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etite France In Yeonnam

작은 프랑스, 그리고 웬디
웬디스 보틀 서진영

연희동으로 이어지는 연남동 마지막 골목은 주변 여느 길보다도 한적하다. 얌전한 주택과 상점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니, 시야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작은 문이 보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녕하세요?” 듣기에 좋은 나긋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있다. 한낮에 와인을 마시는 파리 할아버지를 보고 한국에서도 한낮에 와인과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던 웬디는 와인바 웬디앤브레드로 시작해 와인 보틀숍 웬디스 보틀로 브랜드를 이어가고 있다. 마음과 시간이 쌓여서일까, 이제 웬디의 공간은 오롯이 그를 닮아 보인다. 시야가 닿지 않는 작은 구석까지도 온기가 서려 있는 곳, 웬디가 꾸린 작은 프랑스에서 그와 그의 브랜드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Wendy

Wine Bottle Shop | 웬디스 보틀Wendy’s Bottle | 2020. 9. 20.-
Wine Bar | 웬디앤브레드Wendy And B.red | 2018. 7. 23.- 2021. 2. 20.

해피버스데이

투 웬디

월요일에 만나게 됐네요. 오늘 ‘웬디스 보틀’ 쉬는 날이죠?

맞아요. 제 생일이기도 하고요(웃음).

 

네?

휴무일에 인터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이 굳이 오늘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웃음). 오늘 저녁엔 맛있는 걸 먹으면서 축하해 보려고요. 아는 분이 한우 오마카세를 예약해 주셔서 기대 중이에요.

 

생일 축하드려요. 생일날 만났으니 더 재미있는 대화를 꾸려봐야겠네요.

불볕더위에 여기까지 찾아와주셔서 감사해요. 여긴 내추럴 와인과 로제 와인을 주로 다루는 와인 보틀숍 웬디스보틀이에요. 마음먹고 방문하는 고급 보틀숍과는 달리, 연남동 깊숙한 곳에 있어서 동네 구멍가게처럼 편히 들를 수 있는 곳이지요. 과일을 사고 내일 먹을 반찬을 궁리하듯, 손쉽게 와인을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동네 주민도 많이 오시나요?

들르는 분 중 상당수가 주민이에요. 오픈할 땐 주민들이 많이 올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운영하다 보니 동네 분들 비율이 상당히 높더라고요. 일부러 찾아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연남동 끝 쪽에 자리 잡은 데다가, 골목에 들어와서도 안쪽까지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만한 데 있거든요. 그래서 누군가 일부러 찾아와 주는 게 항상 감사해요.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들르는 분들도 꽤 있는데, 그런 분들이 두 번, 세 번 들러 주시면 너무 고맙죠

 

.웬디의 브랜드는 와인바 ‘웬디앤브레드’로 시작되었죠. 그땐 지방에서도 일부러 방문하는 사람이 꽤 많던 걸로 알아요.

맞아요. 웬디앤브레드는 ‘한낮에도 홀로 와인을 마실 수 있는 와인바’를 콘셉트로 한 국내 첫 로제 전문 와인바였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려니까 좀 낯간지럽네요(웃음). 예약제로 운영했기 때문에 일부러 시간 내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았죠. 올해 초까지 2년 좀 넘게 운영하다가 지금은 웬디스 보틀에만 집중하고 있는데요. 직접 셀렉한 와인과 음식을 페어링한 웬디앤브레드가 와인바라면, 웬디스 보틀은 병 단위로 와인을 판매하는 보틀숍이에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와인을 구입하러 오는 장소니까 동네 사람 비율이 훨씬 높아진 거죠.

같은 와인을 다루더라도 분위기가 좀 달라졌을 것 같아요.

그럼요. 웬디앤브레드는 웬디라는 제 이름과 브레드라는 남편 이름을 합쳐 만든 브랜드였어요. 남편이 퇴근하고 도와주는 식이어서 대개 저 혼자 운영해왔죠. 예약을 받은 것도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였어요. 메뉴 개발이나 요리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그래서인지 웬디앤브레드와 웬디스 보틀의 단골 느낌도 많이 달라요. 웬디앤브레드는 미리 연락을 받고 맞이하기 때문에 초대하는 듯한 기분으로 손님을 마주하게 되는데, 웬디스 보틀엔 불쑥불쑥 찾아오는 단골이 생겼어요. 웬디앤브레드 손님이 친구나 연인과 오거나 홀로 와인을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이었다면 웬디스 보틀은 젊은 사람은 물론이고 나이가 지긋한 분들도 와인을 사러 오세요.

