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정원에서

CAR, THE GARDEN
카더가든 — 뮤지션

스타일리스트 박태일 / 메이크업 강윤진 / 헤어 전훈 / 장소 협조 제비다방

지금까지의 삶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르가 될지 묻자 “저예산 영화요.”라고 답하며 호쾌하게 웃는 사람. 이 생엔 대단할 게 없어서 영화로는 못 만들 것 같다는 그의 음악 속엔 영화보다 현실 같은 우리의 삶이 켜켜이 담겨 있다. 누구든 한 번쯤 연애에 울고 유년 시절에 아파한 기억이 있으리라. 

‘A Kid From Bathroom’은 부모님한테 관심받고 싶어서

일부러 코피 냈던 경험을 담은 곡이에요.

엄마가 “왜 그래?” 하고 관심 가져 주길 바랐어요.

‘메이슨더소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카더가든Car,the garden’으로 활동명을 바꾸었죠. 밴드 혁오의 오혁씨가 본명인 ‘차정원’을 치환해서 지어준 이름이라고 알고 있어요. 지금은 본명 이상의 의미도 생겼을 것 같은데, 어때요? 

사람들 앞에 서서 계속 뭔가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제가 지금껏 해온 일들이나 제 성격이 어느 정도 포함되었다고 생각해요. 원래 농담을 잘하는 편인데, 미디어에 노출될 때도 제 모습이 그대로 보이곤 하니까 그런 성격도 깃든 거 같고요. 이름을 바꿀 때 ‘노래 잘하는 남자 솔로 가수’ 이미지를 갖고 싶었어요. 마이크 딱 쥐고 시원시원하게 노래 부르는 그런 이미지요.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 <더 팬>에 출연할 때 그런 콘셉트로 노래를 불러보기도 했죠. 방송에서 콘셉트가 있길 원하기도 했고 나름 전략적인 콘셉트였어요(웃음). <더 팬> 출연은 저한테 전환점 같은 거였어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노래에서 감정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던 계기였는데, 그러다 보니 카더가든이란 단어에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감정도 녹아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본명 뜻은 어떻게 돼요?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요. 제가 태어날 당시 할아버지 연세가 많으셔서 빨리 태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대요. 제가 세상에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는데, 제 이름을 지을 때만 해도 저를 여자로 알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사 정政’에 ‘멀 원遠’을 써요. ‘정치를 멀리하라.’ 조심스럽게 추측하건대 한자를 잘못 쓰신 게 아닌가 싶어요. 보통 바를 정에 으뜸 원, 이런 거 쓰잖아요(웃음). 

 

뜻밖의 이름이네요(웃음). “폭넓은 연령층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지금은 의외의 장소에서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을 것 같아요.

이전보다는 많아졌어요. 종종 길에서 인사를 받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머쓱하면서도 되게 좋아요. 며칠 전엔 부산에서 장어를 먹었는데요. 되게 허름한 식당이었는데, 아주머니가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이런 눈빛으로 절 흘낏흘낏 쳐다보시더라고요.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얼굴은 눈에 익었던 모양이에요. 옆에 슬쩍 오셔서는 “맞나…?” 하시더라고요. 그럴 땐 보통 “가수요? 맞아요.” 그러는데 그럼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는 척을 해주세요. 이 사장님은 “거기 나왔잖아, <불후의 명곡>.” 그러시더라고요. 나간 지 꽤 되었는데도 그 프로그램으로 저를 기억해 주는 어른들이 많아요. 저희 대표님도 <불후의 명곡> 같은 델 나가야 지방 사람들까지 알아본다고 자꾸 나가라고 하시고(웃음). 

 

저희 부모님이 오디션 프로그램 즐겨 보시는데 음색이 독특하다고 좋아하세요. 

그 얘기를 가장 많이 듣곤 해요. “저희 어머니가 좋아하세요.”(웃음). 예전엔 좀 올드 하단 뜻인 것 같아서 그리 달갑지 않았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고 있어요. 젊은 친구들이 알아봐 주는 게 더 좋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건 좀 건방진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겪어보니까 어른들이 주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한 번은 누군가 제게 이런 얘길 했어요. 빌리 조엘 Billy Joel 아저씨 공연장엔 아기부터 노인까지 온갖 연령층이 다 있다고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너무 멋진 일인 거예요. 지금은 더 넓은 연령층에게 사랑받고 싶어졌어요.

