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이랑 똑같아요

장은혜·손지민 — 하우스움

‘모루’와 ‘마켓움’. 부산 사람에겐 익숙한 이름일 테다. 시작은 단순했다. 성공하고 싶다는 꿈도,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마음도 아니었다. 재미있어서, 마음에 들어서 시작한 일이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담뿍하지만 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는 ‘손’을 당겨준 건 ‘장’이었다. ‘장’에게 떠오른 생각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손’에게 이어진다. 우리는 모른다. 이 둘이 왜 이렇게 꼭 닿아 있는지, 어떻게 부산 사람들이 외면한 장소에 ‘해리단길’을 만들 수 있었는지. 아마 이 둘도 모를 테다. 어떻게 10년 넘게 함께하고 있는지, 왜 앞으로의 10년도 함께를 상상하는지.

“부산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한테 대뜸

‘몇 살이에요? 어디 살아요?’ 같은 걸 물어요(웃음).

부산 사람이 아니면 무례하게 느낄 수도 있을 텐데요.

이게 다 관심 표현이거든요. 궁금한 거예요, 이 사람에 대해서.

안 좋으면 안 물어보죠.”

부산이라는 주제로 두 분을 만나게 되어 어쩐지 안심했어요(웃음). 만나서 반갑습니다.

벌써 오래전에 활동하던 사람들이라 이런 자리가 좀 어색하고 머쓱하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장은혜라고 해요.

저는 손지민입니다…만, 정말 저희가 여기 끼어도 되는 거예요(웃음)?

 

이번 호에서는 부산의 지금을 조명하는 것도 좋지만, 10년 뒤에 봤을 때 ‘이 사람들이 이때는 이랬구나.’, ‘이 브랜드가 10년 전엔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는 느낌을 담아보려고 해요. 그래서 두 분 이야기가 더 궁금했어요.

저희가 부산에서 오래 활동하긴 했죠(웃음). 30대 때 《AROUND》와 인터뷰도 했는데, 그게 2013년이니까 올해로 딱 10년 됐네요. 부산을 주제로 인터뷰 제안이 왔을 때 과연 우리가 적합한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10년이라는 세월을 헤아린 순간 해야겠다 싶더라고요.

 

두 분 인연도 10년이 훌쩍 넘은 거죠?

그렇죠(웃음). (《AROUND》를 꺼낸다.) 무려 5호네요(웃음). 이때만 해도 《AROUND》가 다루는 주요 테마가 캠핑이었어요. 이 시절에는 캠핑을 다루는 잡지가 《GO OUT》이랑 《AROUND》밖에 없어서 캠핑 좋아하는 분들에게 인기가 굉장히 많았죠.

이때만 해도 젊고 예뻤네요. 저흰 하도 오래 봐와서 평소엔 꾸미지도 않고 만나는데 이렇게 화장까지 하고 앉아 있으니까 너무 어색해요. (시선을 돌리고는) 장 대표, 뭐야? 핸드백까지 들고 온 거야?

왜 그래, 내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핸드백이라고(웃음). 모처럼 《AROUND》와 만나는 거라 렌즈도 예쁜 거 끼고 싶었는데….

 

지금은 부산의 ‘해리단길’을 만든 장본인이지만 그 시절엔 두 분 모두 캠퍼였던 거죠?

맞아요. 캠핑장에서 만나게 된 사이죠. 그때는 지금에 비해 가족 단위로 캠핑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반면 저는 혼자 다니거나 마음 맞는 언니랑 단둘이 다니는 걸 좋아했죠. 그 시절엔 여자끼리 캠핑 다니는 걸 이상하게 보는 일도 많았어요. 안 좋게 보는 분위기도 있었고요. 그래서 저처럼 혼자 다니거나 소수로 캠핑하는 여자들이 더 없을까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근데 그런 크루가 있는 거예요. 게다가 스타일까지 비슷했죠. 저는 일본 감성이 묻어 있는 텐트나 소품으로 꾸미면서 캠핑하는 걸 좋아했거든요. 그 크루에 손 대표가 있었어요.

찰떡양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죠(웃음).

그 당시 손 대표 남자친구 별명은 찰떡군(웃음).

저도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나 가족들이랑 캠핑을 자주 다녔어요. 그러다가 제 감성을 살린 캠핑을 하고 싶어서 혼자, 또 둘이 다니다가 장 대표를 알게 되었고, 그러면서 캠핑에 확 빠져들었지요. 그때 급격하게 친해졌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저는 부산에 연고가 없는데도 매주 서울에서 여기까지 내려와서 같이 캠핑할 정도였죠. 그러다가 결국 부산에 자리까지 잡게 됐고요. 그렇게 된 데는 손 대표 영향이 커요. 굉장히 흡입력 있는 사람이거든요. 지금 손 대표는 마켓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데요. ‘마켓움’이라고 하면 부산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로컬 마켓으로의 첫 시작인 데다가 규모가 엄청나거든요. 혼자서 여기까지 끌어올린 데는 리더십이 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손 대표님은 ‘사뿐 님’이라고도 불리던데, 그건 어디서 나온 별명이에요?

