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Make Healthier Today

콰니 손경완

꾸준한 운동은 건강한 몸을 안겨줄 뿐 아니라 무거운 마음에 숨을 불어넣기에 유익하다. ‘콰니’ 손경완 대표는 운동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유지한다.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며 세 아이를 키우느라 빼곡한 머릿속이, 운동을 하는 동안 오롯이 나의 움직임으로 가득 찬다. 몰입의 시간은 마음에 작은 틈을 만들어냈고, 그 틈새로 옆을 보고 뒤를 살피며 앞으로 나아간다. 성실한 시간이 모여 탄력 있는 몸과 섬세한 근력을 얻었으니 운동은 참으로 정직하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그의 지금을 여기에 나눈다. 

무리하지 않되, 열정을 다해

“제가 속해 있는 물리적인 공간에서만 최선을 다해요. 그게 궁극의 밸런스를 갖고 올 거라 믿어요. 내 마음이 건강해야 아이들에게 좋은 걸 줄 수 있잖아요.”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패션 브랜드를 꾸리며 자신을 돌보는 일상을 SNS에 나눠주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받곤 했어요. 직접 소개해 주실래요?

안녕하세요. 콰니, 헤븐리 젤리, 케임어폰을 운영하는 손경완이에요. 세호, 수호, 리호의 엄마이고, 재호의 아내예요. 호가 넷이라서 블로그를 운영할 때부터 호넷이라고 이름 지었고, 회사를 만들고 그 이름을 유지하고 있어요. 호넷이 영어로 말벌이잖아요. 성경에도 호넷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적을 치러 가기 전에 호넷을 먼저 보내는 장면이 나와요. 그렇게 모험적으로 살아내고 싶어요. 

 

이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 같아요. 콰니, 헤븐리 젤리, 케임어폰은 어떤 뜻이에요?

이름을 잘 짓는 사촌 동생에게 가방의 히스토리를 설명하면서 브랜드 이름을 부탁했더니, 제 이름 이니셜에서 KWAN을 따서 ‘콴’을 제안했어요. 중저가 브랜드를 만들 생각이었는데 고상한 느낌이 강해서 좀 아쉽더라고요. 그때 동생이 “그럼 I를 붙여보자. 콰니!” 하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브랜드에 이름이 들어간 걸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소리 흐름이 마음에 들었어요. 헤븐리 젤리는 남편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사업은 젤리슈즈로 시작된 셈이거든요. 비즈니스 여정에 동력이 된 제품이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또 그만큼 편하기도 해서 헤븐리 젤리라 붙였어요. 케임어폰은 성경을 읽다가 선지자가 제자에게 옷을 수여하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선지자가 내어준 옷을 입은 제자가 자기가 바라던 스승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과 능력을 갖게 돼요. 제가 만든 옷을 입은 사람들도 풍성하고 너른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성경의 문장 중 ‘CAME UPON’을 따서 이름으로 지었어요.

 

이름 안에 시작과 나아가고자 하는 가치를 잘 담아둔 거네요. 

저는 사람이건 회사건 이름대로 살아진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이름에 모든 걸 담아내려고 노력해요. 부르고 들으면서 그 의미가 상기된다고 생각하고요.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제작과 판매를 잘 연결해서 수익을 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그런데 제작과 판매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내가 이 브랜드를 왜 만들었는지를 잊어버리곤 해요. 그럴 때 저는 브랜드의 이름을 보면서 ‘맞아 내가 이러려고 만든 거지.’ 처음의 마음을 리마인드해요. 

 

우리가 이야기하는 이 공간도 이름으로 불러주면 좋겠네요. 더호넷이죠?

맞아요. 지하는 원단과 부자재 창고이고, 1층은 사무실, 나머지 층에서 케임어폰 제품을 보관, 관리, 배송하고 있어요. 원래 주차장이었던 건물을 사서 새로 건축을 했어요. 여기서 지낸 지 6년이 좀 넘었어요.

일하는 엄마의 하루는 보통 어떻게 흘러가나요?