얼마 전에 휴가로 제주도에 다녀왔다고 들었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휴가이긴 했지만 사실 녹음하러 다녀왔어요. 일주일 일정이었는데, 이틀은 녹음하고 닷새는 여행하다 돌아왔죠. 곧 새 음반이 나올 예정인데요. 제가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걸 잘 못 견디거든요. 부스 안에 갇혀 있는 기분이어서 환경을 좀 바꾸고자 녹음 장비를 다 들고 제주도로 떠났어요. 큰 독채를 빌려서 방 하나를 부스처럼 꾸렸어요. 이불을 사방에 깔고 녹음해 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스튜디오에 갈 돈이 없던 시절엔 집에서 녹음하고 그랬거든요. 그때 생각도 나고…. 

 

이번 호 주제어가 ‘편지’예요.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 혹은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보여주는 일로 풀어보려고 하는데요. 음악도 내 이야기를 기록하고 누군가에게 보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새 앨범엔 어떤 이야기가 담길 예정이에요? 

대체로 최근에 저한테 크게 다가온 얘기들인데, 끝난 연애 이야기나 스스로 느끼는 모순적인 모습을 담아 보려고요. 원래 저는 가사 쓸 때 크게 고민하지 않거든요. 할 말이 많지 않아서 어떨 땐 아무 말이 가사가 된 적도 있는데 오랜만에 ‘가사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일을 겪으며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쓰고 싶다고 해서 술술 나오는 게 아니라 ‘잘’ 써야 하니까 신중하게 작업했죠. 이번 앨범엔 연애 얘기가 가장 많고요, 연애하면서 느낀 생각이 나 이제야 하는 반성… 그런 이야기가 담겼어요. 

 

그럼 사랑이나 후회 같은 감정을 담은 거네요. 근데 음악을 만들 때 “감정에서 영감을 받는 건 거의 없고 악기 소리에 꽂히는 편”이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어요. 

출발은 당연히 악기예요. 악기의 소리죠. 저는 보통 곡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가사를 붙이는데요. 처음엔 곡에 외계어 같은 걸로 ‘솰라솰라’ 녹음했다가 어울리는 가사를 만들어서 후에 붙이곤 해요. 가사를 먼저 쓰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때때로 좋은 문장이 떠오르면 휴대폰에 메모해 두고 나중에 가지고 오기도 하는데, 음악이 거기서 출발하진 않아요. 

 

직접 곡을 쓰다 보면 내 이야기를 노랫말에 담게 되잖아요. 기록과 대중성 사이에서 균형 잡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장기하나 빈지노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자기 이야기로 히트송을 만들잖아요. 그건 ‘미친’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제 얘기를 시시콜콜 털어놔서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적은 없어요. 제 유년 시절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은 앨범이 제일 안됐거든요(웃음). 근데 생각해 보면 제가 좀 애매하게 이야기한 것 같긴 해요. 얘길 할 거면 저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좀더 확실하게 담아야 했는데 그게 잘 안됐거든요. 정해진 곡 안에 노랫말을 넣는 건 대단한 재능이에요. 

 

음악에 내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너무 좋죠. 바람직하고요. 근데 저는 제 이야길 담더라도 ‘완벽하게’ 담은 적이 없어요. 제 경험에서 출발한 큰 주제는 있지만, 쓰다 보면 문장에 맞춰 다른 이야기로 흘러가 버리거든요. 근데 이번 작업에선 ‘내 얘기를 한번 해볼까.’ 그런 마음이 컸어요. 누가 들어도 ‘얼마 전에 헤어졌구먼.’ 할 정도로 한 번에 알 수 있는 이야기를 노랫말로 썼거든요. 

 

기대되는데요. 음악에 내 이야기를 기록하는 기분은 어때요?

