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오후 기록

김목인—음악가

10여 년 전쯤, 대형 카페에서 한 남자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엄청난 종이 더미와 클리어 파일, 노트를 자그마한 테이블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둔 채 주변 소음은 상관없다는 듯 무언가를 부지런히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알지만 모르는 사람, 깊이 알진 못해도 무대 위에서 자주 보는 사람. 그의 이름은 김목인이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음악도 하고, 책도 쓰고, 번역도 하면서 지내고 계시지요. 목인 씨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보통은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입니다, 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다만, 요 몇 년 여러 일을 하다 보니 어떤 작업에 대한 대화냐에 따라 멈칫하게 되는 순간도 생기죠. 저자 소개를 쓸 때 음악가를 맨 앞에 쓰기는 조금 멋쩍은 거랑 비슷하달까요. 저를 먼저 책으로 만나신 분은 음악 한다는 소개를 낯설어 하거나, 책 자체가 음악과 상관없을 때도 있으니까요. 또 어떤 분은 제가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된 과정을 모르시니까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어리둥절해 하기도 해요. 그래도 저한테는 음악이 가장 먼저 택한 직업이었으니 음악가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뉴스레터 <김목인의 풍경과 코러스>에서 “대체 본업의 기준은 뭐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했죠. 그 답을 찾았나요? 

옛날엔 그 기준에 대한 생각이 참 많았는데 요즘에는 본업과 부업으로 정확히 나누는 데 집중하지 않게 됐어요. 애초에 책에 관심이 많았고 발표하지 않더라도 글쓰기는 항상 하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음악가와 작가 모두 제 정체성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어요. 본업의 기준을 이야기해 보자면… 어떤 일을 못 하게 됐을 때, 포기해야만 할 때 남기게 되는 한 가지라고 생각해요. 사실 직업으로서의 본업이라기보다는 성향이나 마음이 닿는 일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의 본업을 이야기해 볼까요? 

이것저것 메모하는 사람과 악기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 그 두 가지가 남지 않을까요? 지금은 한발 더 나아가서 노래도 하고, 공연도 하고, 책도 내지만 그런 것들은 여건과 환경이 맞아서 할 수 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상황이 아무리 변해도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 있거든요. 습관적으로 쓰는 일도 그렇고요. 그게 바로 정체성과 연관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노래하는 목인 씨가 참 익숙한데 노래 부르는 것보다는 곡을 만드는 게 좀더 정체성에 가까운 일이군요. 

노래를 하고 싶어 음악을 시작한 게 아니라 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음악을 시작할 땐 편곡이나 피아노 연주, 레코딩에 관심이 더 있었거든요. 그러다 점차 관심사가 변해 밴드 연주와 싱어송라이팅으로까지 이어진 거죠. 지금도 피아노로 곡을 쓰면 굳이 가사를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 때도 많아요. 연주곡 상태로 완성하는 건데, 주로 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다 보니까 발표할 일은 많지 않아요. 작년 11월에는 재미공작소라는 공간에서 제 모든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공연을 해봤는데요. 기타로 만든 곡을 다 피아노로 바꿔 연주하려다 보니 힘도 들었지만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방 안쪽에 피아노가 보이는데 요새도 자주 치세요? 

요즘엔 피아노보다 아코디언을 열심히 치고 있어요. 올 초에 중고 버튼 아코디언을 한 대 구했는데… 피아노의 하얀 건반과 검은 건반을 버튼으로 쫙 펼쳐놓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버튼을 하나씩 치면 반음씩 올라가는 형태죠. 보여 드릴까요? (아코디언을 연주한다.) 왼손은 화음을 연주하기 편하게 구성되어 있어서 손에 익기만 하면 연주하기 어렵지 않아요. 

 

와…. 픽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아요. 

연주해 보셔도 돼요(웃음).

 

엄청 무거워 보이는데요(웃음). 어깨에 걸치는 데만 한나절일 것 같아요. 

