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어진 아름다움

선정현·조규엽 — 논픽션홈

논픽션홈의 가구가 놓인 곳으로 향하는 동안 나는 계속 무언가를 하게 되었다. 기대보거나, 앉아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서 있거나, 비뚤배뚤 걸어보거나. 나를 행동하게 하는 것이 가구라는 것, 혹은 가구의 배치라는 것을 깨닫고는 이내 궁금해졌다. ‘아니, 이게 뭐지?’

아름다움이란 분명히 존재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걸 보려면 다른 어떤 건 보지 않아야 해요.

그래야만 볼 수 있어요.

밖에서 보는 건물 모양이 아름다워요. 꼭 블록으로 조립한 것 같아요. 

정현 오래된 다세대 주택인데 층층이 관리하며 사용하고 있어요. 담 앞에 설치한 간판 게시판 보셨나요? 규엽 님이 디자인한 건데, 이 건물 용도를 표시해 주면서 포스터도 게시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2층은 개인 공간, 1층은 사무실로 사용 중이고, 지하엔 ‘논픽션홈 아카이브’라는 공간을 만들어서 논픽션홈 가구를 개방하는 일도 하고 있어요. 아직 정리가 덜 되어서 초대하는 게 머쓱하네요(웃음). 

 

너무나 잘 정돈된 공간인걸요. 몇 개 안 되는 계단을 올라오면서 귀여운 것들을 곳곳에서 보았어요. 문 앞에 있는 원기둥 형태의 저건 뭐예요? 

정현 아, 저건 땅을 뚫고 남은 콘크리트인데, 형태가 아름다워서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버려져 있던 걸 주워 왔어요(웃음). 오늘 논픽션홈으로 대화를 제안해 주셔서 기대하고 있어요. 논픽션홈의 가구 활동과 전시 기획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하셨죠? 

 

네. 그 ‘가구 활동’이라는 단어가 흥미로웠거든요. 2005년부터 지금까지 플랏엠이란 이름으로 공간 작업을 이어오고 있고, 2016년부터 논픽션홈이라는 가구 활동을 시작하셨죠. 

정현 맞아요. 그 활동의 중심은 가구인데, 오직 가구만이 아니라 가구 디자인, 가구 설치, 전시 기획, 전시 설치 등등이 포함된다고 소개하고 있어요. 에디터님이 며칠 전에 미리 질문지를 보내 주셨잖아요. 읽으면서 ‘이 문장 되게 논픽션홈 같다.’고 생각한 부분이 있어요. “논픽션홈은 확신을 가지고 출발한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실험과 도전에 뿌리를 둔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읽자마자 ‘이게 논픽션홈이다!’ 싶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확신을 가졌다기보다는 시작하는 것에 의의가 있었거든요. 뭐든 시작보다 그다음이 어렵잖아요. 저희는 계속 그다음을 정리하고 도전하며 나아가고 있어요. 그래서 확신보다 실험, 도전에 뿌리를 두었다는 문장이 좋았어요. 

규엽 사람들이 논픽션홈에게 궁금해하는 게 뭔지, 실은 정확히 모르겠어요. 저희 나름대로 논픽션홈을 설명해도 “그래서 뭐 하는 건데? 그래서 그게 뭔데?” 하고 답을 다시 요구해요. 논픽션홈이 지금 진행 중인 전시나 가구 프로젝트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저희 활동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건 저희도 어려워요. 편의를 위해 확실하게 정의를 내려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어요. 한때는 “가구 설치를 통해 공간의 변화를 만들고 그로 인해 변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기록한다.”고 소개하곤 했는데요. 물론 이것도 저희가 추구하는 바이지만 사실 가구를 이루는 내용이나 형태는 바뀔 수 있어서 한 문장으로만 규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시작했을 때랑 달라지는 부분도 있어서 규정하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그래서 오히려 에디터님 표현이 적확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정의 내릴 수 없다는 것, 계속 변하고 있다는 것,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는 건 아직 과정 중에 있다는 의미겠지요? 

규엽 영원히 과정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지금 우리가 뭔가를 하고 싶어 한다.’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거여서 그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과정 중에 있을 테고, 순간순간 현재와 미래를 규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애초에 ‘이런 걸 하고 싶다!’고 마음먹고서 시작한 게 아니었으니까요. 