음….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낄진 몰라도 일단 저는 라이브 할 때 몰입이 잘 돼요. 제 경험을 직접 부르는 거라서 더 그렇죠. 예컨대 ‘꿈을 꿨어요’라는 곡이 그래요. 어릴 때 부모님이 자주 싸워서 저랑 동생이 방에 틀어박혀 귀를 막고 시간을 견디곤 했거든요. 그 내용을 담아 노래로 만들었는데, 라이브 할 때마다 자꾸 그때가 떠올라서 몰입감이 생기더라고요. 동생도 이 노랠 듣고 기분이 이상했다고 하고요.

음악에 담는 기록이라 일기랑은 다른 면도 있을 것 같아요.

글만 있을 때보단 좀더 힘이 세다고 생각해요. 특히 잘 맞는 멜로디랑 만나면 시너지가 나요. 가끔 친한 뮤지션이 발매 전에 가사를 먼저 보여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노랫말 속에서 그 사람이 보여요. 근데 저는 가사만으로 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는 약한 편이에요. 글재주가 없어서 아름다운 노랫말을 쓰는 것도 잘 못하고, 중독되는 노랫말을 만들거나 한 번에 꽂히는 문장을 만드는 데도 재능이 없죠. 가사를 더 잘 써보려고 노력할 때마다 누군가를 흉내 내게 돼요. 특히 장기하 형(웃음). 직접 가사를 쓰는 뮤지션들 노랫말을 보면 저마다 말투가 있는데, 저에겐 특별히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가사에 욕심을 내기보단 다른 부분에서 제 이야기가 효과적으로 전해지도록 조금 다른 포인트를 만들려고 해요. 더 예쁜 멜로디를 만들거나 더 좋은 편곡을 하는 식으로요.

 

카더가든만의 말투를 갖고 싶어요?

아뇨. 가사에 대한 욕심은 없어요. 그저 놀러 갔을 때 누군가 “카더가든 틀어 봐.” 해준다면 그걸로 족해요. 요새 유명한 음악들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꼭 들어가던데, 거기 제 노래가 있는 게 너무 좋아요. 식당이나 카페 같은 데서 우연히 제 노랠 듣는 게 최고죠.

 

노래의 근간이 되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볼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하고, 그 후에 콜센터, 자동차 부품 공장, 건설 현장 등을 전전했다고요. 돈을 벌기 위해 경제활동을 시작한 것 같은데, 아무 제약이 없었다면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뭐였어요?

없었어요. 그래서 군대부터 간 거예요. 딱히 하고 싶은 게 없고 대학도 안 나와서 일자리가 제한되더라고요. 고졸 학력으로 취직할 수 있는 데는 중고 자동차, 휴대폰, 콜센터 쪽밖에 없었어요. 중고차는 해볼 배짱이 없고, 휴대폰은 힘들 것 같아서 콜센터에 취직했죠. 스물두 살 때 처음 여자친구를 사귀어봐서 그 당시에 하고 싶던 거라곤 연애밖에 없었어요(웃음).

 

취미로 음악 프로그램을 다뤘다고 알고 있는데, 뮤지션을 꿈꾼 적은 없다고 하셨죠. 

저는 오르지도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는 편이에요. 뮤지션은… 우연히, 운이 좋아서 하게 된 거였어요. 첫 연애에 실패하고 아무것도 못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회사도 안 나가고 밥도 안 먹고 지낸 때인데, 힙합 하는 동네 애들이 음악 프로그램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하더라고요. 소일거리로 그런 걸 하며 지냈는데 어느 날 걔네가 “너 연예인이랑 같이 살아볼 생각 없어?” 그러는 거예요. 삶에 의욕이 없던 때라 서울이라도 가보자 싶어서 덜컥 그러겠다고 했어요. 걔들이 래퍼 주석 씨네 집에서 지내던 크루였거든요. 그렇게 주석 씨랑 우연히 함께 살게 되면서 주석 씨가 제 첫 앨범을 내줬어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머쓱해요. 남들은 이것저것 도전하고 노력해서 뮤지션의 꿈을 이루는데, 저는 등 떠밀리듯 음반이 나온 거여서요. 

 

어떻게 바로 서울로 갈 생각을 했어요?

그 당시 살던 곳이 너무 삭막해서요. 제가 살던 동네는 동네 진입로부터 공장 단지가 펼쳐지는 곳이거든요. 정말 벗어나고 싶었어요.

 

공장 일이 끝나면 “젊은이처럼 입고 번화가를 활보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동네를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의 연장이었을까요?