손 대표랑 둘이 뭐라도 해보자 싶어서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이름이 ‘사뿐’이었어요. 말하자면 아웃도어 라이프 브랜드인데 저희 스타일 캠핑용품을 판매하고자 만든 거였죠. 다른 캠퍼들이 대부분 멋있고 비싼 장비를 준비할 때, 저희는 손으로 만든 소품이나 일본의 아기자기한 캠핑용품으로 단장하는 걸 좋아했어요. 그런 종류의 소품을 소개해 보자 싶어서 만든 브랜드죠.

사뿐이라고 이름 붙이니까 사람들이 저를 다 사뿐 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지금은 누가 저를 사뿐 님이라고 부르면 다들 의아해해요. 3초 정적. 이제 사뿐한 몸은 아니게 돼서 그런 반응을 부정할 수도 없네요(웃음).

 

‘모루’에서부터 협업이 시작된 줄 알았는데 그 이전부터 함께하던 일이 있었군요. 워낙 오래 알아온 사이여서 서로를 소개하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 같아요. 소개해 주실래요?

손지민 대표는… 저한테 굉장히 충격을 준 친구예요. 저는 언제나 아이디어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아왔어요. 좋게 말하면 독특했고,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이기도 했죠. 그래서 취미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늘 많았는데요. 그런 저를 좀 유별나다고 보는 사람도 많았는데, 캠핑 크루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다들 특이한 사람들이었거든요. 아이디어가 엄청났어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까.’ 싶은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까 제가 도리어 평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손 대표도 그런 멤버 중 하나였는데 생각하는 게 유난히 독특했어요. 근데 주변 사람들이 자기의 그런 성향을 허무맹랑하게 본다는 거예요. 제 눈엔 손 대표의 발상이 너무 기발하고 현실이 되면 멋질 것 같은데…. 그래서 제가 옆구리를 많이 찔렀어요. 해봐, 한번 해봐, 하고요.

 

예를 들면 어떤 일이었어요?

음, 저는 일본 여행을 가면 카페나 감성 있는 숙소 같은 데 다니는 걸 좋아했거든요. 근데 손 대표는 플리마켓에 가는 걸 좋아했어요. 한번은 저를 거기 데리고 갔는데 분위기가 우리나라랑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특히 개성 있는 셀러들이 인상적이었죠. 손 대표가 그때 “나도 이런 마켓 해보고 싶다.”는 거예요. 하면 될 것 같았고, 잘할 것 같아서 해보라고 했어요. 손 대표는 아이디어가 기발한 대신 저지르는 데 약해요. 그간 주변에서 이상하게 여겨진 일이 많아서 겁이 났나 봐요. 제가 계속 옆구리를 찌르니까 한국에서 마켓을 열었는데요. 그게 부산 명물 플리마켓이 된 마켓움이거든요. 마켓 기획이 손 대표한테 너무 잘 맞았던 거예요. 그래서 10년째 마켓 기획자를 하고 있는 거고요.

장 대표랑 일을 벌이기 전에 저는 판소리를 했어요. 국악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 길이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죠. 근데 살다 보니 그 안에 또 다른 제가 있더라고요. 가끔 그 자아가 툭 튀어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독특한 애라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제가 좀 별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그걸 재능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장 대표를 통해 재능이구나 알게 된 거죠.

마켓움이 빛을 볼 수 있도록 격려한 게 장은혜 대표님이셨군요. 이번엔 반대로 장 대표님 소개를 들어볼까요?

엄청 감각적인 친구였어요. 제가 흙 속에 재능을 숨겨둔 사람이었다면, 장 대표는 드러난 감각을 가진 친구였죠. 재능이 드러날 수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니까 제 욕구를 꺼내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장 대표가 부산에서 해리단길을 만들고 전포동에서 성공 행보를 걸은 것도, 보는 눈이랑 감각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사람인지라 약간의 트러블로 떨어져 지낸 시간이 있는데요(웃음). 그때 거리를 두고 장 대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어요. 트러블로 멀어진 거니까 안 좋은 생각도 물론 들었지만,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장 대표 영향이 컸다는 걸 부정할 수가 없더라고요. 장 대표가 저를 이끌어 주었기 때문에 용기 낼 수 있던 거니까요. 허무맹랑하다는 말에 갇혀서 제 욕구를 잠재우기만 했는데 한 번 펼쳐내고 나니까 10년 넘게 사람들이 제 활동을 신선하다고, 재미있다고 해줘요.

 

서로 시너지가 된 거네요.

그렇죠. 지금도 제일 신날 때가 둘이 얘기하다 아이디어가 마구 튀어나올 때예요. 둘 다 아이디어가 넘치는 사람들이어서 한 번 봇물이 터지면 끝도 없이 생각이 꼬리를 물어요. 제 안에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많은데 10년 전에 귀 기울여 들어주는 건 장 대표밖에 없던 거죠. 같이 용기를 내주고 북돋아 주니까 뭐든 하게 되더라고요.

 

두 분은 하는 일이 참 많잖아요. 직업을 뭐라고 이야기하세요?

옛날에는 식당 아줌마라고 했는데, 모루식당을 넘기고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면서부터는 ‘브랜드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곤 했어요. 지금은 또 역할이 달라져서, 음… ‘공간을 예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그게 지금 저한텐 가장 재미있는 일이거든요.

