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줄근한 친구들

세이수미 — 뮤지션

음반이 가득 꽂힌 벽면, 공연 포스터가 질서없이 붙어 있는 어둑한 공간. 사람들은 또렷한 자리 없이 서거나 앉아서 눈앞을 보고 있다. 기타와 베이스를 무대에 내려 두고 마이크를 매만지던 네 사람이 공연을 시작하겠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부산에서 온 세이수미입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영국으로, 미국으로, 유럽 전역으로, 대만으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오는 친구들에게 부산은 곧 집이고 가족이다. 지구 구석구석, 더 멀리 나아가도 떠나길 택하는 대신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는 친구들. 부산은 그런 그들에게 언제나 느긋하게 말한다. “잘 갔다온나.” 

“부산 사람들은 남포동을 ‘진짜 부산’이라고 많이 이야기해요.

거기가 진정한 옛날 구도심이거든요.

요즘에도 한 번씩 그 동네에 가면,

다른 데는 다 발전했어도

남포동만큼은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서울 공연장에서만 보다가 부산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워요. 꼭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에요. 

수미 만나서 반가워요. 부산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죠? 

 

여행 오는 것 같아서 즐거웠어요. 포토그래퍼가 작업실에서 Say Sue Me 철자를 보곤 놀라더라고요. Sue Me, ‘날 고소해라.’(웃음). Sue Me에는 ‘마음대로 해라.’라는 의미도 있다고 하던데요. 지금부터 마음대로 세이수미를 소개해 볼까요? 

병규 마음대로 하라니까 진짜 마음대로 해볼게요.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이수미라고 합니다. 저는 기타 치는 김병규고요. 하고 보니 마음대로라고 할 것도 없네요(웃음). 

수미 부산 사람 넷이 모여 음악 하고 있어요. 저는 보컬 최수미입니다. 

성완 부산의 딸과 아들, 세이수미입니다. 저는 드럼 치는 임성완이에요. 

재영 음…. (병규를 가리키며) 세, (재영과 성완을 가리키며) 이, (수미를 가리키며) 수미. 병규 형님이 세 명분을 하고 계시고, 저랑 성완 씨는 두 명이고, 수미는 누나 이름이니까…. 저는 ‘이’ 중 하나를 맡고 있는 베이시스트 김재영입니다. 

 

재영 씨 소개, 굉장히 새로운데요(웃음). 방금 부산에서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서울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은 굳이 서울 출신이란 이야기를 잘 안 하는데, 왜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창작자들은 지역으로 소개하게 되는 걸까요? 

병규 꼭 지역성을 나타내려는 건 아닌데, 어쨌거나 저희가 서울 팀은 아니니까요. 서울엔 모든 게 다 있어서 곧잘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저흰 그 기준에 속하지 않으니까 부산에서 왔다고 이야기하게 되는 거고요. 

성완 뭐든 소개할 때 수식할 게 있으면 편하잖아요. 저희 스스로 부산에서 왔다고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매체에서도 저희를 소개할 때 ‘부산’을 자주 활용하는 것 같아요. 서울에 워낙 많은 게 몰려 있고, 그건 공연이나 뮤지션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서울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지역으로 이야기하면 좀 특별한 느낌이기도 해요. 근데 생각해 보면, 외국 밴드에겐 ‘어디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게 당연한 일이어서 그렇게까지 새삼스러운 일 같지는 않아요. 거긴 워낙 많은 도시가 있고 도시마다 활동하는 뮤지션도 다양하니까요. 

재영 맞아요. 저도 부산 밴드라고 소개하는 게 특별한 일 같지는 않아요. 반대로 서울 밴드가 부산에서 공연하면 “서울에서 왔습니다.” 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공연하는 곳이 기준이 된다는 생각도 드네요. 세이수미 초창기 때 “서울에 (공연하러) 안 와도 되는 문화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죠. 그때에 비해 지금 부산 공연 문화는 어때요? 

수미 활동 시작했을 때랑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여전히 저희는 서울로 당연하게 공연하러 가고 있거든요. 사실 서울에 안 가도 되는 분위기…라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 같아요. 다만 서울에 집중되고 그쪽에 의존하는 경향이 좀 덜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해요. 가장 큰 이유는 왔다 갔다 하는 게 힘들어서지만, 사실 어디든 불러주는 데가 있으면 저희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호 주제어가 ‘부산’이에요. 식상한 질문이지만, 네 분은 부산이라고 하면 어떤 게 떠올라요? 성완 이 대답 역시 식상하지만, 바다죠. 여기서 5분만 걸어가면 광안리 바다가 펼쳐지는데 매일 보는데도 좋아요. 서울 사람들은 동해 보러 많이들 가시는데요. (고개를 저으며) 남해 바다는 또 달라요. 부산 바다는 남해랑 동해 경계에 있는데 그게 매력적이거든요. 아, 그리고 부산엔 산도 많아요. 산이랑 바다에 둘러싸인 도시여서 고바위가 많죠. 생활하기엔 불편한데 부산에 여행 오시는 분들은 그런 지형을 많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고바위요? 

