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nist Grandma

이토록 오롯한 겨울
작가·유튜버 김겨울

좋아하는 걸 수호하는 몸짓은 아름답다. 김겨울 작가가 취미에서 찾는 건 오롯한 기쁨이자 순수한 즐거움이었고, 그건 그를 웃게 하는 쉼 같았다. 여기에 적어둔다. 춤과 피아노를 이야기하는 김겨울의 얼굴이 얼마나 해사했는지. 누구도 그에게 피아노를 잘 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피아노 잘 치는 할머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쉼표를 만들며

살아가는 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테니 평범하게 자기소개로 시작해 볼까요?

제 소개를 너무 많이 하고 살아서 이젠 자동으로 나와요(웃음). 저는 김겨울이라고 하고요. 유튜브에서 ‘겨울서점’이라는 채널을 하고 있어요. MBC 라디오에서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 디제이를 맡고, 라디오 게스트도 몇 군데 나가고 있어요. 몇 권의 책도 썼고요.

 

소개에 뮤지션 이야기가 없네요?

지금은 활동을 안 하니까요. 꾸준히 음악을 해야 그래도 뮤지션이라 얘기할 명분이 생기는데, 안 한 지 오래되어서 얘기하기 좀 민망하네요.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해서 소개하는 편이군요.

보통은 그렇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음악은 사실 다시 하겠다는 마음이 지금은 크게 없어요. 지속적인 커리어로 생각하고 있으면 이야기할 텐데 그런 게 아니어서 얘기를 잘 안 해요. 포털사이트에 제 이름을 검색하면 이력이 다 나오니까 강연 같은 델 가면 뮤지션이라고 꼭 소개해 주시더라고요(웃음). 그럴 때 되게 쑥스러워요. 하지만 유튜버나 작가는 지금 저에게 분명한 직업이죠.

 

김겨울’이라는 활동명을 지을 때 큰 고민이 없으셨다고요. “ㄱ과 ㅕ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고 ㅇ과 ㄹ에서 따뜻한 울림이 돈다.”는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문자의 형태보다 소리에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제 본명이 좀 흔해서 음악 할 때 쓸 이름을 새로 지으려 했는데요. 고민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걸 하나씩 떠올려 봤어요. 쓸 만한 이름을 찾다가 겨울이란 계절을 좋아하니까 겨울로 하면 어떨까 싶어서 검색을 해봤거든요. 김겨울로 검색했는데 많이 나오지 않았고, 특히 뮤지션으론 아무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써야겠다 했어요. 겨울도 좋아하고 어감도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제 김겨울로 꽤 오랜 시간을 지내오셨잖아요. 이 이름에 어떤 뜻을 붙여보고 싶어요?

예전에 인상 깊은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김겨울의 글과 말에선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서늘함과 포근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 문장들이 따듯한 위로로 느껴져서 신기하다.”는 맥락이었는데요. 그런 서늘함과 따뜻함이 공존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겨울은 차가우면서도 따듯한 계절이기도 하고요.

 

직업은 생계랑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여러 인터뷰에서 유튜브 수익이 많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도 유튜버라고 본인을 소개했어요. 직업의 1순위가 수익은 아닌 듯한데, 어떤 요소를 특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는 20대 때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하면서 살았는데, 그걸 직업이라 부르진 않았어요. 오랫동안 취미로 글을 열심히 썼지만 그게 돈이 되진 않았기 때문에 그땐 제 직업을 작가라고 소개하지는 않았고요. 돈을 버는 동시에, 자신이 그것을 장기적인 커리어라고 인식하고 있을 때 직업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유튜버로 버는 돈이 많지는 않은데… 정확히는 돈은 벌지만 제작비로 다 나가는 구조예요. ‘이만큼’을 벌면 그대로 ‘이만큼’을 쓰죠. 하지만 외부 활동을 할 때 유튜버는 제 중요한 명함이 되기 때문에 저에겐 분명한 직업이에요.

지속성도 직업의 중요한 요소로 보는군요. 유튜브라는 플랫폼은 사실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잖아요. 어떤 면에선 불안정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음, 장기적이라는 게 꼭 미래에도 유지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지금껏 제가 장기적으로 해오고 있다는 뜻이죠. 유튜브를 시작한 1년 정도는 저를 유튜버라고 소개하진 않았어요. 유튜브 수익 기준이 안 돼서 돈이 전혀 안 됐거든요. 그러다 2-3년 차가 되면서 유튜버라 말할 수 있게 됐는데요. 그걸로 돈을 벌게 됐기에 수익성이 있고, 벌써 5년 차가 되어가니까 지속성도 생겼죠. 이젠 직업이라고 말할 정도의 커리어가 됐다고 봐요.