 

내 브랜드에 대한 욕심은요?

이젠 없어요. 예전에는 제 브랜드를 만들고 잘 키워 나가는 데 욕심도 있고 보람도 있었는데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저는 공간을 예쁘게 꾸미고 가꾸는 데서 기쁨을 느끼더라고요. 그 순간을 재미있어하는 사람인 거죠.

저는 재미있는 일을 기획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요. 마켓을 기획하는 사람이고 그게 바로 재미를 만드는 일이거든요.

 

장 대표님은 《작은 가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에 이런 이야기를 쓰셨지요.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재미나게도 살아봐야지 않겠어?” 두 분이 생각하는 재미는 어떤 거예요?

하고 싶은 일이요. 저는 하기 싫은 건 얼굴에 티가 나요. 지금은 장 대표랑 함께 하우스움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는데요. 사실 의뢰가 꼭 제가 하고 싶은 일만 들어오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는 중에도 확실히 재미있겠다 싶은 일들은 뭔가 좀 다르더라고요. 과정에서도, 결과에서도요. 재미는 제 삶에 활력이 돼요.

지금 하는 일들이 우리한테는 제일 잘 맞는 일이에요. 제일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근데 이젠 일이 되니까 금전적인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이전에는 장 대표랑 저만 생각하면 됐어요. 근데 지금은 회사를 운영하고, 직원도 있잖아요. 책임감이 생긴 거죠. 이전에 재미만 생각할 때는 수익에 기준을 두지 않았거든요. 돈을 못 버는 일이어도 재미만 있다면 하는 동안 만족도도 높고 행복했어요. 그런데 일의 규모가 커지고 책임과 의무가 생기면서 이제는 약간 제약이 생겼어요. 예를 들어, 관이랑 일을 하면 서류상의 절차나 정해진 틀이 생기거든요. 그 안에 저를 쑤셔 넣으려고 하면 재미가 반감되는 거예요. 결국 부수고 나오기는 하지만요(웃음). 어쨌든 금액이나 이윤을 생각하지 않고 즐겁게 일한 게 항상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그래도 돈이 없으면 다음 일을 할 때 베이스가 없으니까 수익을 고려하게 된 건데요. 10년 전이랑 다른 건 딱 그거 같아요. 마냥 재미만을 좇을 순 없다는 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톺아봐야겠네요. 손 대표님이 마켓움이란 이름으로 부산에 구름 인파를 몰고 온 플리마켓을 만들었다면, 장 대표님은 ‘모루식당’으로 출발을 알렸지요.

벌써 옛날 일 같아요(웃음). 큰 포부를 가지고 일을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말했다시피 직장을 그만두고 부산에 살게 되면서 결혼도 하고 집에서 살림을 하게 됐는데요. 맨날 돌아다니던 사람이 남편한테 생활비를 받아서 쓰려니까 답답하더라고요. 그때 같이 캠핑하던 친구가 ‘용돈이나 벌 정도로 가게 한번 해봐.’ 하고 제안해서 전포동에 자그맣게 연 게 모루식당이에요. 캠핑장에서 카레를 자주 끓여 먹었는데, 그 경험을 살려서 메뉴도 개발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꾸린 일본식 카레 집이었지요. 처음엔 작업실 겸 식당을 해보자 싶어서 다섯 평짜리 공간을 얻었어요. 장사가 잘될 거란 확신도 기대도 없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채워서 시작한 거죠. 간판도 제가 직접 손 글씨를 써서 붙인 거였고요. 그때는 부산에 이런 조그만 가게가 없었거든요. 으리으리한 공간 사이에 조그마한 가게가 생기니까 이런 감성이 새롭게 느껴졌나 봐요. 장사가 점점 잘되기 시작하더니 한 달 만에 사람들이 오픈 전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저는 아직 준비가 안 됐는데 식당은 점점 더 잘되어 가니까 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되더라고요.

모루식당은 전포동에서 시작해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어요. 울산, 대구, 진주, 창원….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어요. 가게가 잘되니까 지인들이 지점을 내달라며 연락해 오더라고요. 지점이 늘어나니까 제대로 프랜차이즈를 한번 해볼까 싶은 마음도 생겼고요. 그런 생각이 들 즈음 두 번째 가게를 오픈했죠. 그게 ‘모루과자점’이었어요. 파운드케이크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인데, 제가 사실은 빵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근데 일본 카페에서 파는 파운드케이크를 먹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제가 알던 파운드케이크 맛이 아니었거든요. 밀도 높은 그 빵이 마음에 들어서 일본식 파운드케이크를 팔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모루과자점이 바로 해리단길의 시초였죠.

그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죠. 모루과자점 장소 또한 얼떨결에 선택하게 된 곳이었거든요. 해운대 뒷골목을 산책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요. 구조가 모루식당하고 똑같더라고요. 보자마자 바로 계약했죠. 지금 해리단길이라 불리는 그곳은 모루과자점이 생길 때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동네였어요. 거기 모루과자점을 열겠다니까 부산 사람들이 다 의아해했어요. “거기에? 왜?” 저는 아직도 떨떠름하게 굳어버린 시아버지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웃음).