 

어엿한 ‘동네 가게’가 되었군요. 연남동과 웬디, 이질적이면서도 잘 어울리는데 웬디라는 이름은 학원 강사 일을 하면서 정한 거라고 들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영어를 좋아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수업이나 시험이 없을 땐 영어 단어를 외우면서 시간을 보낼 정도(웃음)? 다른 건 몰라도 영어 공부만큼은 열심히 했어요. 다른 나라 언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거든요. 학생 때부터 제가 가진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는 일에 매력을 느껴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영어를 좋아하는 성향과 맞물려 영어 강사가 되었어요. 학생들에게 제가 가진 지식을 전하고 잘 받아들여진 걸 확인하는 게 좋아서 만족감이 컸어요. 그만큼 오래 영어를 좋아했는데, 살다 보니 그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고요. 그게 바로 낮에 하는 와인바였어요. 웬디앤브레드를 구상하면서 강사 일도 그만두게 됐죠. 그래도 웬디라는 이름은 계속 남아서 지금은 거의 본명처럼 쓰이고 있어요. 저는 아직도 사장님이라는 단어가 낯선데, “진영 사장님” 하고 부르면 낯간지러울 때가 있지만 “웬디 사장님” 하면 좀 편하더라고요. (하얀 강아지가 발치에서 빤히 쳐다본다.) 왜, 레오도 얘기할래(웃음)? (강아지가 점프하며 팔짝팔짝뛴다.)

아유, 소개를 안 들어볼 수가 없네요(웃음).

이 아이 이름은 레오예요. 저와 2년째 함께 지내고 있는 반려견이죠. 레오와 만나게 된 건 남편 덕분이었어요. 11년 동안 키우던 반려견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뒤로 제가 많이 힘들어했거든요. 다신 반려견과 함께 살 수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많이 우울해하니까 남편이 새로운 반려견과 다시 행복하게 지내보자고 하더라고요. 레오는 가정견으로 위탁이 되어 있던 아이였는데요. 사람들이 어린 강아지만 원하다 보니까 2개월이 지나면 위탁이 잘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레오는 입양되지 못한 채 4개월이 넘어가던 아이였어요. 털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삐죽빼죽한 상태였는데, 이상하게 보자마자 데려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집에 오는 길에 남편이 “밀림의 왕 레오 같다.”고 해서 이름도 바로 레오로 짓고 함께 살게 되었어요.

 

레오는 SNS 인기 스타이기도 하죠.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무려 3만 9천 명!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요(웃음)? 원래 레오 계정을 따로 만들 생각은 없었어요. 가끔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레오 사진을 업로드했는데 팔로워나 손님들이 자꾸 레오 계정을 만들어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당시에 웬디앤브레드, 웬디스 보틀, 웬디스 월, 제 개인 계정… 너무 많은 계정을 운영하고 있어서 레오 계정까지 만드는 게 좀 힘에 부쳤어요. 근데 요청이 하도 많이 들어오니까 한번 해볼까 싶어서 만들게 됐는데, 저는 성격상 뭐든 시작하면 진짜 열심히 하는 타입이거든요. 꾸준히 사진을 올렸더니 어느 순간 레오 계정 팔로워가 제 계정보다 많아졌어요. 남편이랑 가끔 “레오는 왜 인기가 많지?” 하면서 의아해하는데, 저한테 힘이 된 아이가 사랑받으니 지금은 계정 운영하는 게 재미있어요. 종종 연남동에서 산책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먼저 와서 물어보기도 해요. “이 강아지… 인스타그램에서 점프하는 강아지 아니에요?” 하고요(웃음).

숫자보다

귀중한 어떤 것

웬디앤브레드와 웬디스 보틀 모두 프랑스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프랑스에 특히 집중한 이유가 있어요?

제가 프렌치 무드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프랑스 중에서도 특히 파리를 좋아하는데, 프랑스에 환상을 가진 건 중학생 때였어요. 프랑스 파리를 대표하는 요소로 우연히 에펠탑 이미지를 보고는 완전히 매료되었거든요. 잠을 자면 파리랑 에펠탑 꿈을 꿀 정도였어요. 근데 막상 파리에 간 건 꽤 나중 일이었어요. 처음 간 건 스물일곱 살 때였는데요. 사진으로만 보던 에펠탑이 눈앞에 있으니까 훨씬 더 웅장해 보였고, 이게 현실이 맞나 싶더라고요. 옛날에 지어진 건물들이 보존돼 있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에요. 클래식한 분위기를 그대로 간직한 거리에 오래된 목조 건물이 서 있는 걸 보면서 프랑스 특유의 무드에 빠지고 말았죠. 그 뒤로 유럽에 갈 때마다 파리는 꼭 끼워 넣을 정도로 좋아했어요. 어떻게든 들러서 그 분위기를 만끽하고 싶었거든요.