지금 첫째랑 둘째는 중학생이라 제주도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어요. 초등학생인 막내만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요. 그런데 집과 학교가 꽤 멀어서 스쿨버스를 일찍 타야 해요. 저는 다섯 시 오십 분쯤 일어나서 아이 아침 챙기고 준비를 도와주고 막내는 여섯 시 반에 아빠랑 같이 집을 나가요. 이후 반려견 벤호 아침을 챙겨준 뒤 주변을 정리하고 소파나 침대에서 인스타그램을 훑어봐요. 우리 브랜드 계정도 살피는데, 주로 개인 계정에 문의 주신 내용에 답변을 해요. 샤워하고 애들 방에 올라가서 정리를 마치고 사무실로 내려오면 여덟시 반쯤 돼요. 외부 미팅 없는 날에는 종일 회사에서 일해요. 저희 회사 근무 시간이 여덟 시부터 다섯 시까지라서 느낌상 저녁 시간이 굉장히 길어요. 야근을 해도 일곱 시나 여덟 시예요. 일을 마치면 집에 가서 막내하고 대화를 나누고, 숙제도 봐주죠. 지난달엔 첫째와 둘째가 추수감사절로 서울에 올라와 있어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운동을 하고 열두시에서 한 시쯤 잠들었어요.

 

잠이 별로 없는 편이네요?

맞아요. 어릴 때부터 잠이 별로 없었어요. 더 긴 시간은 못 자요. 대신 한 번 자면 잘 깨진 않는 편인데, 요즘은 이상하게 잠이 안 오네요.

 

타고난 기질이 열정이 많고 모험적인 성향 같은데, 진중하고 부지런한 면모도 보여요.

저는 MBTI를 굉장히 신뢰하는 편이에요. 이 테스트의 히스토리를 살펴보니 2차 세계 대전 중 전쟁에 나간 남성을 대신해 여성들이 산업 현장에 투입되면서 적성에 맞는 일을 부여하기 위해 만든 성격 분류 설문지래요. 여기에 혈액형까지 더해지면 그 사람의 기질과 성향을 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INFJ-A와 ENFJ-A가 왔다 갔다 하는 편이고 혈액형은 A형이에요. MBTI의 하이픈 뒤에 붙는 A는 가치 판단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두는지 타인에게 두는지를 나타낸다고 해요. 저는 자기 확신이 강한 편이에요. 굉장히 직관적이고 감정형이면서 계획적인 성향이죠. 하루하루의 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지만, 한 치 앞의 계획들이 있는 편이거든요. 큰 결정을 내릴 땐 대담한 편이고 직관으로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가 거의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모험심이 있어 보이겠죠. 자기 확신이 강하다 보니 제가 선택한 일이 예상했던 결과와 달라도 ‘내가 이런 선택을 한 의미를 알게 되겠지.’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때 그걸 안 했었더라면, 그러지 말걸’ 같은 생각을 백 번 중에 한두 번 하는 것 같아요. 부정적인 감정이 저를 더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 다는 걸 느끼면서, 소용없는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으려 노력해요. 그런데 감정형이다 보니 인간관계에는 굉장히 소심해요. 유일하게 후회하는 영역이고, 가장 어렵다 느껴요. 열정적인 제가 진중한 면이 있는 이유는 관계에 대한 조심성이 커서인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지금보다 활발하고 신중한 편은 아니었는데, 비즈니스를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친한 친구한테도 모든 걸 말하기가 어려운 성격이 되었어요. 감추고 싶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만 생각하며 뭔가를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더 그런 거 같아요. 또 저는 말의 힘을 믿거든요. 말로 내뱉는 순간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내 마음의 어려움을 타인에게 뱉으면 진짜가 될 것 같은 두려움으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해요. 하지만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는 실없는 농담도 잘하고 나이에 걸맞지 않는 행동도 자주 보이죠(웃음).

 

세 아이를 낳고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된 거라 알고 있어요. 원래는 아이 넷을 낳고 싶었다고요. 정말이에요? 

네(웃음).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하고 런던에 공부를 하러 갔어요. 좋은 기회로 일까지 하게 되었는데, 혼자 일하고 생활하는 게 너무 외로웠어요. ‘나는 혼자 살면 안 되겠어.’ 생각하던 시기에 한국에 들어와 지금 남편을 만났는데, 참 편안했어요. 결혼까지 빠르게 진행된 편인데, 두렵지도 않았죠. 친정 엄마가 형제가 많아서 어릴 적부터 이모, 사촌들과 잘 모이고 가깝게 지냈어요.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에 결혼하고 일을 그만뒀어요. 식구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해서 아이는 넷쯤 낳아야겠다 생각했고요(웃음). 화목할 거라는 장담도 없는데 뭘 믿고 그런 계획을 세운 건지, 참 어렸죠. 임신과 출산, 육아를 모를 때 세운 순진한 생각이었어요. 5년간 임신 상태로 지내며, 매번 입덧이 아주 심해서 ‘이제 진짜 안 되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이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반려견 벤호를 데려오면서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꿈을 이루긴 했네요.