아, 그렇죠. 무겁긴 무거워요. 15킬로 정도 되려나…. 고생 끝에 데려온 악기예요. 악기 거래 사이트에서 프랑스 사람에게 산 건데, 판매자가 해외에 판매할 생각은 없었나 봐요. 저는 이미 결제를 다 한 상태인데 안 팔려고 하셔서 설득하느라 꽤 고생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온 악기죠. 올 초에 <마르셀 아코디언 클럽>이라는 단편소설을 썼는데 거기에 이 경험도 조금 섞여 있어요. 책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작은 경험이 또 이렇게 확장되네요(웃음).

대학생 때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영화도, 음악도 창작 영역이라 생각하는데 창작이라는 게 목인 씨에게 어떤 의미예요? 

영화는 정말 옛날 얘기네요(웃음). 90년대 후반에는 영화가 나름대로 붐이었어요. 저도 ʻ씨네 키드’로 영화 동아리에 열심히 참여하고, 16밀리 필름 수업 받고, 시나리오도 쓰고 그랬죠. 그땐 제가 음악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저한테 창작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제 안에 미리 만들어져 있고 그걸 내보내는 게 아니라, 경험한 것을 나름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거예요. 만약 오늘 너무 안 좋은 일이 있었다면 짜증 내고 끝내는 게 아니라 약간 거리감을 두고 보는 거죠. 픽션처럼 다른 전개를 상상해 보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거리감을 두고 제 경험을 이야기로 기록하는 거예요. 영화도,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창작이 모두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제가 하는 창작은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에요. 어떻게 하면 가장 적당한 형식으로 잘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 

 

내 경험을 제삼자가 되어 관찰하고 기록하는 거네요. 

맞아요. 그렇다고 작품을 만들려고 일부러 관찰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생각해보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의뢰받을 땐 그럴 수 있겠지만, 보통 제가 하는 작업들은 평소의 관심사를 따라가요. 그래서 앨범도 2-3년에 하나씩 느린 호흡으로 나오죠. 앨범이 나오면 사람들이 “평소에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관찰하냐.”거나 “대화를 다 기억하고 있어?” 하고 물어보는 일이 많은데요. 제가 기억력이 월등하게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요. 경험한 걸 잘 기억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든 더 많이 기억하려 하거든요.

 

왜요? 

저도 궁금해요(웃음). 현재를 살기도 바쁜데 지나간 일을 계속 기록하면서 기억하려는 건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근데 해보니까 이런 기록이 창작의 재료가 되더라고요. 창작을 위한 기록은 아니지만, 습관적으로 관찰하고, 일기를 쓰다 보니 저절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단련이 되는 것 같아요. 

 

일기장 궁금한데요(웃음). 

다짐이나 반성 같은 건 하지 않아요. 거의 일지 수준이에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려고 써두는 거죠. “오늘 2시에 《AROUND》 인터뷰를 했다.” 정도라도 써 두면 기억을 되살릴 수 있어요. 바쁜 일이 있고 시간이 흘러버리면 인터뷰를 월요일에 했는지, 수요일에 했는지도 헷갈리잖아요. 하지만 기록에 너무 집착해도 피곤하니 습관적으로 정리하고 있어요. 생각을 정리한다는 기분으로요.

오늘은 《미공개 실내악》 이야기를 해보려고 대화를 제안했는데요. 이 책은 악보처럼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죠. 1악장은 ‘이웃’, 2-4악장은 ‘공연’을 테마로 여러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독특한 구성이라 즐겁게 읽었어요. 