병규 경사진 언덕을 고바위라고 하는데, 사투리인가? 서울에선 안 쓰나요? 잘 모르겠네요. 표준어처럼 굳어져서 사용하는 말이에요.

수미 일본어인가? (검색해 본다.) 전북 사투리로 언덕배기래요. 근데 일본어에서 온 것도 맞대요. 

병규 부산이 일본 말의 잔재가 가장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수미 저는 할머니랑 같이 살아서 일본어를 정말 많이 들어요. 대화의 5퍼센트 정도는 일본 말이죠. 할머니는 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배우셨대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사용하시더라고요. 

 

저희 부모님도 다꽝이나 다마네기 같은 단어는 자주 사용하세요. 

수미 저희 할머닌 다꽝만 아시고 단무지는 모르실걸요(웃음)? 

 

부산 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웃음). 부산에 사는 사람한테 ‘부산 하면 뭐가 떠올라요?’ 했을 때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 것이 당연한 거 같기도 해요. 

수미 사실 집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가족들 얼굴 생각나고요. 바다도 항상 여기 있는 거니까 특별하지 않지만, 타지 사람이 온다면 소개해 주고 싶은 곳이죠. 돼지국밥도 저한텐 평범한 식단인데 막상 누군가에게 소개해야 한다면 꼭 이야기하게 되는 먹거리 중 하나고요. 

병규 다들 수미랑 비슷할 것 같아요. 산이랑 바다가 같이 있는 곳이 전 세계에 부산이 유일할 정도로 드물다고 하던데, 이런 정보는 저희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니까요. 저는 여기서 나고 자란 사람이어서 뭘 소개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네 분 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만큼 나만의 공간이나 장소도 있을 것 같아요. 어느 인터뷰에서 병규 씨가 ‘토함산 레코드’ 이야기하신 게 꽤 인상 깊었어요. 

병규 아, 토함산 레코드(웃음). 저는 고등학생 때까지 반송이라는 동네에 살았는데, 거기가 말 그대로 좀 험한 동네였어요. 그 당시 기타 배우면서 음악 듣던 시절이라 하굣길에 자주 들르던 레코드 숍인데요. 한두 평이 채 안 되는 곳이었는데 매일 학교 끝나면 들렀다 집에 가는 게 저만의 루트였어요. 그때만 해도 CD보다는 카세트테이프 위주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죠. 매일 들르다 보니까 가게 아주머니랑도 친했고, 저한텐 일상적인 공간이었죠.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 동네에 가지 않아서 아직까지 남아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없어졌겠죠? 근데 이제 토함산 레코드뿐만 아니라 부산에서 오프라인 레코드 숍을 보긴 힘들어요. 교보문고에 있는 핫트랙스처럼 큰 데가 아니면 다 사라지고 없죠. 

수미 저는… 금정산이요. 부산은 어느 동네엘 가도 산의 접근성이 굉장히 좋아요. 이 작업실이 있는 곳과 가장 가까운 역 이름도 ‘금련산역’이고요. 그 옆으로 조금만 더 가면 황령산이 있고, 서면도 황령산으로 연결돼 있어요. 저는 오랫동안 범어사가 있는 금정산 아래 살았어요. 금정산 산책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죠. 요즘도 왕복 한 시간 코스로 즐겨 걷고 있어요. 

재영 저도 금정산 얘기하려고 했는데(웃음). 둘이 같은 동네 살거든요. 한번은 산책 겸 산에 올랐는데, 내려가는 길에 수미 누나를 만났어요. 원래 둘이 다른 코스로 다니거든요. 누난 좀더 예쁘고 아기자기한 길이고 저는 약간 삭막하고 꼬불꼬불한 코스인데, 최근에 누나 코스로 몇 번 다녔더니 마주치기도 하더라고요. 