엄마가 되면서 변화가 컸을 거 같아요.

처음엔 엄마라는 역할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았어요. ‘아, 내가 엄마가 됐구나. 신기하다.’ 정도였죠. 첫째가 잘 자고 잘 먹는 애라서 육아가 힘든 줄도 모르다,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남편이 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어요. 베이비시터를 구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셋을 낳고 키우는 동안 친정 엄마가 집을 오가면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근데 제 기질이 아이를 금이야 옥이야 애지중지하는 편이 아니에요. 한 번은 아이를 침대에 눕혀놨는데, 기어서 쿵 떨어진 거예요. “아이고 아프겠다. 미안해.” 하고 대수롭지 않게 또 같은 곳에 눕혀서 아이가 또 떨어지고….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중에는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하나하나 연연해하며 키우지 않아서 셋을 키울 수 있었나 봐요. 이유식을 할 때도, 매일 고기를 먹여야 한다는데 내가 못 먹고 못 자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나도 먹어야 아이들 먹을 것도 해줄 수 있지, 하면서 제가 힘들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려고 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아이가 하나하나 늘어날수록 여유가 더 생기더라고요. 눈빛으로 키운다고 하잖아요. 울음소리가 들리면 눈빛으로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 신호를 주면서 키운 거 같아요. 통잠 자는 게 소원이던 시절이었네요.

 

통잠을 못 잘 정도로 바쁜 시기에, 새로운 일을 시작했네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친구가 말하길 저는 학창 시절부터 커서 사업할 거라고 말하곤 했대요. 가정이 중요해서 잠시 일을 쉬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이 큰 사람인 거죠. 아이 셋을 키우면서 블로그에 육아와 인테리어를 공유했고, 친구랑 소소하게 인터넷 쇼핑몰을 3개월 정도 운영한 적도 있어요. 그러다 저 자신의 열정, 감정, 내외부의 관계가 얽혀 마음이 참 힘든 시기를 겪었어요. 사람의 정신이 이렇게까지 피폐해질 수 있구나 하는 걸 경험했어요. 이때도 저를 바닥까지 내려가게 만든 건 관계였어요.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신을 향한 갈망이 처음으로 절실해졌어요. 간절하게 의지한 시간 동안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마음을 다르게 먹고 나니, 상대는 그대로이고 내 상황은 달라진 게 전혀 없는데 그토록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문제로 보이지가 않는 거예요. 기적 같았어요. 내 마음의 상태에 만족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도 흐려졌어요. 다른 것에 욕심을 내고 관심을 돌리면 이 마음이 멈춰질까 두려울 정도로요. 그러던 어느 날, 운전하는 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다가 길가의 한 여자분을 보게 되었어요. 가방 안의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참을 뒤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네 면에 각이 있고 위가 뚫려 있는 가방 디자인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영감을 받은 것이 이런거구나를 느꼈지만, 바로 일을 시작하고 싶진 않았어요. 

 

왜요?

가장 힘든 시기에 바닥을 찍고 인간의 바람대로 삶이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힘들게 찾은 마음의 평온을 깨고 싶지 않았죠.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강해지는 거예요. 1년이 흘렀을 때, 하나님이 나에게 맡긴 소임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러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내 계획에서 시작된 일은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해야 할 거 같은 부담이 있는데, 이 일은 그저 나의 인풋만 들어가면 될 거 같은 마음이었거든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블로그에 젤리슈즈 공동구매를 열었어요. 생각보다 꽤 많은 양이 팔리면서 가방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어요. 가방을 만들려고 소개로 첫 직원을 뽑았는데, 기저귀 안 뗀 아이가 둘이라 30평대 가정집 부엌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일과 육아를 분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이 일이 지금까지 이어질 거라는 예측도 못 했거든요. 그 친구가 아직도 저와 함께 일하는데요, 제가 일하며 아이를 돌보는 동안 묵묵히 자기 몫을 해줬어요. 어떤 날은 제가 시장에 나가고 가방 제작 공장에 가면 혼자 집에서 일하다 우르르 하원하는 아이들 맞이하기도 하면서요. 아이들이 조금 크고 평창동 빌라로 옮겨 아래층 집, 위층 사무실로 지내기도 했는데, 택배 물량이 많다 보니 주민들이 많이 불편해하셔서, 매장이 있는 경복궁역 근처로 사무실을 옮겼어요. 사무실 가까이 집을 구하면서 처음으로 집과 일터를 분리해 봤고요. 아이들이 엄마가 보고 싶으면 쉽게 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지만 새벽 1~3시까지 회사에 남는 날이 허다했고, 친정 부모님이 아이들을 잘 돌봐주셔서 아이들이 사무실에 들르는 날도 많지는 않았어요. 그래도 언제든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갈 수 있다는 게 우리에겐 큰 안정감이었죠.