규엽 맞아요. 좀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었어요. 

정현 확실한 건 지금 저희가 처해 있는 환경을 좀더 주체적으로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는 거예요. 뭘 할지는 몰랐지만 한 가지 확실한 의지는 있었네요. ‘가능성이 많은 환경으로 만들고 싶다.’ 

규엽 지금은 공간 작업이 비교적 자유로워졌지만, 이전에는 공간에 대한 인식 면에서 일정한 틀이 존재했어요. 예를 들어, 카페라고 하면 꼭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야 했거든요. 저희는 그런 규칙을 좀 답답해하는 편이어서 “그냥 스툴만 놓으면 어때?” 하고 제안하곤 했죠. 지금 카페의 공간 디자인을 상상해 보면 조금 이상한 이야기죠? 근데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어요. 좌석이 있어야 매출이 오른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고, 보통의 카페와 다른 무언가를 시도하고 싶지 않아 했죠. 디자인된 가구나 특별한 형태의 의자 역시 꺼렸어요. 허용되지 않는 범위였죠. 

 

그런데 두 분은 그걸 하셨고요. 

규엽 허용된 게 너무 없다 보니까 일종의 패턴이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고정된 패턴대로 작업하다 보면 활동이 읽히거든요. 미래에 어떤 걸 만들어 낼지, 어떤 식으로 활동할지, 어떤 디자인이 나올지, 앞으로 어떤 공간을 만들지…. 미래까지 읽히는 건 너무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정현 사회적으로 자유롭지 않던 부분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증명해 보고 싶었어요. 그게 된다면 우리에게 더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 같았거든요. 

 

이런 이야기가 술 마시다가 나온 거라고 들었어요. 

규엽 맞아요(웃음). 이건 일이 아니니까, 자유롭게 이런 거 저런 거 한번 해보자, 하면서 꺼낸 이야기가 지금의 논픽션홈이 된 거죠. 그때는 “가구 활동을 하자!” 하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꼭 가구로만 제한하진 않아요. 

 

방금 일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논픽션홈 활동을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규엽 전혀 그렇게 안 느껴져요. 음…. 뭐랄까, 그저 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친구 만나러 나가는 거랑 비슷한 기분이죠.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내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생각하고. 어떨 땐 아예 그런 생각이 없을 때도 있고요. 제가 평소에 하고 싶던 방식들, 궁금했던 형태들을 보여주는 거예요. 근데 이걸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고요, 평소에 하던 생각, 책 보며 궁금했던 것들을 실험해 보고 싶어요. 그 실험의 결과를 현장에 풀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도 싶고요.

저는 사실 논픽션홈이 만드는 걸 가구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어요. 

정현 어떤 의미에서요? 

 

음, 가구는 가구인데요. 이케아에서 고르는 가구랑은 달라요. 비정형 형태에 다리가 세 개인 테이블이나 스테인리스로 제작되어 무거운 행거, 안정적이지 않고 아슬아슬해 보이는 선반…. 그렇다고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난해한 예술 작품은 또 아니고요. 

정현 어려운 질문이네요. 조금만 생각해 볼게요. 음… 어떤 면에선 기성품 가구랑 같아요. 특히 용도나 목적에선 부합하는 면이 분명히 있어요. 의자를 예로 들어볼게요. 먼저 밝혀두자면, 아트와 기성품의 경계를 일부러 그으려는 건 아닌데요. 저희 가구가 아트 퍼니처처럼 ‘어떻게 앉아야 하지?’ 하는 의자는 아니에요. 사용자가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의자라는 면에서는 기성품 의자와 같죠. 그렇지만 어떤 면에선 기성품 가구와 확실히 달라요. 그 부분은 ‘장소성’으로 이야기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논픽션홈은 가구를 만들 때 그 가구로 인해 생겨나는 장소성을 항상 이야기해요. 생각도 많이 하고요. 저희 작업 중에 ‘나리 의자’라는 제품이 있는데요. 디자인 요소가 강한 등받이 의자지만, 스탠더드 의자로 쓰일 정도로 보편적인 쓸모가 있어요. 그 중심을 맞추어서 만든 작업이거든요. 여기서 상상한 장소성은, 이 의자가 군집을 이룬다면 학교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논픽션홈 가구들이 양산을 위해 디자인한 가구는 확실히 아니에요. 대량생산을 위한 양산은 판매라는 조건 하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는 확실히 판매보다 디자인 실험에 중점을 두었죠. 하지만 언젠가 양산되면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드네요. 