 

겨울서점은 책을 콘텐츠로 다루는 ‘북튜브’예요. 책을 읽고 콘텐츠를 기획하는 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 거 같은데, 하루를 어떻게 꾸리고 있어요?

그날그날 좀 다른데요. 어제는 새벽까지 편집을 하다 잤고…보통은 아침에 일어나서 오전에 이메일에 답장하려고 해요. 날마다 메일이 수십 통씩 오니까 웬만하면 오전에 답하고 그다음엔 그날그날 해야 할 것들을 처리하죠. 원고 마감이 있으면 원고를 쓰고, 유튜브 촬영하면 편집을 하고, 강연이 있으면 강연 나가고, 라디오 녹음이 있으면 방송국에 가고요. 보통 그날의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저녁 9시, 10시쯤 되는데요. 그럼 못 한 나머지 일들을 시작해요. 아침 먹고 일하고, 점심 먹고 일하고, 저녁 먹고 일하고 잠드는 루틴(웃음).

 

이번 주제어가 ‘취미’, 그리고 여가’인데… 쉴 틈이 없어 보여요(웃음). 쉴 때는 보통 뭘 하세요?

책 읽죠. 영상 편집 창을 띄워 놓고 여섯 시간, 일곱 시간 일하고 있으면 책이 너무너무 읽고 싶어요. 책을 콘텐츠로 유튜브를 하는데, 오히려 유튜브 때문에 책 읽을 시간이 없단 자각을 자주 하거든요. 영상 올리려고 책을 읽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주말엔 그래도 의식적으로 쉬려하는 편이라 일요일 아침이면 러닝도 하고 조용한 곳에서 책도 읽어요. 보통은 책이 여가의 1순위고, 그다음에 몸을 움직이는 일이나 운동을 하고, 춤을 추고, 피아노를 치면서 지내요. 근데 사실 일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이런 일들은 미리 시간을 확보해 놓지 않으면 안 하게 돼요. 할 시간이 없거든요. 그러고 싶지 않아서 피아노는 꼬박꼬박 레슨을 매주 두 번씩 받고, 춤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연습하고 있죠.

 

취미 생활을 위해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거네요.

그렇죠. 근데 어떤 사람이든 여가는 일부러 만들어 내고 있을거 예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하는 걸 취미라 하진 않잖아요. 가만히 누워 있는 걸 취미라 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러니까 본인이 신경 쓰지 않으면 결국은 여가도 가지기 힘들지 않나 싶어요. 일을 많이 하든, 적게 하든 취미를 위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마련해 놓아야 가능한 거죠.

 

그럼 일도, 여가도 아닌 오롯하게 쉬는 시간도 따로 만드나요? 

언젠가 이렇게 열심히만 살면 안 되겠단 자각이 와서 지금은 달력에 미리 표시해 두고 하루 정도는 온전히 쉬려고 해요. 일주일에 하루, 길면 열흘에 하루 정도는요. 그날은 쉬는 날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일 관련 연락도 대체로 받지 않아요. 그냥 누워만 있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죠. 유튜브도 잠깐 보고요. 이런 시간이 없으면 버틸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게 됐어요.

놀이하는 사람의

순수한 기쁨

《독서의 기쁨》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많은 독자들이 한 가지 분야를 편식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 그러나 독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능력은 서로 다른 영역의 정보와 감정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내지 않고 그 배경을 파악할 것을 권장하지요. 독서를 가벼운 취미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지금의 저에게는 독서가 취미이기만 한 건 아니죠. 아무래도 업무의 성격이 생겼기 때문에 독서도 여러 갈래로 나뉘어요. 이 독서는 일을 하기 위한 독서, 이 독서는 공부하기 위한 독서, 이 독서는 재미를 위한 독서, 이 독서는 길티 플레저(웃음)…. 저는 어릴 때부터 편독이 없었어요. 다양하게 읽는 걸 좋아해서 가리지 않고 많이 읽었죠. 자기 계발서까지 다 챙겨 읽던 시절이 있었어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이런 책도 읽었고요(웃음). 그래서 장르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데요. 그걸 읽는 제 마음가짐은 그때그때 다른 거죠. 예를 들어 라디오 게스트가 고른 책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저는 최선을 다해서 읽어야 하지만 제가 소개할 필요는 없으니까 디제이로서의 소임을 다할 정도로만 읽죠. 또, 유튜버로 책 소개를 해야 한다면 읽은 책을 다시 확인해 봐요. 제가 표시했던 부분을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하는 거죠. 그리고 진짜 즐기는 독서는 아무 생각 없이 읽어요. 나름대로 정리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읽죠.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독서가 좀 달라지는 거네요.