허둥대며 일과 육아를 하느라, 혼란스러웠을 거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더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큰 편이 아니에요. 제가 속해 있는 물리적인 공간에서 만 최선을 다하거든요. 그게 궁극의 밸런스를 갖고 올 거라 믿어요. 미안한 순간은 회사에 있는데 아이들 생각을 오래 했거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일 생각을 했을 때예요. 내 정신을 우선으로 생각해요. 내 마음이 건강해야 아이들에게 좋은 걸 줄 수 있잖아요. 내가 건강해지는 방법은 스스로를 다독이는 거예요. 아이들에게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 함께 일할 수 있는 곳은 데리고 다니면서 너희를 돌봤어.’라는 말을 종종 하면서요. 아이들도 결국 바쁜 엄마를 이해해 주는 것 같아요.

 

세 브랜드를 키워낸 시간이 10년을 향해 가고 있어요. 클래식한 라인을 섬세하고 일관되게 다루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거 같아요. 

콰니를 만드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면, 클래식한 디자인, 가벼운 무게, 인조 가죽만 사용할 것, 합리적인 가격대, 좋은 서비스예요. 일관된 디자인은 저와 비슷한 미감을 가진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하다 보니 저희가 예쁘다고 느끼는 관점이 같아 유지되는 듯해요. 트렌드를 살펴보며 조금씩 적용하려 노력하는데, 미니멀한 세련됨을 추구하는 건 저에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절제된 디자인이 콘셉트인 브랜드에 존경심을 갖고 멋지다 생각하지만, 저는 미니멀함을 조금 차갑게 느끼는 성향이에요. 인테리어도 옷도 풍성하게 포인트를 주는 것에 온기를 느끼거든요.

 

디자인, 가격대도 만족스럽지만 경완 씨의 진중한 소통 방식도 브랜드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많은 분의 응원 덕분에 꾸준하게 소셜미디어 활동을 하며 사업을 유지하고 있어요. 심지어 제가 힘들 때 도와주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요. 한 번은 헤븐리 젤리 상품 관련 피드에 다소 부정적인 후기가 달렸어요. 좋은 서비스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인정하는 부분은 인정하고, 다른 방법을 시도할 수 있게 안내하는 편인데요, 제 느낌인진 모르겠지만 그때마다 그동안 숨어 있던 고객들이 자신의 긍정적인 경험을 남겨주시더라고요. 각자 다른 사람, 다른 내용의 후기 일곱 개가 연달아 올라왔던 걸로 기억해요. 부정적인 후기를 반박하는 게 아니라 잘 신고 있는 경험담을 들려줘요. 그걸 보면서 ‘이분들, 나를 돕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 응원이 저를 더 열심히 나아가게 해요. 아직도 제품 론칭을 기다려주는 분들, 마음 써주시는 이들을 보며 원칙을 지키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구나, 이대로 가는 게 맞는 거구나, 확신해요.

운동이 일상이 되는 삶

“웨이트는 무산소 운동이잖아요. 오직 이겨야 하는 상대가 나 자신밖에 없거든요. 나의 한계에 다다르는 경험으로 내가 나를 넘는 거예요. 언제든지 마음이 어렵거나 몸이 힘들 때 운동을 떠올려요. 운동이 삶의 일부가 된 게 만족스러워요.”

브랜드 결을 유지하는 건 경완 씨의 확고한 취향 덕분이기도 하죠. 취향이 있다는 건 나를 잘 안다는 거잖아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요.

