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가치 한 켤레

성태민 — 삭스타즈

대화할 때 그는 자주 이렇게 말문을 텄다. “이건 성향 차이일 텐데요.”, “저의 경우에는”,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있겠지만”…. 결코 쉽게 단정 짓지 않고, 무른 울타리로 둘러싸인 삭스타즈 대표 성태민은 언제든 허물어질 준비가, 변화할 채비가 되어 있다. 나는 그의 단단하고 느슨한 말들이 좋았다. 또렷하게 나의 지금을 말하면서도 틀렸을 땐 언제라도 새로워질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말들을. ‘지금의 나’와 ‘내가 원하는 나’ 사이를 유영하는 그와 이야기 주고받으며 내 마음도 유유히 좋은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알았다.

악보에 쉼표가 존재하는 건 그 앞에 음표가 있었다는 의미예요.

음표와 쉼표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일과 쉼은 반드시 동반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큰 일에는 큰 쉼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강아지가 올라타서 얼굴을 핥는다.) 반가워(웃음)! 이 친구가 ‘사월이’군요. 정말 사람을 좋아하네요. 

아유, 너무 좋아해서 문제예요. 하도 이래서 와이프가 오늘 데리고 출근하느냐 물어봤는데…. 사월! 그만, 왜 이렇게 신났어. 이러다 곧 지칠 텐데 오늘은 유독 에너지가 좋아 보이네요. 어릴 땐 더 심했는데 일곱 살이 되어도 얌전해지진 않는 것 같아요(웃음). 사월이는 파주로 이사 오면서 함께 살게 된 아이예요. 마침 동생이 수의사여서 입양 전에 이것저것 조언을 구할 수 있었는데요, 사월이 데려올 당시엔 아이를 계획할 때여서 만나자마자 점프하거나 올라타는 강아지는 피하는 게 좋겠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또, 쓰다듬었을 때 털이 너무 많이 빠지면 관리가 어렵다는 조언도 들었고요. 근데 사월이가 여기에 다 해당하는 거예요(웃음). 하지만 얘 표정을 보고는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표정이 정말 좋잖아요. 4개월 때 데려왔는데 그땐 지금보다 더 초롱초롱했어요. 

 

모든 동물이 그렇지만 사월이는 표정이 특히 순하고 맑아요. 긴 시간 식구로 지냈는데 건강은 어때요? 

얼마 전에 허리를 삐끗해서 놀란 적이 있지만요. 갑자기 움직이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어서 가슴이 철렁했어요. 아무리 못 해도 허리가 부러졌겠구나 싶어서 저녁 늦게 24시 동물병원에 급하게 찾아갔거든요. 엑스레이도 찍어보고 2차 병원에 진료예약을 잡아서 이것저것 검사도 했는데 허리를 삐끗해서 통증에 놀란 거지 큰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정말 놀랐겠어요. 많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에요. 사월이 정말 똑똑한 것 같아요. “앉아!” 하니까 앉고, “그만!” 하면 행동을 멈추네요. 

“예뻐.”, “귀여워.” 같은 말도 다 알아들어요.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하우스.” 하면 자기 집에 가 있고, “돌아!” 그러면 뱅글뱅글 돌더라고요. 너무 똑똑해서 가끔은 얄미워요(웃음). 서랍이나 선반도 알아서 열고 그러거든요. 보시면 저희 집에 서랍이나 붙박이장에 손잡이가 하나도 없어요. 사월이가 있기도 하고, 너무 오래된 아파트이기도 해서 인테리어를 싹 바꾸었어요. 와이프가 여백을 좋아해서 군더더기 장식들을 없애고 벽도 허물어서 탁 트이게 만들었죠. 

 

그래서 이렇게 집이 깔끔해 보이는군요.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에요. 

이전 집이 워낙 폐쇄적이어서 이번 집에서는 꼭 개방감을 주고 싶었어요. 오래된 아파트라 대대적으로 고치고 들어왔죠. 사실 집에서 인터뷰하기는 처음이라 조심스러워요. 제안이 와도 거절했고,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거든요. 손님은커녕 이 집에 온 친구도 몇 안 돼요. 

 

영광이에요.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있잖아요. 아, 이번에 <양파인> 정말 재미있게 들었어요. 삭스타즈에서 팟캐스트를 시작하다니! 

전부터 해보고 싶은 일이었어요. 잘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기분은 좋아요. 이제 에피소드 하나 업로드한 상태지만요(웃음). 

 

프로그램 마지막을 “오늘 무슨 양말 신었나요?”로 맺던데 저는 인트로로 여쭤볼게요. 오늘 어떤 양말 신으셨어요? 

지금 신은 건 톰슨가젤이 담긴 양말이에요. 오늘 몇 켤레 갈아 신어 보려고 하는데, 이 양말은 밝은 양말도 실용성이 좋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골랐어요. 전보다는 패션 양말이 남녀노소에게 두루 사랑받는 것 같지만, 아직도 남성분들은 밝은색 양말을 조금 부담스러워해요. 묵직한 하의로 눌러주면 밝은 양말도 편히 신을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정장에도 제법 잘 어울리고요. 

 

잠잠한 매력도 있고, 귀여워요(웃음). <양파인> 콘텐츠를 유튜브로도 고려했는데 ‘꾸준하게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다 보니 팟캐스트가 맞겠다 싶었다고요. 대표님이 13년간 삭스타즈를 통해 이야기해 온 많은 것에 ‘꾸준함’이란 가치가 눈에 띄어요.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흐지부지되는 걸 못 참는 성격이에요.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스트레스가 정말 심하거든요. 그래서 뭔가를 시작할 때 “나 이런 거 한다!” 하면서 일부러 주변에 알리려고 해요. 제가 워낙 싫증을 잘 내서 ‘난 이것도 분명히 싫증 낼 거야.’라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뭐든 ‘꾸준히 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것 같아요.