 

와인을 좋아하는 것과 와인으로 브랜드를 만드는 건 다른 일처럼 보여요. 어떻게 와인바를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제가 예전부터 와인을 좋아한 건 아니에요. 전 맥주파거든요(웃음). 퇴근하고 마시는 맥주나 친구들과 삼삼오오 어울려서 마시는 한 잔은 정말 즐겁잖아요. 와인을 좋아하게 된 건 와인바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오픈 준비를 하면서부터였어요. ‘낮에 하는 와인바’를 꼭 열고 싶었거든요. 그때부터 와인을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했고, 하나둘 마셔보고 공부하면서 매력에 빠진 거죠.

 

어? 와인을 좋아해서 와인바를 시작한 게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웃음). 파리에 있는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를 참 좋아해서 갈 때마다 들르는데, 거기 테라스석엔 꼭 노인들이 앉아 있더라고요. 그게 저한텐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냥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한낮에 와인 한 잔을 테이블에 두고 신문이나 책을 펼쳐 읽고 계세요. 너무 멋진 풍경이었죠. 그 장면을 보면서 가볍게 낮에 와인 한잔하면서 책 읽는 곳이 한국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장소를 제가 해보고 싶었고요. 와인바를 하려면 와인을 잘 알아야 하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마시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알게 된 와인의 매력은 뭐였어요? 전 와인 맛을 아직 잘 모르겠어요(웃음).

저도 그랬어요. 와인 종류만 해도 너무 많잖아요. 처음엔 포털사이트에 검색해서 나오는 유명한 와인들을 사 마셨어요. ‘1865’나 ‘디아블로Casillero del Diablo’ 같은 것들이요. 그러면서 입에 잘 맞는 와인의 품종을 하나하나 기록했죠. 적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와인에 공통점이 보이더라고요. 그 품종들을 파고드는 것도 재미있었고, 선호하지 않는 맛을 알아가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제 입에 맛있었던 와인의 품종과 생산지를 파고들면서 와인의 세계가 점차 넓어졌어요. 와인 맛도 차근차근 이해하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확실해진 건… 역시 비싼 와인이 맛있다는 거예요(웃음). 물론 저렴한 와인 중에도 맛있는 것들이 있지만 비싼 와인은 예외 없이 맛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을 마시더라도 너무 저렴한 와인은 일부러 피했어요. 제 기준에선 3-4만 원 정도는 되어야 맛있는 와인을 더 넓게 만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와인 공부로 파리에도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르 꼬르동 블루Le Cordon Bleu에서 와인을 배웠다고요.

와인의 세계가 워낙 넓다 보니까 하나하나 외우는 것도 버겁고, 제가 적어둔 것들이 맞는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한국에서만 왔다 갔다 하기보다는 프랑스 파리에 가서 본격적으로 와인을 배워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파리 덕이 큰 데다 와인 강대국이기도 하니까 제대로 배우면 좋겠다 싶었던 거죠. 워낙 프렌치 무드를 좋아해서 제 와인바에도 프랑스 분위기를 담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남편이 응원해 줘서 2주 과정인 단기 코스를 밟을 수 있었어요. 사실 르 꼬르동 블루에 가기 전에 이미 웬디앤브레드 계약을 마친 상태여서 결정이 쉽진 않았어요. 학원 강사도 그만두고, 와인바의 앞날은 불투명하고….

 

잘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아니요. 잘될지 안될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설사 잘 안되더라도 프랑스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오면 후회는 덜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망하더라도 최선은 다해보자는 생각이었죠. 2주 코스를 밟기 위해 파리에서 한 달 살이를 하게 됐는데요. 그 시간이 저한텐 참 영향이 컸어요. 프랑스어를 못 해서 생활이 불편하겠다 생각했는데, 영어로 충분히 소통이 되어서 별 어려움이 없었거든요. 다만 이론 수업을 들을 땐 좀 힘들었어요. 선생님은 프랑스어로 이야기하고 옆에서 통역관이 영어로 통역해 주는 식이거든요. 영어 강사를 했더라도 영어가 모국어는 아니니까 한 번 번역된 영어를 이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이론 수업할 때마다 어찌나 잠이 오던지(웃음).

그런 결심이 있었기에 웬디앤브레드가 잘된 것 같아요. 연남동의 작은 파리라고도 불렸는데, 연남동을 택한 이유는 뭐였어요?