부산 사람들이 생각하기엔 약간 우범지대 같은 곳이었거든요. 기찻길만 있고, 언덕배기고. 

저는 반대로 기찻길도 있고, 약간 경사가 져서 일본 뒷골목 마을 같다고 생각했어요. 길만 건너면 해운대도 있고, 지하철역도 가깝고요. 게다가 그 당시엔 월세도 저렴했거든요. 그렇게 모루과자점을 열었고 감사하게도 모루식당 단골분들이 자주 들러주셨어요. 근데, 주변에 상권이 없다 보니까 이어나가기가 조금 힘들더라고요. 모루과자점만을 위해 여기까지 오는 덴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택배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모루과자점 주변으로 잘하는 브랜드가 들어오게끔 유도했지요. 상권을 만들기 위해서 브랜드를 하나 더 론칭하기도 했고요. 그게 유부초밥 전문점인 ‘호키네유부’예요. 그렇게 상권이 점차 확장되면서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거리가 되자 구청장님이 해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어요. 감회가 새로웠죠. 그때만 해도 제 브랜드를 운영하고 꾸려가는 게 즐거웠는데요. 어느 순간 제가 가게를 관리하는 사람은 아니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재미를 느끼는 건 가게를 운영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고민하고 론칭하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브랜드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즐기는 거군요. 그래서 장 대표님의 출발점인 모루식당도 다른 분에게 넘길 수 있던 거고요.

그렇죠. 지금 다른 사람의 브랜딩을 돕는 일은 제 브랜드를 할 때보다는 돈이 덜 될 수도 있어요. 근데 지금은 남의 브랜드를 만들어 드리고, 공간을 꾸미는 데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그 일을 지금 손 대표님과 함께 하고 있는 거고요. 손 대표님의 마켓움 출발은 어땠어요?

어떻게 시작했느냐고 하면…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어느 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는 “나 마켓을 해야겠어!” 그랬거든요(웃음). 무작정 장소부터 찾아봤어요. 수중에 돈이 얼마 있는지 통장을 확인하고, 누가 마켓에 참여할 수 있는지 찾아보면서 일단 저질러 버린 거죠. 장 대표가 산책하다 가게 자리를 계약해 버린 것처럼, 저도 똑같아요. 그러고 나니까 어떻게든 되더라고요. 이벤트처럼 시작한 건데 너무 재미있다고 2회, 3회, 4회까지 계속 열어달라는 요청이 이어졌어요.

 

부산 시민들이 마켓을 열어달라고 요청할 정도라니, 굉장한 일이네요.

감사한 일이죠. 셀러들이 제가 기획한 마켓을 통해 성장하는 것도 좋았고, 기획하는 일도 즐거워서 매번 재미있게 했어요. 

저희는 재밌다고 생각하면 거기 완전히 꽂혀 버려요. 잠도 안 자고 찾아보고, 혼자 계속 그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죠.

맞아요. 상상 속에 빠져 있어요. 머릿속에서 계속 그 생각만 둥둥 떠다니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저는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말을 믿거든요.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저희가 하는 일은 어디서 배운 게 아니라 감각으로 하는 일이라 다른 사람에게 확실히 전달하기가 힘들다는 거예요. 머릿속에서 나오는 거니까 직원이 생겨도 명확하게 인수인계할 수가 없는 일이죠. 근데 신기한 게 장 대표랑은 그게 전달이 돼요. 제가 대충 설명해도 장 대표가 꼭 맞는 이미지를 찾아내거나 콘셉트를 제안해요. 그게 엄청나게 큰 의지가 돼요. 제가 좀 게으름을 부려도 ‘장 대표가 해놓겠지.’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웃음).

장 대표님은 책에 동업에 회의적인 이야기를 쓰기도 하셨잖아요.

여전히 동업에 회의적이에요. 그런데 손 대표랑 하는 일은 동업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이건 굉장히 독립적인 일이거든요. 손 대표가 지역에 있는 창작자를 발굴해서 셀러로 세우고 성장할 수 있게 컨설팅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손 대표가 발굴한 브랜드를 가다듬고 예쁘게 만드는 사람이에요. 공간을 만들어 주고, 패키지나 브랜딩을 해주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전 저희 일이 동업보다는 협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지된다고 보고요.

서로를 채워주는 역할인 거죠. 10년 전이었으면 과연 가능했을까 싶기도 해요. 마흔이 넘어가면서부터 생각하는 폭이 넓어지고 느슨해진 부분이 있거든요. 10년 전엔 분명히 트러블이라고 생각할 것들이 지금은 커버가 되기도 하고요. 50대가 되면 또 다른 시각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게 서로 도움이 되는 방향이면 계속 협업하겠지요(웃음).

 

트러블 하니까 생각났는데, 모루과자점 론칭할 당시 두 분 교류가 많지 않던 시점이라고 들었는데요(웃음).

왜인지 모르게 사람들 사이에서 저희 관계가 초미의 관심사더라고요. 조금만 같이 안 다니면 ‘싸웠나?’ 하는 분도 많고요.

