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erfect Holiday

완벽한 휴일

BOOK 

《완벽한 날들》, 《숨어 사는 즐거움》

A Perfect Holiday

완벽한 휴일

휴일에 우리는 어떤 특별한 일도 하지 않는다. 우리는 심심하고 단순하고 똑같이 산다. 나는 안다. 내가 나중에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 잃게 될 때, 그때 가장 그리워할 것이 지금의 휴일들이라는 것을. 세상과 가장 멀리 있는 것 같으면서도 세상과 가장 가까운, 나의 완벽한 휴일을 위한 두 권의 책이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기 시작한 후 늘 일과 사생활의 분리에 애를 먹었다. 내게는 그 문제야말로 다른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하고 또 어려운 문제였다. 필요한 시간은 부족했고 요구되는 노력은 끝이 없었다. 일 자체가 문제였을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어느 누가 일하면서 매순간 매초 마음이 설레고 행복감과 만족감에 몸부림치겠는가. 일은 즐거울 때도, 괴로울 때도 있었다. 다만 퇴근 시간이 되어 사무실을 떠나면서부터는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일 생각 같은 건 몰아내고 사생활을 찾아야 했는데 아무리 해도 되지 않았다. 일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잠들기 전마다 불안감이 목 끝까지 차올랐고 일요일 오후 8시부터는 우울감에 잠겼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현재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초조해졌다. 

지금 나는 어쩌다 보니 자영업자로 살고 있는데, 그것은 일과 사생활의 분리 같은 건 아예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일이 곧 사생활이고 사생활이 곧 일이다. 농사를 지어 먹고 살던 농경사회 농부들처럼 일하는 틈틈이 사생활을 처리하고 사생활의 짬짬이 일을 한다. 일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아무것도. 좋으냐, 나쁘냐로 가볍게 판가름하기 힘든 생활 방식이다. 

회사에 다니지 않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휴일을 보내는 방법일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휴일에 대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외식을 하러 가지도, 쇼핑을 하러 가지도 않는다. 여행을 가는 일도 극히 드물다.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제하거나 무기력해서 도통 의욕이 솟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회사에 다니면서 휴일마다 해야 한다고 믿어온 것들을 과연 내가 진실로 원했는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절 나는 일상에서 달아나기 위해 억지로 비일상을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른이 되면 자신이 두 개의 반쪽으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 여가와 일. 그리고 이 둘을 고려하여 세상을 본다. 여가를 즐길 때는 찬란한 빛을 기억하고, 일할 때는 결실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에 나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초록의 세계로 들어가 나의 집을, 나만의 덮개를, 꿈을, 풀의 궁전을 지었다. 

–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중에서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산문집 《완벽한 날들》을 나는 여러 번 읽었다. 제목에 반해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다 읽고 나서는 너무 좋아 사서 다시 읽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는다. 읽을 때마다 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들을 발견한다. 숲속 나무 그림자 속에 깊숙이 숨어 있는 이끼나 버섯, 작은 꽃 등을 발견하는 것처럼. 이 친구들을 발견하려면 발걸음을 멈추고 시간을 들여 더 열심히 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자주 해도 숲속 산책이 질리지 않듯이 메리 올리버의 책을 읽고 또 읽는 일도 질리지 않는다. 

세상이 우리를 필요로 하는 만큼 우리에게도 세상이 필요하다. 은밀히, 친밀하게, 확실히. 우리에게 종달새가 날아오르는 들판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새는 단순한 새 이상의 존재, 우주의 목소리다. 신성한 기쁨으로 충만한 힘찬 목소리. 물질세계가 없다면 그런 희망은 산산조각 난다. 고갈된다. 야생의 세계가 없다면 그 어떤 물고기도 눈부신 빛을 발하며 물 위로 뛰어오를 수 없고, 그 어떤 사슴도 영원한 물처럼 부드러이 들판을 달릴 수 없다. 그 어떤 새도 날개를 펴고 자연의 계획까지도 넘어서는 자신감과 모험심과 용기를 품을 수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중에서

시인의 글을 읽고 나니 얼마 전 도서관에서 발견한 다른 책이 떠올랐다. 역시 제목에 끌려 집어 든 책은 조선시대의 문인 허균이 지은 《숨어 사는 즐거움》이다. 

서리가 내려 나뭇잎이 떨어질 때
성긴 숲 깊숙한 곳의 나무 밑에 앉았노라면,
누런 낙엽이 나부껴 옷깃에 떨어지고
들새는 나뭇가지로 날아와 사람을 엿본다.
황량한 곳에도 자못 탁 트인 듯한 운치가 있는 것이다. 