사람들이 쉽게 약속하고 편히 오갈 수 있는 동네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한테 그런 동네가 연남동이었거든요. 제 가게가 생길 동네라고 생각하면서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봤는데 골목마다 재미있는 장면이 펼쳐지더라고요. 웬디앤브레드가 생기던 2018년에 가장 핫한 동네는 가로수길이었어요. 젊은 친구들이 너도나도 찾는 곳이었죠. 그러다 보니 상권이 들어서면서 시끌벅적해지고 전체적으로 금액이 많이 뛰었어요. 반면 연남동은 동네 고유의 분위기를 지키면서 동네 분위기와 어울리는 숍들이 들어와 있었고, 바로 옆에 있는 홍대에 비해 조용하고 단정했어요. 가격도 합리적이고 숨은 매력이 많은 동네였죠. 접근성으로 고려하기 시작한 동넨데 막상 탐방을 하다 보니 연남동의 매력에 제가 매료되고 말았어요(웃음). 웬디앤브레드를 운영하다가 2020년에는 웬디스 보틀도 함께 운영하기 시작했는데요. 웬디스 보틀을 오픈할 때도 다른 동네는 고려하지 않았어요. 2년여 이 동네에 머물면서 부족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동네에 보틀숍이 없다는 것도 웬디스 보틀을 시작하기 좋은 환경이었고요.

 

지금은 연남동에도 상권이 많이 들어왔고, 앞서 언급한 가로수길은 이제 좀 쓸쓸한 거리가 됐어요. 한 시대, 특정 동네에 상권이 집중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음… 쉬운 말로 핫플레이스가 두세 군데만 생겨도 동네 붐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분위기를 주도하는 가게가 생기면 그 가게가 있는 동네로 여기저기서 사람이 몰리거든요. 동네가 흥하면 그쪽으로 상권이 집중되는 현상도 있고요. 연남동도 점차 상권이 확장되는 추세지만, 그래도 웬디앤브레드가 있던 골목은 분위기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어요. 운영하는 동안 연남동 특유의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고요.

 

와인을 공부했다고 와인바를 잘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공간 운영에 대한 감은 어떻게 익혔어요?

좋아하는 바의 분위기와 구성을 눈여겨보면서 고민했어요. 음식에 영감을 준 건 파리의 내추럴 와인바 ‘브루토스Brutos’ 였어요. 도쿄 와인바 ‘마고’에서는 분위기를 구성하는 데 영감을 많이 받았고요. 손님으로 갔으면 그렇게까지 관찰하진 않았을 텐데, 오픈 준비 중인 제 와인바를 생각하고 방문하니 불빛이나 조도, 식기 같은 것들을 눈여겨보게 되더라고요. 웬디앤브레드는 처음부터 유럽과 프렌치 무드를 갖고 가고 싶었기 때문에 인테리어에서 그런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집중했어요. 벽과 바닥으로 최대한 분위기를 만들고자 했고, 완성도를 높여 유럽 느낌을 살리고 싶었죠. 바닥엔 타일을 깔고 벽은 천연미장으로 마무리해서 분위기를 조성했어요.

 

돌이켜보면 웬디앤브레드는 돈벌이만을 위한 와인바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희소성 높은 와인을 글래스로 제공하고, 본인이 즐겨 먹던 음식을 페어링하는 데다가 음식 재료도 아무거나 사용하지 않았죠.

수익을 아예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무엇보다 손님들의 만족도를 생각했어요. 웬디앤브레드 메뉴를 구성할 때 제가 와인과 즐겨 먹던 라구파스타를 넣었는데요. 요리를 배운 사람은 아니다 보니 레시피를 익히는 데만 해도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아는 분의 레시피를 어깨너머로 배우면서 1년 정도 소스 끓이는 연습만 한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테스트하고 조금씩 배합을 바꿔가면서 완성한 메뉴여서인지, 점차 웬디앤브레드의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게 됐죠. 웬디앤브레드를 운영할 땐 재료에 많이 집중했어요. 좋은 재료를 쓰면 음식이 맛없을 수 없다는 지론이 있었거든요. 제 몸이 조금 힘들어도 손님들이 맛있게 드신다는 생각을 하면 꾸준히 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힘든 날이어도 “맛있게 잘 먹었다.”는 말 한마디에 힘이 났죠.