정반대의 모습을 원하시는 거네요. 최근에 싫증 난 상황이나 물건 있으세요? 

창문 닦는 로봇이요(웃음). 신기해서 샀는데 딱 한 번 하고 질려서 안 꺼내게 되더라고요. 동그랗게 생겼는데 벽에 딱 붙어서 유리를 닦으며 지나가요. 로봇 청소기처럼 돌아다니는 건데, 자주 쓰겠지 생각했지만 막상 사니까 잘 안 쓰게 되더라고요. 

 

내 성향과 반대를 생각하며 일을 해나가는 데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지속성을 위해 팟캐스트에서도 ‘내가 무슨 말을 할까.’를 생각하기보다는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하나.’를 생각했다고 하셨죠. 

사람마다 다를 것 같지만, 저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소거하면서 해결하는 편이에요. 어떤 사람은 단번에 해답을 찾아내기도 하고, 목표를 향해 가면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해요. 근데 저는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걸 고려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제 방식이 정답은 아니지만 저한테는 잘 맞아요. 대체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의 목록을 먼저 작성하고 그다음에 ‘해야 할 것’을 쓰거든요. 오답 노트로 공부하는 타입이죠(웃음). 어떤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책보다는 실패한 에피소드, 잘 안된 일들에 관심이 생기고 잘된 사람 이야기는 굳이 안 보려고 해요. ‘저 사람은 저렇게 성공했구나, 나도 힘내야지!’보다는 ‘저 사람은 저래서 망했구나, 조심해야지.’에 집중하는 거죠. <백종원의 골목식당> 보면, 저 식당이 왜 망해가는지 전 국민이 아는데 본인만 모르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저한테 실패에 대한 강한 거부 반응과 실패의 이유를 나만 모를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도 하는데 대표님께는 실패를 방지하는 게 실패나 성공보다도 우선인 것 같아요. 

맞아요. 성공하고 싶은 욕구보다 실패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더 커요. 제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건 큰 성공을 거둬서라기보다는 이 가정과 내 직원들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예요. 그래서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회사가 너무 효율적으로만 돌아가거든요. 효율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효율 못지않게 효과적인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효과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실패하지 않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게 돼요. 

 

대표님이 이야기하는 실패는 단순히 매출이 안 나온다는 의미는 아닌 것 같아요. 

놓지 않고 계속하면 무엇이든 사실 실패란 건 없어요. 돌아가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죠. 저는 어릴 땐 목표지향적인 사람이었어요. 성공을 향한 갈망이 무척 커서 관련된 책이나 강연을 찾아보곤 했죠. 지켜야 하는 가족과 직원이 없을 때는 두려울 게 많지 않았어요. 하다가 잘 안되면 제 몸 하나만 책임지면 됐으니까요. 근데 이젠 그게 아니에요. 

 

사람과 책임이 더 중요해진 거군요. 

당연히 회사의 목적은 이윤 추구인데 요즘은 저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즐거운 삶, 행복하고 즐거운 삶 없이 회사만 성장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우리 손님들이 삭스타즈에서 소소한 기쁨을 얻어 가는 거, 그게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죠.

팟캐스트에서도 “직원들이 저녁 있는 삶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근데 정작 대표님은 삶 안에 일이 있고, 일 안에 삶이 있는 ‘워라일체’의 삶을 살고 있다고요. 그럼 쉼은 어디 위치하고 있어요? 

쉼도 일에 속해 있죠. 일하다 잠시 중단하고 한숨 돌린다든지, 하늘을 본다든지, 바람 쐬러 나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커피를 산다든지, 정말 단순하게는 일하다 기지개 한 번 켜는 것도 저에겐 쉼이에요. 그 사이사이 빠르게 충전해 나가거든요. 저는 ‘지금부터 일하는 시간, 이제부턴 쉬는 시간.’ 하고 이분법적으로 나누기가 어려워요. 일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하고… 그게 제 삶인 거죠. 부부가 같이 일하고 있어서 더 그럴 거예요. 어떻게 보면 사업 이야기도 부부의 일이고, 부부 일이 사업이기도 하거든요. 육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다음 시즌 얘기하는 게 저희 대화 패턴이어서요. 그러다 강제로 반나절 정도 전원을 내리고 각자의 시간을 갖기도 하죠. 

 

잘 자거나 잘 쉬고 나면 “아, 정말 푹 쉬었다!” 할 때가 있잖아요. 워라일체라면 그런 기분은 언제 느끼세요? 

최근에 ‘취향전’이라는 마켓을 했는데 그때 정말 쉬는 느낌을 받았어요. 당일 매장을 지켜야 하는 직원을 제외하고 퇴사한 이전 직원부터 지금 직원까지 한자리에 모였거든요. 외부에서 마케팅하는 친구, 본사에서 운반 업무 하는 친구,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는 친구 등 만날 일 없는 직원이 모두! 마켓이었는데 저희 부스엔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웃음). 

 

마음이 좋았을 것 같아요.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시절 불문하고 모인 거니까요. 앞서 실패와 약점을 소거하면서 일을 시작한다고 하셨는데요. 삭스타즈를 시작할 때도 실패한 사례를 먼저 살펴보셨다고 했어요. 그래도 가끔은 성공을 꿈꾸게 되지 않나요? 