맞아요. 공장에서 편하게 숙식하며 지낼 수도 있었는데 거기 속하기가 너무 싫었어요. 집도 따로 구하고 일이 끝나면 빨리 밖으로 나가려고 했죠. 퇴근하면 바로 옷을 갈아입고 번화가로 나갔어요. 친구들이랑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셨고, 당구도 많이 쳤어요. 공연을 보기도 했죠. 퇴근길이 제가 음악을 가장 많이 듣던 시간이기도 해요. 넬이나 짙은, 그리고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음악이요.

앨범 [Apartment]와 [C] 이야기를 할 때면 어린 시절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해요. 상처로 얽힌 유년 시절을 회피하지 않게 되어서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고 했죠. 

[Apartment] 작업할 때 연을 끊고 지내던 아빠와 화해하게 돼서 음악으로 만들 수 있었어요. 사실 어릴 땐 가족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어요.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살림이 확 어려워졌는데, 당장 경제력이 달리니까 아빠가 밤에 대리운전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러면서 부모님 싸움도 늘고, 결국 이혼하시고…. 그러다 보니 유년 시절은 저에게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죠. 아빠랑 화해했다고 극적으로 사이가 좋아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공연하면 초대해 드리고 제 소식도 전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고 나니까 분노로만 가득 차 있던 시절이 달라 보이더라고요. 만일 지금 저한테 그 당시 아빠가 겪은 경제적인 위기가 찾아온다면, 거기다가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애까지 있다면 얼마나 눈앞이 깜깜할까요. 그런 생각을 아빠랑 화해하던 시기에 처음으로 해봤어요. 아빠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애쓴 건데, 그땐 부모님을 전혀 이해 못 한 거죠. ‘왜 우리 집은 도대체 이 모양인 거야.’ 원망뿐이었으니까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고모 집에서 지냈다고 들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고모는 정말 좋은 분이에요. 제가 잘 클 수 있게 도와주신 분이죠. 요즘 고모가 저한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임영웅이는 1년에 천억을 번다더라!”예요(웃음). 말도 안 된다고 하면, 고모는 천억이 사실이든 아니든 1년에 천억을 제 지향점으로 삼고 달려가라고 해요. 고모의 농담이지만 그 안에서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죠. 어릴 때부터 제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으셨는데, 최근 들어 운이 좋아서 잘 풀린 거니까 지금 모습을 잘 유지만 하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세요. 

 

고모 이야기가 나오니까 표정이 풀어지네요. 고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남다른 것 같아요. 

그럼요. 저한텐 부모님 같은 분이에요.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을 때 무대마다 부모님 석이 따로 있었거든요. 출연자들 부모님이 앉아서 응원하도록 마련된 자린데, 고모한테 나오라고 했더니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너희 엄마·아빠가 버젓이 있는데 내가 거길 왜 가니?” 그러면서 한 번도 안 오셨어요. 고모는 제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신 적이 없어요. 걱정은 오히려 잘 풀리고 난 뒤에 하기 시작하셨죠.

 

그런 노터치 방식이 잘 맞았어요? 

네. 고모는 제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가지 말라고 했고, 밥을 안 먹는다고 하면 그대로 두셨어요. 고등학생 때 사고 쳐서 보호 관찰 받고 그래도 아무 말도 안 하셨죠. 고모가 저한테 이야기한 건 한 가지였어요. “학교에 안 가고 공부를 안 하는 건 자유지만, 성인이 되면 알아서 네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요. 고모는 저뿐만 아니라 친딸인 사촌 동생도 똑같이 키우셨어요. 다른 친구들이 이유 없이 공부에 매진하는 게 아니라고, 공부를 안 할 거라면 다른 일로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고요. 어릴 때부터 독립할 수 있는 분위기를 계속 만들어 주신 거죠.

 

고모 덕분에 군대 다녀와서 바로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된 거군요. 

결정적인 이유는 스무 살이 되니까 고모가 집에서 나가라고 해서예요(웃음). 그래서 바로 군대에 갔죠. 전역하고 나면 고모가 고시원 방세를 반년까지는 책임지겠다고 하셨거든요. 그 덕분에 거리에 나앉지 않고 독립할 수 있었어요. 제가 만약 그때 고모네서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것 같아요. 발 뻗고 잘 방이 있고, 밥도 굶지 않았을 테니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 이야기를 음악에 담게 된 계기가 있어요?