성완 저는 특별하게 애정을 가진 공간은 없지만 전포동 좋아해요. 거기 카페가 많아서 지금은 전포 카페거리라는 이름도 붙었는데요. 이름 붙기 전부터 자주 가던 곳이라 그 동네가 번화가가 되는 걸 지켜보기도 했어요. 제 작업실 겸 학원이 거기 있어서 친숙한 동네기도 하고요. 

수미 지금 부산에서 가장 핫한 동네예요. 전포동에서 카페 투어 하시는 분도 많고, 관광객도 많이 몰리는 곳이죠. 캐리어 끌고 다니는 분도 자주 보여요.

세이수미는 ‘작설원’이라는 곳에서 차랑 맥주를 마시다가 “심심하면 밴드나 하자.”면서 결성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작설원도 부산에 있는 공간인 거죠? 

수미 네, 남포동에 있는 찻집이에요. 정확히 언제 오픈했는지 모르겠지만 80년대 후반 즈음 생긴 걸로 알고 있어요. 옛날엔 부산에서 시내 나간다고 하면 남포동이었거든요. 원장님 혼자 오랫동안 운영하고 계신데요. 지난주에도 다녀왔는데, 제가 다니던 초창기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테이블이 있고, 캄캄하고…. 들어가면 마음이 편해져요.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오래된 컴퓨터로 직접 선곡할 수도 있고요. 작설원에서 결성됐다는 소개 글을 초기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 굉장히 많은 게 생략된 글이에요. 작설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맥주를 팔지도 않고, 단골이나 원장님 아는 사람이 왔을 때만 마실 수 있거든요(웃음). 소개 글만 읽으면 저희 멤버들이 작설원을 자주 다니는 것 같지만… 그날 이전에도, 이후에도 넷이 함께 작설원에 간 적은 없어요(웃음).

 

그때 “수미 말하는 목소리가 괜찮으니 보컬을 해라.”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수미 그건 맞아요(웃음). 

병규 그 이야기를 한 건 전데요. 그 당시엔 저희 둘이 친하질 않았거든요.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는 잘 모르지만 목소리가 좋아서 그랬던 거 같아요. “수미 씨가 보컬을 해보는 게 어떨까, 목소리도 좋던데.” 하고요. 

 

작설원에서의 멤버는 이 구성이 아니었죠? 수미, 병규 씨는 원년 멤버지만 성완, 재영 씨는 밴드가 활동하던 중에 합류하신 걸로 알아요. 

재영 그렇죠. 그 전엔 세이수미 공연을 보러 다니기도 했죠. 처음 본 건 2014년, 15년 즈음이었어요. ‘베이스먼트’라는 부산 펍에서 처음 봤죠. 그때 ‘아, 뭔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함께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세이수미가 공연한다고 하면 외국인이 많이 왔던 기억도 나요. 

 

세이수미 공연이라 외국인이 많았던 건가요? 

재영 원래도 부산엔 외국인 관객이 많은 편인데, 세이수미가 공연하면 유독 더 많았어요. 

수미 부산에 있는 외국인들 다 모였죠(웃음). 이상하게 외국인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계속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해서 외국 관객을 만날 일이 더 많았을지도 몰라요. 큰 공연장보다는 자유롭잖아요. 너무 옛날 얘길 하는 거 같지만(웃음) 재영이가 세이수미를 처음 봤다는 2014년 즈음이 막 수입 맥주 들어오던 시절이었는데요. 같이 맥주 마시면서 외국인 관객들이랑 노는 느낌으로 공연하곤 했어요. 

 

요즘 부산의 공연 문화는 어때요? 

수미 한창 외국인이 많이 오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좀 달라진 것 같기도 하고요. 

병규 일단 공연할 만한 공간이 많이 사라졌어요. 재영이가 말한 베이스먼트는 부산대학교 앞에 있던 펍인데요. 음, 서울에서 비슷한 곳을 찾자면…. 

수미 ‘스트레인지 프룻’? 

병규 거기도 베이스먼트에 비하면 공연장에 가까운 공간인데, 여하튼 베이스먼트는 좀더 펍 역할을 많이 하는 곳이에요. 술에 집중하는 거죠. 이제 부산엔 그런 공간도 거의 없어요. 부산대 앞에 라이브 클럽이 제법 있었는데 이제 운영하는 곳이 손에 꼽거든요. 펍 형식의 공연장은 광안리에 한 곳 정도? 경성대 근처에 그나마 평일에도 활발하게 공연이 열리는 ‘오방가르드’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도 제 살 깎아 먹어가며 유지하는 공간이에요. 사명감을 가지고. 