실패를 고려한다고 해서 미래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저는 의심도 많고, 말하자면 부정적인 성격인데요. 하나씩 의심하고 소거한다고 해도 그 근본엔 잘될 거라는 기대와 긍정적인 마음이 있어요. 단지 머리를 쓰는 과정에서 냉정해지는 거예요. 

 

나에 관해 곰곰 생각해야 알 수 있는 지점 같아요. 대표님이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나다움’인데요, 그게… 뭘까요? 어떻게 알아갈 수 있을까요? 

나한테 솔직해지면 나를 이해할 수 있어요. 가끔 타인과 대화하다가 “사실 난 이런 사람이야.”라거나 “내 성격이 이래.”라는 이야기를 할 때가 있잖아요. 나를 이해하는 사람만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알게 되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고, 나를 변명하거나 합리화하는 데도 이용할 수 있거든요. 의식적으로 자신을 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게 나를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저는 의식적으로 저를 알아가고 싶어서 사색도, 명상도 자주 해요. 메타 인지를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공감 능력이 좀 떨어지고 사회성도 부족한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교감하기보다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런데도 주변에 사람을 많이 두고 소통 잘하는 사람들을 동경해요. 제가 바라는 제 모습은 좀더 사회성도 있고, 공감도, 소통도 잘하는 사람이죠. 그 지점을 맞춰 가면서 점점 제가 되고 싶은 제 모습 쪽으로 향해 가는 게 나다움을 찾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지금 내 모습과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모두 살피는 통찰력이 필요하네요. 

그렇죠. 나 자신을 잘 알지 못하면 ‘내가 되고 싶은 나’가 자기라고 착각하게 돼요. 주변 사람들이 보는 제 모습은 진짜 제 모습과 내가 되고 싶은 나 사이 어딘가에 있는 저일 거예요.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같은 A를 보고도 누구는 “그 사람 소심하잖아.”라고 이야기하는 반면, 또 다른 사람은 “하나도 안 소심한데?”라는 상반된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A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소심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진 사람일 수 있어요. 양쪽 모두 A의 모습이겠죠. 그래서 나답다는 건 한마디로 정확하게 정의하긴 힘든 것 같아요. 데이터로 분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MBTI 같은 성격 유형 검사도 100퍼센트 신뢰하기 어려운 게, 자기가 되고 싶은 모습에 빙의해서 답변하게 된다고 하잖아요.

나에 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네요. 나를 알아가기 위해 명상을 자주 하신다고 했는데, 도움이 되나요? 

명상이라고 하지만 제대로 배워서 하는 건 아니고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그런 시간을 가지려고 매일 노력해요. 짧게 할 때도 있고 길게 할 때도 있는데, 보통 아침 8시 반쯤 일어나서 딸이 일어나기 전에 시작해요. 누군가는 음악을 틀고 한다는데 저는 음악을 들으면 자꾸 상상을 하게 돼서 아무 소리도 없는 상태가 좋더라고요. 대체로 영화 <매트릭스>(1999)에 나오는 새하얀 방을 상상해요. 하루를 부팅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우려고 명상하는 거죠. 짧게 하면 10분도 안 할 때도 있고, 길게 하면 한 시간도 해요. 

 

오늘 명상은 어떠셨어요? 

마음을 비우고 정돈하는 시간이었어요. 오랜만에 하는 인터뷰여서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이어졌거든요. 사실 인터뷰를 좀 무서워하는데요(웃음). 보통은 인터뷰어가 이전 인터뷰를 다 읽어보잖아요. 저도 사람이니까 생각이 바뀔 때도 있고, 가끔은 극에서 극으로 바뀌기도 하니까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박제돼 버리는 게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오늘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어떤 이야기를 안 해야 할까, 계속 생각했어요. 

 

명상의 결론은요? 

요즘 제가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자기 인지에 대한 것도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중 하나였죠. 제가 원하는 방향, 제 욕망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게 살아가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오늘 인터뷰를 걱정하면서 너무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하는 건 피하자고 생각했어요. 얼마 전에 브랜드 대표 인터뷰를 몇 건 봤는데 너무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저는 제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걸 항상 생각하려고 해요. 논리가 어설픈데 확신에 차 있으면… 보기 안 좋더라고요. 

 

집 밖에서는 대표, 집에서는 아빠 역할을 하고 있을 텐데요. 대표 직함을 내려둔 아빠 성태민도 궁금해지네요. 

딸이랑 포켓몬 놀이 하는 사람이요(웃음). 제가 트레이너고 딸이 포켓몬이에요. 아, 요즘은 산리오 캐릭터로도 역할 놀이를 자주 해요. 보통 딸 시윤이가 ‘시나모롤’이고 제가 ‘포차코’나 ‘폼폼푸린’ 역할인데 시윤이 세계관에서 시나모롤은 “시나시나”라는 말밖에 못 해요. 근데 얼마 전에는 저보고 시나모롤을 하라더라고요. 그래서 시윤이가 “이거 먹어.” 하면 “시나시나” 하고 먹는 시늉을 하고, “저기 가자.” 하면 “시나시나” 하고 쫓아가는 놀이를 했어요. 무려 한 시간 넘게(웃음). 

 

한 시간이나요? 

네(웃음). “이제 그만하자, 시윤아.” 그랬더니 “아빠! ‘시나시나’라고 해야지!” 하더라고요. 손으로 엑스를 그리고, 고개를 저으면서 “시나시나” 하고 있는데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근데, 사람이 한 시간 넘게 “시나시나”를 하고 있으니까 금세 뇌가 거기 적응하는 거 있죠. 제가 전화를 받고 뭐라고 했는지 아세요? 

 

설마…. 

“시나시나?” 