강연할 때 많이 하는 얘기가 있는데 ‘모든 독서는 독서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거예요. 독서를 어떻게 경험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거든요. 누군가 제게 책 읽는 방법에 대해 묻는다면 답은 해줄 수 있지만, 제가 권유하는 방식이 정답은 아니에요. 각자 필요한, 혹은 좋아할 만한 독서가 있으니까요. 그게 독서의 좋은 점이에요.

 

팔에 타투가 보이는데 무슨 의미예요? 왠지 책의 한 구절일 것 같아요.

맞아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있는 문장이에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시간이여.”라는 의미인데 라틴어로 새겼어요. 제가 좋아하는 문장이죠.

 

역시 책이었군요. 책벌레로 유명한 겨울 씨 어린 시절 사진이 있죠. 양손에 수지침을 맞으면서도 책을 보겠다고 발로 책을 펴고 읽는 사진(웃음).

그 사진 보여드릴까요? 인스타그램에도 올렸는데…. (핸드폰에서 사진을 찾는다.) 진짜 지독하죠? 이 사진은 봐도 봐도 웃겨요. 힘준 엄지발가락 좀 보세요(웃음).

순간을 포착한 부모님도 대단하신 거 같아요.

그러니까요. 찍으면서 얼마나 웃겼을까요. 이 사진 시리즈가 두 장인데요. 이렇게 책에 푹 빠져 있는 모습이랑 다른 하나는 이름을 부르신 것 같은데, 제가 카메라 보고 빙긋 웃는 사진이 하나 더 있어요. 사진을 처음 본 날 어찌나 빵 터졌는지 ‘참, 나도 나다….’ 싶더라고요. 이렇게 발가락으로 책을 안정적으로 고정하는 걸 보면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잖아요(웃음). 발로 책장을 넘기는 게 결코 쉽진 않거든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수지침을 자주 놔주셔서 양손을 못 쓸 때가 종종 있었거든요. 감기 기운이 있거나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그런 상태에서도 이렇게 발을 손처럼 쓰면서 책을 읽은 거예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게 한눈에 보여요. 어린 시절엔 어떤 책들을 읽었어요?

어린이용 동화를 읽은 기억은 별로 없고, 글밥이 많은 책으로 바로 넘어간 것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제일 오래된 작품은 양귀자 선생님의 《누리야 누리야》예요. 학교 도서실에서 읽고 대성통곡을 한 기억이 나요. 또…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이런 베스트셀러 종류도 많이 봤어요. 그리고 음모론 책도요. 음모론을 다룬 것 중에 재미있는 책이 많거든요. 아, 집에 있던 옛날 버전 《코스모스》를 읽은 기억도 나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들춰보고 그랬거든요. 집에 책이 많은 건 아니어서 집에 있던 약간의 책과 학교 도서실에 있는 책들, 그리고 이동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다양하게 읽었어요. 

 

세상에 취미라 부를 만한 활동은 참 많은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를 테고, 한 사람이 여러 개를 할 수도 있겠죠. 겨울님만 해도 독서, 춤, 피아노, 달리기 등 다양하잖아요. 취미를 뭐라고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삶에 윤기를 주는 거요. 그런데 사실 제가 가지고 있는 취미들은 기원이 좀 슬퍼요. ‘이거 한번 해 볼까.’ 하고 가볍게 도전한 게 아니라 피아노를 치는 것도, 춤추는 것도 어릴 때부터 미래를 생각하며 해온 것들이거든요. 그 꿈이 타인의 의지로 좌절된 경험 때문에 다시 취미로 만들기까지 시간이 참 오래 걸렸어요. 마음의 준비를 위한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죠. 그 시기를 지나서야 미련 없이 이 활동들을 할 수 있게 됐어요. 사실 사연 없이 순수하게 취미라고 부를 만한 건 날씨 좋은 날뛰는 거…? 아, 만년필 좋아하는 것도요.

‘대낳괴(대치동이 낳은 괴물)의 학창 시절’이란 제목으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한 적이 있죠. 그게 방금 이야기한 “슬픈 기원”일 것 같아요. 부모님 교육관에 따라 그 시절 꿈이던 피아노 학원을 끊고 영어 과외를 받게 되었고,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만 하는 삶이 시작되었다고요. ‘공부가 아닌 모든 걸 좋아했던 것 같다.’는 말이 계속 마음에 남더라고요.