[Apartment] 작업에 들어갈 즈음, 기하 형이랑 <세계테마기행> 촬영으로 캐나다에 다녀왔어요. 거기서 아파트를 보고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릴 때 친구들은 다 아파트에 사는데 저만 연립주택에 사는 게 창피해서 저희 동네에서 가장 큰 아파트인 ‘진주아파트’에 산다고 거짓말을 했거든요. 근데, 그 아파트 동이 몇 개고, 어떤 구조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금세 들켜버렸어요. 그때 아빠한테 그 이야기를 하면서 울었는데 굉장히 속상해하셨죠. 그런 경험을 생각해 보니까 문득 아빠가, 또 그 시절의 우리 가족이 안쓰럽더라고요. 그 기억들이 마구 떠올라서 작업하게 됐어요. [Apartment] 작업 때는 동료 뮤지션들이 많이 도와줬는데요. 그 덕분에 음악적으로 많이 생각하게 됐고, 음악관도 생겼어요. 좀더 전문 뮤지션의 마음을 갖게 됐죠.

음악관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거예요? 

뮤지션으로서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랄까요. 저도 전문적으로 음악 하는 뮤지션인데, 이전엔 자세가 하나도 안 돼 있었어요.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태도도 그랬어요. 스튜디오에서 녹음해야 하는데 누워서 자고, 가사 쓰라는데 안 쓰고, 녹음 한 시간 하고 힘들다고 손 놓고…. 그러다 [Apartment] 작업 때에야 프로 뮤지션이 가져야 할 자세를 배운 거예요. 지금은 그때와 마음가짐이 아주 달라요. 그때 들인 습관을 계속 쌓아가는 거기도 하죠. 

 

뮤지션이 “운이 좋아서 되었다.”고 하셨는데, 기타는 일찌감치 배웠다고 알고 있어요. 고모부 어깨너머로 하나둘 익혔다고요.

맞아요. 저를 키워주신 고모는 큰고모고, 기타를 가르쳐 준 고모부는 셋째 고모의 남편이에요. 얼마 전까지 나이트클럽에서 백 밴드를 하시다가 이제 막 은퇴하셨죠. 사실 기타가 멋있고 관심이 가서 배운 게 아니라, 기타를 만지작거리니까 고모부가 이렇게 치는 거라면서 코드 잡는 법을 알려 주셨어요. 나중엔 코드표도 주시고 반주하는 법도 가르쳐 줬어요. 그 당시 싸이월드 BGM을 추천해 주던, 관심 가던 여자애가 있는데요. 션 레논Sean Lenon의 ‘Parachute’를 좋아하길래 코드를 연습해서 들려준 기억이 나요. 쭉 기타에 관심 있던 건 아니고, 알음알음 익혀가다가 그때 한 번 열심히 쳤지 싶어요. 

 

문득 운명이라는 게 있나 싶어요. 음악의 길로 꼭 누가 정원 씨를 이끄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운이 좋다고 자주 생각해요. 특히 인복이 엄청 많죠. 음악적으로 좋은 인연을 계속해서 만나고 있어요. 이번 앨범에 함께하는 작업자도 원래 알고 있는 친구인데요. 마침 제가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음악을 하고 있어서 어렵지 않게 함께하게 됐어요. 하나하나 따져보면 정말 신기하죠.

 

유명해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근데 명예욕처럼 느껴지진 않았어요. “스스로를 높게 생각하고 우쭐하면 오히려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그랬고요. 

길을 걷다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는 빈도는 늘었지만 지금도 저는 유명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보다 잔나비가 훨씬 유명하잖아요(웃음). 저는 자격지심이 심해요. 레이블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소속 아티스트들이랑 같이 공연하면 저 자신이 ‘쭈구리’처럼 느껴졌어요. 장기하와 얼굴들이나 혁오가 무대에 올라갔을 때 함성이 쏟아지는 걸 들으면서 위축되곤 했죠. 그 시절엔 비교 대상을 두고 유명해지는 걸 꿈꿨어요.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단순히 제가 술 마시고 있을 때 누가 와서 사인해 달라고 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근데 운 좋게 그런 위치에 어느 정도 오고 보니까 비교 대상을 두기보다는 지금 이 관심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전히 자격지심은 있지만 많이 극복한 것 같아요. 예전엔 밑도 끝도 없이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지금은 안정감을 찾았달까요.