 

(크게 웃는다.) 어떡해요!

 “시나시나? 아 죄송합니다.” 그랬죠(웃음). 

 

완벽히 아빠이던 시간이네요(웃음). 다시 대표 역할로 돌아와 볼게요. 삭스타즈는 “양말로 세계를 정복하겠어!” 하는 포부보다도 자그마한 것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돌아오는 퇴근길 버스 안에서 고개를 숙였다가도 오늘 신고 나온 멋들어진 양말을 보고 조금은 웃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라는 말도 그렇고, 삭스타즈 양말을 ‘하루의 작은 위로’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요. 

저는 행복이라는 게 도달해야 하는 지점이나 목표가 아니라 관점에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여기저기서 많이 하는 말이라 식상하긴 한데, 행복은 빈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양말은 행복의 빈도를 채워주기에 괜찮은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볼게요. 같은 양말이어도 하나는 신었을 때 좀 불편하고, 하나는 되게 편해요. 근데 편한 양말 금액이 더 비싸요. 그럴 때 어떤 걸 선택하세요? 저는 비싸더라도 편한 양말을 사고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 행복의 빈도를 자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남들은 제가 신은 양말이 편한지, 아닌지 모르니까 편한 양말을 택하는 건 온전히 나를 위해서잖아요. 오늘 신은 이 양말도 속실에 신경을 많이 써서 제작된 양말이에요. 어떤 겉실을 쓰느냐에 따라 컬러나 디자인이 달라진다면, 속실은 신었을 때 촉감이나 편안함이 달라지거든요. 속실이 좋은 제품을 신으면 느낌이 굉장히 좋아요. 대신 비싸지죠. 자기만족에 비중을 두는 사람은 비싸더라도 속실이 좋은 양말을 사겠죠? 근데 의외로 피부에 가까운 패브릭일수록 절약하는 분이 많아요. 물론 요즘은 예전보다 언더웨어도 신경 쓰는 사람이 많아지고 저도 양말로 돈을 벌고 있긴 한데요. 그래도 여전히 가방, 시계, 코트, 신발처럼 드러나는 제품에 신경 쓰는 분이 더 많아요. 

 

대표님은 또 어떤 것들에 신경을 쓰시나요? 

피부에 닿는 걸 중요하게 생각해서 수건, 침대보, 속옷에 신경써요. 겉으로 보이는 건 합리적인 금액으로 절충하고요.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도 중요하지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너무 추레하지만 않으면 된다.’ 주의죠. 사실 남에게 잘 보인다는 것도 물질에서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질적인 건 너무 빨리 바뀌잖아요. 근데 수건이나 속옷, 양말 같은 건 그렇지 않아요. 이 집에 놓인 물건도 그래요. 이런 작은 스툴도 값나가는 게 있고 저렴한 게 있거든요. 저는 스툴 하나를 들일 때도 제 기분이 좋아지는가를 염두에 두고 골라요. 집 안에 두는 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함은 아니잖아요. 단지 저를 위해서, 우리 가족을 위해서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들을 들이려고 하는 거죠. 이 집에 작은 오브제가 참 많지 않나요? 그때그때 행복감을 섭취하려고, 제 기분을 위해 사 모은 것들이에요. 

 

삭스타즈 매장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자그마한 양말을 보면서 쉽게 기뻐하게 되니까요. 양말을 선물하거나, 선물 받는 기분도 무척 좋고요. 

최근에는 오프라인 매장에 자주 못가지만 오픈 초반에는 매장 일을 열심히 했거든요. 어느 날 안 좋은 일이 있던 게 분명한 여자 손님 두 분이 들어오셨어요. 굉장히 안 좋은 안색으로 대화하고 계셨는데, 어느 순간 “이거 너무 귀엽다!”, “이거 미쳤어!” 하면서 목소리가 점점 활기를 띠더라고요. 기분이 좋아지고 있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는데, 양말을 몇 켤레 구입하시고 무척 기분 좋게 나가셨어요. 그걸 보면서 삭스타즈는 양말을 팔고 있지만 작은 것이 지니는 긍정적인 가치를 파는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작은 것만이 줄 수 있는 온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대표님은 요즘 무엇을 통해 기분을 다스리나요? 

화분이요. 방에도, 거실에도 참 많은데 다 저 혼자 키우는 아이들이거든요. 생명을 키워내는 기분이 참 좋아요. 책임감을 가지고 돌보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죠. 사실 저는 식물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딜 가나 식물만 보면 기뻐지고, 숲이나 식물원에 일부러 시간 내서 가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건 식물이 지닌 특징이에요. 잘 키워냈을 때 오는 보람과 상승감이 좋은 거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식물이 꾸준히 성장하는 걸 보면서 제 지향점을 다시 생각하기도 해요. 저 역시 꾸준히 뭔가를 해나가고 싶은 사람이니까요. J 곡선을 그리면서 한 번에 확 성장하고 확 성공하는 것보다는 단계별로 성장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제 그래프는 제가 죽는 순간까지 조금씩 상승하고, 죽을 때에야 완성되겠죠. 식물이 그런 다짐을 상기해 주고 매너리즘에 빠지려고 할 때 북돋아 줘요. 꽃이 피면 충만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흔들릴 때마다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식물이 상승감을 준다는 걸 안다는 건 나를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 같아요. 대표님은 나를 돌아볼 여유가 있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분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여유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만을 의미하진 않겠지요. 