이 책은 악장별로 각 키워드를 수집한 형태지만 평소에 이렇게 항목을 나눠 수집을 엄청나게 해놓는 건 아니고요. 제 생활반경, 그러니까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이나 공연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반영되었어요. 3악장은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각양각색의 대기실 형태를 모아두었는데, 사실 공연 전의 대기실은 뭔가를 자세히 관찰할 분위기는 아니에요. 할 수야 있겠지만, 공연을 앞두고 그만큼의 여유는 없거든요. 책에는 대기실 유형이 간략한 그림으로도 실려 있는데 이걸 도면처럼 구성할 생각도 해봤거든요. 그런데, 그러려면 현장에서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하잖아요. 돌이켜보면 중간중간 기록을 많이 해두었기 때문에 기억을 좀더 섬세하게 그림으로 재구성할 수 있던 것 같아요. 

 

테마를 정하고 수집하기 시작한 게 아니라, 수집된 것을 테마에 맞추어 나눈 거군요. 

네. 이아립 편집장님이 자유롭게 아무거나 써보라고 하셔서, “뭘 쓰면 좋을까?” 하고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때가 코로나19가 한창 심하던 때였거든요. 동네 밖으로 잘 벗어나지 않던 시절이었죠. 보시면 알겠지만, 이 동네엔 뭐가 별로 없어요. 상권도 없고, 큰 사건도 없고, 소소하게 일어나는 일뿐이지만 그걸 한번 기록해 볼까 싶었어요. 평소에 가족과 슈퍼마켓 다녀오면서 나눌 법한 이웃 이야기들 있잖아요. “어제 길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 웃기지?” 하는 것들이요. 평소 모아온 에피소드도 있겠다,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다 보니까 ʻ이 사람 이야기도 넣으면 좋겠다!’ 하면서 이야기가 늘어나더라고요. 의외로 동네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사건이 참 많아요. 책에 안 들어간 에피소드도 있고요. 

 

책에 안 담긴 이야기도 궁금해요. 

동네마다 동네 일을 다 꿰고 있는 분들 한 명씩 있잖아요. 누구나 그분을 알고 있고, 간단하게 동네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으면 찾아가는 그런 분이요. 이 동네에도 그런 분이 계신데, 동네에 있는 재활용품을 몽땅 수집하시거든요. 모든 물건이 그 가게 안에 들어가 있어요. 특정 시간마다 강아지들을 데리고 산책하시는데,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마을의 반장 역할을 하고 이런 일을 하게 됐는지 궁금한 거예요(웃음). 또, 한번은 정육점에 딸린 작은 방 안에서 언뜻 키보드를 본 적이 있어요. 정육점 사장님이 음악 하시는 분인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한동네에 살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게 돼요. 썼다가 빠진 이야기도 있는데… 계속해도 될까요? 

 

네(웃음), 들려주세요. 

자주 가던 중국집 이야기거든요. 이 동네로 이사 오고 화교분이 하시는 중국집엘 아내와 자주 다녔어요.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서빙하시는 분과 서로 얼굴을 알고 지내게 됐는데, 그 분이 저희 집 앞에 있는 냉동 창고에서도 일을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중국집 일도 하시고, 냉동 창고에서 운반 일도 하시는 건데요. 그 아저씨는 중국집에서도 저를 보고 냉동 창고에서도 저를 보고(웃음)…. 근데 제가 붙임성 있는 성격이 아니어서 살갑게 인사하거나 챙겨 드리질 못했어요. 더운 날 일하고 계실 때 음료수라도 건네 드리고 싶었는데 한두 번밖에 그러질 못했죠. 알긴 아는데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한 느낌이어서(웃음). 마을버스도 기사님 몇 분이 번갈아 가며 운전하시니까 같은 분들을 계속 보게 되는데, 그런 기억을 모아 자세히 묘사해서 쓴 게 이 책의 1악장이에요. 

 

어딘가에 이웃의 모습을 기록해 둔 건가요? 

ʻ이웃 관찰 일지’ 같은 걸 본격적으로 만든 건 아니지만 아마 찾아보면 일기장 어딘가에 이웃 이야기가 적혀 있을 거예요. 사실 처음엔 쓰면서도 이게 책이 될까 싶었어요. 이웃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읽을 만한 거리가 될까 싶었던 거죠. 출판사에서도 마음대로 써보라고 했지만, ʻ동네에서 이런 일이 있었어요.’라는 이유만으로 묶어 드리는 건 좀 그렇잖아요. 책 형태가 될 만한 이야기로 구성하느라 고민이 있었어요.