 

부산에서 공연하기가 힘들어졌겠네요. 

병규 신기하게도 부산에 기반을 둔 뮤지션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거든요. 장르적으로도 다양해졌고 연령대도 확실히 어려졌고요. 음악 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이 생기는데, 역설적이게도 공연할 공간은 점점 없어지고 있는 거예요. 오방가르드마저 없어진다면 부산에선 정말 공연할 곳이 한 군데도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죠. 그렇다고 공연장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요. 제가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 공간은 주도적으로 공연을 만들어 내고 운영해 나가는 곳들이에요. 부산은 서울과 달라서 뮤지션이 자체적으로 공연을 기획하고 꾸리는 데 한계가 많거든요. 그래서 클럽이 그런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이제 기획 공연을 만드는 곳은 거의 없고 ‘공연하고 싶으면 와서 해라.’ 느낌의 공간뿐인 거죠. 그런 데는 뮤지션이 이상하게 잘 모이지 않아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상생하는 공간을 좋아하나 봐요.

세이수미 인터뷰에서 부산 라이브 클럽은 밤 11시에 공연이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읽고 놀랐어요. 서울은 대체로 저녁 6-8시에 시작되잖아요. 

병규 아, 그건 라이브 클럽이라기보다는 펍의 경우예요. 공연도 공연인데 술장사가 주다 보니까 술 마시러 오시는 분들을 고려해서 늦게 시작하는 거죠. 여전히 펍에서는 공연 시간이 늦은 편이지만, 그 외 공연장에서는 7-8시쯤? 서울과 비슷하게 시작하는 것 같아요. 

 

또 부산만의 공연 문화가 있나요? 

수미 크게는 없는 것 같아요. 

병규 갑자기 에피소드가 하나 생각났는데(웃음). 부산 MBC 라디오에 <자갈치 아지매>라고 유명한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이 있어요. 수십 년쯤 된 유명한 프로그램인데, 수미 혼자 나가게 됐거든요. 스태프들이 질문을 했는데, “부산 관객들은 열정적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나 봐요. 그쪽으로 답변을 유도하는데 수미가 냉정하게 ‘아니다, 부산 사람들이 오히려 더 경직돼 있고 호응도 없다.’고 한 거예요(웃음). 그런 대답이 나오니까 약간 마가 뜨더라고요. 그게 정말 웃겼는데(웃음). 

수미 근데 부산 사람들이 좀 무뚝뚝한 데가 있지 않아요? 연령대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 그렇고요, 연령대가 내려올수록 확실히 그런 면은 옅어지는 것 같아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모두 그렇다고 할 순 없지만, 저는 서울 사람에 비해 부산 사람이 확실히 무뚝뚝하다고 느껴요. 어르신들은 장난 아니에요(웃음).

 

관객들도 그래요? 

수미 네. 부산 사람들은 무뚝뚝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데 서울 사람들은 호응하거나 환호하는 데 거침이 없어요. 

 

연령대가 낮아질수록 무뚝뚝한 경향이 덜하다고 하셨는데요. 세대가 계속 내려오다 보면 나중엔 그런 성향이 옅어지게 될까요? 

병규 확실히 그럴 것 같아요. 부산뿐만 아니라 어떤 지역이든지요. 어떤 면에선 경계가 허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좀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이를테면, 제주도 방언이 조선시대 고어랑 가장 비슷한 말이라고 하는데요. 지금 제주도 젊은이들은 제주도 사투리를 안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주도 지자체에서 고어 유지를 위해 사투리를 지키려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요. 그런 측면에선 고유의 것이 사라진다는 게 아쉽죠. 시간이 흐르면서 옛 흔적은 점점 사라질 텐데, 뿌리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도 있고요. 

수미 무뚝뚝하다는 것도 사실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거예요. 어떤 측면에서는 장점으로 보일 수도 있을 텐데요. 어쨌든 부정적으로 느껴질 여지가 있는 것들은 유난히 더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세이수미가 활동한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죠. 맨 처음 만든 곡이 ‘Bad Feeling’이라고 알고 있는데, 가장 최근에 만든 곡 이야기도 궁금해요. 

병규 올해 6-7월쯤 싱글로 발매 준비 중인 곡인데, ‘Bad Feeling’이랑 비슷하다면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곡은 제가 만들고 가사는 수미가 붙이고 있는데요. 시기에 따라서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요즘엔 ‘초반 스타일 곡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작업 중인 때여서 ‘Bad Feeling’이랑 비슷한 느낌이 담겼어요. 제목은 ‘Mind Is Light’예요. 곧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10년 동안 앨범도 여러 장 나오고, 영국 댐나블리의 러브콜도 받고, 유럽 투어, 아시아 공연 등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엘튼 존Elton John이 팟캐스트에서 세이수미 음악을 언급한 게 화제가 되기도 했고요. 이전과 비교해서 어떤 점이 좀 달라졌다고 느끼나요? 