맞아요.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자기가 뭘 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게 중요해요. 내가 뭘 위해서 이걸 하는지 인지해야 한다는 거죠. 사람들이 일하면서 지치는 이유가 ‘내가 지금 뭘 위해 이걸 하고 있지?’라는 물음 때문이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 직업은 신발처럼 원하면 언제든 갈아 신을 수 있는 거예요. 저는 회사에 다니다 이직하거나 새로운 길을 꿈꾸는 게 배신이라거나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일이나 회사를 위해 나를 희생하면서 절망감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지칠 필요는 없어요.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죠, 저도 지칠 때가 있는걸요. 그럴 때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확실한 장치를 만들어 놓는 건 중요할 거예요. 

 

그런 장치가 있나요? 

확실한 회복 루틴이 있어요. 예닐곱 시간이 확실히 확보될 때 할 수 있는 휴식인데요, 회복 루틴을 하는 날엔 집에다가도 얘기해요. “나 오늘 찾지 마!” 집을 나서면 일단 운동을 해요. 그리고 차가운 커피를 마시고 목욕탕에 가서는 냉탕과 열탕을 왔다 갔다 하죠. 운동한 다음이라 체온이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별다른 생각도 안 들고요. 목욕탕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이걸 반복하는 게 제 회복 루틴이에요. 열탕에서 몸을 잔뜩 덥혀놓고, 냉탕에 들어가서 확 떨어뜨리고. 그러고 나서 집에 와서는 달콤한 걸 먹고, 배달 음식을 준비해 둔 다음 넷플릭스를 보는 거죠. 완벽한 시간이에요. 이 루틴은 토막토막 바라던 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예요. 일하다 말고 하게 되는 생각들 있잖아요. ‘아, 시원한 탕에 들어가고 싶다.’, ‘넷플릭스 보고 잠이나 자고 싶다.’ 그런 바람을 모아 한번에 해치우는 거죠. 대단한 수고가 드는 것도 아니에요. 한 달에 한 번, 나를 위해 여섯 시간 정도는 쓸 수 있잖아요. 그런 루틴을 만들어 두면 확실히 회복하는 데 도움이 돼요. 회복 루틴을 만든 이후로는 지쳐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생각이 나요. ‘아, 힘들다. 내일은 회복 루틴 간다!’ 

 

작은 행복이 이어지면서 시너지를 내는 거네요.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제가 하고 싶어 한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봤어요. 곧 저만의 회복 루틴을 하나 만들어 봐야겠어요(웃음). 

충만함이 확실해요. 장난 아닐 거예요(웃음). 

 

얼마 전 SNS에 이런 이야기를 쓰셨죠. “환상적인 휴식의 필수 전제는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고강도 일이다.” 회복 루틴과도 연관되는 이야기 같아요. 

이것도 성향 차이인 것 같아요. 빠르게 회복하고 원상 복귀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반면, 확실하게 쉬어주어야 제대로 충전되는 사람도 있겠죠. ‘쉰다’는 건 일을 했다는 거잖아요. 일을 안 해놓고 쉰다고 하는 건 쉬는 게 아니라 그냥 가만히 있는 거죠(웃음). 악보에 쉼표가 존재하는 건 그 앞에 음표가 있었다는 의미예요. 음표와 쉼표처럼, 빛과 그림자처럼 일과 쉼은 반드시 동반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큰 일에는 큰 쉼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죠. 저는 일할 때 무식할 정도로 모든 걸 다 던져서 집중하는 편이에요. 엄청 바쁘죠. 일하는 중간중간 작은 쉼으로 어느 정도 충전을 하고 있지만,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하고 난 뒤에는 회복 루틴이 필요해져요. 에너지가 완전히 떨어질 만큼 일하지 않고 회복 루틴을 하면 휴식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어요. 회복 루틴을 할 정도로 쉬려면 완전한 고갈이 전제되어야 해요. 

 

확실히 일하고, 확실히 쉬는 거네요. 양말 브랜드는 5월부터 3-4개월 동안 비수기라고 들었어요. 여름이 오면 우울했는데 7-8년 차 이후부터는 여름방학 기분으로 쉬신다고요. 올해 여름은 어땠어요? 

쉰다고는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해요. 그런 우울감을 완전히 막긴 어려워서 그러지 말자고 생각하려고 해요. 다행히 올여름엔 아이랑 함께 바쁘게 보냈어요. 어린이집 방학이 있어서 10일 동안 여행도 두 번이나 가고, 뮤지컬도 보면서 연예인 같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했어요. 중간중간 체력 보충도 하고요. 게다가 올여름은 비수기인데도 일이 많아서 우울해질 틈 없이 기쁘게 바빴죠. 

올해 삭스타즈 리브랜딩도 있었잖아요. 로고랑 심벌만 바꾸는 게 아니라 앞으로의 방향성도 다듬는 일이라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손님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희 손님들이 어떤 사람인가 대략적으로만 생각했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하나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그 작업을 위해 디자이너와 계속 소통했죠. ‘삭스타즈의 손님은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라는 전제를 두고 우리 가게에 오실 분들을 구체적으로 그린 작업이었어요. ‘이런 커피를 마시면 좋겠고, 이런 브랜드를 좋아할 것 같고, 이런 음악을 들을 것만 같고….’

 

어느 인터뷰에서 “삭스타즈다움이란 품위 있는데 재밌는 사람, 열정적인데 드러내지 않고, 조건 없이 잘 베풀고, 욕심 있어 보이지 않으면서도 재밌는 걸 놓치지 않는 이미지.”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죠. 삭스타즈의 손님 페르소나도 어느 정도 비슷할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생각하는 손님과 직원, 그리고 저는 크루 같은 존재예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걸 수도 있는데(웃음) 프레임에 가두는 건 아니지만 우린 큰 거보다 작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누군가는 작은 것에서 가치를 찾는 걸 이상하게 볼 수도 있죠. 핀잔을 듣기도 할 거고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이해해요. 그래서 삭스타즈 슬로건도 “Don’t Worry, I Know You.”인 거예요. 건방져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는 “네가 뭘 알아?” 할 수도 있겠죠. 근데 저는 우리가 서로 그런 존재였음 좋겠어요. “걱정하지 마, 나는 네 취향을 알아.” 