《미공개 실내악》이라는 제목이 참 매력적이에요. ‘미공개’라는 말이 주는 기대감도 있고요. 

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1년 전쯤 편집장님이 카페에서 툭 던진 거였는데,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제목이었죠. 미공개라는 단어를 쓴 건 번외편 같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였어요. 비밀스러운 느낌보다는 여러 이유로 공개 안 했던 작업들을 내는 느낌으로요. 

 

원고보다 제목이 먼저였네요? 

맞아요. 글과 악보를 함께 매치한 것도 ʻ실내악’이라는 단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거였어요. 몇 곡은 예전에 해둔 스케치였지만, 글마다 곡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나와서 하나씩 작곡하기 시작했죠. 원고를 보면서 그 분위기에서 떠오르는 멜로디를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완성했어요. 2-3분짜리 완성형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 도입부 정도를 만드는 거라 크게 어렵진 않았는데요. 처음 해보는 작업이고 글을 보면서 곡을 만드는 거라 이게 될까, 고민하기도 했죠. 

 

요즘은 악보도 다 컴퓨터로 그리는데, 이 책에 실린 악보들은 전부 손 그림이죠. 

가끔 굿즈로 피아노 악보 피스 만들 때 컴퓨터 사보 프로그램을 써요. 컴퓨터로 사보를 하면 좀더 깔끔하게 만들 수 있고 수정도 쉬우니까요. 그래도 저는 간단하게 스케치하는 작업은 손으로 그리는 걸 선호해요. 미완성 스케치를 컴퓨터에 기록하면 잘 들춰보지 않게 되거든요. 저는 미완성 상태의 악보는 낱장이 쌓였을 때 직접 넘겨보면서 언제 뭘 만들었는지 알 수 있는 게 좋더라고요. 

 

악보도 일종의 기록이 되는 셈이네요.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미완성 실내악》은 픽션들 ‘당신 안에 헤아릴 수 없는, 1인들’ 시리즈 첫 책이었어요. 

맞아요. 그 이후로 장우철 작가님, 이로 작가님 책이 나왔는데 책들의 외형이 시리즈처럼 닮진 않았어요. 처음에는 한 사람의 책이되 문예지처럼 여러 글이 담긴 책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책 한 권에 한 작품만 담긴 게 아니라, 시도 있고, 산문도 있고, 그림도 있는 형식을 원한 거죠. 그래서 이런 구성이 나온 거고요. 사실 이아립 편집장님은 누나라고 부르는 가까운 사이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더 좋은 원고를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어요. 고민이 많았죠. 게다가 시리즈 첫 주자니까 제가 시작을 잘 끊어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그림도 출판사 측 제안이 아니라 제가 ʻ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면서 이것저것 더 넣은 항목이에요. 

 

4집 [저장된 풍경] 제작기에 이런 글을 쓰신 적이 있죠. “뭔가 이것저것 궁리할 뿐 무언가를 응시하는 것에 소홀한 사람”이라고요. 저는 목인 씨 글이나 음악이 작은 이야기, 사람들의 자그마한 행동에 초점이 가닿아 있어서 굉장히 구체적으로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설명을 좀 덧붙이자면, 세상사에는 관심이 많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지 않고 이것저것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하나만 자세히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해요. 조금은 산만하게 관찰하는 거죠. 보기보다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이것저것 많이 들여다보게 되더라고요. 특히 4집을 제작할 땐 코로나19 시국이어서 동네에 있을 때면 심심하다, 따분하다 생각할 때가 많았거든요. 매일 보는 풍경에서 의미를 찾아야 했던 시기이기도 해서 더 그런 문장을 썼던 것 같아요. 매일 반복되는 것에서 의미를 찾는 게 중요하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이런저런 콘텐츠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고 세상엔 자극적인 것도 너무 많잖아요. 그래서 응시하는 것에 소홀했다는 문장을 쓰게 된 거죠.