 

손님들 반응은 어떻게 확인했어요? 요즘 SNS는 이미지에 집중돼 있고 일회적인 경우가 많아서 깊은 소통을 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제가 얼마나 시간을 들여 꾸렸든 #라구맛집 이나 #포토맛집 같은 간단한 해시태그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공간이 일회적으로 소비되는 경험을 참 많이 했죠. 사실 이런 경험은 제가 일일이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 감안할 수 있었는데, 진짜 아쉬운 건 이런 경우였어요. 제가 웬디앤브레드를 시작한 건 단 한 잔의 와인만 마시더라도 편하게 머물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였거든요. 그런데 간혹 와인을 못 마시는데도 웬디앤브레드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어요. 주문은 하시는데, 이용 시간인 두 시간 동안 사진만 찍고 돌아가시는 거죠. 일부러 예약까지 하고 오셔선 SNS용으로 공간만 소비하고 마는 모습이 좀 아쉽더라고요. 저는 이왕 여기까지 오셨으니 손님들이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두 시간 동안 와인 한 잔을 시키든, 보틀 두 병을 시키든 손님들이 편히 머물다 가기만을 바라면서 만든 공간이었기에 그런 장면은 좀 아쉬웠어요.

셔터 소리가 연달아 들리면 아무래도 불편하죠. 게다가 ‘혼술’하는 와인바가 콘셉트였잖아요.

그쵸(웃음)? 혼술 좋아하세요? 저는 주로 남편이랑 술을 마시고 결혼하기 전에도 혼자보단 여럿이서 먹는 걸 더 좋아했는데 여행하면서 혼술에 대해 인식이 좀 바뀌었어요. 여행지에서는 혼자서 술을 마실 수밖에 없잖아요. 그때 혼자 바에 앉아 있으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걸 경험했어요. 생각만큼 궁상맞은 느낌도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웬디앤브레드를 할 때도 손님들이 부담 없이 찾아주었으면 싶어서 혼술 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계속해서 어필했어요. 한 번만 이야기하고 말면 정말 혼자 가도 되는지 주저하는 손님들이 생길 테니까요. DM으로 진짜 혼술 하러 가도 되는지 물어보는 분들이 꽤 계셨는데, 질문이 들어오기 전에 더 확실히 인식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혼술 손님들이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크게 안 되거든요. 테이블이 네 개밖에 없는 데다가, 예약제였기 때문에 혼술 손님으로만 채워져 있으면 매출이 나올 수가 없어요. 그래도 저는 ‘한낮에 책 한 권 들고 와서 와인 한 잔 마시는’ 공간을 가능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마이너스 매출을 감안하고 해오던 일인데도 계속 유지될 수 있던 건 웬디앤브레드의 마인드를 이해하는 손님들 덕분이었어요. 단골이 된 손님들이 글래스 와인으로 시작해서 보틀을 주문하고, 웬디스 보틀에도 와인을 사러 와주시면서 브랜드의 마음을 알아주셨거든요. 브랜드를 향한 진심이 손님들께 가닿은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런 손님들은 저희 브랜드를 신뢰하기에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겨도 크게 동요하지 않더라고요. 

 

뜻하지 않은 사건이라면…?

손님들이 불편해할 만한 일들이 더러 일어났거든요. 직접 예약을 받다 보니 어쩌다 오버부킹을 받을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땐 합석을 해야 했는데 단골분들이 상황을 이해하고 합석 요청에도 흔쾌히 응해주셨죠. 가끔은 갑자기 재료가 떨어져서 주문한 음식을 만들지 못해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예약제다 보니까 어렵사리 찾아오신 분들은 ‘이 메뉴 먹으러 왔는데 왜 안 되냐.’면서 컴플레인을 걸어오는 일도 있었는데, 단골분들은 너그럽게 이해해 주셨어요. 그런 데서 제가 위안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웬디앤브레드는 단골손님들에게 빚을 지면서 운영해 왔다고 생각해요. 

 

단골들이 신뢰를 갖고 응원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제가 편하게 대해줘서요(웃음). 손님들에게도 제가 돈을 좇아 움직이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손님들 편에서 생각하고, 손님들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많이 노력했거든요. 제 자랑 같지만(웃음)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도 맛있었고, 와인 셀렉도 다른 와인바보다 빨랐다는 게 한몫했겠죠. 저는 누구보다 빠르게 와인을 찾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손님들도 다른 곳보다 빨리 새로운 와인을 접할 수 있길 바랐죠. 특히 로제 와인 쪽에서는 이 점에 집중해서 더 빨리 움직이려고 노력했어요. 이런 다각도의 노력을 알아봐 주신 분들이 단골이 되어 계속 찾아와 주신 것 같아요. 웬디앤브레드가 입소문을 타면서 콘셉트가 비슷한 와인바가 여기저기서 생겨나기도 했는데요. 단골들이 먼저 “아무리 따라 하는 브랜드가 생겨도 웬디앤브레드의 오리지널리티는 따라갈 수 없다.”고 이야기해 주셔서 안심하고 운영할 수 있었어요.

믿음으로 엮인

웬디의 고유한 세계

2018년에 웬디앤브레드를 시작했고, 2020년에 웬디스 보틀과 병행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지금은 웬디스 보틀에만 집중하고 있죠.