병규 모든 게 다 달라졌어요. 사운드적으로도 그렇고, 곡의 형식도 그렇고요. 세이수미만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변하는 게 중요할 텐데, 사실 변화라고 해도 저희가 할 줄 아는 거 내에서 달라지기 때문에 외부에서 봤을 때는 달라졌다는 느낌이 없을 수도 있어요. 

수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달라졌죠. 가장 큰 건 녹음하는 시스템. 예전에는 외부 힘을 빌려서 녹음했지만 지금은 모든 걸 직접 하고 있거든요. 

병규 예전엔 서울에 있는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하곤 했어요. 유능하고 믿을 수 있는 엔지니어와 믹스 작업을 함께 해왔는데요. 과정과 결과는 만족스러웠지만 녹음 때마다 서울에 2-3주씩 있어야 하는 게 힘에 부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 직접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조금씩 공부도 하고 투자도 하면서 저희만의 스튜디오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죠. 지금은 합주도, 곡 작업도, 녹음도, 믹싱도 모두 이 공간에서 하고 있어요. 저희를 아는 부산 뮤지션들이 작업하러 오기도 하고요.

스튜디오 이름도 궁금해지는데요. 

병규 공개적으로 홍보하진 않아서 다들 ‘세이수미 스튜디오’라고 불러요. 재작년에 저희 나름대로 회사를 하나 설립하고 ‘비치타운 뮤직’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그걸 아는 분들은 비치타운 뮤직 스튜디오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우리끼리는 그냥 작업실(웃음). 

 

비치타운이라는 단어 느낌 참 좋네요. 이 동네랑 어울리기도 하고요. 바로 앞에 광안리 해변이 보여서 시야가 시원했어요. 오랜만에 보는 바다라 더 반가웠는데 매일 바다를 오가는 사람에겐 새롭게 느껴지진 않겠다 싶더라고요. 

수미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지만, 저는 매일 봐도 매번 감탄해요. 여기 올 때 주로 지하철을 타는데, 역에서 내려 걸을 때 저 멀리 바다가 보이거든요. 그럴 때 특히 좋아요. 걷는 길에 벚꽃 라인이 있어서 봄엔 좀더 황홀해지기도 하고요. 

병규 당기지는 않는데 막상 먹으면 맛있는 음식 있잖아요. 광안리는 그런 느낌이에요. 일부러 가진 않는데, 일 때문에라도 가게 되면 좋은 곳이죠. 

성완 작업실 앞이 바로 광안리인데도 넷이 다 같이 간 게… 언제더라(웃음)? 

수미 가끔 합주 마치고 다 같이 바다 보면서 밥을 먹고 싶을 때도 있는데요. 맘먹고 가면 늘 후회했어요. 경치가 중요한 상권이기 때문에 맛이나 가성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래서 식당엘 가더라도 기분 좀 내고 싶을 때 찾지, 자주 가진 않는 것 같아요. 

 

부산 하면 대부분 해운대나 광안리를 떠올리는데, 현지인으로선 어때요? 

병규 부산 사람들은 남포동을 ‘진짜 부산’이라고 많이 이야기해요. 작설원이 있는 동네인데요. 거기가 진정한 옛날 구도심이거든요. 부산에서 가장 먼저 발전한 도시이기도 하죠. 요즘에도 한 번씩 그 동네를 가게 되면, 다른 데는 다 발전했어도 거긴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부산 같다는 느낌이 확실히 들죠. 그 동네 가면 저도 오히려 다른 도시에 가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거든요. 예전에는 시청도 남포동에 있었대요. 

성완 저도 주말에 가족들이랑 어디 나간다고 하면 무조건 남포동이었어요. 거기가 저희한텐 시내였거든요. 저는 부산에서 태어나 쭉 살다가 서울에서 잠시 살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는데요. 너무 많은 게 현대식으로 발전하고, 바뀌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남포동만은 그대로더라고요. 그때 ‘여기는 여전히 부산 같다.’고 생각했어요. 

수미 남포동도 옛 모습 그대로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런데도 어떤 바이브…가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이랄까요? 

