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준이치다 너는 이랑이고 1

너는 나의 엄마가 아니다

너는 나의 엄마가 아니다

나는 준이치다. 내 이름은 내가 정하지 않았고 이랑이 정했다. 이랑은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동물이다. 이랑과 함께 산 지는 15년이 됐다. 나는 생후 1.5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이랑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이것도 내가 정한 것은 아니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아니 그보다는 선택을 하기엔 내가 너무 어렸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됐다. 그전까지 나는 길에서 살았다. 역시 너무 어려서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때 내겐 분명히 엄마가 있었고 형제자매도 여럿 있었다. 우리는 엄마의 젖을 먹기 위해 자주 다퉜고 다투지 않을 때는 자주 같이 놀았다. 말하긴 조금 부끄럽지만 열다섯 살인 지금도 엄마의 젖을 찾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가끔 이랑이 ‘꾹꾹이’라고 부르는 행동을 한다. 이랑은 내가 꾹꾹이를 할 때 아주 기뻐한다. 딱히 이랑이 기쁘라고 하는 행동도 아니거니와, 열다섯이나 된 마당에 젖을 찾는 행동을 하는 내 모습이 그리 기쁘지 않기에 꾹꾹이 하는 횟수는 점점 줄여나가고 있다.

생후 1.5개월인 시절에 내게 뭔가 큰일이 생긴 것 같다. 오래전 일이고 너무 어릴 때라 정확한 사건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큰일이 생긴 그날 하루 동안 무척 많이 울었던 건 확실히 기억난다. 더 이상 울기도 지쳐 있을 때쯤 나는 이랑과 만났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를 몇 번 거쳐 이랑을 만났지만, 그 누군가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그날 내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나의 엄마와 형제자매들은 어디로 갔으며 왜 나는 그날 많이 울었던 걸까. 그날에 대해 궁금한 건 이랑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준이치 왜 길에 혼자 있었어?”

“그때 준이치 엄마는 어디에 있었어? 준이치 엄마는 어떻게 생겼어?”

이랑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자주 던진다.

내게 엄마가 있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랑은 15년간 꾸준히 자신을 ‘준이치 엄마’라고 지칭하는데, 나는 1.5개월까지 존재하던 엄마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기에 이랑이 자신을 엄마라고 지칭하는 모습이 좀 우습기도 하다. 내게 이랑은 그저 이랑일 뿐이다.

내게 일어난 그 큰일은 왠지 자동차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나는 커다란 모터 소리를 끔찍하게 싫어한다. 자동차 엔진 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어도 신경질이 난다. 가끔 이랑은 나를 어두운 파란색 가방에 넣어 자동차를 타고 병원에 간다. 살면서 여러 가지 모양의 병원에 많이 가보았다. 생긴 건 다르지만 분위기는 비슷한 곳들이었다. 그 하얗고 차가운 공간에서 운이 더럽게 나쁜 날은 뾰족한 주삿바늘이 몸 여기저기로 들어온다. 한 번도 내게 좋은 기억을 남긴 적 없는 불행한 공간이다. 병원에 도착하는 상황도 끔찍하지만 거기까지 가기 위해 자동차를 타는 건 더 끔찍하다. 부끄럽지만 나는 자동차를 타면 오줌을 싼다. 작고 어두운 가방 속에서 오줌을 싸는 나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그 오줌 위에 주저앉아 내내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듣고 있는 나의 치욕을 상상해 보라. 지옥이 따로 없다. 그 지옥을 다시 경험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랑이 베란다에서 그 어두운 파란색 가방을 꺼낼 때마다 그저 옷장 밑으로 달려가 몸을 숨길 뿐이다. 하지만 이내 이랑의 손이 옷장 밑으로 쑤욱 들어온다. 제기랄.

이랑은 나보다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다. 인간이라고 불리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 글에서 내가 어떤 동물인지 말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고양이다.

살면서 꽤 많은 인간을 보았고, 몇 안 되는 고양이들을 보았다. 어떤 고양이들과는 몇 달간 함께 생활을 하기도 했다. 고양이나 인간이나 매한가지로 나를 귀찮게 한다. 나는 혼자가 좋다. 그렇지만 24시간 완전히 혼자 있는 것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이랑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리 불편하지 않으며, 오랫동안 이랑과 함께 침대를 썼기에 밤에 길게 잘 때는 이랑과 함께 자는 게 습관이 됐다. 이랑은 혼자 있는 걸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우리가 함께 사는 이 집에는 많은 사람이 드나들고, 가끔 고양이들이 오기도 한다.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이랑은 매일매일 집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 24시간 내내 집에 함께 있는 날은 거의 없다. 이랑은 일어나면 곧 밖으로 나가고 아주 늦은 시간에 다시 돌아온다. 가끔 이랑이 왜 나랑 함께 사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나는 매번 이랑이 돌아오는 소리를 듣고 문 앞에 마중을 나가는데, 종종 이랑은 나를 본체만체하며 자기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그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내 물그릇에 물이 반도 안 남은 걸 보지도 않고 집 밖으로 나간다. 그럴 때는 이랑과 함께 사는 일에 회의감을 느낀다.

종종 엄마를 생각한다. 십수 년이나 지났지만 엄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엄마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내게 큰일이 일어난 날, 엄마에게도 큰일이 일어난 걸까. 동시에 서로에게 큰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날 우리는 헤어지게 된 걸까. 매일 집 밖으로 나가는 이랑은 내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만은 절대 금지한다. 나보다 긴 팔과 다리로 매번 문을 나서려는 나를 제지하고 강제로 내 몸을 들어 올려 집 안으로 이동시킨다. 직접 엄마를 찾으러 나갈 수 없기에 나는 오랫동안 창문을 보면서 엄마를 생각한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고양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지나가는 고양이들을 보며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는 엄마의 털색과 촉감을 떠올린다. 지금 내 몸에 있는 색은 엄마의 몸에도 있는 색일까.

이랑
1986년 서울 출생 아티스트. 자칭 준이치 엄마.
[욘욘슨], [신의 놀이] 등의 앨범을 냈고,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등의 책을 썼다.

 

Hirokawa Takeshi

1981년 센다이 출신 판화가.

글 이랑

그림 Hirokawa Takes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