좋아하는 일을 할 때랑 하지 못할 때는 다른 방식으로 불행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좋아하는 걸 취미로 못 하면 못 해서 괴롭고, 취미로 즐기면 미련을 버려야 해서 괴롭다는 거죠. 반쯤 농담이고요(웃음). 어떤 상황이든 좋아하는 일은 하는 게 훨씬 좋아요. 피아노와 춤은 외부 환경으로 그만둔 거였고, 학창 시절 내내 공부만 하는 삶을 살았기에, 또 개인적인 이유로 10대 후반엔 마음이 많이 불안정했거든요. 지금은 나이를 먹어서 다행이란 생각을 자주 해요. 제가 피아노를 열심히 친다고 갑자기 쇼팽 콩쿠르를 나갈 순 없으니까요. 누군가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오롯한 취미로 즐길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이걸 전공으로 하는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이제는 아니까요.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면서 당연히 피아니스트가 될 줄 알았고, 춤이 좋아서 예고에 가고 싶었거든요. 근데 지금은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게 됐다는 데 감회가 새로워요. 

 

경쟁에서 오는 성취가 아니라 스스로 해나가는 데서 순수한 성취를 느끼는 것 같아요.

맞아요. 꾸준히 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일단은 기분 좋은 일이고 계속하다 보면 그게 뭐든 분명히 늘거든요. 거기서 오는 기쁨도 있고요. ‘내가 잘해 나가고 있다.’라는, 부담 가질 필요가 없는 순수한 기쁨들 덕분에 좋아하는 일은 하는 쪽이 훨씬 행복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삶에 의욕도 생기고요. 피아노 다시 배우고 6개월 정도 됐을 때 문득 돈을 열심히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레슨비를 내야 하니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고요. 

 

삶을 긍정하게 해주는 거네요.

사람들은 이제 쓸모없는 일들을 안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독서도 쓸모가 있어야 하고, 취미도 스펙이 되길 바라는 것 같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쓸모만 가지고는 살 수가 없어요. 우리가 이 삶의 모든 순간을 그렇게 치환하기 시작하면 삶이 너무 힘들어지고 마음이 메마르는 것 같아요. 요즘 시대는 우리가 어떤 것에 매달리거나 귀속되고 싶도록 만드는데요. 그렇지 않은, 순수한 시간으로 삶에 윤기를 더하는 활동이 취미라고 생각해요. 좀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내가 인간이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활동.

 

바쁘면 자연스레 취미에 소홀해지게 되는데 그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취미로 마음에 여유를 느끼는 것 또한 쓸모 있는 일이잖아요. 근데 언젠가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없으면 꼭 필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아요.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가 ‘놀이하는 인간’이란 개념을 주창하면서 이렇게 말해요. 놀이를 즐기는 건 인간에게 너무 중요한 속성이라고요. 놀이하는 시간에 우리는 인간으로 존재하고, 다른 복잡한 걸 고려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어쨌든 취미라는 건 인생에 윤기를 불어넣어 주는 게 아닐까요?

최근에는 어떤 취미를 즐겼어요? 

가장 최근에… 아무래도 매주 두 번씩 주기적으로 레슨받는 피아노겠죠? 그리고 춤이요. 피아노랑 춤은 꾸준히 하려고 해요. 

 

얼마 전에 태민 ‘Advice’ 커버 댄스 영상을 올렸죠. 춤추는 자아에 관해 좀더 알고 싶어요. 춤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초등학생 때 우연히 친구랑 학원에 등록하면서 시작한 거였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배웠는데, “저 해볼래요!” 하고 시작한 거지만 처음엔 좀 무서웠어요. 근데 하다 보니까 너무 즐겁더라고요. 재미도 있고, 또 제가 잘 췄어요(웃음). 모든 동작을 곧잘 따라 하고 안무도 빨리 외웠거든요. ‘이게 될까?’ 싶은 동작도 ‘이게 되네!’가 되니까 너무 재밌는 거예요. 재미와 실력이 다 있는 영역이니까 순식간에 빠져들었죠. 댄스 학원을 2년 넘게 다니다가 중학교 가서는 동아리에 가입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듣고, 동아리에서 따로 연습도 하고, 청소년 댄스팀에서 섭외가 와서 무대에도 섰죠. 원체 무대를 좋아하던 아이여서 무대에 서는 게 진짜 즐거웠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까진 사시나무 떨듯 떠는데,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하는 애였어요. 고작 3-4분 무대에 오르려고 몇 달을 연습하는데, 무대에 올라가서 박수와 환호를 받으면… 하나도 안 힘들어요.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게 느껴져요. 

 

어릴 땐 무대에 설 기회도 있었지만 지금은 보여주려면 따로 영상을 촬영하는 수고가 필요하잖아요. 혼자 하는 활동이 된 셈인데 좀 다른 점이 있나요?