웬디앤브레드를 할 때 항상 새로운 메뉴를 향한 욕망이 있었어요.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 저는 요리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메뉴를 그때그때 개발하는 게 좀 버거웠거든요. 매일 같은 손님이 오는 게 아닌데도 항상 같은 메뉴를 제공한다는 점이 손님들에게 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있고, 새 메뉴를 개발하지 못한다는 부담감도 크게 작용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두 브랜드를 한 번에 운영하는 게 힘에 부치기도 했고요. 요리를 전혀 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은 사실 메뉴 부담이 없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당장 걱정스러운 건 와인 보틀숍이 많이 생기고 있어서 웬디스 보틀의 색깔이 사라질까 봐 겁이 나요. 지금은 웬디스 보틀이 대체 불가능한 보틀숍이 될 수 있도록 깊이를 더해 가려고요. 나중에 시간이 좀 더 지나고 다시 음식이 하고 싶어지면 그땐 프랑스나 이탈리아에 가서 요리를 좀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요. 메뉴 부담이 덜한 상태로 손님을 맞이하고 싶거든요. 지금 당장 새로운 브랜드를 시작할 생각은 없지만 훗날엔 요리 쪽도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마케팅도 스스로 하고 있어요. SNS에 업로드하는 사진에서도 웬디만의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브랜드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와인 제품 이미지도 제가 촬영하고, 제 개인 계정엔 필름 사진을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는데요. 좀 부끄럽지만 팔로워들과 손님들에게 사진집을 내달라는 이야기나 사진 포스터를 만들어서 판매해 달란 이야기를 참 많이 들었어요. 제 사진으로 무언갈 만든다는 데는 관심이 있지만 저는 그걸 판매로 연결 짓고 싶진 않아요. 한때 웨딩컨설팅 업체에서 사진 작업을 해온 적이 있거든요. 저는 평소에 사진 찍는 걸 무척 좋아했는데도 돈을 받고 하려니까 부담이 생기더라고요. 주말에만 하는 작업이었는데도 그 안에서 재미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사진은 저에게 어디까지나 취미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걸 브랜드로 연결하는 힘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사업 아이템에 대한 기준이 확실하군요.

제가 가진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걸 좋아해서 영어강사도 했던 거지만, 그걸 잘 해내려면 먼저 확실하게 준비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와인도 독학으로 끝내지 않고 파리에 가서 배워 온 거고요. 사진은 제 브랜드로 삼을 만큼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분야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사진 때문에 제 브랜드를 더 아껴주시는 건 항상 감사하죠.

 

웬디의 브랜드는 인테리어 하나하나에 신경 쓴 만큼 공간만으로도 큰 힘을 가지는 것 같아요.

공간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미쳐요. 공간 하나로 엄청난 위안을 받기도 하니까요. 웬디스 보틀은 접근성이 뛰어난 곳은 아니에요. 그런데도 굳이 여기까지 와서 와인을 사 가시는 분들은 이 공간이 주는 느낌과 분위기도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같은 물건을 사더라도 좋아하는 공간에서 구입하면 더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 있잖아요. 공간과의 어울림은 어떤 브랜드를 경험할 때 확실히 시너지 효과를 주는 것 같아요.

 

웬디앤브레드와 웬디스 보틀 인테리어 특징은 천연미장이죠. 인테리어가 웬디 브랜드의 분위기를 확실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웬디앤브레드를 오픈할 때만 해도 한국에 천연미장이 많이 알려져 있진 않았어요. 저는 프렌치 무드를 위해 꼭 웬디앤브레드에 천연미장을 하고 싶었는데, 알아보니 친한 언니 남편분이 ‘바우만하우재’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천연미장을 다루고 있더라고요. 천연미장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냈는데, 마침 수입 자재를 들여놓고 몇 년간 사용하지 않던 상태였고 상업 공간에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천연미장은 아토피 피부에 좋다고 해서 독일 가정집에 주로 해오던 방식이에요. 워낙 독특한 시공인데다가 단가가 높아서 대중적인 방식은 아니었는데, 웬디앤브레드에 선보이고 나니 손님들 반응이 너무 좋더라고요. 유럽 분위기가 한껏 살아난다는 반응이 많았고, 어떻게 하는 건지 물어보는 분들도 꽤 있었어요. 그래서 기술 이사님께 사람들이 천연미장에 관심이 많으니 SNS로 제대로 홍보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했죠. 근데 이사님이 SNS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다 보니까 저한테 그 역할을 맡기시더라고요. 처음엔 브랜드 이름을 살려서 바우만하우재 계정을 만들려고 했는데, 이사님이 제 이름을 넣어서 만드는 게 어떻겠냐는 거예요.