규엽 저는 같다고 하면 같다고 생각해요. 특히 쓰임이나 기능에 관해서는 다르지 않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도구로서의 가구는 잘 쓰이는 게 좋은 가구인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선 확실히 같은데 논픽션홈은 좀더 나아가 그다음의 가능성을 생각해요. 의자와 책상을 떠올렸을 때 고정화된 형태와 이미지가 있잖아요. 근데 의자와 책상에 다른 형태의 가능성은 없을까요? 그게 논픽션홈의 생각인 거죠. 그 가능성을 탐구하다 보면 도구로서의 기능에 좀 불편한 지점도 생겨요. 그래서 쓰임은 같아도 일반적인 가구에 비해 불편할 수 있어요. 우리는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생기는 불편함을 인지하고, 그 불편함을 보완하면서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어요. 

 

기존 가구들의 쓰임, 그리고 형태에 관한 가능성을 한 번 더 탐구하고 싶다는 거죠? 

규엽 맞아요. 그 가구로 생겨나는 장소성. 이 가구가 자아낼 분위기를 같이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그걸 왜 만드느냐고 묻는다면… 아름다운 물건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잖아요.

논픽션홈에게 아름답다는 건 어떤 의미예요? 

규엽 보통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방식의 가구를 만들었을 때 문득문득 또 다른 감정을 느끼는 것, 그럴 수 있도록 하는 거요.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쓰다가 불쑥 새로운 가능성이 떠오르는 거죠. 

 

앞서 가능성을 탐구하다 보면 기능에 불편한 지점이 생긴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저는 반대로 논픽션홈 가구가 불편함을 덜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분명히 작품으로의 가구라 생각하는데 ‘저걸 어떻게 쓰지?’ 싶던 예술로서의 가구에 비해 훨씬 실용성이 있는 것 같아서요. 

정현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옆에 있는 테이블을 가리킨다.) 이 로프 테이블은 다리가 세 개여서 상판의 어느 지점을 누르면 균형이 무너져 넘어질 수 있어요. 이 테이블은 “익숙한 공간을 환기할 때 가장 먼저 책상을 옮깁니다.”라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누구든 이동할 수 있게 하려고 가벼운 목재를 사용했죠. 일반 테이블보다 좀 낮아서 딱 봤을 때 생소한 이미지거든요. 근데 한국인 체형엔 의외로 잘 맞아요. 높이가 낮아지니까 활용도가 많아지더라고요. 책상으로도 쓸 수 있고, 식탁으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 소파 앞에 두는 협탁 기능도 하고요. 하지만, 잘못 건드리면 쓰러진다는 불편함이 있죠. 규엽 이런 불편함을 찾은 것 또한 발견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해소하든 부각하든 그때그때 목적에 따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논픽션홈의 생각이에요. 이 얇은 금속 책장도 그래요. 무거운 책들을 놓으면 선반이 이렇게 휘어지거든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책장을 떠올리면 이건 불편한 지점이겠죠. 제가 말한 불편함은 바로 이런 거예요. 일종의 규칙을 벗어나는 것. 그런데 이걸 이용해서 또 다른 이미지나 아름다움을 만들 수도 있는 거예요. 각자 다른 무게의 책들이 올라가면서 서로 다른 형태의 곡선을 만들어 내거든요. 그런데도 부러질 염려는 없어요. 금속이고, 용접해서 완성하기 때문이죠. 어떠세요? 이 책장을 보면 좀 다른 생각이 들지 않나요? 

 

책 무게에 따라 다르게 휜다는 점에서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른 형태를 만들 것 같아요. 그 점이 매력적이에요. 사실 논픽션홈이 말하는 불편함은 절대적인 불편함은 아닌 거네요. 

규엽 불편함, 부족함일 수도 있고, 눈으로 봤을 때 느껴지는 아름다움… 같은 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두 가지가 공존하는 걸 ‘불편함’이라 표현한 건데요. 이걸 감내하면서 디자인해 내는 게 제 몫이겠지요. 저 책장 은 사실 휘어지지 않게 만드는 게 결코 어렵지 않아요. 두께가 있고 좀더 단단한 재료를 준비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했을 때 사라지는 이미지가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 ‘사라지는 이미지’가 논픽션홈이 말하는 아름다움인 거군요. 