춤이라는 게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속성도 있지만 더 큰 건 나를 훈련하는 속성이거든요. 어떤 동작이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차근차근 연습하는 일종의 성장이고 발전이죠. 준비 과정이 재미있기 때문에 꾸준히 할 수 있는 거예요. 반면 지금은 무대에 서는 건 아니지만 노력하는 재미가 있어요. 동작을 조금 더 완벽하게 해보려고 하고… 그래서인지 늘 아쉬움이 남아요.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이거보다 잘할 수 있는데.’ 같은 마음이 있어서요. 춤은 결국 디테일이어서 아주 작은 디테일에서 퀄리티가 결정되거든요.

 

춤은 외향적인 활동이어서 피아노 치는 자아와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듣다 보니 둘 다 나를 파고드는 취미 같아요.

맞아요. 많은 사람이 춤추는 게 엄청 외향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오히려 나한테 굉장히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내향적이에요. 사람들과 뭔가를 하는 게 아니라 내 완성도를 계속 높여가는 일이거든요. 많은 사람이 제 춤추는 영상을 보고 놀라시는데(웃음) 가만히 책만 읽을 것 같은 이미지여서 의외라는 반응이 많아요. 근데, 독서도 춤도 모두 자기한테 집중하는 시간이기에 근본적으로는 피아노 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거든요. 저는 오히려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요. “춤추는 게 왜 외향적이라고 생각하세요?” 외향적이라면 무대에 올라가는 것 정돈데, 무대에 오를 때의 즐거움도 온전히 외향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무대에서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오가는 에너지는 있겠지만 직접적인 소통은 아닌 거죠.

 

지금껏 이야기한 취미들이 모두 ‘나를 단단하게 쌓아가는 일’ 같아요. 취미는 나를 사랑하는 활동인 듯도 한데요. “취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길 해주고 싶어요?

“진짜 좋은데 어떻게, 말로 표현을 못 하겠네(웃음).” 사실 취미가 없어도 돼요. 책? 안 봐도 돼요. 안 읽어도 사는 데 문제는 없지만, 있으면 참 좋거든요. 하지만 제가 사람들에게 아무리 책 읽는 게 좋다고 이야기해도 본인이 느끼지 못하면 실감할 수 없어요. 근데 그 기쁨을 한 번 느끼면 누가 권유하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순수하게 기쁜 그 과정을 즐기는 마음, 아무것도 결부되지 않은 성취의 즐거움, 거기서 오는 아주 순수한 기쁨이 있거든요. 시험만 안 보면 공부도 참 재밌어요. 순수한 앎의 기쁨이 있으니까요. 근데 우리는 시험을 봐야 하고, 졸업을 위해 논문도 써야 하고, 그래서 공부가 재미 없어지는 거예요. 취미도 비슷한 거 같아요. 인간의 마음이 참 간사해서 즐기는 대신 뭔가를 해야 한다고 하면 그 활동이 재미가 없어져요. 구독자들에게 제가 “유튜브 보고 감상문 써서 제출하세요.” 하면 세상에서 유튜브가 제일 재미없는 게 될걸요? 진짜 취미의 기쁨은 강제되지 않는다는 데 있어요.

성실, 염치, 진리, 정의

그리고 피아노 치는 할머니

한 인터뷰에서 “삶에서 내가 아닌 것들을 줄여나가고 내가 나라고 느끼는 부분을 늘려나가는 것이 일관된 목표다.”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려면 나를 잘 탐구하고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되게 오래 고민한 주제예요. 나를 잘 알기 위해선 나한테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해요.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나는 왜 이런 걸 싫어하지?’, ‘난 왜 이런 걸 원하지?’…. 본인에게 계속 질문하다 보면 결국은 더 깊은 취미로 가게 되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인문학 책을 좋아하는 저에게 ‘인문학 책을 왜 좋아하지?’ 하고 물으면 ‘인간이란 존재에 관심이 많으니까.’라는 답을 하게 되고, ‘인간이란 존재에 왜 관심이 많지?’ 하고 꼬리를 물어 계속 질문하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면 나를 이루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가치만 남는 순간이 와요. 여기서 중요한 건 이 질문들을 시간이 지나 저에게 다시 던지면서 갱신해 나가는 거예요. 그렇게 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글쓰기 같아요. 글을 쓰면서 계속 내 안으로 들어가는 훈련을 많이 하게 됐거든요. 좋아하는 문장을 베껴 쓰면서 ‘이게 왜 좋지?’라는 질문도 해보고, 질문하다 보면 가지를 치듯 또 다른 질문이 생겨나는 경험을 하게 돼요. 특히 삶의 유한성에 대해 인식할 때 이런 활동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기간이 아주 명확하게 있었고, 그때 글쓰기를 통해 안정을 찾고 제 마음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그렇게 나를 알아가다 보면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닿게 될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의 《명상록》을 많이 인용하는 편인데요.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머지않아 너는 죽을 것이고 이름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실과 염치와 정의와 진리는 길이 넓은 대지에서 올림푸스로 가게 될 것이니…” 올림푸스는 신의 세계잖아요. 결국 성실, 염치, 정의, 진리가 영원한 가치라는 건데요. 저는 인간 삶이 엄청나게 거창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이렇게 넓은 우주에서 티끌만 한 행성에서 태어나 단 한 번 살아가는 인생인데 잠깐 꽁냥꽁냥하다 죽더라도 짧은 시간 잘 살다 떠나면 그걸로 되는 게 아닐까 싶죠. 그 기준을 성실, 염치, 정의, 진리 네 개에서 찾으려 해요. 그 결과는 제 삶에 좀더 집중하는 사람이고 싶은 거고요.