잘되는 사람한테 관심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그만큼 어떤 트러블에 싸여 있는지도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고요. 저 둘이 언제 찢어지나 유심히 보는 사람들도 있고(웃음). 예전에는 자그마한 걸로 감정이 상하거나 다투는 일도 많았어요. 취향, 성격, 인생의 흐름까지도 비슷하지만 생활 패턴 같은 건 다를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예전에는 서로 거기까지 터치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트러블이 생길 수밖에 없었죠. 불만도 생기고요. 지금은 서로 약간 거리를 두려고 하고, 서로의 일상생활은 서로 존중해 주자는 마인드가 생겨서 전보다 관계가 훨씬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지금은 두 분이 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럼 이전에 만든 브랜드들은 어떻게 되었어요? 

모루식당은 좋은 점주를 만나서 운영되고 있고요. 모루과자점은 ‘모루비’로 이름을 바꾸고 포장 판매 위주로 진행하고 있어요. ‘모루씨’라는 새로운 카페를 론칭해서 운영 중이고, 호키네유부는 프랜차이즈로 운영하고 있죠. 우동과 덮밥을 하는 ‘모루동’도 비슷한 행보고요.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려면 퀄리티를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쓸 게 많아질 것 같아요.

지점을 늘려가면서 저는 프랜차이즈에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았어요. 저는 모루식당을 할 때부터 인테리어도 직접 하고, 소품도 신경 써서 채워 넣는 사람이어서 제 감성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거슬리거든요. 제 첫 브랜드가 식당이어서인지 청결과 친절에도 민감한 편이에요. 근데 프랜차이즈가 되면 아무래도 단가에 신경 쓰다 보니 다른 데서 소홀해지는 일이 발생해요. 그런 점이 상충해서 저랑은 좀 안 맞는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무엇보다 저는 인테리어를 신경 쓰는 사람인데, 프랜차이즈 하시는 분들은 되도록 적은 금액으로 운영하고 싶어 하셔서 인테리어에 너무 많은 돈을 써버리면 부담스러워하시거든요.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브랜드를 론칭하고 싶은데 확신이 안 서시는 분들을 도와 브랜드를 만들어 드리는 게 저한테 더 적합한 일이란 걸 알게 된 거죠.

그래서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프랜들리라고 불러요. 프랜차이즈라면 균일화된 매뉴얼을 공유해야 할 텐데, 저희는 그게 아니라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점주들이 스스로 꾸려나갈 수 있게 하는 거니까요. 장 대표가 잘하는 게 브랜드를 만드는 거거든요. 저는 ‘어떻게 하면 이 브랜드가 잘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이고요. 그래서 둘이 협업해서 브랜딩 작업을 하는 거예요. 어쩌면 새로운 걸 창조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서 한 브랜드에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브랜드를 프랜들리로 바꾸고 새 브랜드를 만들어 가거나 기존에 있던 브랜드를 탄탄하게 해주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브랜드를 내고 싶다는 생각은 이제 없어요?

있죠. 아직 펼치지 못한 아이템이 정말 많은걸요. 옛날이라면 하나 내고, 접고, 또 내고, 했을 텐데 이제는 좀 안정적인 사업 수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브랜드를 예쁘게 만들어 주는 데 집중하는 거고요.

그래서 저한테는 마켓이 딱 맞아요. 저는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어도 일주일 동안 하면 재미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마켓을 진행할 이틀 동안만 제 에너지를 불 싸지르고 일주일 동안은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거예요. 마켓 이틀을 위해 또 달리고, 준비하고, 펼치고, 쉬고…. 이 루틴이 저한텐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두 분 활동이 사랑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감각적인 부분도 크다고 생각해요. 장 대표님이 책에 이런 이야기를 쓰셨죠. “감각은 타고나는 부분도 무시할 순 없지만 분명 길러지는 부분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제 감각의 대부분은 여행에서 탄생했어요. 먹는 걸 좋아해서 여행 가면 맛있는 걸 잔뜩 먹고 다녔는데 그 경험이 메뉴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고요. 20대 때는 여행을 가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 스폿에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가고 싶은 카페나 식당 리스트가 생기더라고요. 저만의 취향이 생기면서 여행 목적이 조금 달라졌어요. 마침 운 좋게 남편이 해외에서 근무하게 돼 기회가 자주 찾아오기도 했죠. 많이 먹고, 많이 보고, 많이 하는 것만큼 감각을 길러주는 건 또 없는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됐어요?

모루과자점 열었을 때 누구한테 사사 받았느냔 질문이 참 많았는데 사실 다 경험에서 나온 거거든요. 많이 먹고 다니다 보니까(웃음) 맛을 알아야 어떤 음식이든 괜찮은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에는 제가 하도 여행에 돈을 쓰니까 엄마가 걱정이 많으셨어요. 돈도 안 모으고 조금 모였다 싶으면 여행 가고, 시간만 나면 떠나버리니까 안심이 안 되었나 봐요. 사실 저도 그때는 이렇다 할 목표 없이 좋은 시간이라고만 생각하면서 언젠가 사장될 경험이라 여겼는데요. 그게 아니더라고요. 제가 경험한 것들이 제 안에 쌓여 있고 어느 순간 발현되더라고요. 그 경험이 지금 이렇게 먹고살게끔 해주는 것 같아요. 독자분들에게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네요. 많이, 더 많이 경험하세요(웃음).

