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준이치다 너는 이랑이고 5

나는 이 집에서 혼자가 아니다

나는 이 집에서 혼자가 아니다

이랑이 집에서 나가고 나면 집이 엄청나게 시끄러워진다. 이랑은 잘 모를 테지만 이 집에는 나와 이랑 말고도 살아 움직이는 많은 친구가 있다. 그중 나보다 나이가 많은 곰돌이 친구 둘이 대장 격인데, 곰돌이면서 이름이 곰돌이인 친구는 이랑과 함께 산 지 벌써 20년 가까이 됐다. 다른 하나는 재작년에 일본에서 건너온 외국 곰돌이다. 일본 센다이에서 오래 살았다고 하는데, 아직도 한국말이 서툴러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이름은 호코리. 호코리는 ‘먼지’라는 뜻이다. 곰돌이와 호코리 말고도 많은 친구들은 이랑이 집에 있을 때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이랑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자유롭게 행동하는데, 다들 왜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사는지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얼마 전 세 번째 곰돌이가 이랑과 함께 집에 왔다. 그 애는 이랑의 점퍼 안에서 얼굴만 빼꼼 내놓고 무척 긴장한 얼굴로 들어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랑의 동네 친구가 헌옷수거함에 버리려던 곰돌이를 구조한 것이었다. 어디에 눌렸는지 얼굴이 납작하고, 골격에 비해 몸이 홀쭉한 친구였다. 이름은 깐돌이. 깐돌이를 수거함에 버리려던 친구가 오래전에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그 친구는 이름까지 지어준 깐돌이를 왜 버리려고 한 걸까. 깐돌이는 버려질 뻔한 충격과 새로운 집에 이사한 충격으로 한동안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곰돌이와 호코리와 깐돌이는 셋 다 갈색곰이지만 미묘하게 털색이 다르다. 내 몸에서는 희고 검은 털만 나기 때문에 몸이 갈색인 친구들을 보면 매번 신기하다. 이랑은 갈색곰 셋이 모여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선반 위에 세 친구를 함께 앉혀두었다. 몸통이 가장 큰 호코리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곰돌이와 깐돌이를 앉힌 뒤, 셋의 팔을 무리하게 끌어당겨 어깨동무를 하게 만들었다. 이랑이 집에서 나가면 셋은 금방 팔을 내리고 떨어지지만, 이랑이 집에 있는 동안 내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그래도 새로 이사 온 깐돌이에게는 친구들과 그렇게 붙어 있는 시간이 심신의 안정을 찾는 데 꽤 도움이 된 모양이다.

이랑의 침대에는 흰곰 하나와 노란 곰 하나가 있다. 예전엔 커다란 흰곰 하나가 더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 이랑은 커다란 흰곰을 머리 밑에 깔고, 작은 흰곰은 다리 사이에 끼고 잠을 잤다. 그 둘은 이랑이 없을 때 자주 싸웠다. 이랑이 큰 흰곰을 ‘엄마 곰’이라고 부르고 작은 흰곰을 ‘아기 곰’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사실 그 둘은 가족도 아니고 태어난 곳도, 나이도 같은데 엄마라고 불리던 큰 흰곰이 그 호칭 때문에 자기가 작은 흰곰보다 더 대단한 곰인 양 무례하게 굴었다. 작은 흰곰은 그게 꼴 보기 싫었던 것 같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날 그 둘이 싸우다 큰 흰곰 뒷덜미에 작은 구멍이 생겼는데, 거기서 차츰차츰 솜이 빠져나와 큰 흰곰의 몸뚱이 크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큰 흰곰의 거죽이 쭈글쭈글해지는 게 걱정되던 어느 날, 이랑은 커다란 비닐봉투를 가져와 큰 흰곰을 그 안에 밀어 넣었다. 우리 모두 이랑의 행동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는 봉투를 물어뜯어 큰 흰곰을 구해주려고 했는데, 이랑이 먼저 비닐을 찢고 “도저히 버릴 수가 없네.” 하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흰곰을 꺼내주었다. 그리고 몇 달 뒤, 이랑은 다시 큰 흰곰을 비닐봉투에 넣고 집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나는 박스 안에서 자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은 그 모습을 보고도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날 이후 다시는 큰 흰곰을 볼 수 없었다. 작은 흰곰은 큰 흰곰이 없어졌으니 자기를 작은 흰곰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나는 원래 그를 작은 흰곰이라 부르지도 않았고 ‘부드르부드르’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이랑이 흰곰을 얼굴에 비비며 “부들부들~”이라고 말하는 걸 듣고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내 이름은 준이치지만 친구들이 나를 ‘우리강아지’라고 부르는 것처럼 말이다. 이랑은 나를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데 왜 그러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이랑이 나를 부르는 이름에는 준이, 순이, 순일이, 준돌이, 준짱, 준사마, 쭈니, 쭈니찌, 아이구예뻐, 뚱땡이, 내새꾸, 우리아가 그리고 우리강아지 등이 있는데, 이 중에서 ‘우리강아지’라는 이름이 웃기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언제부턴가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나 자신이 준이치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뭐라고 불리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쳇.

요즘 친구들이 하루 종일 움직이지 못하는 게 큰 걱정이다. 한 달쯤 전부터 이랑이 집에서 나가지를 않는다. 나를 계속 따라다니며 먹기 싫은 것들을 강제로 입에 집어넣을 뿐 아니라 매일 두 번씩 내 몸에 바늘을 꽂기까지 한다. 자고 있을 때 깨워 입에 뭘 집어넣을 때는 너무 화가 나서 목소리도 안 나온다. 게다가 내내 움직이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하다. 사실 밖에 안 나가는 이랑 때문에 가슴이 답답한 건지 내 가슴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전부터 숨 쉬는 게 좀 불편하기는 했다. 기침도 자주 나오고 똥을 누려고 힘을 주면 나도 모르게 코에서 바람이 킁- 하고 새어 나온다. 가끔 이랑이 밖에 나갈 낌새가 보인다 싶으면 나까지 가방에 넣어져 병원에 가게 되니 미칠 노릇이다. 그래도 나랑 이랑이 병원에 있는 동안 친구들이 집에서 편하게 놀고 있을 거라 생각하면 좀 참을 만하다. 그 시간을 같이 보내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곧 이랑이 전처럼 매일 밖에 나가지 않을까. 그때 친구들이랑 많은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다.

이랑
1986년 서울 출생 아티스트. 자칭 준이치 엄마.
[욘욘슨], [신의 놀이] 등의 앨범을 냈고,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등의 책을 썼다.

 

Hirokawa Takeshi

1981년 센다이 출신 판화가.

글 이랑

그림 Hirokawa Takes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