규엽 우리끼리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아름다움이란 분명히 존재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고요. 그걸 보려면 다른 어떤 건 보지 않아야 해요. 그래야만 볼 수 있어요. 

정현 금속이라는 재료는 강하다, 날카롭다, 부러지지 않는다… 같은 이미지가 있잖아요. 근데 이렇게 얇은 금속을 쓰면 휘는 형태를 만들어서 고정된 이미지를 완화해요. 차갑다는 이미지보다는 좀 유연하고 느슨한 이미지를 볼 수 있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 전에 바라보던 차갑고 단단한 이미지가 아닌, 그 뒤의 것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규엽 튼튼하게만 만들면 이런 이미지를 볼 수 없는 것이고, 튼튼함을 포기한다면 또 다른 가능성이 보이는 거죠. 그걸 논픽션홈이 계속 보여주려고 하는 거고요. 우리가 원하는 건 아름다움과 실용성 사이의 줄타기, 그 중심을 맞추는 일은 아니에요. 어떤 사람은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둘 다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얘기할 거예요. 물론 그 말도 맞아요. 하지만 저희가 이런 실험을 이어가는 건, 줄타기를 잘하기 위함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 부족하더라도 하나의 이미지를 구현해 내기 위해서예요.

판매하지 않음으로써 집중하는 부분도 생길 것 같아요. 

정현 양산을 위해 디자인하다 보면 타협할 여지가 많아져요. 근데 저희는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걸 만들 수 있어요. 앞서 말했듯 뒷모습을 보기 위해 앞모습을 완전히 포기해도 전혀 상관이 없는 거고요. 더 나아가서는 뒤에 가려지는 부분 없이 모든 부분이 햇살을 받을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어요. 논픽션홈의 활동은 그런 순간을 찾아가는 과정 같고요. 그래서 거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 뭐냐고 묻는다면 ‘타협이 들어가 있지 않은 거.’라고 이야기해 볼 수 있겠네요. 어딘가에 가려서 그림자가 진다면 아무리 아름다워도 슬픈 얘기가 생기는 거니까요. 

 

결코 간단하지만은 않은 듯한데… 이 이야기가 정말 술자리에서 나왔다고요? 

정현 안 그래도 질문지 보고 우리끼리 “그때 뭐 마시고 있었지?” 이야기 나눠봤는데요. 뭘 마셨는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더라고요. 사실 뭘 마셨는진 중요하지 않아요. 그 당시엔 뭐든지 마셨거든요(웃음). 동네 미용실과 미술학원이 있던 상가에 작업실을 두었던 시절인데, 그 건물 계단에 쪼르르 앉아 뭔가를 마시면서 이야기한 기억이 나요. 그때는 유독 보이지 않는 틀과 규칙에 저항하고 싶었어요. 깨뜨리고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커져 있던 시기였죠. 이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고, 가본 적도 없으니까 ‘일단 이것만 넘자.’ 이런 생각이 컸어요. 

 

논픽션홈을 시작하기 위해 그 당시 멤버들이 에세이를 한 편씩 썼다고 들었어요. 왜 그 출발이 에세이였어요? 

정현 결국 글을 쓴 건 규엽 님뿐이지만 제안한 건 전데요. 지금이야 책을 많이 읽으려 하지만 그 당시 저는 책은 한 자도 안 읽던 사람이었어요. 음… 좀 투박하긴 하지만 에세이를 써서 브랜딩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언어화가 되어야 그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종의 선언문이랄까요.

그 선언문의 형태가 에세이인 게 흥미로워요. 몇 년도에 시작했고, 무슨 일을 하며… 같은 정보성 글이 아니잖아요.

정현 제가 처음으로 ‘글이 재미있는 거구나.’를 알게 된 게 규엽 님 글이었어요. 그래서 믿고 기다렸는데,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글을 써 온 거예요. “책은 읽지 않아도, 우린 앉아 있다”로 시작하는 글이었죠. 전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규엽 사실 전 논픽션홈이 뭐 하는 건지, 뭘 하자는 건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부터 써야 하니까 쉽지 않았어요. ‘뭐라도 써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썼어요. 2박 3일을 달라고 했죠. 활동이 정의되지 않은 상태에서 에세이를 써야 한다니…. 논픽션홈 정의는 지금도 못 내리고 있는데(웃음). 