 

저도 따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I Know You.’에서 ‘네가 뭘 알아?’라는 생각을 하기 전에 ‘Don’t Worry.’에서 푸근한 느낌을 받아서 그랬나 봐요. 

‘왜 아무도 몰라주지?’라는 생각을 할 때, 그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려 주면서 양말을 건네는 브랜드이고 싶어요. 

 

그래서 삭스타즈가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 같기도 해요. 아티스트와 협업할 때도 “개인적이지만 소소하지만 명확한 이야기가 있는 분”이랑 협업하고 싶다고 했고, 홈페이지에는 ‘저널’ 카테고리를 두고 여러 콘텐츠를 꾸려가고 있어요. 인터뷰, 편지, 책장, 출근일지…. 팟캐스트도 이제 한 축을 맡게 됐죠. 

오늘 계속 나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데, 저는 스스로 저를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제가 어떤 캐릭터인지를 분명히 하는 거죠. 《삼국지》, 《슬램덩크》의 등장인물처럼 저를 하나의 캐릭터로 생각하고 제가 어떤 포지션인지 평소에 계속 생각해 보는 거예요. 그래야 내 이야기가 시작되거든요. 나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저는 화목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 충실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 대학을 졸업하고…” 이런 뻔한 이야기만 나와요. 이야기라는 건 한순간에 만들어지긴 어려워요. 그러니까 캐릭터를 먼저 고민해 보는 거죠. 캐릭터가 있으면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수월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제 성향과 제가 원하는 모습의 중간을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대표님의 이야기는 지금 어느 정도 만들어졌나요? 

다른 건 몰라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확실히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어요. 어릴 때는 제가 좀… 독했거든요. 체형이 연관 있을진 잘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말랐고, 눈빛도 번들번들했어요. 그런 시절엔 제 이야기가 없던 것 같아요. 저에 관해 생각하고 인정하는 일을 못 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전 대표감이 아니거든요. 근데 대표를 해버렸잖아요. 그래서 어떻게든 해나가기 위해서 원하는 무언가를 찾고, 제 이야기를 만들면서 지내게 된 것 같아요. 

 

누구나 원하는 모습이 있을 거예요. 근데 그 이상향이 절대 당도하지 못하는 모습일 수도 있을 텐데요. 

중간 지점도 찾아갈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면, 바로 포기하고 현시점의 나를 인정해요. 

 

그럼 지금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나는 어떤 모습이에요? 

전 항상 좋은 사람 만나는 거에 목말라 있었어요.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고, 사교적인 편이 아니라서요. 근데 브랜드를 이어 나가려면 좋은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좋은 사람에 대한 욕구가 늘 있었는데 최근엔 방향이 조금 바뀌었어요. 

 

어떻게요?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로요. 제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인가를 생각하는 거죠. 그쪽으로 노력하다 보니 좋은 사람이 저한테 오기도 하고, 제가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기도 해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돼요. 특히 ‘취향전’ 때 많이 느꼈죠. 다음 팟캐스트에서는 ‘취향전’에서의 이야기와 인간관계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근데, 지금이야 제가 많이 성장했다 느끼지만 나중에 보면 ‘이불 킥’할 만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어요(웃음). 50대의 성태민이 오늘의 성태민에게 “뭘 안다고 성숙했다는 거야?” 할지도 모르죠. 그래도 그런 말을 한다는 건 훗날 더 성숙해져 있다는 거니까 좋을 것 같아요. 

 

성장 이야기를 해서 그런지 자꾸 미래를 생각하게 돼요. 대표님은 과거나 현재보다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미래는 중요해요. 하지만 전 미래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아요. 현재가 훨씬 중요한 사람이거든요. 성장한 모습을 그리는 것도 즐겁지만 미래의 저한테 닿는 과정이 더 중요해서 ‘성장한 나’보다 ‘성장해 가는 나’에 더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현재 지향적인 거고요. 저는 상인이잖아요. 돈 버는 게 중요하긴 한데, 돈을 많이 벌어서 풍요로워진 미래보다는 돈 버는 일에서 재미를 느껴요.

짓궂은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웃음). 하루아침에 삭스타즈의 모든 양말이 다 팔려서 벼락부자가 되었어요. 그래도 성공했다는 느낌은 안 들까요? 

네. 그렇게는 팔지도 않을 거고요. 누가 와서 “이 회사를 사겠다!” 해도 안 팔 것 같아요. 물론 돈을 어어어엄청 많이 주면 생각이야 해보겠지만(웃음). 만에 하나 판다고 하더라도 ‘더 재미있는 거 할 수 있겠는데?’ 하고 새로운 걸 시작할 것 같아요. 또 다른 과정으로 뛰어드는 거죠. 저는 언제나 갈증의 고통보다 권태의 고통이 더 크다고 믿고 있어요. 감히 추측하건대, 백만장자는 할 일이 없어진 지금보다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가던 시절이 더 행복했을 거예요. 

 

삭스타즈는 회사이기도 하고, 직업이기도 하고, 내가 책임져야 할 식구 같은 존재이기도 하고… 다면적인 의미가 있는데요. 직접 정의하는 대표님의 삭스타즈가 궁금해요. 