지금 마음은 좀 어때요?

음악을 더 잘 만들고 싶어요. 음악을 만들어야만 해서 만든 적이 몇 번 있는데요. 그럴 땐 작업을 마쳐도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낸 노래는 잘 듣지 않게 돼요. 제가 작업한 건데도 가사가 잘 기억이 안 나고요. 그런 경험을 해보면서 느끼게 됐어요. ‘아,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 

 

그런 음악은 내 기록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네. 근데, 발매 초반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점점 애정이 생기는 곡도 있어요. 대부분 드라마 OST가 그렇죠. 녹음은 가벼운 마음으로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니까 저도 갑자기 마음이 생기는 거예요. 저는 사람들 관심도에 따라 많이 움직이는 편이에요. 좀 다르게 이야기하면 제 심지가 굳지 않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근데, 어쩔 수 없어요. 저는 그걸 동력으로 움직이고, 사람들 기호에 맞춰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한때는 이게 큰 고민이었지만 지금은 그냥 편하게 생각하려고 해요.

 

과거에는 예술을 순수한 것으로 여겨서 돈이나 명예랑 연관 지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그래서 열정페이나 재능기부 같은 단어로 착취당하기 쉬웠고요. 근데 정원 씨는 “음악이 돈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솔직하다고 생각했어요.

스트리밍 사이트만 해도 한 달에 만 원 돈을 결제해야만 이용할 수 있잖아요. 잘나가는 뮤지션들은 스트리밍 몇 번으로도 엄청나게 큰돈을 벌어요. 남들이 몇 달 일해서 받을 월급을 한 번에 받을 때도 있죠. 그런 걸 생각하면 이 돈이 그냥 들어온다고 생각해 버리면 안 될 것 같아요. 누군가 제 음악을 위해 돈을 내고 있다는 사실을 잊는 순간 제가 대단하다고 착각해 버릴 것 같아요. 반면 그걸 기억하고 있으면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고, 공연할 때도 사람들의 니즈를 맞추려고 노력하게 돼요. 저도 직장 생활을 한 적이 있어서 소중한 주말에, 평일 퇴근 후에 공연 보러 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거든요. 그렇게 찾아오신 분들께 혼자 신나서 카더가든과 어울리지 않는 무대를 만들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라이브를 해버리면 실망을 주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돈을 받고 있고, 누군가가 저한테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걸 계속 생각하려고 해요. 이 생각은 재작년에 특히 더 강해졌어요. 뮤지션 생활을 오래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부터 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제 음악을, 공연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돈을 더 내고 싶게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려면 저는 반드시 열심히 해야 하고, 그럼 청자들은 또 그에 맞는 금액을 기꺼이 지불하겠죠.

 

선순환이네요. 유명해지면 신경 쓸 게 더 많을 것 같은데 그런 부담은 없어요?

제 주변에 직장 생활하며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친구들도 꽤 있는데, 그 친구들한테 유독 걱정을 많이 들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 같냐.’부터 시작해서 술도 줄이고, 담배도 적당히 피우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죠. 사실 저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에요. 지금은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제 수입이 좋을 수 있지만 이게 언제까지고 지속될 거라고 확신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이전엔 신경 쓰지 않던 건강도 생각하게 됐어요. 비타민도 챙겨 먹고….

 

친구들이랑 술 마시다 보면 “연예인 병 걸렸냐.”는 이야기도 들으신다고요(웃음).

특히 술자리에서 말할 때 조심스러워요. 옆 테이블에 누가 앉아 있을지 모르니까요. 저도 민감한 편이지만 저희 대표님은 더 하세요. 집에 가서 마시자고 하고, 제 목소리가 조금 커지면 말리려고 하고요(웃음).

 

오늘 대화도 그렇고, 미디어에 노출될 때도 굉장히 솔직한 편이잖아요. 인제 와서 신비로운 콘셉트를 하기에는 늦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죠.