 

요즘은 좀더 진득하게 응시하는 게 생겼나요? 

정신 건강이라는 키워드랑 연관이 있을 텐데요. 옛날에는 정신이 건강하다고 착각하고 굉장히 많은 걸 응시하려 들었어요. 그러다 한 번은 살짝 공황 증상을 겪기도 했죠. 그러던 어느 날, 밤에 마을버스를 타고 내려서 집으로 들어오는 캄캄한 거리에서 불이 켜진 집들을 보게 되었어요. 안정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것도 예전엔 아무 생각 없이 들어왔을 텐데, 제가 살고 있는 집 주변이 이렇게 환하다는 것이 저한테 최소한의 안정감처럼 느껴졌어요. 혹시 이 앞 학교에서 축구 하는 아이들 보셨어요? 축구부가 있어서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 예전엔 그냥 스쳐 지나는 풍경이었는데 지금은 학교 특유의 분위기도 마음에 와닿고, 언제나 주변보다 조금은 더 밝은 학교 앞 풍경이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의식적으로 이 풍경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려고 많이 노력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은 풍경에 둘러싸여 사는데, 그것도 모르고 창문을 닫은 채 이런저런 생각에만 몰두하며 살게 돼요. 

산책도 자주 하고 주변에 관심을 많이 가지실 것 같은데 조금 의외예요. 

저한테 그런 이미지가 있나 봐요. 사람들이 제가 산책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집에만 있다가 약속이 생기면 그제야 나가는 타입이에요. 하루 일정 시간을 산책에 할애한다거나 바깥과 교감하는 데는 둔감했는데 이젠 의식적으로 하려고 하는 거죠. 

 

여기까지 오면서 이 동네 참 산책하기 좋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오르막길이 있지만 그것도 운동 되겠다며 좋아했거든요. 

맞아요. 저도 요즘 부쩍 나가보면서 깨닫는 거예요. 10여 년을 살고도(웃음)

 

아, 맞아. 10년 전쯤일까요. 대형 커피숍에서 목인 씨를 본 적이 있어요. 혼자 계셨는데, 테이블에 엄청나게 많은 양의 종이 더미와 클리어 파일, 노트를 펼쳐놓고 뭔가를 적고 계셨어요. 

뭘 적고 있었을지 저도 궁금하네요(웃음). 10년 전만큼 메모를 많이 하진 않는데 뭔갈 많이 적으면서 살긴 했어요. 공연 전에 세트리스트 같은 걸 적고 있던 걸까요? 아니면 낙원 상가 원고를 정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 원고인데 그땐 낙원상가에 관한 자료를 잔뜩 들고 다녔거든요. 저는 아무래도 20대에 노트북을 들고 다니지 않던 세대라 그런지 손으로 쓰는 게 편해요. 다들 노트북으로 갈아타고도 남아 있는 사람이 저인 거죠(웃음). 저는 제가 적는 것도 좋아하지만 누군가가 쓴 기록을 보는 것도 좋아해요. 전시장에서 작가들의 창작 노트 보는 것도 좋아하고요. 

 

저도 비슷한 느낌으로 목인 씨 기록들을 궁금해하는 것 같아요. 

저는 가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으로 메모를 많이 해두는 사람이었어요. 밖에서나 안에서나 뭐든 적으면서 지냈죠. 이게 습관이 되다 보니까 뭔가 떠오르면 바로바로 메모장에 적어요. 지금도 노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이것저것 적곤 해요. 10대 때는 제 주변에서, 저에게 일어나는 일을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일기를 썼어요.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는 현재에 집중하고 싶어서 쓰기를 멈췄고, 다시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일지처럼 변했지요. 옛날엔 기록에 장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장점인지 단점인지 잘 모르겠어요. 물론 기억을 잘하게 되는 거랑 책 쓸 때 과거를 돌아보기 참 좋은데요. 이 기록물이 나중에 어떻게 될까를 생각하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음, 왜요? 