저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존재감 있는 대상에 끌려요. 그래서 말을 좋아해요. 말이 가진 우아한 자태가 멋있고, 달릴 때의 운동력도 멋져요. 누군가에게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하고요. 용맹하면서 기품이 흐르는 느낌을 선호해요. 얼마전 전기차 광고를 찍었는데, 저는 자동차를 볼 때도 아우라를 먼저 보더군요. 디테일한 디자인이나 마력, 엔진 같은 정보 이전에 한눈에 사로잡는 분위기, 이름의 의미까지 매력적이면 ‘우와 너무 좋은데?’ 하고 빠져들어요. 패션 취향은 화려한 걸 좋아하는 편인데, 딱 한곳만 집중하려 해요. 큼직한 귀걸이에 포인트를 주고 싶으면 옷을 올블랙으로 고른다든지, 힘을 빼죠. 그런데 남들 눈에는 다 힘이 들어간 거 같다고 느껴질 거 같아요(웃음). 제가 키가 크고, 눈 화장에 힘주면서 헤어스타일도 직선의 느낌이 강하잖아요. 목걸이도 화려한 편이죠? 어릴 때부터 스타일링에 관심이 많아서 단점을 커버하면서 장점은 살리는 여러 시도를 해봤어요. 내가 생각하는 나의 어떤 모습이 있고, 어떻게 해야 괜찮게 보이는지 잘 아는 편이에요. 그게 고착화돼서 다른 스타일로 바꾸지도 못해요. 통 큰 바지에 오버사이즈 핏 재킷이 참 멋지다고 느끼지만 제 손으로 그걸 집는 일은 없어요. 그걸 입으면 제가 아닌 거 같아요.

 

말의 자태가 경완 씨와 많이 닮아 있어요. 운동하는 모습이 특히 그래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근력 운동을 하라고 권하셨어요. 요가나 필라테스도 열정적인 운동이라고 알고 있지만 제가 보기에는 리듬이 약하고 모노톤 같은 느낌이라 매력을 잘 못 느끼겠더라고요. 극한으로 몰릴 때 재미를 느끼는 편이에요. 그래서 헬스 웨이팅을 생각했고, 일대일 피티를 하려고 선생님을 알아봤어요. 저와 잘 맞는 분일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했고, 선생님 가르침대로 열심히 하다 보니까 어느 날부터 허리가 안 아프더라고요. 그 점도 좋았지만 제가 운동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는 다른 걸 잊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집중하지 않으면 힘이 어디 들어가는지 모르니까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정말 딴 생각을 안 하는 거죠. 복잡한 일을 잊으려고 멀리 휴가를 떠나도 떨쳐지지 않던 생각들이 운동을 하면 차단이 되더라고요. 정말 신기했어요. 그 시간이 좋아서 운동에 몰입했는데 어느 날 복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제 체형이 근육이 도드라지는 타입이긴 한데, 근육의 결이 선명해지고 몸이 다듬어지니 아주 뿌듯하더라고요. 특히 등 근육에 자신 있어요(웃음).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와요. 집중력, 몰입력을 키워주는 데 운동만 한 게 없는 거 같아요.

맞아요. 처음 시작하던 해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일 마치고 집에 들러서 아이 숙제 좀 챙겨주고 밤 아홉시에서 열한 시까지, 일주일에 여덟 시간 정도를 했어요. 주말에는 혼자 두세 시간 했고요. 열심히 한 만큼 정직하게 실력도 느니까 제가 들 수 있는 무게도 올라가요. 이제는 운동을 안 하면 몸이 좀 뻐근하다 느껴요.

 

운동을 한 지 얼마나 되었어요? 운동을 꾸준히 하며 얻은 것이 또 있을까요?

4년 차요. 웨이트는 무산소 운동이잖아요.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오직 이겨야 하는 상대가 나 자신밖에 없거든요. 나의 한계에 다다르는 경험으로 내가 나를 넘는 거예요. 다른 운동에 비해 타인과 비교하지 않으면서 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길에서 계속 허들을 넘는 게 매력이 있어요. 언제든지 마음이 어렵거나 몸이 힘들 때 운동을 떠올려요. 헬스는 운동복만 갈아입으면 주변에 할 수 있는 곳이 많고 홈트레이닝을 할 수도 있어서 좋아요.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신체 부위에 맞는 기구와 시간을 짜서 구성할 수 있거든요. 넘어져서 발목을 다치고, 백내장 수술을 해서 잠시 쉬고 있지만 운동이 삶의 일부가 된 게 만족스러워요.

식이 조절도 병행하는 거 같은데요.

식이 조절은 운동하기 전부터 해서 더 오래되었어요. 브랜드 모델로 활동하면서 조금만 살이 쪄도 사진에 티가 많이 나더라고요. 제가 꼼꼼한 편이 아니라서 어떤 재료가 칼로리가 낮고, 무슨 성분이 어디에 좋은지는 잘 몰라요. 추천해 주면 먹지만, 정보를 검색해서 찾아내고 분석하는 성향이 아니거든요. 심플하게 1일 1식. 한 끼를 먹을 때 내 배가 어디까지 찼다는 걸 아니까, 아침이든 점심이든 저녁이든 상관없이 체감상 한 끼를 맞추는 거예요. 도시락을 싸기보다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먹는 날이 더 많아요. 1일 1식은 오래된 식습관이라서 이제 더 먹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요. 