 

웬디라는 브랜드를 일찍이 알아보신 거네요(웃음). 그렇게 탄생한 게 ‘웬디스 월’이군요?

사실 처음엔 좀 부담스러웠어요. 저는 계정 관리만 하는데 제 이름이 들어가 있으면 사람들이 제 브랜드라고 오해할 수도 있고…. 근데 기술 이사님이 SNS에서 제 이미지가 이미 친근하게 만들어져 있으니까 웬디스 월로 하자고 하셔서 결국엔 그렇게 되었어요. 우스갯소리로 알바 계정이라고 이야기하곤 하는데, 계정을 관리하면서 상담도 하고, 옛 웬디앤브레드 공간과 웬디스 보틀을 쇼룸 삼아 실제 천연미장 장소를 보여드리고 있어요. 바우만하우재 스튜디오가 담양에 있어서 시공내용을 확인하거나 직접 상담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웬디스월 계정을 만들고 나서 SNS의 영향력을 새삼스럽게 실감하기도 했는데요. 계정이 생긴 뒤로 의뢰가 정말 많이 들어와서 하루하루가 더 바빠졌어요. 연남동에서도 꽃집과 디저트 가게 두 곳에 천연미장 작업을 진행했거든요. 천연미장 작업에 직접 참여하는 건 즐거웠지만, 입소문을 타면 그만큼 사업 아이템이 빠르게 번져간다는 것도 깨닫게 됐어요. 사실 저는 천연미장이 희소성이 강하고 가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어요. 따라 하고 싶어도 아무나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영역이었죠. 그런데 웬디스 월이 활동을 시작하고 6개월쯤 되었나… 천연미장을 다루는 업체가 하나둘 생겨나더라고요.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는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계속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웬디스 월이 자리를 잡아가면서는 공간 컨설팅 작업에도 욕심이 생겼는데, 당장은 거기 집중할 시간이 없어서 생각만 하고 있어요. 천연미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분위기를 더욱 깊이 있게 만들고 싶다고도 생각 중이죠.

 

그러고 보면 웬디스 보틀도, 웬디스 월도 웬디앤브레드에서 파생된 사업이네요. 오리지널리티가 굳건하기 때문에 확장될 수 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웬디스 보틀에 대한 생각이 점점 더 많아져요. 제 브랜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웬디앤브레드를 접고 집중하는 숍이니까요. 최근엔 코로나19 영향도 있고, 유행을 따라 보틀숍이 점차 더 많아지는 추세라 셀렉하는 와인이 겹치는 일도 잦아지고 있어요. 브랜드 오리지널리티를 강화하기 위해서 웬디스 보틀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고 있죠. 우리 숍에서만 소개할 수 있는 와인을 찾는 데 특히 주력하고 있는데요. 아, 이것 좀 보실래요? (뒤쪽에 진열된 와인을 가리킨다.)

 

안 그래도 궁금했어요. 웬디라는 이름이 적혀 있어서 자꾸 보게 되는데, 이 와인은 소품이에요?

이거, 이탈리아에서 제 캐릭터를 라벨로 만들어서 출시되는 로제 와인이에요. 이 라벨은 시안인데 출시될 땐 후가공이 들어가서 좀더 눈에 띄는 형태로 나올 예정이에요. 한국에 이 와인을 소개하면서 로제 와인 시장도 좀더 넓어졌는데, 이 와인을 수입하는 수입사 규모가 좀 커서 한국으로의 수입 규모가 꽤 컸거든요. 이탈리아 측에서 감사 의미로 제 얼굴을 캐릭터화해서 이렇게 와인 라벨을 리뉴얼해 주었어요. 와인 상품을 새롭게 개발한 건 아니고, 기존에 판매하던 제품에 라벨만 바꾸어서 출시되는 거지만 기분이 무척 묘해요. 정식 출시되면 한국과 이탈리아에서 판매될 예정이고, 아마 웬디스 보틀과 백화점 보틀숍에서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기분이 어때요?

부끄럽지만 보기만 해도 뿌듯해요. 라벨도 마음에 들고요. 저랑 좀 닮지 않았나요(웃음)?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리고 이탈리아 디자이너가 디자인 작업을 해준 거예요. 오늘 인터뷰가 있다고 하니까 대표님이 살짝이라도 언급되면 좋겠다면서 시안 라벨을 붙여서 보내 주셨는데요. 받은 보람이 있네요(웃음). 와인과 인연이 닿고 브랜드에 최선을 다하며 지내다 보니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고 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웬디스 보틀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부지런히 선보이려고요.