 

글쓰기로 마음을 들여다본다고 했는데요. 책, SNS, 노랫말, 시… 다양한 글을 쓰며 지내잖아요. 생활로서의 글쓰기와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는 어떻게 달라요?

일단 돈 받고 쓰는 글은 돈값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돈값”이라는 게 뭘까요?

나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요. 나 좋자고 쓰는 글은 일기장에 쓰면 되지만, 돈 받고 쓰는 글은 그래서는 안 돼요. 그게 작가의 자세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글을 읽고 ‘값어치 했다.’고 느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포인트가 하나 있어야겠죠. 재미가 있든지, 문장이 좋든지, 몰랐던 관점을 알게 된다든지…. 뭐가 됐든 최소한 하나는 얻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건 마감이에요. 반드시 지켜야 하죠. 그러니까 첫째 요소가 퀄리티라면, 둘째 요소는 완성도와 속도일 거예요. 근데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킬 순 없어요. 결정을 해야 하죠. 저한테 글을 맡기는 사람 입장에서는 120퍼센트를 해내지만 마감에 늦는 사람보다는 80퍼센트를 해도 매번 마감을 지키는 사람이 훨씬 좋을 거예요. 돈 받고 글 쓰는 사람은 ‘더 좋은 글을 쓰겠어.’라는 마음으로 마감을 넘기기 쉬운데요. 그건 프로답지 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어느 선에선 퀄리티와 마감 사이에서 반드시 타협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매번 일정 수준 이상을 쓰는 게 중요해요. 그러니까, 매번 100을 쓸 수는 없어도 언제나 80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글을 쓰는 거. 

 

마감을 어긴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거의 없어요. 지금까지 다섯 손가락에 꼽는 것 같아요. 그 다섯 번도 미리 메일로 양해를 구했어요. 그럼 보통은 양해해 주시거든요. 저는 책이 아닌 짧은 글들은 거의 마감을 어기지 않아요.

지금 라디오 디제이 활동도 하고 있어요. 어릴 때 즐겨 듣던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기도 하고요. 꿈꾸는 기분일 거 같아요.

막상 하면 실감이 잘 안 나요. 방송국에 가더라도 부스 안에 있는 사람은 디제이, 피디, 작가, 게스트 정도거든요. 그래서 전국으로 송출될 거란 걸 크게 실감하기 어렵죠. 사연을 받거나 SNS 같은 데서 소식을 볼 때야 ‘아, 이거 라디오지. 사람들이 듣고 있지.’ 하고 자각하게 되죠. 그럴 때마다 감개무량해요. 말씀하신 대로 저는 어릴 때 라디오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등하굣길에 매일 듣는 건 물론이고 수업 시간에도 몰래 들었어요(웃음). <푸른밤>이나 <음악 도시> 같은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자랐고, 이동진 평론가가 하는 프로그램은 전부 챙겨 들었죠. 아마 지금 누군가는 <푸른밤>을 들으면서 저를 그런 롤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제가 하는 방송을 어떤 청취자는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신기해요.

 

라디오도, 유튜브도, 작가도 어쨌든 노출되는 직업이다 보니 악플을 피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그럴 땐 차단이 짱입니다. 차단 최고. 볼 것도 없어요. ‘나 마음에 안 들어? 보지 마세요.’ 물론 차단하는 건 사용자가 아니라 댓글이어서 그 사람은 언제든 제 영상을 다시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마음 편해요. 유튜브 2-3년 차까지는 저도 고민이 많았어요. 이걸 일일이 다 차단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고, 좀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근데요, 내 채널이니까 내 맘이 편한 게 가장 중요해요. 댓글을 보면 진심으로 조언하려는 사람과 상처 주겠다고 작정한 건 분명히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많은 콘텐츠 창작자가 콘텐츠에 악플이 달리면 활동 초중반에는 많이들 맞서 싸우고 싶어 해요. 근데 싸우면 안 돼요. 일일이 대응하거나 댓글을 달면 오히려 피곤해져요. 꼬리 잡히기 쉽고요. 겨울서점은 특이하게 정성스럽게 상처 주고 싶어 하는 악플러들이 많은데요. 내가 너를 이기겠다, 너한테 일침을 놓겠다, 네가 모르는 걸 난 알고 있다는 걸 되게 정성스럽게 어필하시는데, 차단입니다. 안녕히 가세요(웃음).