 

체력이 좋아진 것도 느끼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은 사람이에요. 웬만해서 피곤을 잘 안 느껴요. 출장 갈 때 20대 남자 직원들보다 제가 더 잘 버티더라고요. 보통 사람들이 7에 피로를 느낄 때, 저는 10까지 찍어야 피곤함을 느껴요. 그래서 연약한 척이 안 되고, 또 가만히 못 있는 편이라 무의식으로 몸을 계속 움직이고 있어요. 근데 웨이트를 하고 나면 오히려 더 피로해져요. 안 쓰던 근육을 쓰는 거니까 다음 날 아파요. 하체 운동을 많이 한 다음 날은 걷지도 못하는데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렇게 아픈 거구나.’ 근육이 아프면 쾌감이 느껴지죠. 그러면서 내 능력치보다 조금 더 하게 되고, ‘오늘은 이게 왜 안 되지?’ 하면서 스트레스를 느낄 때도 있어서 매일의 운동으로 보면 조금 괴롭기도 해요. 체력이 좋아지는 건 운동의 레이어가 차곡차곡 쌓여야 하는 조금 먼 일인 것 같지만, 이 레이어들이 점점 나를 건강하게 한다는 믿음이 있어요.

 

운동할 때 보니까 물은 안 드시더라고요?

맞아요. 비려서 못 먹어요. 아이 셋 임신 때, 물 입덧이 제일 심했거든요. 그 이후로 물을 못 마시겠어요. 그나마 탄산수는 조금 먹는 편이에요. 

 

평소 건강 관리를 위해 먹는 영양제나 보조제도 있어요? 

아니요. 부지런하게 챙겨 먹는 걸 못 해요. 심지어 퇴근 후에 클렌징을 하고 얼굴에 아무것도 안 발라요. 지성이라 얼굴에 끈적함이 있는 걸 못 참아요.

 

바쁜 와중에 기념일과 생일을 챙기고 함께 여행 다니는 모습을 보며, 가족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느꼈어요.

솔직하게는 가족의 관계를 위한다기보다 제가 하고 싶은 걸 함께 하는 편이에요. 여행을 너무 좋아하는데, 가족이 있으니까 다 같이 가는 거지, 가족 여행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웃음).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기념일과 생일 파티, 운동처럼 제가 좋아하는 걸 가족들이 함께 해 주네요.

 

아이들도 운동을 좋아해요?

네. 첫째와 막내는 운동 마니아예요. 막내는 저의 운동 메이트인데요, 같은 선생님에게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운동 신경이 좋은 편이라 제가 자세를 배울 때도 있어요.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스스로 답답해하는 일이 잦은데, 그럴 때 “엄마 우리 같이 뛸까?”라고 먼저 제안해요. 그런 날은 몸이 힘들어도 밤이 늦어도 같이 나가요. 우리가 뛰는 러닝 코스가 생겼고, 잠시 쉬면서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해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운동으로 배우는 거 같아서 대견해요. 남편도 운동을 시작했어요. 웨이트 주 2~3회, 개인 운동 주 2회 하고, 식단을 관리해서 10kg 넘게 감량했어요. 한창 제가 열심히 하던 때처럼 열정이 넘쳐요. 덕분에 저도 동기부여가 되네요.

두 아이가 제주도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했어요. 자라면서 학업도 중요한 부분일 텐데요, 교육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제가 교육열이 높은 편이 아니라 교육 정보에 취약하고 큰 관심이 없어요. 부끄럽지만 지금도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스케줄을 소화하는지 자세히는 몰라요. 첫째가 제주 국제 학교에 다니게 된 건 친한 친구가 제주 학교에 지원한 덕분이에요. 아이가 다니고 싶어 하는 학교가 있는데, 제가 정보가 없으니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했어요. 다행히 너무 좋은 분을 만났고, 엄마가 아이 성향과 재능에 맞는 정보를 많이 알고 계시더라고요. 만족해하는 첫째를 보며 둘째도 제주 국제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 부모가 둘이니까 아이가 둘이면 한 사람당 한 아이를 맡아서 케어할 수 있는데 저희는 셋이라 늘 한 명이 뒷전이 돼요. 첫째는 자기 주도적인 편이라 조금 알아서 하게 두는 편이고, 둘째는 시키는 만큼 하는데 정말 시켜야 하는 아이예요. 꼼꼼하게 챙길 게 많은 둘째를 아빠가 맡고 저는 막내 숙제를 봐줘요. 제가 첫째와 둘째에게는 엄격한데, 막내한테는 좀 느슨해요(웃음).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면 “오늘 가지 말까?”라는 말이 먼저 나와요. “그래도 숙제는 하자. 오늘 숙제 뭐니?” 어르고 달래면서 챙겨주고 있어요. 공부는 예체능보다 타고난 역량이 더 큰 분야래요. 무엇이든 아이들 능력치만큼 한다고 생각해요.