오래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 작품을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좀 있었거든요.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셨다 보니까 상당히 많은 유품이 남았어요. 이걸 보관해야 할지, 처리해야 할지 유족으로서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기록이라는 것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저는 사후에 남기기 위해서 기록하는 건 아니거든요. 근데 먼 훗날 제가 죽고 나서 이 물건들이 다른 사람한테 넘어가는 게 골치 아픈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중간중간 제가 좀 처분하면 될 텐데, 엄청난 양의 기록을 생산하고 정리까지 하는 건 저한테도 어려운 일이거든요. 그리고 사실 저도 하도 많이 해두다 보니까 이 기록물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몰라요(웃음). 이사할 때 끝끝내 정리를 못 마쳐서 이 집으로 그대로 가져왔는데 전부 베란다에 쌓여 있죠. 오늘 보여 드리려고 며칠 전에 정리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옛날 기록물도 나오더라고요. 이제 보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는 그런 기록들이요. 이걸 정리하려니까 시간이 또 너무 많이 필요하고….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많이 기록하는 만큼 정리에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금세 양이 불어버려서 힘든 점도 있어요. 

 

하지만 손으로 남긴 기록의 매력은 분명히 있죠. 

그럼요. 얼마 전에는 제 활동을 모아 보여주는 전시 겸 공연을 했거든요. 그럴 때 이런 기록물이 없으면 하기가 힘들잖아요. 나 대신 누가 해주는 것도 아니고요. 이번에 그런 기록물을 모으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는데, 기록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어떤 연습이 돼요. 제가 경험한 것들을 소화하고 재구성하는 연습이요. 물론 연습하려고 쓰는 건 아닌데 오늘 하루를 정리하다 보면 왠지 좀더 재미있게 적어두고 싶어지잖아요. 그러면서 조금씩 구성도 하게 되고요. 별일 없어 보이는 날도 쓰다 보면 점점 더 길어지고, 살도 붙고…. 그런 게 책 쓸 때도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사실 《미공개 실내악》도 굉장히 큰 에피소드가 모인 건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거든요. 어떻게 쓰느냐로 승부하는 책이지요. 기록하고 선별하는 건 학예사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무수한 보물 중 오늘 어떤 걸 전시할지 골라내는 것도 안목인데,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런 걸 기록을 통해 단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아버지 유품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먼 훗날 목인 씨 기록이 어떻게 되면 좋겠어요? 

양가감정이 있어요. 이 기록들이 모두 소중하다는 마음과 한편으론 단출하게 압축하고 싶은 마음이요. 아버지 그림을 정리하면서 어려웠던 것 중 하나가 유작을 대하는 관점도 가족마다 다르다는 거였어요. 처음엔 ʻ중요한 그림만 남기고 나머지 미완성작은 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중요한 것에 대한 기준이 다 다르잖아요. 의견이 오가다가 남기면 누가 관리하는 거냐 또 의견이 갈리더라고요. 그러면서 10년, 20년 세월이 흘렀는데, 제대로 관리를 안 하면 그림에 부식이 생기거든요. 저는 되도록 다 가지고 있자는 쪽이었는데 그렇다고 관리를 맡아서 할 만한 성격은 아니거든요. 말만 잘하고 일은 안 하려는 스타일이고(웃음)…. 결국 고향에 시립미술관이 생겨서 감정받고 기증하게 되면서 잘 마무리되었는데요, 그런 걸 생각하면 제 기록물을 굳이 다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잘 안 들어요. 언제나 정리할 시간이 있었으면 싶어요. 기록은 다 과거의 것이니까 언제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살 수 있나 생각할 때도 있고요.

정리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어떤 기준으로 정리하고 싶어요? 