 

음악 얘기를 좀더 해볼게요. 세이수미 음악을 말할 때 ‘서프 록’이나 ‘90년대 미국 인디’라는 이야기가 많아요. 저는 이런 장르 구분이 항상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좀더 설명해 주실래요? 

병규 장르라는 건 어떤 면에선 음악의 구분이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선 뮤지션의 정체성이기도 해요. 사실 서프 록 같은 장르는 저희가 정했다기보다는 외부에서 언급하면서 굳어진 부분이에요. 저희는 90년대 미국 인디 록 기반으로 음악을 해나간다고 생각하거든요. 

 

90년대 인디 록이 정확히 어떤 거예요? 

병규 지금 저희 행색을 보면 아시겠지만, 꾸밀 줄 모르는 거? 

수미 그런 면이 음악에도 분명히 있고요. 

병규 저희 음악에 ‘꾸민다’는 이야기는 정말 안 붙거든요. 그게 외적으로도 표현이 되는 것 같아요. 외적인 모습도 음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음악이 외적인 모습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나의 정체성이 되는 거죠. 그래서 90년대 인디 록이라고 저희가 더 나서서 설명하는 거기도 하고요. 90년대 인디 문화를 즐기던 사람들이 그 당시 음악을 ‘너드 뮤직’이라고 표현했대요. 그런 게 저희를 표현하는 포인트가 분명히 되는 것 같아요. 

수미 너무 힘주면 잘 안 붙는 스타일이랄까요(웃음). 굳이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멤버들끼리도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정말… 후줄근한 인간들이에요. 시대는 변하고, 유행도 변하는데 저희는 계속 힘을 빼고 있으니까 가끔 이게 맞나 헷갈릴 때도 있어요. 그래서 남들이 하는 것도 많이 보려고 하죠. 저도 가끔은 유행하는 스타일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계속 의심이 들어요. ‘이게 세이수미가 맞나? 멤버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걱정도 되고요. 

 

외적으로도 그렇고, 음악적으로도 그런가요? 

수미 그렇죠. 아무도 눈치 못 챘을 수도 있지만(웃음) 저는 제 보컬이 초기랑 많이 비교된다고 생각해요. 그때는 ‘난 무조건 꾸미지 않아야 멋있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 저희 음악을 더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고요. 근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잘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잘 부른다는 게 뭘까도 많이 생각해 봤는데 사실 답이 없는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제가 듣기에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걸 목표로 삼고 있어요. 때때로 꾸며도 보고요. 사람들은 꾸민 줄도 모를 수 있지만, 저 나름대로 이것저것 변화를 시도하고 있어요.

최대한 힘을 빼고 음악을 한다고 하셨는데 하는 음악이랑 듣는 음악에는 차이가 있을 것도 같아요. 요즘 어떤 음악 즐겨 들어요? 

병규 얼마 전에 메탈리카Metallica 신보가 나와서 열심히 듣고 있어요. 최근 3-4년간은 올더스 하딩Aldous Harding을 가장 많이 들었고요. 

수미 저는 요즘 굉장한 과도기라고 느껴요. 랜덤 재생을 해놓고 들리는 대로 듣는 시기거든요. 그러는 중에서도 자주 손이 가는 건 카펜터스Capenters예요. 

성완 저도 비슷해요. 요즘엔 딱 꼬집어서 듣는 건 잘 없어요. 저는 아직도 CD를 구매해서 듣고 있는데, CD를 사지 않은 시점부터 음악을 안 듣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래도 음악은 늘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의무감으로 듣고는 있는데요. 록보다 재즈 위주로 듣고 있어요. 최근엔 그래미 어워드에서 신인상 받은 사마라 조이Samara Joy 앨범을 부지런히 들었어요. 사실 요새는 음악이 너무 많이 나와서 뭘 들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라는 생각도 조금 들기도 하고요. 

재영 다들 저랑 비슷하군요. 저도 음악을 듣다가 넘기는 일이 많아요. 요즘 제일 열심히 들은 건 녹음해야 할 세이수미 곡들이에요. 

 

세이수미 음악도 자주 듣나요? 

병규 작업 끝나면 잘 안 듣고요, 어쩌다 한 번씩 찾아 듣기는 해요. 느닷없이 듣고 싶을 때가 오거든요. 정말 음악으로 소비하고 싶을 때인데 그 시기가 어떨 때 오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올해 초에 애플 뮤직에서 총 플레이 타임을 집계해 줘서 유심히 봤는데요. 세이수미 플레이 타임도 꽤 높은 순위에 있더라고요(웃음). 