 

가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뭐예요?

저는 공부보다 태도에 엄격한 편이에요. 예의와 정직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좀 더 예의를 갖추면 좋겠다 느낄 땐 한 번 타이르지만 거짓말은 엄하게 혼내요. 매번 혼내는데, 아이들은 또 거짓말을 해요. 제가 거짓말을 너무 싫어한다는 걸 아니까, 두려워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는 거 같지만, 훈육에 일관성이 떨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동일한 실수나 잘못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편이에요. 

 

육아도 삶이라 여러 시도를 하며 나에게 맞는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한 거 같아요.

삶의 큰 터닝 포인트를 지나오면서 제 육아관도 뚜렷해졌어요. 부모인 내가 아무리 계획을 가지고 있어도 자녀 개개인의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거고, 예측할 수 없어요. 어린 시절 저를 봐도, 부모님의 인풋 대비 아웃풋이 아쉬운 아이였어요. 사춘기 시절에는 의도적으로 따르지 않은 적도 있고요. 아이들도 제 바람대로 크지 않고 스스로 선택을 하겠죠. 그때, 선하고 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지침을 세워주는 걸 육아의 목표라 생각해요. 잘못된 길, 어려운 길을 선택하지 않게 마음 밭을 계속 기르는 거예요. 스스로 선택을 한다면 아이들이 이행할 수 있게 뒤로 물러서려고요.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선택에 책임지는 과정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연연하지 말자는 생각이 굳어졌죠. 아이들도 개개인마다 삶의 목적이나 방향을 깨닫는 시기가 올 거라 믿어요. 아이 셋이 너무 다르니까 거기에 반응하고 경험하면서 저도 실패를 하고 후회하면서 성숙해져요. 아이가 없었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성장이 반드시 있어요.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구나, 이제야 비로소 부모님의 마음을 알겠어요. 

 

부부간에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주로 남편이 말을 많이 해요. 남편은 스트레스가 많은 편이 아니고 그럴 수도 있지, 넘기고 아이들 부탁도 대부분 잘 들어주죠. 다만 상대의 생각을 묻는 대화를 많이 하는 게 아니고 자신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이야기를 주로 해요. 저는 주로 듣는 편이다가 필요할 때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죠. 남편이 말이 많아서 화목이 유지되는 부분은 고맙지만, 내 기분도 좀 물어봤으면 좋겠어요(웃음). 저는 인간관계에서 남의 눈빛만 스쳐도 상대의 마음을 미루어 짐작하는 사람이라 힘든데, 남편은 늘 편해 보여요. 나도 저렇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부러울 때도 있어요.

SNS에 “육아처럼 명료하게 정리할 수도 만족할 수도 없는 일이 있을까”라고 글을 쓴 적이 있지요. 일을 할 때는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빠르게 판단한다고 했어요. 육아는 좀더 고민이 깊은 편이에요? 

일이든 육아든 큰 덩어리를 결정하는 건 과감해요. 어느 날 아이가 “엄마 나 제주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면 사실 저한테는 뜬금없잖아요. 근데 그 이유를 듣고 쉽게 결정했어요. “그래 너는 거기 가서 잘할 수 있을 거 같네. 대신 네가 가고 싶어 결정했으니 책임도 네가 져야 돼. 최선을 다해 봐.” 그런데 아이가 선생님하고 무슨 일이 생겼다거나 친구와 오해가 생기는 소소하고 세밀한 일에 대응하는 건 취약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아이들이 초등 저학년 때가 육아의 황금기 같아요. 직접 매시간 육아를 하지 못해도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최대한 가깝게 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이면 괜찮아요. 그 시기를 지나는 부모들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가져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아이들 셋 다 10대가 된 지금은 정신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기분이에요. 아이들이 저학년 때는 학교에 갈 일이 많지 않고, 바쁠 때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기도 했는데, 중학생이 되고 대학까지 이어지는 레이스다 보니 제가 직접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어요. 아이들도 관계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아서 부모로서 정신적으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으면 힘들어해요. 아이들이 순한 편이지만 눈빛으로 제압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어요. 사춘기라 미묘한 티격태격도 있고요. 아이 눈치를 살피면서 부모가 강하게 잡아주거나 부드럽게 풀어주지 않으면 이 아이가 마음이 어렵겠구나, 저는 거기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아이의 관계에 깊이 공감하는 편이군요.