정리를 못 하는 이유 중 하나가 기준이 안 생겨서예요. 근데, 시간이 많이 지나면 ʻ이건 진짜 아닌 것 같다.’ 하는 게 보일 때가 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멤버들이 저희 집에 와서 시간을 많이 보내다 갔는데, 습관적으로 낙서를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걸 그대로 놓고 가면 왠지 우리 밴드의 역사가 될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고 모아뒀거든요. 버리기는 아깝지만 이렇게 많은 자료를 다 끌어안고 살 것이냐에 대한 기준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기록물을 안고 사는 게 저한테 스트레스는 아닌데요. 가족이랑 함께 살다 보니까 이삿짐 나를 때 잔소리를 엄청 많이 듣게 돼요. 

 

차근차근 쌓여갈 기록물을 어떻게 정리해 나가느냐가 앞으로 숙제가 되겠군요. 기록은 물성으로 남기도 하지만 머릿속에 남기도 해요. 갑자기 이런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 목인 씨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노랫말 중 하나를 공유해 주신다면요? 

ʻ개인의 순간’에 있는 노랫말을 읊어보고 싶어요. “좋은 대화는 문득 모든 걸 잊게 하지” 

 

그런 경험 있어요? 

오래전 일인데, 이사를 하게 되면 한 사람이 이삿짐센터 아저씨랑 차를 같이 타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 주인공이 저였던 적이 있는데요. 생각보다 훨씬 더 어색하거든요. 공통점이 없으니 할 말도 딱히 없고요. 그때 성남에서 서울까지 오느라 한참 이동해야 했는데, 한강에서 기사님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내서 내내 그 얘길 하면서 왔어요. 어릴 때 누나가 고급 필통을 사줬는데 아이가 보기엔 멋지지 않아서, 뭔가 창피해서 학교에 안 가지고 갔다는 거예요. 근데 그 이야기가 꼭 저한테 들어달라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약간 혼잣말하듯이 하시는데 무아지경처럼 듣게 되고, 분위기가 한순간 편안해졌어요. 그런 게 이야기의 힘인 것 같아요. 그런 마음에 쓴 가사였어요. 

 

오늘 대화는 ‘문득 모든 걸 잊게 해주는’ 좋은 대화였나요? 

네, 여름 오후에 어울리는 편안한 자리였어요. 저는 계속 기록하며 살아왔지만 느낌이나 감정 같은 것들은 많이 쓰지 않았거든요. 이번에 기록에 대해 생각하며 앞으로는 이런 영역도 많이 쓰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저는 그림도 보고 그리라면 잘 그릴 수 있는데 막연하게 보이지 않는 걸 그리라고 하면 막막해져요. 지금까지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감정도 더 들여다보고 기록도 해보려고요. 

 

좀더 추상적인 걸 기록하는 거네요. 

맞아요. 잘할 수 있을까요(웃음)? 

 

론이죠, 응원할게요. 오늘 날씨가 엄청 무더운데 이런 날씨에 동네 산책하자고 하면… 좀 그럴까요? 

뭐 어때요, 나가죠(웃음)!

폭염주의보가 내린 한낮이었다. 우리는 뙤약볕 아래서 산모기와 다투며 그늘 하나 없는 거리를 활보했다. 동네를 오가며 사진을 찍는 동안 마을버스 종점에서 몇 분의 버스 기사가 쉬다 갔던가. 촬영 막바지쯤, 언덕배기 종점에 도착한 마을버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포토그래퍼가 쉼터에서 쉬고 있던 기사님께 묻는다. “기사님, 쉬시는 동안 버스 안에서 사진 몇 컷만 촬영해도 될까요?” 뙤약볕에 흐르는 땀인지, 단칼에 거절당할 걸 대비해 흐르는 땀인지 가늠이 안 돼 잔뜩 움츠린 순간, 기사님이 대답하신다. “그럼요, 버스는 승객들의 것인걸요.” 목인 씨의 동네가 더없이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미공개 실내악》 김목인 | 픽션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