 

근데, 꼭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 명확하게 정의한다고 해도 내일은 또 달라질 것 같아서요. 

정현 너무 고마운 이야기네요. 면죄부를 받는 것 같아요(웃음). 우리가 하는 일을 하이킹에 비유한다면, 지금은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저 언덕만 넘으면 보이려나?’ 하는 시점인 것 같아요. 요즘은 약간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데요. ‘이걸 깨고 한 발 더 나아가고 싶은데, 그게 뭘까, 어떤 지점이 답답한 걸까, 저 언덕만 넘으면 보일 것 같은데, 넘었는데 뭐가 안 보이면 어떡하지, 또 언덕이 나오면 어떡하지?’ 하면서 계속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요. 처음보다는 덜 막막하지만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하나 계속 찾는 중인 거죠. 그러는 중에도 ‘거의 다 온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하는 게 좋아서 요새 탐구욕이 커지고 있어요. 

 

벽을 마주하면 보통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요? 벽 너머를 상상하며 어쩐지… 행복해하시는 것 같아요. 

정현 듣고 보니 전 그런 사람인 거 같아요(웃음).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와 ‘저 언덕을 넘으면 뭔가 있지 않을까.’ 사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겨나는 거죠. 그래서 앞으로가 기대되는 마음이에요. 

규엽 예전에는 논픽션홈 활동에 동기부여가 없어서 오직 자유의지로만 움직였어요. 설치개방을 해도 한두 명 올 때도 많았고, 열댓 명 오면 많이 온 거여서 보여주기가 목적이 될 수도 없었어요. 우리가 홍보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요. 우리끼리 만들고, 우리끼리 개방하고, 우리끼리 술 마시고 끝나다 보니까 ‘이렇게 하면 뭐가 되는 거지, 뭐가 달라지긴 하나, 이거 왜 해야 하지….’ 그 생각의 반복이었어요. 근데 지금은 ‘이렇게’ 됐단 말이죠(웃음). 인터뷰도 하고, 저희 활동에 관해 묻는 사람도 생기고요.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논픽션홈은 실험과 도전으로 가구를 만들죠. 그게 어떤 너머를 보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비정형의 형태인 게 눈에 띄어요. 그 모티프는 어디에서 얻나요? 

규엽 보통은 필요에 따라 만들게 돼요. 저쪽에 있는 의자는 지게 모양에서 디자인을 따왔어요. 모두 동일한 굵기의 틀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어디는 가늘고 어디는 굵은데요. 지게 형태를 따서 좀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디자인한 거죠.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어릴 땐 할머니 댁에만 가도 지게를 쉽게 볼 수 있었거든요. 보통 이런 디자인 소스는 개인사에서 나오는데…. 사실 이런 게 중요한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어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세요? 

규엽 네. ‘중요한가?’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만큼이요. 제 디자인 맥락을 키워드로 정리하자면 ‘Easy Material, Basic Structure’거든요. ‘가까이 있는 일상적인 재료 혹은 산업 재료로 기본적인 구조를 이용해 가구를 디자인한다.’ 기본적인 것들로만 만들면 특별할 게 없는데, 그 가운데서 특별함을 찾아가는 방식이 제가 추구하는 디자인이에요.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나오는 할머니 집 지게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특히 논픽션홈 가구를 설명할 때 “이런 형태에서 모티프를 따왔다.”는 설명은 굳이 하지 않는데요. 그렇게 설명하면 그런 형태에서 모티프를 따온 의자가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건 정말로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설명하기 좋게 그 문구를 뽑는 것뿐이지요. 그래서 이제는 그걸 설명해 달라고 해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요. 사실 형태는 재료 특성에서 찾거나, 구조가 형태까지 도달하거나, 혹은 사용자의 동선, 그냥 감각에 기반해서 찾거든요.

이 실험의 결과가 결코 개인의 재미만을 위한 게 아니라는 의미 같기도 해요. 논픽션홈의 가구는 판매를 위해서 제작되진 않지만 좁은 범위에서 판매도 진행되곤 해요. 모든 가구 설명이 이 문장으로 시작하더군요. “공간, 가구, 사람. 이 사이의 다양한 가능성을 다룬다.” 이 셋의 상관관계도 들어보고 싶네요. 

