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준이치다 너는 이랑이고 6

우리 집에는 옥상이 있다

우리 집에는 옥상이 있다

날이 더워지고 있다. 날씨에 따라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이랑과 달리 나는 입고 벗을 게 없어서 유독 힘들다. 여름이 되면 내 몸을 뒤덮은 흰털과 검은털이 더운 공기에 엉켜 무겁고 축축해진다. 그럴 때 나는 이랑이 쓰는 화장실에 들어가 앉는다. 내 화장실은 모래로 가득 차 있지만 이랑이 쓰는 화장실은 바닥이 미끌미끌하고 차갑다. 이랑은 거기서 자기 몸에 물을 뿌리는 행동을 자주 한다. 화장실 바닥에 물이 남아 있을 땐 발이 젖는 게 싫어서 들어가지 않지만, 물이 없을 때는 들어가 몸을 식히기에 썩 나쁘지 않은 곳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집에 새로운, 시원한 공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랑이 전처럼 매일 밖에 나가지 않게 되고 반대로 이랑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 오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친구들이 놀러 오면 이랑은 그들과 함께 집 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평소라면 계단 아래로 내려가 멀리멀리 사라지던 이랑이었기에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하며 방에 앉아 있자니 위에서 이랑과 친구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무슨 일인지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오니 평소와 달리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머리로 문을 밀어젖히고 밖으로 나와 위쪽으로 향한 계단을 몇 개 올라갔다. 계단 끝에 활짝 열린 또 하나의 문이 보였다. 가까이 가니 문 너머로 파란 하늘이 보이고 바닥엔 이랑과 친구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먹고 마시며 신나게 떠들던 이랑이 순간 내 얼굴을 보더니 꽥 소리를 지르며 일어나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나는 재빨리 뒤돌아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집으로 들어갔다. 평소에도 내가 잠깐 문밖을 나가면 이랑은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친다. 이번에도 역시나 허겁지겁 뒤따라온 이랑은 문을 꼭 닫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방에 돌아와 방금 본 것들을 정리해 보니 이 집 위에 있는 것이 옥상이라는 게 확실해졌다. 한참 오래된 기억이지만 이랑과 내가 처음 같이 살던 그 옥상 집처럼 말이다.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집 문을 열면 바로 옥상이 있었고, 지금은 집 위에 옥상이 있다는 것이다. 이랑과 처음 같이 살던 그 집에서 우리는 가끔 옥상에 나와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왜 지금 집에선 그렇게 할 수 없었던 걸까.

이랑의 친구들이 떠난 뒤, 어둡고 조용해진 거실에 누워 있는 이랑에게 옥상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낮에 잠깐 열렸던 문 앞에 앉아 연거푸 얘길 하니 이랑이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줬다. 성큼 문밖으로 나와 몇 걸음 걸어보았다. 발바닥에 닿는 바닥의 감촉이 시원해 무척 기분이 좋았다. 낮에 올라가 본 계단 위를 다시 한번 걸어 올라갔다. 여전히 활짝 열린 문밖으로 어두워진 하늘과 구름이 보였고 선선한 바람이 계단을 향해 불었다. 내 뒤를 따라 이랑이 살금살금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조금 신경 쓰였지만 나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문밖으로 나오니 탁 트인 옥상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아래 나와 이랑이 살고 있는 집보다 훨씬 더 넓고 시원한 느낌이었다.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옥상 구석구석을 걸어보았다. 이렇게 넓은 곳을 걸어본 게 언제였던가 싶다. 가려진 것 없이 탁 트인 하늘을 정말 오랜만에 마주했다. 내가 매일 앉아 해를 쬐는 이랑 방 창문에서 본 하늘과 같은 하늘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달랐다. 옥상 여기저기엔 작은 물웅덩이가 있었다. 하늘엔 크고 둥그런 달이 낮게 떠 있었다. 하늘에 있는 달도 웅덩이에 비친 달도 둘 다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를 뒤따라온 이랑이 옥상 바닥에 길게 누웠다. 역시 이런 계절엔 시원한 바닥이 제일 기분 좋은 법이다. 나도 조금 더 걷다가 누워 있는 이랑의 몸에 내 몸을 붙이고 누웠다. 우리의 몸 위로 연신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랑아, 우리의 첫 번째 집 기억나니?

그때도 이렇게 가끔 밤하늘을 같이 봤던 것 같은데.

 

당연히 기억나지. 그때 준이치는 한 살이었고 나는 스물한 살이었어.

한 살 준이치는 아주 작고 아주 빨라서 한 번 뛰기 시작하면 잡기가 무척 어려웠어.

 

우리는 함께 누워 한동안 우리의 첫 번째 집을 떠올렸다. 지금 사는 집보다 훨씬 작고 훨씬 덥고 훨씬 추운 집이었지만 그때 나는 지금보다 훨씬 작았기에 집이 그리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보다 훨씬 커진 지금의 나와 달리 이랑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신기할 뿐이다. 이랑은 언제쯤 나처럼 커질까. 사실 요즘 나는 다시 작아지고 있는 중이다. 병원에 자주 가게 된 이후 입맛이 없어진 게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오늘 이렇게 옥상에서 하늘을 보니 나와 이랑의 16년 전 생활이 떠오르고 그때처럼 신나게 옥상을 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마음처럼 실컷 뛰기는 어렵겠지만 앞으로도 이랑과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것들이 더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오늘 이 집에 옥상이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 세상은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할 거고, 나는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알아가고 싶다.

이랑
1986년 서울 출생 아티스트. 자칭 준이치 엄마.
[욘욘슨], [신의 놀이] 등의 앨범을 냈고,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등의 책을 썼다.

 

Hirokawa Takeshi

1981년 센다이 출신 판화가.

글 이랑

그림 Hirokawa Takes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