 

들으면 어떠세요? 

병규 좋죠. 근데 저희가 직접 녹음까지 작업을 다 하다 보니까 요즘엔 새로운 감상이 생겼어요.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저희 작업물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중간에 ‘왜 여기 이렇게 했지?’ 하는 부분도 생기고, 놓친 부분이 새롭게 들리기도 해요. 

수미 좀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싶을 때도 있고요. 녹음하던 시점과 듣는 시점의 내 취향이 바뀌었기 때문에 되돌아간다고 해도 고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최근 작업에 비해 옛날 작업을 잘 듣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 거는 너무나도… 돌이킬 수가 없거든요. 최근 작업도 그렇지만 근작일수록 그나마 제 취향 안에서 용인이 되는 범위 안에 있는 것 같아요.

세이수미 무대는 점점 넓어지고 있어요. 부산에서 서울로, 영국으로, 유럽으로, 아시아로…. 부산에서만 활동할 때랑 어떤 점이 달라진 것 같아요? 

수미 밴드 초반에는 미국 투어 가는 게 소원일 정도로 꿈꾸던 일이었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어느 공연이든 비슷비슷한 것 같아요. 좀 디테일하게 보자면 다른 점도 물론 있는데요. 외국은 공연이 좀더 자주 있고 전문적인 사람들이 상주하고 있어요. 체계가 잘 잡혀 있죠. 근데 저는 서울만 가도 발전했다는 걸 많이 느끼거든요. 그래서 점점 더 차이가 없다고 인식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해외에서 공연한다고 해서 어마어마하게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건 아니어서 더 그렇기도 하고요. 

 

유럽 투어를 떠올리면 세이수미의 위장 강도 사건이 제일 먼저 생각나요. 이미 많이 알려졌지만 모르는 독자 분도 있을 테니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수미 저는 살면서 ‘왜 이렇게 별나냐.’ 소리를 안 들으려고 사건 사고를 피해 오던 사람인데요. 왜 저희한테 그렇게나 큰일이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이탈리아로 공연하러 가던 길이었는데 거긴 이런 사건이 정말 많다고 하더라고요. 타이어 스캠이라고, 타이어를 터뜨리고 금품을 갈취하는 신종 사기 수법인데요. 그 정보를 접하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도 당하고 말았어요. 이탈리아로 국경을 넘자마자 타이어에 펑크가 나더라고요. ‘펑’ 소리에 놀라서 차를 갓길에 대고 살펴보는 사이에 차에 있는 모든 게 털렸어요. 하필 그때가 한 달 유럽 투어의 막바지였거든요. 공연하며 벌어들인 돈을 현금으로 소지하고 있었는데… 다 잃어버렸죠. 

병규 이탈리아 국경을 넘자마자 외교부에서 타이어 스캠 사건이 있으니까 조심하란 안내 메시지도 왔어요. 근데 타이어가 터지는 순간 그 메시지랑 연결시킬 생각을 아무도 못 했어요. 나중에 듣자 하니 저희 같은 사람이 쉽게 타깃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영국에서 투어를 시작했기 때문에 영국 밴이었고, 운전석 방향이 달랐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투어 차량이라는 게 눈에 띄었겠죠. 안에 값어치 있는 것들이 있겠다고 생각할 테고, 아시아인들이다 보니까 목표가 되기 더 쉬웠을 거예요. 

수미 위장 강도를 당한 날도 공연이 있었는데, 공연 전에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취해야겠다 싶어서 경찰서로 갔는데요. 저희 같은 사람이 경찰서에 가득 있는 거예요. 온갖 나라 사람들이 잔뜩 성이 난 채로 모여 있는데, 장관이더라고요. 일요일이어서 처리해 줄 경찰관도 없고…. 종일 기다려도 접수조차 안 될 상황이라 포기하고 무대에 올랐어요. 라이브 도중에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 허무함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래도 어찌어찌 잘 마쳤죠. 그다음 날 공연은 프랑스였는데 하필 여권까지 다 잃어버려서 긴급 여권 만들고…. 다사다난했어요. 유럽 투어는 정말 꿈꾸던 일이었는데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까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그 이후 저희 투어를 돕기 위한 펀딩을 오픈했고, 상쇄할 만한 금액이 모였어요. 세상엔 나쁜 사람도 있지만 좋은 사람도 많다는 걸 실감한 경험이었죠. 