규엽 공간은 있어요.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있는 존재예요. 공간이 있기에 사람이 있을 수 있죠. 그러니까 관계가 맺어질 수밖에 없고요. 사람이 공간에서 주체적일 수 있게 해주는 도구가 가구라고 생각해요. 이 공간에 사람이 머물 수 있게끔, 혹은 또 다른 행위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거죠. 사실 꼭 가구가 아니어도 돼요. 벽이나 담도 다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인터뷰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가구 말고 또 가구라고 볼 수 있는 게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 창턱과 계단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 모든 걸 포함해서 사람이 공간에 머물 때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모든 게 가구라고 생각해요. 

정현 공간이 장소가 되려면 매개가 있어야 해요. 가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 거고요. 장소가 된다는 건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사람의 의지로 사용되는 어떤 일들이 발생하는 건데요. 그 매개가 될 수 있는 게 무얼까를 많이 생각해요. 

규엽 그러다 보면 꼭 가구가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설치개방도 꼭 일반적인 의미의 가구로만 하지 않게 되는 거죠. 

 

설치개방은 가구를 놓고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가구가 놓인 공간 자체를 고민하는 일 같아요. 

규엽 말씀하신 것처럼 가구를 보여주기 위한 쇼룸이 아니라 가구 주변에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도록 장소성을 만들어보는 거예요. 제가 이 가구를 어디다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여기 앉아 볼 수도 있고, 기대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것이 공간을 장소로 바꾸게 해주는 일일 것이고, 그렇게 장소의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거겠지요. 우리가 뭔가를 발생시키기 위해 놓는 거니까 설치란 단어가 적합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전시라는 단어보다 설치개방이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죠. 

 

논픽션홈의 목적이 “가구 설치만으로도 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 덧붙여, ‘일상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는 것’이라고도 이야기하셨는데요. 

정현 일상의 아름다움은 <리빙, 서울 8평> 설치개방 때 이야기한 키워드로 기억해요. 진짜 살고 있는 집에서, 주거를 배경으로 진행한 설치개방이었어요. 플랏엠으로 공간 작업할 때는 주거를 다루지 않아서 더 재미있는 작업이었죠. 사실 8평이라는 게 정말 작은 면적이잖아요. 그 안에서 일상의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게 뭘까 고민해 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집에서 더 아름다운 걸 많이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고, 경험해 보던 자리였죠. 건축가 알바로 시자Alvaro Joaquim de Melo Siza Vieira가 《The Function Of Beauty》라는 책을 썼는데요. 보통 디자이너들은 ‘Beauty Of Function’에 더 익숙하거든요. 그 책 제목을 보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아름다움이 무엇이지? 어떤 걸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 걸까? 그럴 때 나타나는 기능은 뭘까?’ 

 

책에서는 무엇이라 하던가요? 

정현 원서여서 아직 끝까지 읽지 못했어요(웃음). 그래서 스스로 더 많이 고민하게 되는데, ‘아름다움의 기능’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뻔한 이미지가 있을 거예요. 어떤 풍경이나 주거 환경 같은 걸 떠올리겠죠. 저는 그 너머로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뭘까 생각해요. 

규엽 일상의 아름다움을 위해 사람들은 가구도 사고 그림도 걸면서 다양한 오브제를 들이고 있어요. 저 역시 좋아하는 물건이 주변에 있는 게 일상의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데요. 그걸 체험하고 구현하기 위해 내 공간을 얻는다는 게 서울에서는 확실히 힘들잖아요. 그래서 무언가를 들여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일처럼 보이는 것 같아요. 근데 진짜 중요한 건 기본적인 부분이에요. 공간, 특히 집은 물리적으로 나를 보호해 주는 곳이에요. 제가 머물 곳이기 때문에 시설의 결함이 없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를테면 비가 샌다거나, 수도꼭지가 잘 안 잠긴다거나, 냄새가 난다거나… 이런 불편함이 없어야만 일상의 아름다움이 시작될 수 있을 테니까요. 기본이 충족된 다음에야 취향에 맞는 가구를 고르고, 내가 원하는 활동을 할 수 있겠죠. 저는 어떤 공간 안에서 ‘내가 어떤 제스처를 취할 수 있느냐.’의 경우의 수가 많을수록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가능성이 많은 공간인 거죠. 그 최소한의 크기가 바로 팔다리를 뻗고 누웠을 때 아무것도 닿는 것이 없는 게 아닐까요? 그래야만 무언가를 놓거나 설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정현 규엽 님 말에 동의해요. 사람들이 좀더 주체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만들려면 시설적인 면에서는 부족함이 없어야 해요. 만약 주방이 불편하다면, 요리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잖아요. 기본적인 것들이 채워지고, 그 나머지 부분에 가능성을 얼마나 열어주느냐. 근데 아무것도 없다고 해서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진 않더라고요. 그런 측면에서 공간이나 공간 디자인, 가구 디자인, 그 외 다른 요소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죠.