확실히 경험은 중요해요. 요즘은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브랜드 경험에 한정된 것 같아서 조금 아쉬워요. 자신이 하고 있는, 하고 싶은 브랜드의 확장판을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문화적인 경험이 결국 자기 브랜드에 저절로 적용되거든요. 그래서 무엇보다 문화적인 경험을 많이 쌓으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작년엔 처음으로 베트남에 다녀왔는데 가자마자 ‘나는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베트남 축제가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제가 경험한 그 나라의 문화를 한국으로 들여와 또 한바탕 재미있게 축제를 열기도 했죠. 앞으로도 이렇게 다른 나라를 돌면서 또 다른 문화를 경험하고, 그걸 한국에서 펼치고 싶다는 꿈을 꿔요.

 

베트남에서 경험이 확장된 거군요.

저는 줄곧 일본만 다녔는데, 일본 특유의 정돈되고 깨끗한 느낌 있잖아요. 거기 익숙해져 있다가 날것을 경험하니까 너무 정겹고 재미있더라고요. 여러 가지를 경험하니까 시야가 넓어지는 기분도 들었고요.

하려는 일에 푹 빠져드는 게 손 대표의 강점이에요. 저희가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콘셉트 놀이예요. 콘셉트를 정해서 뭔가를 꾸리고 해내는 거죠. 클라이언트가 브랜딩을 맡기면 가장 먼저 묻는 게 ‘콘셉트가 뭐예요?’예요. 콘셉트를 먼저 정하고 나면 저희도 거기 빠져들어서 관련된 것들을 수집하고 모으면서 즐길 수가 있게 돼요. 만약 어떤 나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그 나라의 것을 그대로 연출하려고 세세한 것까지 조사하고 신경 쓰게 되죠. 그게 저희한텐 너무 재미있는 일이에요.

 

콘셉트 놀이라는 말 너무 좋은데요.

캠핑할 때도, 가게를 운영할 때도, 브랜딩 할 때도 계속 콘셉트 놀이를 해온 거예요. 근데 그것도 제대로 하려면 경험이 있어야 하잖아요. 본 게 있어야 디테일을 살릴 수 있으니까요.

디테일까지 잘 살리고 싶다는 욕구가 저를 움직이는 것 같아요. 만약 오늘 베트남이라는 콘셉트로 의뢰를 받았죠? 그럼 다음 날 표를 끊고 바로 떠나요. 그 순간만큼은 정말 열정적이죠. 주변 사람한테 같이 가자고 하면 다들 “거기 아는 사람 있어?” 하고 물어요. 없죠(웃음). 저는 그냥 베트남에서 가장 큰 여행사에 전화해요. 그리고 도움 줄 만한 사람 한 분만 붙여달라고 요청하죠. 그러고 나서 그분한테 엄청나게 질문하는 거예요. 아마 저 되게 귀찮으셨을걸요(웃음). “제가 거기서 물건을 대량으로 사서 한국으로 들고 오고 싶은데 컨테이너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무역상 붙여주실 수 있나요?” 결국 컨테이너에 물건을 잔뜩 담아서 돌아왔어요. 지금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그땐 베트남을 한국에 다 들고 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신 거죠?

이거 보실래요? (휴대폰을 보여준다.) 이게 손 대표가 맡아서 진행한 ‘아세안 마켓’인데요. 자그마한 의자들도 다 직접 베트남에서 가지고 왔어요. 아세안 마켓을 하고 싶다는 의뢰를 받고, 만족할 만한 마켓을 성사시키고 싶다면서 베트남으로 달려가더라고요.

장 하나까지 다 베트남에서 주문 제작해 왔어요. 이 행사 때 베트남 사람들도 오셨는데, 구석구석 사진 찍으시면서 진짜 베트남 같다고 좋아하셨어요. 잘 만들었다고 칭찬도 해주시고요. 저는 이런 게 정말 재미있어요. 더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도 크고요. 다만 그 열정이 1년에 한 번뿐이라는 게 함정이랄까요(웃음). 옛날에는 365일 열 개 아이템이 머릿속을 맴돌아 다 해보고 싶어서 매일이 바빴어요. 그만큼 시행착오도 많았죠. 사고도 많이 쳤거든요. 그때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지금 잘되는 게 어떤 길인지 알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열심히 하는 거, 재미있게 하는 건 진심이 통해요.

부산의 명물 플리마켓
‘마켓움’

베트남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아세안 마켓’

의뢰가 들어오면 첫 질문으로 “콘셉트가 뭐예요?” 하고 묻는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내가 전혀 모르는 콘셉트면 어떡해요?

문제없죠. 저 베트남도 전혀 몰랐는걸요? 한 번도 안 가본 곳이었어요. 만약 의뢰가 “스페인 식탁을 꾸리고 싶어요.”였다면 두말하지 않고 스페인에 갔을 거예요. 근데, 저희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걸 제안해 오면 좀 시들해지는 건 있어요.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싶은 일도 있거든요. 그럴 때도 받기는 받아요. 다만 설득을 하죠.