–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중에서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은 질식할 듯 폐쇄적이고 엄숙한 유교 사회의 아웃사이더였다. 30대에서 4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관직에서 파면된 그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읽은 문장들을 모아둔 이 책은 그러니까 허균의 독서노트 같은 것이다. 세속에 배반당한, 세속을 견딜 수 없던 그 시절의 그는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던 옛 사람들의 글을 곱씹어 읽으며 현실을 견디었을 것이다.

이 글들은 어린 시절 영문도 모른 채 외워야 했던 교과서 속의 고리타분한 글들과 비슷하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던 글들. 하지만 알게 모르게 그 문장들은 내 몸과 마음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뜨끔해지는 것이다. 부모의 말을 흘려듣고 살아온 지난날이 조금은 부끄러워진 여자처럼. 어느 순간 그 시절의 부모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여자처럼. 

무릇 바람과 달은 돈을 들여 사지 않을뿐더러, 그것을 가져도 누가 금할 이가 없는 것이니, 태백과 동파의 말이 진실이다. 그러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세상에 몇 사람 되지 않고 맑은 바람과 밝은 달도 일 년 동안에 또한 몇 날도 되지 않는다. 

–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중에서

허균이 찾아내 되새김질한 이 문장은 메리 올리버가 말한 다음의 문장과 비슷하게 겹친다. 

미는 목적을 지니고 있으며 그걸 직감하는 게 평생, 계절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고 기쁨이다. 우리가 그런 욕구를 느끼는 건 우리 외부의 것들 때문이 아니다. 질문들과 그 답을 얻으려는 노력은 우리 내부에서 나온다. 

–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중에서

메리 올리버는 바닷가에 있는 집에서 산다. 매일 산책을 하다가 도중에 멈춰서 노트를 꺼내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다. 시인은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놀라고 경탄할 대상이 된다. 바다, 파도, 모래, 물고기, 새, 눈, 나비, 벌레, 나뭇잎, 바람, 햇살.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서 배운다. 세상은 놀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고, 그 아름다움은 눈을 크게 뜨고 발걸음을 잠시 멈추어야만 보이는 것이구나.

휴일마다 우리는 푹 자고 일어나 푸짐히 아침을 차려 먹는다. 냉동실에 얼려둔 빵을 꺼내어 굽고 찻물을 올린다. 샐러드를 만들 푸성귀들을 차가운 물에 씻은 후 물기를 빼고 달걀을 깨서 휘저어 오믈렛을 만든다. 버터를 자르고 잼을 그릇에 덜어놓는다. 식탁 위에 접시를 올리고 티백을 넣은 컵에 팔팔 끓는 물을 세차게 붓는다. 

아침을 다 먹고 나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면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는다. 청소를 마친 쾌적한 실내에서 책을 읽는다. 물론 스마트폰을 뒤적거리거나 영화를 볼 때도 있다. 창으로 햇살이 깊숙이 들어오고 나는 언제나 그 손님을 환영한다. 창문 너머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산길을 걷는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 소리도 들린다. 그 둘은 비슷하게 아름답다. 

오후가 되면 우리는 산책을 나간다. 특별할 것 없는 산책이다. 골목을 지나 산자락을 따라 걷다가 야트막한 산에 올라가 보기도 한다. 보통은 우리가 앞장서다가 아이들이 우리를 따라잡고, 때로는 그 애들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안내한다. 걸으면서 산책이 싫다고 투정을 부리던 아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진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며 웃다가 또 말없이 걷다가 또 이야기하기를 계속한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하면서 TV를 틀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본다. 

우리는 휴일마다 비슷한 스케줄을 반복한다. 이 단순성과 반복성이 우리에 게 힘을 준다. 월요일부터 이어질 생활의 재미있는 부분들과 재미없는 부분들을 비슷한 집중력과 인내심으로 처리할 수 있을 힘을. 그러면서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조용하고도 경이로운 변화들을 놓치지 않을 예민함과 섬세함을 유지하게 해준다.

나는 날마다 내 풍경 속을 걷는다. 늘 똑같은 들판, 숲, 창백한 해변. 늘 똑같은 푸른빛으로 즐겁게 넘실대는 바닷가에 선다. 늦은 여름 오후, 보이지 않는 바람이 거대하고 단단한 똬리를 틀고, 파도가 흰 깃털을 달고 해변을 향해 달려와 소리 지르며, 고동치며 마지막 상륙을 감행한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억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목격했다. 여름이 물러가고, 다음에 올 것이 오고, 다시 겨울이 되고, 그렇게 계절은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풍요롭고 화려한 세상은 우주 안에서 그 뿌리, 그 축, 그 해저로 조용히 그리고 확실히 흔들리고 있으니까. 세상은 재밌고, 친근하고, 건강하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사랑스럽다. 세상은 정신의 극장이다. 하나의 불가사의에 지극히 충실한 다양함이다. 