여태 콘셉트나 제 이미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서 차정원이라는 사람이 너무 많이 드러나 버렸어요. 아마 그 이야기는, 누군가 저한테 음악이랑 제 모습이 다르다고, 음악에서 보이는 이미지를 지키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게 대답한 것 같은데요. 인제 와서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도 정보가 너무 많이 노출됐어요. 유튜브에 ‘카더가든’만 검색해 봐도 알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콘텐츠가 너무 많아요.

 

만약 그런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면 신비한 콘셉트 해보고 싶어요?

제 정보를 다 지워버릴 수 있다면요? 물론이죠. 저도 한 번쯤은 멋있는 뮤지션이고 싶어요. 만약 제 이미지를 다시 만들 수 있다면 말을 거침없이 하는 뮤지션이 되어보고 싶네요. 오아시스처럼 “싫은데요?” 이런 말도 당당하게 하고, 근데 음악은 너무 멋있고.

 

창작자랑 작업물을 떼어놓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요. 음악은 음악이고, 사람은 사람이죠. 실제로 음악은 너무 좋아하지만 사람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뮤지션도 많아요.

궁금하지만 묻지 않을게요(웃음). 술 좋아한다고 알고 있는데, 혹시 취중 진담을 믿나요?

저는 취중 거짓말 많이 하는 편이에요(웃음). 주량이 소주 세 병 정도인데, 멈추지 못하고 주량 이상을 마시는 편이라 취한 상태에선 지키지 못할 약속도 많이 하죠. 말할 당시엔 분명히 진심인데 다음 날이 되면 실현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아요. “내일 떠나버리자.” 같은 거요. 

 

대화할 때 어떤 편이에요?

편안한 거 좋아해요. 유난히 어색한 사람들이 있어요. 얘기는 계속 오가는데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 쓰게 되는 사람이요. ‘이 사람 지금 무슨 생각 하나….’

 

다른 사람을 많이 신경 써요?

엄청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친구네 커플이랑 술을 마시면서 제 음반 얘기를 하게 됐어요. 근데 다음 날 너무 후회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친구한테 문자로 “내가 어제 내 얘기 너무 많이 했어?”라고 물었는데, “뭔 소리야, 아무도 너한테 관심 없어.” 그런 답장이 오더라고요. 저는 사람들이 저를 안 싫어하면 좋겠어요. 누가 절 싫어한다고 생각하면… 괴로워요. 그게 좀 심한 편이죠.

 

상대방을 신경 쓰다 보면 배려하다가 감정적으로 지치기도 하잖아요.

맞아요. 저는 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어서 더 그래요. 말이 좀 많고, 의견을 강하게 얘기하는 성향이 있거든요. 이런 성격엔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는 걸 알아서 더 조심스러워요.

 

그럼 정원 씨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정이 많아요. 사람들한테 잘해줘요. 잘해 준다고 해봤자 밥값, 술값 잘 내는 정도지만(웃음). 그래도 진짜 좋아하는 사람하고는 진심을 다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저는 정원 씨가 방송에 잘 어울리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예능 프로그램은 어렵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의외로 제가 예능을 무서워해요. 잘 못하더라고요. <라디오스타>에 나간 적이 있는데, 티브이로 볼 땐 잘할 것 같았거든요. 근데 막상 그 자리에 앉으니까 기가 눌리고 긴장됐어요. 그것도 ‘저 사람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데서 눈치를 봐서인 것 같아요. 제가 어떤 멘트를 했을 때 ‘피디가 뭐라고 생각할까.’, ‘저 패널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심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더라고요.

 

반면, 노포를 탐방하는 GQ 유튜브 콘텐츠에선 되게 편해 보이던데요.

스태프랑 친하고 성향을 잘 알아서 쉬운 것 같아요. 딱히 고민하지 않고 생각나는 말들을 뱉어도 ‘쟤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거든요. 아마 방송 관계자분들도 유튜브 콘텐츠 보고 저를 섭외하려다가 지상파 예능 보고는 마음 접으실 것 같아요(웃음).

 

혹시 진짜 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어요?