브랜딩 작업을 하다 보니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희를 100퍼센트 믿고 맡겨 주셔야 잘되더라고요. 서로 진심을 다할 때 결과도 좋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목표를 향해서 모두가 노를 저어 가야 해요. 그래야 딱 완성이 돼요. 계속 삐걱거리면 만족이 안 되는 거죠.

서로 믿지 못하면 제가 하기 싫어지거든요. 그럼 대충 타협하게 돼요. 아세안 마켓에 깔린 의자, 사실 별거 아니잖아요. 남포동에만 가도 플라스틱 의자는 많거든요. 타협하게 되면 남포동에서 사 와서 깔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돼요. 그런 게 쌓이면 디테일에서 표가 나는 거고요. 그런 차이인 것 같아요.

 

브랜딩 작업을 부산에만 국한하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특히 마켓 일은 더 그렇죠. 한번은 마켓 감독 의뢰를 받아서 서울 노들섬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처음 서울 시장의 분위기를 경험하게 됐는데… 서울과 부산을 무 자르듯 나눌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다른 지점이 보이더라고요.

 

오, 궁금한데요. 어떤 점이었어요?

부산 사람들에겐 마음의 여유와 어느 정도 느슨함이 있어요. 반면 서울 사람들에겐 경계나 틀이 있다고 느껴졌어요. 부산 사람들은 마켓에 오면 괜찮아 보이는 물건을 가리키며 “이거 얼마예요?” 묻고는 “친구들도 사줘야지, 다섯 개 주세요!” 하고 여러 개 사 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물한다면서 잔뜩 사 가시는 거죠. 현금으로 하면 좀더 싸게 해주냐면서 실랑이도 하고요(웃음). 근데 서울 분들은 좀더 꼼꼼한 면이 있어요. “이거 KC 인증 받은 거예요?”, “이 패턴은 직접 디자인하신 거예요?” 하면서 출처와 과정을 궁금해하세요. 여러 브랜드를 접하면서 생긴 기준일 수도 있겠고, 셀러에 대한 관심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물건을 구매하기까지 시간이 비교적 오래 걸리더라고요. 처음에는 셀러들도 물건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정성껏 안내하는데, 결국 손님이 “잘 봤습니다. 둘러보고 올게요.” 하고 떠나면 셀러가 지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부산에서 활동하던 분들이어서 분위기가 사뭇 달랐던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받아들이기 나름인 것 같아요. 저는 서울에 있다가 부산에 정착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처음 모루식당을 열었을 때 갑자기 훅 들어오는 손님들 때문에 종종 당황하곤 했어요. 물론 관심이 있어서였겠지만 부산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좀 당황스러웠죠. 반면 서울 사람들은 브랜드를 존중해 준다고 해야 하나,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서 모루식당에 와서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일단 이 분위기에서 지켜야 하는 규칙을 염두에 두는 면이 있어요. 룰이 이만큼이면 다 지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반면 부산 손님들은….

처음 만난 사람한테 대뜸 “몇 살이에요?” 묻는 편이지요(웃음). “어디 살아요? 거기 집 비싸잖아? 잘사나벼? 집 몇 평인데?” 아마 부산 사람이 아니면 무례하게 느껴질 거예요. 근데 이게 다 관심 표현이거든요. 궁금한 거예요, 이 사람에 대해서. 안 좋으면 안 물어보죠. 접점을 찾고 싶으니까 계속 묻고, 또 묻는 거예요. 친해지고 싶으면 접점이 나올 때까지 물어봐요. “초등학교 어디 나왔어요?”까지 가는 거죠. 이 사람이 마음에 들면 하루 만에 호구조사 다 해서 공통점 찾아야 해(웃음). 납작하게 서울 사람은 이렇다, 부산 사람은 이렇다, 얘기하긴 어렵지만 분명히 특징은 있는 것 같아요. 부산에 계속 살아온 손 대표님이랑 서울에서 온 장 대표님 시각이 그걸 잘 이야기해 주는 것 같고요.

그렇게 호구조사 해서 비슷한 점을 찾고 끝내는 게 아니라 “내일 전화할 테니까 같이 밥 먹어.”까지 가는 게 부산 사람이에요. 물건 사는 것도 똑같은 거예요. 동네 사람이면 더 사주는 마음도 있고, 동네 사람이면 깎아주기도 하고요. 저는 이걸 인정이라고 봐요. 이런 도시에 살다가 서울에 가니까 저는 차갑다고 느낀 거죠. 선을 넘지 않으니까 불쾌하지 않게 만드는 면이 분명히 있는데요. 부산 사람들에겐 이런 질문이 불쾌한 게 아니거든요. 오히려 ‘나한테 관심이 있네.’ 하는 거지.

 

타지 사람으로서 보는 부산의 매력도 있을 것 같은데, 어때요?

저는 여기 살기 전부터 부산을 엄청 좋아했어요. 제 고향은 대전이었는데요. 거긴 지명 자체가 한밭이잖아요. 그래서 주변에 바다가 없어요. 그러니까 바다가 있는 도시라는 게 너무 매력적이었죠. 전 시내가 관광지화돼 있는 곳도 거의 부산이 유일하고요. 다른 도시는 관광 스폿이 정해져 있는데, 부산은 주거지 빼놓고는 전 시내가 관광지라고 봐도 좋아요. 광안리는 여름에 가보면 외국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어요. 부산 사람들은 이걸 당연하게 느끼겠지만 전 타지에서 왔기 때문에 이런 점이 참 매력적이에요.