 

그 사건을 겪은 멤버 구성은 지금과는 달랐죠. 분위기도 바꿔볼 겸, 지금 멤버로 좋았던 일을 이야기해 볼까요? 수미 정규 3집을 함께 발매한 거요. 저희가 회사를 만들고, 모든 걸 저희 힘으로 만든 그 앨범이 성장하는 데 좋은 계기가 되어주었어요. 

성완 맞아요. 3집이 나오기 전엔 제가 직접 투입된 앨범이 없어서 함께 공연하면서도 ‘진짜 멤버’라고 이야기하기가 왠지 민망했거든요. 근데 정규 3집이 나오면서부터는 확실히 멤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세이수미에 합류하고 유럽도, 미국도 다녀왔는데요. 그런데도 제가 작업한 곡이 없으니까 조금은 아쉬운 지점이 있었는데 정규 3집이 나오면서 그런 마음이 싹 사라졌어요. 이전에는 이미 있던 곡을 연주하는 느낌이었다면, 요즘은 제가 작업한 곡을 직접 연주하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재영 저는 도쿄 공연 때가 정말 좋았어요. 해외 공연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문밖까지 줄을 서서 저희 공연을 즐기고 있었거든요. 공연장에 들어오지 못해서 간신히 계단에서 보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와, 신기하다.’ 그런 기분으로 공연했죠.

수미 아, 일본 하니까 작년에 후지 록 페스티벌에 못 간 기억이 떠오르네요. 섭외가 돼서 무척 좋아했는데 가기 직전에 PCR 검사에서 제가 양성이 떠버렸거든요. 

 

그래서요? 

수미 못 갔죠. 굉장히 기대한 공연이었는데 아직도 아쉬워요.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연말에 일본에서 단독 공연을 했죠. 사실 재영이는 세이수미에 투입되고 계속 팬데믹 상황이라 투어에 제대로 참여를 못 했어요. 저희가 해외 투어 한 이야기를 해도 공감을 못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때 같이 다녀와서 저희도 좋았어요.

 

짓궂은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세이수미에서 부산을 제거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병규 부산을 강조하든 제거하든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조금 건방지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냥 우리거든요. 그래서 부산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요소이기도 해요. 

수미 하지만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긴 하죠. 세이수미는 세이수미지만 어쨌든 부산에 있는 세이수미니까요. 그러니까 저희가 울산 친구들이었다면 울산에 있는 세이수미가 되었겠죠? 어쨌든 세이수미는 계속 세이수미일 거예요. 근데, 저는 여기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이게 부산 사람들의 고집인가 싶기도 하고요. 왜 서울로 안 가냐는 질문을 참 많이 받았는데 사실 서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왔다 갔다 하는 건 분명히 힘들지만 서울에 산다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 같아요. 생활 터전을 바꾸는 건 엄청난 일이잖아요. 

 

굳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하시는 거네요. 

성완 맞아요. 그런 고민이 없어요. KTX도 있고, 비행기도 있는데 굳이 서울로 갈 필요가 있나요? 저희가 세이수미를 하는 건 부산 사람이어서는 아니니까 부산이 아니어도 저흰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거예요. 다만, 부산이라는 지역의 덕은 보고 있다고 생각해요. 

수미 부산이란 주제에 저희를 떠올려 주신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고요. 그런 식으로 덕을 보는 것 같아요. 이런 기회를 통해 사람들이 저희 음악을 한 번 더 들어주고, 저희 존재를 알아주시는 것도 그런 덕택이겠죠. 

 

앞으로 “부산에서 활동하는 세이수미입니다.”라는 소개를 들으면 더 반가워질 것 같아요.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마지막 질문은 ‘아무 말도 하지 말자’를 듣다가 떠올렸는데요, 노랫말 그대로 질문으로 남겨 볼게요. “우리 오늘 밤에 어디로 갈까?” 

수미 집에 가야죠. 작업실에서 집까지 한 시간 걸린다고요(웃음)!

서울 사람에 비해 부산 사람이 무뚝뚝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화장실을 묻는 나에게 무심한 말투로 “모셔다 드려라.” 하는 목소리를 들어버려서였다. “계단 올라가서 왼쪽에 있어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도 화장실 앞까지 데려다 주고, 불을 켜주고, 화장실 컨디션을 이야기해 주고, “먼저 내려가 있을게요.”라는 이야기까지 덧붙이는 마음. 사근사근한 말투나 대단히 다정한 손길은 없었지만, 덤덤한 표정으로 마실 걸 내어주거나 보폭을 맞춰주는 조용한 배려를 나는 안온하다고 느꼈다. 그것은 꾸며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