 

그렇게 되기까지 많은 일을 겪었을 것 같아요.

별일이 다 있었어요. 사람들 앞에 얼굴과 이름이 공개된다는 게 이런 일이구나,라는 걸 느낄 에피소드가 몇 개 있었죠. 출판사에 전화해선 제가 참여한 책을 전량 회수하지 않으면 분신자살하신다는 분도 있었고…. 이런 특이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여성 유튜버다 보니까 성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사람도 많아요. 성희롱이나 페미니스트에 관한 공격이 그렇고요. 페미니스트 이야기는 심심하면 나오는데 공격성을 띤 댓글은 전부 차단해요. 제 구독자분들이 악플에 대댓글을 다는 경우도 있는데요. 웬만하면 댓글 창에서 싸우거나 갈등이 일어나지 않았음 해서 열심히 차단하고 있어요.

댓글을 일일이 확인하시는군요.

원래는 전부 확인했어요. 근데 그걸 다 보고 있자니 제가 상처를 너무 많이 받더라고요. 한동안 스트레스가 심하게 와서 유튜브 관리자 탭에 아예 접속하지 못한 시절도 있었죠. 댓글이 아니더라도 조회 수나 ‘좋아요’ 같은 걸로 매주 평가받는 기분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 거기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아서 몇 달간은 영상이 잘 올라갔는지만 확인하며 지냈죠. 소셜미디어에 이름 검색도 안 하고, 저와 관련된 해시태그도 언팔로우하고…. 트라우마가 크게 남을 일을 몇 번 겪다 보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도 지금은 어느 정도 절충이 돼서 영상 올리고 한 사흘 정도는 반응을 체크해요. 초기에는 나쁜 댓글이 많지 않거든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구독자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초기 댓글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어쩌다 악플을 보면 차단하죠. 그래서 놓친 댓글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단 생각으로 저를 위해 그냥 두고 있어요.

 

어느 인터뷰에서 유튜버가 “가장 사회적인 캐릭터”라고 했어요. 어쩔 수 없이 관계와 소통을 생각하게 될 듯한데요. 구독자와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려고 해요?

꾸준히 겨울서점을 구독해 주시는 분들은 제가 꾸려놓은 세계를 좋아하는 거니까, 그 좋아해 주는 마음에 값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자주 해요. 저도 완벽한 인간은 아니니까 항상 만족스러울 순 없겠죠.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보답해 주고 싶어요. 다만, 그 보답이 내가 아닌 걸 억지로 하는 종류는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죠. 그런 건 다 티가 나니까요.

 

아마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요,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도.

맞아요. 저도 요새 많이 느껴요. 제가 이걸 계속하는 거 자체가 누군가에겐 의미 있는 일일 거예요. 그래서 저도 조회 수가 많든 적든, 구독자가 늘든 그렇지 않든 계속 꾸준히 한다는 데 의미를 두는 거죠. 제 콘텐츠가 계속 올라오는 것이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구나, 위로가 되는구나, 내가 여기 있는 게 중요한 일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이젠 영상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들을 해나가면서 이 자릴 지키려고요. 제가 원하는 거, 제가 좋아하는 걸 잘 살피면서요. 그게 제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어릴 때 듣던 라디오 디제이, 게스트들은 그 일을 몇 년 동안 계속했고, 바로 제가 거기서 힘을 얻었잖아요. 어쩌다 못 듣는 날에도 그들은 방송을 준비하고 라디오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아는 게 제겐 큰 힘이었거든요. 어쨌든 달려가기만 하면 누군가 함께 있어 주겠구나,라는 생각을 요즘 좀 많이 하게 됐어요.

 

“값하는 사람이 되자.”라고 말씀하셨는데 2019년에도 어느 인터뷰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어요. “운에 합당한 사람이 되자.”고요. 많은 사람이 관심 갖고 사랑받는 것이 운이라고 생각하세요?