–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중에서

한 친구가 있다. 정확히는 친구의 친구다. 오래전에 알았으나 그 이후로는 소식만 전해 듣는다. 그 애는 지금 캐나다에 있어. 공항에서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말하더라고. 지금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야. 그런데 돈이 한 푼도 없어. 10만원만 빌려주면 안 될까? 그 애는 그 10만원을 들고 캐나다에서 몇 년을 버텼대. 세상에나. 지금은 호주에 있어. 그 애는 거기서 뭘 하는 거야? 그냥 일하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 자신이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은 삶을. 이제 그 애는 유럽에 있어. 이제는 캐나다에 정착할 생각이래. 드디어. 

우리는 그 애의 소식을 철새의 이동 경로처럼 전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그런 삶도 있구나. 나에게는 무리야. 엊그제 또 그 애의 소식을 들었다. 그 애는 수술도, 치료도 불가능한 암에 걸려서 한국으로 돌아왔어. 경기도 어딘가에 말기암환자들이 사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곳에서 지내고 있어. 생각보다 담담하게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고 있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는. 거짓말 같은 인생.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 날, 내게는 세상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혼란스럽다. 심지어 길을 가는 나이 든 할머니들까지도. 그 애는 저 할머니들처럼 오래 살 수 없겠구나.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다. 사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삶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는 이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날 물 위를 미끄러져 나아가는 내내, 다른 많은 날들에도 그랬듯이 작은 노래 하나가 내 마음에 흐른다. 음악적이라 노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냥 말들이다. 이상하지도 복잡하지도 않은 하나의 생각이다. 사실 그런 오후에 그런 생각을 안 한다면, 머리와 몸에 그런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그 말들은 이렇다. 세상이 이토록 아름다운 건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난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세상에 주어야 할 선물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중에서

내가 만일 내일 죽게 된다면 어떤 일을 가장 그리워하게 될까. 어떤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까. 안다. 내가 내일 당장 죽지 않을 가능성이 죽을 가능성보다 높다는 것을. 하지만 죽음이 아니라 하더라도 곧 나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우선은 아이들이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남편과 나는 나이가 들 것이고, 둘 중 누군가가 먼저 떠날 것이다. 그리고 곧, 남은 하나도 떠날 것이다. 그때가 오면 아마 나는 다른 어떤 일보다 나의 휴일들을 가장 그리워할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단순하며 또 반복되는, 매번 똑같이 완벽한 나의 휴일들을. 세상 돌아가는 일과 별 관계없으면서도 세상과 가장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는 나의 휴일들을. 

의리를 말한 글을 읽고, 법첩의 글씨를 익힌다.
맑은 마음으로 고요히 앉아 유익한 벗과 청담을 한다.
몇 잔 술로 얼근해지면 화초에 물을 주고 대나무를 심는다.
거문고를 듣다가는 학을 애완하고,
향을 피우다 차를 달인다.
배를 띄워 산수를 구경하고 장기와 바둑에도 뜻을 붙인다.
비록 다른 낙이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바꾸지 않으리라. 

– 허균, 《숨어 사는 즐거움》 중에서

나는 날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참을성 있는 초록 얼굴을 가진 거북을 만날 때마다. 매가 날아가며 내는 금속성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연못에서 노는 수달들을 지켜볼 때마다. 나는 피와 뼈로 이루어진 존재지만 특별한 체험과 생각에 의한 신념들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신념들을 빚어내는 건 세상에서의 시간(거칠든 온화하든 충분히 친밀하고, 시적이고, 꿈같고, 단호하고, 사납고, 애정 깊고, 삶을 빚어내는)이다. 

– 메리 올리버, 《완벽한 날들》 중에서

완벽한 날들
메리 올리버ㅣ마음산책

시인 메리 올리버가 세상에 바치는 찬사를 담았다. 한없이 아름답고 찬란한 아름다움을 말하면서, 세상이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을 돌아본다. 아주 평범하지만 사랑스러운 순간을 마주한다.

숨어사는 즐거움
허균ㅣ솔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이 손수 가려 편집한 독서 노트로, 자연과 함께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사는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크고 작은 소동, 재미있는 일화와 깊은 성찰이 담겨 있어 삶의 균형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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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