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ary That Stays Home All Day

집콕일지

바이러스가 가져다준 공간과 시간의 새로운 개념. ‘집 안에서 하루 종일.’도망가지 않고 주어진 자원을 나름대로 활용하며 버텨내는 나날들.

날씨가 푹해졌는데,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봄 방학 중인 아이를 돌본다. 눈 뜨고 나서 잠들 때까지 집에만 있다 보니 바쁘다는 핑계로 묵혀둔 공간을 더는 둘 수가 없어졌다. 며칠 전부터 베란다를 비워낼 생각이었다. 안 쓰는 물건과 짐을 넣어두곤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커튼을 걷을 때마다 정리 안 된 짐이 눈에 거슬렸다. 짐의 양을 파악하고 야외용 창고 하나를 주문했다. 조립형 창고가 온 날, 사용하지 않는 건 버리고, 캠핑용 짐은 차곡차곡 테트리스 하듯 넣었다. 묵은 짐을 비워내니 말간 얼굴이 보인다. 오늘은 깨끗하게 씻어줄 참이다. 

혼자서 여유롭게 청소할 생각은 진작에 하지 않았건만, 이룸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제발 나한테 뭘 좀 시켜 달라는 아이의 반짝이는 눈빛이 좀 성가시지만, 오늘은 우리 같이 해보자. 내가 바닥을 쓸면 아이가 큰 바가지에 있는 물을 조르륵 붓는다. 잠시 후 우리는 역할을 바꿔야 했다. 이제 내가 물을 붓는다. 뭔가가 생각난 듯이 자기 방으로 가서 실험용 고글과 라탄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아아, 너의 눈과 얼굴은 참 소중하구나. 

청소의 끝을 알리며 “이제 깨끗하다, 다했어!”라고 여러 번 외쳤건만, 혼자만의 아우성 같은 내 외침은 아이에게 가닿지 않는다. 아이는 아직 한창이다. 창문도 닦아야 한다며 굳이 깨끗한 창문에 열심히 물을 뿌리며 얼룩을 더한다. 아, 모르겠다. 거기서 혼자 놀아준다면,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도 같고.

바이러스 확진자 893명. 전날보다 130명이 늘었군. 매일 아침 확진자 수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불안과 경계가 평온한 일상을 앗아가 버렸지만 인터뷰를 위해 밖으로 나왔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사람, 뒤따르는 사람, 골목에서 튀어나온 사람 할 것 없이 마스크로 얼굴을 푹 덮고 걷는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가엾고 서글픈 봄 풍경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갓 두 돌인 아이와 가족을 보니 금세 마음이 느슨해졌다. 유리장을 열어보려고 야무지게 다문 아이의 입, 흥이 나서 열심히 흔들다 미끄러진 아이의 발바닥. 바깥세상일랑 상관없는 온기가 이곳을 가득 채웠다. 다음 장소로 이동한 뒤 빵으로 허기를 채우고 남은 일을 끝냈다. 다시 버스에 올랐는데 속이 더부룩하고 멀미가 났다. 버스 티브이 하단에 나지막이 지나가는 추가 확진자와 사망자의 수치, 이를 위해 부산히 노력 중인 정부의 움직임, 날카로이 화면을 바라보는 마스크 낀 얼굴들, 서로 경계하는 눈초리. 그 온도 차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버스 문은 왜 모조리 닫혀 있는지, 탁한 공기에 창문을 열었다. 그러나 마스크를 낀 코에 바람이 들어올 리 없다. 상쾌한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곧 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는다. 코로나19라는 커다란 사회적 변화는 지금까지 맞닥뜨리지 않은 새로운 시간의 개념을 가져왔다. 가야 할 유치원도 학원도 없고 산책과 놀이터도 나가지 못한다. 우리는 집 안이라는 발목 잡힌 공간에서 하루 종일이라는 시간을 배당받았다. 오늘은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내지? 

베란다에 캠핑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좋아하는 테이블보를 깔았더니 그럴 듯한 홈 카페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베란다 홈 카페에서 티를 마시기로 했다. 순식간에 나는 손님, 주인은 이룸이 된다. 메뉴판인듯한 종이를 하나를 가져와서 “주문하실래요?” 묻는다. 노키즈존은 아닌지 아이도 같이 왔냐고 꼭 물어봐 주는 친절한 사장님이다. 잠시 후 찻잔을 준비하더니 내가 끓여놓은 차를 붓는다. 이 카페의 엉뚱한 점은 글로 다 써 내려가기 힘들 정도다. 그중 하나는 찻잔 받침은 주문을 해야 가져다준다는 점이다. 야무지게 린넨 테이블보에 받침을 싸 와서는 꽤 능숙하게 찻잔 아래 깔아준다. 영국 레스토랑에 갔을 때 앞접시를 주문했더니 예쁜 천에 싸서 갖다준 걸 기억하는 모양이지.

