거예요.”

두 사람의 한 공간

김명진 | 서울 | 아파트

“결혼 생활은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한 공간을 공유하는 일이에요. 나의 생활 방식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고, 상대방의 생활 방식을 무조건 맞출 수 없죠.” 오롯한 둘만의 시간, 동시에 혼자의 시간을 함께 지켜가는 부부가 있다. 한쪽엔 아내가 좋아하는 레고 장식장이, 다른 한쪽에는 남편이 원하던 독서 공간이 자리한다. 서로의 취미를 존중하며 함께 채워간 과정이 엿보이는 조화로운 집이다.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가운데, 함께하는 공간은 ‘다이닝 룸 겸 홈바’. 소중한 사람들을 초대해 경계를 허물고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따뜻한 시간 역시 만들고 있다. 친구들이 떠나고 나면 둘이 함께 좋아하는 〈동물의 왕국〉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어느 날, 두사람의 오롯한 시간은 다시 한번 시작된다. 부부의 평화로운 시간은 그렇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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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사진 정혜윤, 구옥금, 김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