네. 대개 부모들은 아이들과 가장 밀접하게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어떠한 것이든 가장 힘든 순간, 먼저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거예요. 첫째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고, 둘째는 너무 조용한 아이, 셋째는 딱 그 중간으로 친한 친구 한두 명이랑 어울려 다니는 편이에요. 아무리 인기가 많아도 친구들과의 문제가 있고 과묵한 성향이어도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을 수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 불안과 두려움이 커요. 아이들이 좋은 선택을 했으면 좋겠는데, 저도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 상황은 내가 닥치고 있는 게 아니고, 물론 아이를 믿지만 제가 알지 못하는 아이의 면모도 있잖아요. 보통은 아이들이 친구와 어려움을 겪으면 “근데 그건 나라도 섭섭할 것 같아. 나는 그 친구의 마음을 좀 이해해.” 이렇게 말해요. 상대방 상황을 말해야 아이들도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볼 수 있잖아요. 근데 그렇게만 말하면 아이가 속상해하니까 어떤 때는 “그래 너도 좀 속상했겠다.” 위로하다가 갑자기 화를 내기도 해요(웃음). 중심을 잡기 힘드네요. 갈수록 상황이 심화되는데 중재자로서 지혜가 아직 부족해요. 내 딴에는 최선의 선택 지혜를 발휘해 보려고 노력하는데 세 명이 고민하는 상황이 모두 다르고 깊이가 점점 깊어지니 진짜 보통 일이 아니에요(웃음).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 안에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일하고 가족을 챙기며 살아가는 거 같아요. 조금 먼 미래의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10년 후쯤 바라온 가족의 모습이 있나요?

10년 뒤면 제가 55세예요. 그때까지가 일을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할 수 있는 나이 같아요. 저는 사업가는 기동력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자기 직관에 대한 확신, 이것이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40대 중반이 되니 주변에 고민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점점 기동력이 떨어져요. 10년 내 모든 것을 걸고 열심히 일해보고 싶어요. 남편도 그렇게 열심히 살아냈으면 좋겠고요. 대학생이 된 아이들은 상상이 잘 안돼요. 세 아이를 키워 보니까 중간을 가는 게 제일 어렵더라고요. 모든 것에서 보통의 삶을 살면 좋겠어요. 어떤 일을 하는지는 상관없고 몸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몸이 단단해야 정신도 건강할 테니까요.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여도 정신력이 강한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요. 우리 가족이 제일 좋아하는 도시가 예루살렘이라 해마다 그곳에 가요. 그때도 같이 가면 좋겠네요. 각자 일상에 충실하다가 예루살렘에서 모두 만나 여행하는 거예요. 걷고 쉬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 만족스러울 거 같아요.

MY HEALTH ITEMS

1 자전거 메리다 스컬트라 100
걷는 템포로 보는 세상과 차에 타고 달리며 보는 경치, 자전거의 속도로 바라보는 주변이 다르잖아요. 자전거를 타고 내다보는 풍경을 좋아해요.

2 룰루레몬 러닝벨트
러닝을 좋아하기 시작하면서 무산소랑 유산소 운동을 병행할 때 딱 휴대폰만 챙길 수 있는 가방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룰루레몬에 허리에 차는 제품이 있더라고요. 자전거 타거나 러닝 할 때 이 가방만 허리에 두르면 편해요.

3 애플워치
웨이트를 시작할 때 남편이 선물로 줬어요. 운동의 기록이 남잖아요. 저에게 운동의 시작을 상징하는 애플워치라 매일 차면서 소중하게 여기고 있어요.

4 뉴발란스 CM1600RC
접지력이 좋고 발이 편하면서 따뜻한 신발을 찾고 있었어요. 제가 손발이 좀 많이 차거든요. 수족냉증이 있고 겨울에는 항상 동상이 걸려요. 발이 늘 가렵고 아픈데 이 운동화는 너무 따뜻해서 좋아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