마주 보고 앉아 개량 한옥의 지붕을 내려다본다.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새가 놀러 와 쉬어가는구나. 여태 이걸 몰랐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한참 바라보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리를 에워싸는 햇볕이 이렇게 다정했었나, 바람은 참 간지럽기도 하네. 하늘은 또 얼마나 맑은지.

무기한 연장된 유치원 개학에 남편과 나는 있는 휴가를 다 끌어 쓰며 아이를 본다.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를 혼자 둘 수 없다는 목표를 위해 스케줄 앱을 깔고 서로의 근무를 체크한다. 이인삼각을 나가는 선수처럼 앞을 보고 안쪽 발을 묶고, 어깨동무를 한다. 한쪽이 빨라지면 같이 넘어지니까 속도를 잘 맞추려 서로의 발도 봐줘야 한다. 아직 도착지가 보이지 않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그저 계속 걸을 뿐이다. 

하지만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길을 가기란 쉽지 않다. 그동안 쌓아 온 새벽 기상과 소중한 루틴이 무너져 버린 지 오래고 어질러진 집은 애써 모른 척하고 출근한다. 자유를 얻은 아이의 호기심은 날개를 달았다. 집 안 구석구석 있는 줄도 몰랐던 유물들이 다 밖으로 나왔다. 정리는 모르는 일이며 샤워를 하자고 하면 “잠깐만 아직” 하며 한 시간을 버티는 아이에게 결국 감정이 폭발했다. 날카롭고 찢어진 소리가 흰 벽에 울렸고, 싸늘한 공기에 정적이 흘렀다.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던 아이의 항복을 받아냈지만 역시 후회스럽다. 꼭 붙어 지내면서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인간의 밑바닥을 다 내보이는 느낌이다. 리 사이에 거리가 절실하다. 

아이는 왜 안 했으면 싶은 것만 하는지, 남편은 어째서 매번 물건을 못 찾는지, 나는 왜 이렇게 잔소리와 화를 달고 사는지.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나뿐이라 자꾸만 화를 내는 내가 가장 괴롭다. 남편에게 아무래도 심리 상담을 받아봐야 할까 봐, 라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이런 말을 했다.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어. 아이와 잘 놀아주고 다정한 엄마가 되는 거까지 하려고 하지 마. 그냥 아이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은 부모인 거야. 이정도면 잘하는 거지, 뭐.”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위로였나보다.

남편과 내가 출근 일정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일의 양이 준 건 아니므로 근무가 불규칙한 남편은 오전에 잠을 자둬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출근을 해야 하는 날엔 이룸의 영어 동영상 타임이다.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은 동영상을 찾고, 영상을 몇 개 볼지 정한 뒤 크롬캐스트로 미러링을 해주고 출근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전화가 온다.

“엄마 있잖아, 약속을 지키고 싶었는데… 나 딱 한 개만 더 보면 안 돼?”

이룸이 요즘 즐겨보는 영상은 <마이 리틀 포니>다. 트와일라잇이 부리는 마법을 따라 하고, 레인보우 대시가 친구들의 놀림에도 플라잉 대회에서 1등 하는 장면을 감격스러워한다. 처음엔 같이 보고 이야기도 나눴지만 사실 아이가 이걸 보는 시간만이 유일한 자유 시간이다 보니, 곁에서 같이 봐주기가 힘들다. 매 시리즈를 계속 볼만큼 흥미롭지도 않고.

오늘은 “엄마도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하면서 즐겨 듣는 음악을 틀었다. 이를 놓칠 새 없는 이룸이 부랴부랴 댄스 파티를 연다. 나는 티켓을 구매하고 댄스 파티에 참석해야 한다. 이룸 DJ가 신청곡을 받고 오디오를 튼다. 어쩐지 이 시간은 나도 좀 즐겁다. 90년대 노래를 틀고 목청 높여 따라 부르기도 하고 엉덩이를 흔들며 어디서 보이지 못할 이상한 춤을 춘다. 이룸도 엄마가 웬일이지 하는 얼굴로 같이 춤을 춘다. 

이 이벤트는 대개 잠들기 전 침대 위에서 붉은 조명만 켜두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맥주 한 잔, 이룸은 주스 한 잔을 마시고 우리는 침대에서 방방 뛴다. 그러다 데구루루 안고 뒹굴면 까르르 까르르 그렇게 다정할 수 없다. 문제는 끝을 안 내려고 하기에 취침 시간이 늦춰진다는 건데, 엄마가 진심을 다해 같이 논 날엔 아이도 덜 조르기에 길고 긴 실랑이는 아니다. 앞으로도 종종 우리 집에 밤의 댄스 파티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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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포토그래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