외국이 아니고 그냥 부산인데(웃음). 저희 집이 해운대거든요. 해운대 중에서도 달맞이 고개 쪽에 사는데,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서 둘러보는 곳이잖아요. 근데 전 나가보지도 않아요. 집 주변이니까 특별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저한테는 완전히 일상이니까 이 도시를 바라보는 시각이 확실히 달라요.

그럼 모루과자점이 생길 때 손 대표님도 ‘왜 거기에 가게를 내?’ 하고 생각하는 쪽이었어요?

그럼요. 참 이상한 데다 냈다 그랬죠. 저한테는 고정 관념이 있던 동네인 거예요. 근데 거기가 해리단길이 되다니, 역시 장 대표는 보는 눈이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생각지도 못한 곳에 브랜드를 만들고 그 주변에 상권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저희는 요즘 제 2의 해리단길을 만들어 보자는 꿈을 꾸고 있어요. 새로운 골목을 만들고 그 안에 우리 브랜드들이 들어오고, 또 다른 브랜드들이 자리를 잡아서 새 골목이 탄생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고 있죠.

 

생각해 보고 있는 동네가 있어요?

얼마 전만 해도 여기저기 후보가 있었는데요. 엑스포를 염두에 둔 것 같기도 한데… 동시다발적으로 재개발에 들어가니까 분위기가 너무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그간 저희가 나름 실패 겸 성공을 겪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조사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아무것도 묻고, 따지지 않고 그냥 ‘여기 너무 좋다.’ 하면서 대뜸 시작한 거죠. 근데 이제는 좀더 책임감을 가져야 하니까, 재개발 여부도 그렇고 자꾸 조사하게 되면서 조심스러워지는 면이 생기더라고요.

 

조심스러워진 게 아쉬워요?

음,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에요. 저희는 상권을 분석한다거나 브랜딩을 공부했다고 말할 만한 사람은 아니에요. 조심스러운 면이 생기면서 자꾸 공부를 하게 되거든요.

근데 자꾸 공부하다 보니까 걱정도 생기는 것 같아. 지금은 용기가 필요한 시점 아닐까? 

그래, 이제 공부하지 말자.

 

(웃음) 이번 호 주제어가 ‘부산’이잖아요. 두 분은 부산 하면 뭐가 떠오르세요?

저는 처음 마켓움을 기획할 때부터 장소는 무조건 야외이길 바랐어요. 부산 자체가 무대라고 생각했거든요. 바다도, 산도 전부 하나의 공간처럼 보여서요. 부산은 자연이 굉장히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너무 뻔한 이야기지만, 바다와 가까운 도시라는 게 큰 매력이에요. 바다 가까이에서 살지 않은 저 같은 사람에겐 더 그렇죠. 저는 저희 브랜드에 방문해 주시는 분 중 많은 분이 관광객일 거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사람인 거죠. 그러니까 제가 느낀 부산의 매력이 좀더 돋보이게 브랜드를 운영하고 싶어요. 부산에서 활동하는 타지 사람으로서 여기 오는 분들에게 제가 본 것들을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결국은 현지인인 저도, 타지인인 장 대표도 부산의 환경적인 면을 가장 좋아하나 봐요. 아름다운 바다와 산, 그리고 사람들.

우리는 그걸 좋아해서 만난 사람들이니까요.

 

10년 전에는 캠퍼로 인터뷰하셨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 취향을 확장해서 브랜딩으로 인터뷰하게 되었어요. 10년 뒤에 다시 만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희가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하긴 한 거 같아요. 10년 동안 큰 발전이 있었더라고요. 전혀 관계없는 일처럼 보이지만 그게 다 연결된 거잖아요. 10년 뒤에도 이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고 또 재미있는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표님, 10년 전이랑 지금이랑 똑같으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럼 55살에 만나게 되는 건가….

 

그때도 컨테이너 하나에 물건 가득 들여와선 새로운 일 벌이고 계시는 거예요(웃음)?

꼭 그러고 싶어요. 

오랜만에 《AROUND》 5호를 들춰봤는데, 굉장히 옛날 일 같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변한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제 마음가짐도 그렇고, 여전히 이렇게 콘셉트 놀이를 하고 있고요. 이때 함께 인터뷰한 친구랑 지금도 같이 일하고 있다는 게 저한텐 큰 의미예요. 10년 후에 우리가 같은 일을 할지, 다른 일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다시 만나서 또 이야기하게 된다면 좋겠어요. 그때는 우리가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 했으니까, 또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겠죠?

틈만 나면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웃는다. 그럼 왠지 나도 웃음이 났다. 한 번씩 툭 던지는 말들이 울퉁불퉁하고 거센데도 애틋하게만 들리는 건 두 사람이 대개 같은 방향을 보고 있어서일 테다. 두 사람이 섞일 때마다 어떤 색들이 선명하게 빛난다. 그것은 빨강이었다가, 파랑이었다가, 갑자기 분홍이 되기도 하는데, 섞여 드는 빛깔이 언제나 같아 나는 내심 감탄했고 이내 안심했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