밖에서 보는 삭스타즈는 ‘졸음 쉼터’ 같은 공간이길 바라요. 저 자신에게는 그보다 훨씬 큰 의미지만요. 가족을 지키는 도구라는 게 가장 커요. 부부가 함께 일하는 일터이기도 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 돈을 버는 창구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직원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죠. 오래도록 함께하는 게 좋지만, 여기서 더 성장해서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됐을 때 “쟤 삭스타즈 출신이래.” 하면 당연하게 “그래서 일을 잘하는구나.”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기를 바라죠. 

 

이번 호 주제어가 ‘잠’이에요. 오늘은 잠보다 쉼, 휴식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잠 이야기도 좀 해볼게요. 잠버릇 있으세요? 

이를 갈아요. 저는 잘 모르는데 주위에서 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침에 턱이 얼얼할 때가 있어요. 이도 그렇고요. 

 

그럼 아침이 좀 찝찝하죠. ‘푹 잤다.’ 싶을 땐 언제예요? 

중간에 깨지 않고 꿈도 안 꾸고 잤을 때요. 꿈은 언제나 꾼다고 하는데, 어쨌든 꿈도 기억 못 하고 계속 잤을 때가 잘 잔 날 같아요. 눈뜨면 딱 느낌이 오죠. ‘아, 잘 잤다.’ 하고요. 옛날엔 세 시간 정도밖에 안 자서 늘 피곤했는데 요즘은 예닐곱 시간을 지키려고 해요. 

 

꿈은 계속 꾸며 살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꿈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꿈 있어요? 

많죠. 저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에요. 꿈에서 제가 송민호, 조세호 씨 친구였는데, 조세호가 송민호만 잘해주고 저한테는 데면데면하게 굴어서 서운한 적도 있고(웃음)…. 아, 최근에 와이프가 시한부가 되는 꿈을 꿨어요. 

 

네? 

수술을 앞두고 있는데 제가 장기를 이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것도 100퍼센트 성공 확률은 아니었는데, 당장 이식하겠다고 했어요. 전신마취를 하고 눈을 떴는데 수술이 끝나 있더라고요. 성공했대요. 와이프가 살았다는 거예요. 수술하기 전까지 와이프가 계속 입원해 있어서 퇴원하자마자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면서 며칠을 보냈어요. 근데 어느 날, 꿈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옆에 와이프가 없더라고요. 여기저기 찾아도 안 보여요. 그래서 장모님한테 전화했는데 장모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저번에 죽었잖아.” 

 

…소름 돋았어요…. 

수술 도중 와이프는 죽었는데 수술 후에 저 혼자 여행 다니고, 맛있는 거 먹고, 저 혼자 며칠을 보내면서 와이프가 옆에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꿈속의 제가 내내 환각을 본 거죠. 꿈에서 전 완전히 폐인이 됐어요. 삭스타즈도 망하고, 직원들도 뿔뿔이 흩어지고, 모든 게 엉망이었죠. 근데 그때 누군가 폐인이 된 제 등을 막 두드리는 거예요. 눈을 팍 떴는데 모두 꿈이었고, 옆에 와이프가 있었어요.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꿈에서의 절망감이 너무 생생해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 많이 나오잖아요. 스펙터클한 이야기가 펼쳐지고는 스르르 사라지면서 “사실은 상상이었습니다.” 하는 거. 티브이로 볼 때는 유치하다 생각했는데 실제로 겪으니까 너무 다행이다 싶더라고요. 꿈에서는 꿈인지 모르니까,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니까 그 기분을 그대로 지닌 채 깼거든요. 와이프를 꽉 안고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그랬어요. 와이프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런 저를 꼭 안아줬고, 전 하루 동안 좀 멍했어요. 

 

소름이 가라앉질 않아요. 너무 슬프고, 너무 다행이에요. 

와이프가 집이랑 회사 양쪽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자주 느끼던 시절이어서, 미안하다고 여기던 마음이 꿈에 반영된 것 같아요.

이번 호 주제어와 삭스타즈를 고루 생각하다 보니 ‘수면양말’의 존재가 떠올랐어요. 삭스타즈에서 만들기도 하는데, 직접 신기도 하시나요? 

만들긴 하지만 발에 열이 많아서 저는 못 써요. 겨울에도 이불 밖으로 발을 내놓고 잘 정도로 체온이 높거든요. 수면양말이나 기능성 양말을 만들 땐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똑같은 양말이지만 기능성 양말은 패션 양말에 비해 장비 같아요. 반면 패션 양말은 작품에 가깝고요. 

 

아, 그러고 보니 스타킹도 직접 신어보신다면서요. 

저는 디자인 전에 기능이 먼저 완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타킹도 기능에 집중해서 제작해요. 기능적인 베이스가 나오면 그 위에 디자인을 더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스타킹은 쫙 폈을 때 색깔이 고르게 염색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인장력이나 내구성이 좋은지 철저히 살펴요. 전자파를 막아줄 수 있는지도 보고요. 제일 괜찮은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발전해 가는 거죠. 

 

이참에 삭스타즈 양말 자랑 좀 해주세요. 

솔직히 아직까지는 ‘강추!’ 하고 싶은 제품은 안 나왔어요. 

 

정말요? 