장르가 상관없다고 한다면 스포츠 콘텐츠요. 스포츠기자들 만나서 “이번 경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거 묻고 싶어요. 제 인생에선 스포츠가 상당히 큰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야구 보고, 농구 보고, 간밤에 올라온 소식 확인하고, 하이라이트 영상 보고…. 한 50대쯤 되면 스포츠 콘텐츠 하나 꾸려보고 싶어요. 

 

스포츠요? 상상이 안 돼서 미래가 더 기대되는데요(웃음). “장르보다 목소리로 기억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죠. 나중에 어떤 목소리로 기억되고 싶어요?

아는 목소리요. 들었을 때 바로 “카더가든이네!” 할 수 있는 목소리.

 

덧붙여 “음악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고도 하셨죠.

음…. 지금까지 제가 쌓아온 작업과 이미지를 돌아봤을 때 저랑 비슷한 느낌의 뮤지션이 많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그걸 계속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영향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욕심을 내보면 누군가에게, 이왕이면 많은 사람에게 계속 남아 있고 싶어요. 이를테면, 이번에 결혼식에서 축가를 하게 됐는데요. 이 커플과의 인연이 좀 특별해요. 옛날에 작은 무대에서 공연할 때 한 남자 관객분을 무대에 올리고 장난삼아 세레나데를 불러드린 적이 있어요. 그때 누구랑 왔냐고 여쭤봤더니 여자친구랑 오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두 분이 결혼하면 그땐 진짜 세레나데를 불러드리겠다고 했는데 정말 결혼하게 되신 거죠. 여자친구분이 “약속 지키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연락해 주셨더라고요. 그분들에게는 제가 영향력 있는 사람인 거잖아요. 그런 영향력이 더 많은 사람에게 퍼졌으면 좋겠어요.

 

축가로 어떤 노래 부르기로 했어요?

‘나무’를 자주 부르지만, 결혼식 주인공은 신부니까 신부가 원하는 곡이라면 뭐든지 하려고 해요. 한 번은 잔나비 노래를 해달라던 분도 있었….

[C], 정원의 기록들

사이사이 스며 있는 정원의 이야기, 

알고 들으면 좀더 가깝게 들리는 그런 이야기.

Track01―의연한 악수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 싶어서 뒤를 따라갔지만 결국 나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좌절감이 밀려오던 때가 있었어요. 누군가의 멋진 창작물을 보면서 벽을 느끼던 시절에 쓴 곡이죠. ‘아, 저 사람은 레벨이 다르구나.’ 그런 마음을 떠올리며 작업했어요. 사실 장기하 형을 생각하면서 쓴 곡이에요.

Track02―A Kid From Bathroom

부모님한테 관심받고 싶어서 일부러 코피 냈던 경험을 담은 곡이에요. 코피가 나면 엄마가 “왜 그래?” 하고 관심을 가져 줄 것 같았어요. 사실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자극적인 모습으로 관심을 받고 싶은… 그런 성격이 아직 남아 있거든요.

Track03―꿈을 꿨어요

엄마랑 동생 얘기예요. 어릴 때 부모님이 자주 싸우셔서 저랑 동생은 그 시간을 귀를 막고 버텼어요. 동생이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이상하다고 하더라고요.

Track04―유영

체코는 보통 오후 4시면 일이 끝난대요. 그래서인지 체코 공원엔 유독 사람이 많았어요. 그때 낮잠 자는 남녀 한 쌍을 보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상상했어요. 아찔한 상상도 덧붙여서 망상의 나래를 펼쳐 작업했죠.

Track05―Tallguy

여자들한테 “정원 씨, 키가 되게 크시네요.”라는 말을 유난히 많이 들었어요. 외모에 대한 칭찬은 그것뿐이어서 그 말을 떠올리며 만들었어요.

Track06―비었다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서 민주화 운동을 생각하며 작업했어요. 아마 저라면 나서서 투쟁은 못 했겠지만… 민주 항쟁 투사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친구한테 편지 쓰듯 가사를 썼죠. 죽은 친구가 살아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고 상상했고, 그렇게 투쟁해도 바뀌는 게 없다는 내용을 담고 싶었어요.

Track07―면허없음

운전면허가 없는 게 그 당시 여자친구한테 미안해서 쓴 곡이에요(웃음).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