 

웬디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계속해서 찾아가는 거네요.

지금 당장은 여기서 뭔가를 더 하는 것보단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가꿔 나갈 생각이에요. 아직 웬디스 보틀을 시작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깊이를 더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현재 웬디스 보틀의 굿즈를 하나 준비하고 있는데, 이전에 칠링백을 함께 작업한 일러스트레이터와 두 번째 린넨 쇼퍼백을 구상 중이에요. 보틀을 판매할 때마다 종이백이 소비되는 게 아까워서 쇼퍼백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에게 할인 혜택을 드리는 웬디스 보틀만의 시스템을 만들어 보려고 하거든요. 앞으로 어떤 굿즈를 기획하든 와인과 관련된 것들로, 웬디스 보틀에서만 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할 생각이에요. 

 

같은 제품을 구입하더라도 어디에서 누구에게 사느냐에 따라 구매 경험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손님들이 웬디스 보틀에서 어떤 경험을 하길 바라나요?

어떤 경험을 하기보단 실패를 경험하지 않길 바라요. 공간이 예쁘고 매력적이라는 칭찬도 좋지만, 웬디스 보틀에서 추천받은 와인엔 실패가 없다고 기억되고 싶거든요. 수많은 와인 중 손님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하기 위해 방문해 주시는 분들과 무척 많은 대화를 해요. 그전에 웬디스 보틀에 들여오는 와인을 신중하게 셀렉하는 데 집중하고요. 아무거나 쉽게 들이지 않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저 자신이 많이 깎이고 소모되지만, 그런 과정 끝에 진짜 웬디스 보틀이 남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웬디는 브랜드 그 자체인 같아요. 웬디가 꿈꾸는 브랜드의 최종 완성형이 있어요?

제 꿈은 자연으로 가득한 풍경이 그대로 보이는 데 공간을 얻는 거예요. 천연미장으로 가득한 공간을 직접 기획해서 꾸리고, 보틀숍과 레스토랑, 와인바를 두루 갖춘 공간을 만드는 거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게 서울이 아니면 좋겠어요. ‘서울의 브랜드’를 주제로 이야기 나누면서 서울이 아니길 바란다니까 좀 민망한데요(웃음). 그래도 나중엔 창밖으로 제주 풍경을 보면서 저만의 브랜드를 운영해 나가고 싶어요.

 

서울에서 시작했지만 마지막은 서울이 아닌 곳을 향해 가네요(웃음). 서울의 브랜드들이 지방으로 이동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보이는데, 이런 흐름은 왜 생기는 걸까요?

서울은 경쟁의 도시예요. 경쟁이 심해지다 보면 경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과는 관계없이 치이는 기분에 시달리게 돼요. 그런 환경에서 멀어져서 시골처럼 한적한 동네에서 나만의 공간을 꾸리고 싶어서 아닐까요? 저는 그런 동네에서라면 좀더 전문적인 내 공간을 편하게 운영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새 메뉴를 개발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웃음). 그런 생각으로 많은 브랜드가 지방을 향해 가는 것 같아요. 음… 복잡함을 떨치고 싶어서요.

 

복잡함을 떨친다는 건 수익보다 우선하는 다른 가치가 있다는 뜻 같아요. 웬디가 추구하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는 뭐예요?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요? 음… 신뢰요. 손님들이 웬디스 보틀을 ‘믿을 수 있는 브랜드’라고 이야기해 준다면 기쁠 거예요. 브랜드라는 건 결국 특정 상품을 대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웬디’라는 브랜드에 ‘와인바’와 ‘로제 와인’이 떠오르듯이!

 

대화를 마치고 레오와 인사하는데 웬디가 사진을 한 컷 찍어도 되겠느냐 묻는다. “에디터님이 입고 온 옷과 신발이 아므네 무아Emmenezmoi랑 너무 잘 어울려요.” 아므네 무아는 ‘날 데려가 줘요.’라는 의미를 담은 프랑스어이자 와인 이름이기도 하다. 수줍게 발 사진을 찍히고 나니, 정말 어디론가 갈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건 웬디와 수없이 이야기 나눈 프랑스일 수도 있겠고, 연남동 구석의 또 다른 상점일 수도 있겠고, 웬디가 꾸린 새로운 세계일 수도 있겠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오랜 시간 묵혀둔 와인의 마개를 어설프게라도 열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던 세계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순간이었다.

웬디스 보틀

A. 서울 마포구 동교로51길 87 지층 왼쪽

H. instagram.com/wendys_bottle
O. 화요일 16:00-19:30, 수-금요일 13:30-19:30, 토·일요일 13:30-18:00, 월요일 휴무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