완전히, 모든 방면에서 100퍼센트 만족하는 제품은 아직 없지만. 추천하고 싶은 양말은 ‘MERINO LIGHT KNEESOCKS’ 예요. 메리노울로 만든 니삭스인데요. 루즈하게 연출하면 예쁘고, 금액도 합리적이에요. 착용감도 좋고요. 제가 개인적으로 만족한 상품이기도 해요. 따로 홍보한 것도 아닌데 인플루언서들이 많이 구매해 준 제품이기도 하죠. 남성 양말은 최근에 출시된 ETZEL의 ‘EDGER’라는 제품을 추천하고 싶은데, 국내에 두 대밖에 없는 기계로 만든 제품이에요. 올해 2월에 한국엔 처음 들어온 기계인데요. 6-7월에 세팅을 마치고 처음으로 가동해서 만든 양말이에요. 한국에서 이 양말을 만들어 낸 건 삭스타즈밖에 없어서 기록해두고 싶어요. 

 

완전히 마음에 드는 양말이 아직 없다고 하시니까 더 궁금해져요. 대표님이 꿈꾸는 최고의 양말은 어떤 거예요? 

그런 게 있을까 싶어요. 아무리 근사한 걸 만들어도 계속 뭔가를 원하고, 발전해 나가지 않을까요? 저는 갈증을 느끼길 원해요. 그게 없으면 오히려 힘들 것 같아요. 

 

아, 완성형보다는 완성해 가는 과정이 좋다고 하셨지요. 

추구하는 삶의 형태가 그러니까 양말도 만들어 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돼요. ‘괜찮은 양말을 만들고, 부자가 됐다, 그러고 죽었다.’가 아니라 그 과정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는 거죠. 그 과정이 제 인생이잖아요. 그 인생을 재미있게, 즐겁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오늘 인터뷰도 그런 일 중 하나고요. 

 

대표님에겐 역시 이야기가 중요한 요소로군요. 앞으로도 삭스타즈는 계속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 같아요. 또 기획하고 있는 재미있는 일 있나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한 건 아닌데, 지금 작곡가랑 곡을 쓰고 있어요. 10월 초면 홈페이지 ‘저널’ 카테고리에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곡이요? 

네. 연주곡 형태인데, ‘세탁기 안의 양말은 어디로 갔을까.’, ‘따듯한 울 양말을 올해 처음 신었다.’ 이런 식으로 양말을 떠올리며 주제를 정해요. 그 주제로 곡을 주기적으로 발표하는 시리즈죠. 꾸준히 곡을 발표해서 공연까지 하는 게 목표예요. 지구에도 주파수가 있다는 거 아세요? 지구가 뿜고 있는 주파수가 7.8헤르츠래요. 거기서 영감을 받아 ‘양말 가게의 주파수’라는 이름으로  콘텐츠를 이어가 보려고요. 우리가 품고 있는 주파수를 가상으로 만들어서 손님에게 들려드리는 거예요. 나중에 곡이 모여 공연하게 되면 예매하신 분들께 양말을 티켓으로 보내드리겠다는 계획까지 세웠죠. 양말목에 공연 타이틀이랑 일시 같은 걸 새겨서(웃음). 그리고 관객들은 미리 받은 그 양말을 신고 오시는 거죠. 

 

엄청 귀엽겠어요! 

이번 콘텐츠를 함께할 작곡가는 <양파인> 팟캐스트 로고송을 만들어 준 친구인데, 다양한 음악 작업을 하고 있어요. 작업 중엔 디저트와 영화가 함께하는 음악회도 있는데요. 디저트를 먹으면서 영화의 한 장면과 라이브 연주를 감상하는 공연이에요. 디저트와 영화에 따라 음악을 바꾸어 연주하죠. 영화에 마들렌이 나오면 마들렌을 먹으면서 음악과 영화를 감상해요. 커피를 마실 땐 커피를 위한 영화와 음악이 나오고요. 

 

나중에 그 디저트를 먹으면 음악이 떠오르겠어요. 

맞아요(웃음). 7년 전쯤 삭스타즈가 양말에 향을 담아주는 향기 배송을 시작했는데 그 친구가 향으로도 음감회를 한 적이 있어요. 시향지를 나누어주고, 그 향에 맞는 곡을 연주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향을 수거하고 다음 시향지를 나눠주면서 또 다른 연주곡을 들려주는 거죠. 공연할 때 영상도 나오는데, 시각, 청각, 후각, 미각 등이 한데 맞물려서 진행되는 공연이에요. 그걸 발판 삼아 양말로도 뭔가를 해보고 싶어서 기획하게 됐어요. 

 

과정만 들어도 이렇게 재밌는데, 삭스타즈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네요. 삭스타즈는 삭스와 스타의 합성어라고 알고 있어요. 별은 밤에 뜨는 거잖아요. 그래서 삭스타즈란 존재의 밤을 생각해 봤어요. 이 친구는 어떤 밤을 보낼까, 어떻게 잠을 잘까 상상해 보고 싶었죠. 

음… 이 친구는요, 향초를 켜서 향을 충분히 즐길 것 같아요.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번 하고 누워서는 백색 소음을 듣겠죠. 그런 상태로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친구예요. 

 

향초를 켜는 섬세함과 환기하는 꼼꼼함도 있고, 백색 소음을 즐기는 세심함도 지닌 친구로군요. 

네, 그리고 나만을 위한 작은 시간을 소중히 하는 친구겠지요(웃음).

대화를 마치고 가방을 챙기는 동안 성태민 대표는 “옷 갈아입어야겠네요.” 하고 방으로 사라졌다.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편안해 보이는 가방을 멘 그는 “출근복이에요.” 하고 말하며 둥근 표정으로 웃는다. ‘환상적인 휴식’을 위해 ‘고강도의 일’을 하러 떠나는 그를 보면서 양말 가게의 오늘을 상상한다. ‘<양말 가게의 주파수> 공연이 열리면 꼭 보러 가야지!’ 생각하면서.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