운도 크죠. 저는 인간 삶의 많은 부분이 운이라고 생각해요.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사실 되지 않을 일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운이 없어서 안 되는 사람도 있죠. 노력의 가치를 폄하하는 게 아니라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성취를 운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슨 말이냐 하면, 제가 유튜브를 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잖아요. 매주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그 외 수많은 부수적인 업무를 수년째 해온 건 분명히 노력이거든요. 생각해 보면 제가 유튜브를 하는 데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요소는 운이에요. 가장 먼저 제 목소리가 그래요. 목소리는 타고난 운이잖아요. 말을 잘하거나 글을 잘 쓴다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훈련할 수는 있지만, 언어 능력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운이 좋게도 그런 부분을 타고난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제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제 외모나 어떤 부분에 큰 콤플렉스가 있거나 스스로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이렇게 얼굴을 노출하며 방송할 수 있었을까요. 근본적인 차원에선 너무 많은 게 운인 거죠.

타고난 부분을 노력과 함께 이야기하는 게 너무 좋네요. 좀더 들려주실래요?

저는 결정도 빨리하는 편이고 실행도 되게 빠른 편이에요. 그리고 효율적인 길을 잘 찾는 편이죠. 이것도 모두 타고난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서울에 사는 것까지도 운이 좋았던 거라 보고요. 지방에 비해 책 관련 행사나 인프라가 많고, 업무상 미팅, 인터뷰, 강연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잖아요. 이건 기본적으로 세팅된 환경인 건데 이 모든 걸 “제 노력으로 했습니다.”라고 하는 게 맞는 건가 싶어요. 어떤 일이든, 누가 어떤 일을 하든 운은 무시할 수 없다고 봐요.

 

김하나 작가님이 “내가 만들어낸 성취를 당당하게 자랑스러워하고 그에 대한 인정을 기쁘게 받아들이자.”고 했죠. “우리에겐 아직, 겸손할 권리가 없다.”면서요. 지금 그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것 같아요. 좀더 자랑스러워해 주세요(웃음).

겨울서점이 구독자 20만을 넘었잖아요. 이거면 대단한 성취 아닌가요(웃음)? 북튜브 채널로는 정말 어려운 수치라고 생각해요. 이걸 명함으로 공중파 라디오 디제이도 하고, 지면에 글도 쓰고, 책도 내고… 북튜버로 할 수 있는 가장 빛나는 커리어를 쌓고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저는 제 성취를 과소평가하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어요. 일부러 더 그렇게 생각하려고도 하고요.

 

2019년 다짐이 ‘운에 합당한 사람이 되자.’였다면 2021년 다짐은 뭐였어요?

건강하자.

 

건강하셨나요?

완벽하진 않았지만 나쁘지는 않았어요. 새해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어서 2022년 계획을 따로 세우지는 않았는데요. 여전히 건강은 중요한 화두일 것 같아요. 2019년에 좀 많이 아팠어요. 성대가 안 좋아졌고, 허리 디스크도 생기고… 트레이너 선생님은 여전히 제가 갈 때마다 한숨 쉬시면서 거북목 교정 운동을 한 시간씩 시키시는데요(웃음). 그래도 최선을 다해 건강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요.

 

혹시 트레이너가 겨울 님 직업을 아시나요?

물론이죠. 트레이너 선생님도, 피아노 선생님도 전부 제 채널을 보세요. 다만, 트레이너 선생님은 제 자세만 보시고 피아노 선생님은 제 손가락만 보시죠(웃음).

 

대화하는 내내 참 씩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는 또 씩씩하게 어떤 일을 해나가고 싶어요?

아, 벌써 대화 끝물인가요. 글쎄요…. 큰 변화가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지금 제 삶은 무언가를 선택하는 시기를 지나 안정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제가 바라는 10년, 20년 뒤의 모습은 좀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거? 또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거. 이 두 가지를 큰 줄기로 해서 뭔가를 자잘하게 선택하지 않을까 싶어요. 글 쓰고, 책 읽고, 그런 건 숨 쉬듯 하는 일이니까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것 같고요. 얼마 전에 강연에 갔다가 어떤 분이 장래 희망을 물어보셨는데 “피아노 잘 치는 할머니.”라고 대답했어요(웃음). 훗날 공부를 열심히 한, 피아노 잘 치는 할머니가 되어 있으면 좋겠네요.

 

연주회 같은 거 하면 꼭 보러 갈게요. 남은 하루는 뭘 하면서 보낼 예정이에요?

춤추러 가려고요! 

좋아하는 걸 하는 사람의 얼굴은 이런 거구나. 막 물을 맞은 푸른 잎처럼 싱그럽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내 착각이었을까, 그렇대도 좋았다. 춤추는 겨울 님을 상상하니 나도 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채우려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렸고 한 발 두 발 내디디며 그 안에 담고 싶은 것들을 떠올렸다. ‘내 얼굴에서도 빛이 날까.’ 생각하면서.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