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준이치다 너는 이랑이고 2

나는 박스에 들어간다

나는 박스에 들어간다

나는 오랫동안 박스에 들어가는 걸 무척 싫어했다. 어떤 고양이들은 사이즈가 크든 작든 박스라는 물건을 굉장히 좋아한다고 하고, 이랑도 내가 박스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하지만 나는 박스에 들어가는 걸 근 10년 넘게 줄곧 거절해 왔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이랑에게 있다. 아직 한 살도 채 되기 전, 그때도 내게는 강제로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 종종 있었다. 맨 처음 병원이라는 곳에 가는 날 나는 이랑의 신발 박스에 담겨 이동했다. 처음엔 신발 박스였지만 내 몸이 조금씩 커지자 들어가야 하는 박스의 크기도 같이 커졌다. 나중에는 사과가 그려진 커다란 박스에 들어가야 했다. 박스 안은 깜깜하고 답답하고 축축했다. 밖이 보이지 않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흔들리는 깜깜한 박스 속에서 나는 으레 그렇듯 오줌을 쌌다. 그때마다 나의 고통을 밖에 있는 이랑에게 알리려고 무척 노력했다. 몸을 흔들며 소리를 지르고 박스 벽을 긁었지만 그럴 때 이랑은 박스가 열리지 않도록 더 꽉 누르곤 했다. 가끔 이랑이 박스에 작은 구멍을 한두 개 뚫어준 적도 있지만, 오히려 그 작은 구멍에서 흘러 들어오는 정보들이 나를 더 무섭고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니 어떻게 내가 박스라는 물건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박스에 들어가 병원으로 옮겨지는 생활은 내가 1.5개월일 때부터 약 2세까지 지속됐다. 그때는 왜 지금 쓰는 파란색 가방이 없었던 걸까.

 

그때 나와 이랑은 옥상 위에 있는 작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랑은 이틀에 한 번씩 몸에 물을 뿌리러 집에서 나가 옥상을 지나 작은 창고로 들어갔다. 나는 집 밖을 나가지 않고도 그 창고로 이동할 수 있었다. 부엌 싱크대 위쪽에 있는 작은 창문이 창고와 연결돼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은 지금이야 부엌 싱크대 위로 뛰어 올라가거나 뛰어내리는 것이 어렵지만, 그때는 어렵지 않게 어디든지 뛰어오를 수 있었다. 이랑이 몸에 물을 묻히는 모습은 15년을 봐 왔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 하지만 내 몸에 물이 묻는 건 싫기 때문에 이랑이 몸에 물을 뿌리기 시작하면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그 모습을 관찰했다. 겨울이 되면 이랑은 커다란 하얀 그릇을 꺼내 그 안에 더운물을 가득 채워 넣었다. 그러면 차가운 창고 안 공기와 더운물이 부딪혀 창고 안이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찼다. 나는 그 뿌연 수증기 속에서 물그릇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이랑을 구경하다가 창고 바닥을 구불구불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구경하곤 했다.

 

박스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2세 때까지의 끔찍했던 기억으로 그때부터 10년은 족히 넘는 시간 동안 나는 박스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고 거절해 왔다. 어느 시점부터는 박스가 아닌 창문이 있는 가방에 들어가 이동을 하게 되었지만, 어딘가 들어가 이동할 때마다 박스 속에 있던 갑갑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계속 떠올랐다. 집 안에서 박스를 마주칠 때도 고역이었다. 집에는 자주 박스가 새로 들어왔다. 내 두 발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작은 것도 있고, 이랑이 반쯤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 박스도 있었다. 박스가 도착하면 이랑은 박스를 열고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낸 뒤 무언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가끔 이랑이 나를 들어 올려 커다란 박스 안에 집어넣으려 할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기겁을 하며 열려 있는 박스 바깥으로 뛰쳐나간 뒤 이랑을 오랫동안 노려보았다.

 

나는 삼면이 막힌 공간은 꽤 좋아하는 편이다. 책이 꽂힌 선반이나, 침대 밑, 열린 옷장 속에 들어가 오랜 시간 잠을 자기도 한다. 이를 눈치챈 이랑은 언제부턴가 뚜껑이 없는 박스를 집안 이곳저곳에 놓아두기 시작했다. 박스를 천천히 살펴보고 닫히는 네 번째 면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래도 역시 들어갈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옷장 밑에는 이랑의 옷이나 담요가 들은 박스가 오랫동안 놓여 있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날 나는 그 뚜껑 없는 박스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몇 년째 지켜봤지만 옷장 밑에 놓인 그 박스는 이동을 위해 쓰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동하지 않는 박스는 푹신하게 깔린 옷들 덕분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도 꽤 편안했다. 당연히 이랑이 없는 시간에 들어갔고, 박스에 들어가 있다가도 이랑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면 잽싸게 밖으로 나왔다. 주의하려고 했지만 내가 거기에 들어갔었다는 사실은 잘 숨겨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몸무게에 짓눌린 옷가지들과 거기 들러붙은 내 털을 확인한 이랑은 무척 기뻐하며 그때부터 더욱 꾸준히 뚜껑 없는 박스를 집안 여기저기 놓아두었다. 박스는 방에도 거실에도 부엌에도 현관에도 계속 늘어났다. 나는 이랑이 없는 시간에 잠깐씩 박스에 들어가 보기 시작했다. 들어가 앉으면 몸이 꽉 차는 사이즈의 박스에는 머리를 밖으로 꺼내 기대고 있다가 잠깐 잠이 들기도 했다.

 

보통 이랑은 잠에서 깨면 금방 가방을 가지고 밖에 나가고 해가 지고 나서도 한참 뒤에 돌아오기에 낮 시간 동안 나는 바깥소리를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지내는 편이다. 그러다 어느 날인가 예상치 못한 낮 시간에 이랑이 갑자기 집에 돌아왔다. 그날 나는 방 한쪽에 있는 여러 개의 뚜껑 없는 박스 중에 머리를 기댈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박스에 들어가 졸고 있다가 이랑이 집에 돌아온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방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려 눈을 반쯤 떠보니, 이랑이 내 앞에서 무척 기쁜 얼굴로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이랑이 나의 어떤 행동을 보고 무척 기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이랑은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도 발을 동동 구르며 사진기를 꺼낸다. 나는 그 모습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한다. 그날 나는 이랑의 기뻐하는 표정을 보고 다시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눈을 감고 있으니 조금 뒤 ‘찰칵찰칵’ 이랑이 사진을 찍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얼마나 기쁜 표정으로 내 사진을 찍고 있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훤했다.

이랑
1986년 서울 출생 아티스트. 자칭 준이치 엄마.
[욘욘슨], [신의 놀이] 등의 앨범을 냈고,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등의 책을 썼다.

 

Hirokawa Takeshi

1981년 센다이 출신 판화가.

글 이랑

그림 Hirokawa Takes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