논픽션홈은 그 외 다른 요소도 계속 탐색해 나가는 것이고, 그래서 더 복잡하고 어렵고 가능성도 많은 일 같아요. 지금 새롭게 관심을 두고 있는 거 있어요? 

정현 음, “여기가 공간이네.” 하고 말하려면 벽이나 바닥 같은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잖아요. 

 

어? 말씀 중에 죄송해요. 궁금한 게 생겼는데, 그럼 바깥은 공간이 될 수 없나요? 

정현 공간이 될 수 있어요. 근데 바깥에 있더라도 담이나 울타리 같은 게 존재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이야기하는 공간은 일상생활에 기반을 두고 언급하는 건데, 이럴 때 공간이라고 느끼게 해주는 기본 요소가 있다고 봐요. 쉽게는 벽, 바닥, 창문….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요소 중 하나가 문이랑 계단이거든요. 건축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도 이 요소들에 얼마나 더 가능성이 있을까, 어디까지를 벽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문은 보통 벽에 붙어 있잖아요. 저는 그 문을 열어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무엇이 보이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문이 경계를 나눈다는 것에 관심을 두는 건가요? 

정현 꼭 안과 밖만은 아니지만 문이 경계가 된다는 거엔 관심이 많아요. 문은 순서의 기준도 되어주잖아요. ‘문 너머에 있다.’ 혹은 ‘문을 넘지 않아도 여기에 있다.’ 문 너머를 생각하다 보면 생활이 재미있어져요. ‘이건 문 너머로 보내자.’, ‘문 너머로 가면 뭔가 좀더 해볼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재미있죠. ‘내가 문 너머로 가는 대신 이건 문 안으로 넣자.’ 그런 위치의 전환도 생각해 보고요. 문은 열기 위해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에 훨씬 관심이 많고요. 닫아서 가린다는 게 아니라 열면 뭔가가 있다는 거, 그게 굉장히 좋아요. 

규엽 저는 공간이 어떤 요소들로,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항상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고 본능적으로 ‘저쯤에 뭔가 있겠지.’라고 예상하는 부분을 어떻게 마주하는지에 따라 공간이 달라진다고 보거든요. 당연히 있을 법한 것을 다른 데 두거나, 없어야 할 것을 들였을 때 공간은 새로운 장소가 될 수 있어요. 결국 가구의 형태나 종류보다도 공간 안에서 가구나 시설을 어떻게 배열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 배열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관심이 많고, 그게 우리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도 궁금해하죠. 

 

그 배열이 전시나 설치개방의 기획과 맞닿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같은 작품을 보여준다고 해도 기획이 어떻냐에 따라 다르게 가 닿는 것 같아요. 왜 우리는 전시를 할 때 기획을 담아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걸까요? 

정현 정말… 왜 그러는 걸까요? 

 

직접 기획하고 계시잖아요(웃음). 어떤 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정현 사실, 인터뷰 질문지를 보면서 여름에 대화 나누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생각들이 그쯤이면 정리될 것 같아서요. 거듭해서 설치개방과 전시를 하다 보니 그때그때 탐구하는 부분, 그때그때 생기는 욕망, 갈망하는 정서 같은 걸 고려하며 기획하게 되는데요. 계속해 나가다 보니 ‘좀더 잘하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잘하는 걸까.’라는 부분에 관해 계속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 생각을 좀더 해보고 나서 대답하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했죠. 작년 여름에 조명 아티스트 막스 밀라Max Milà Serra와 규엽 님 가구로 <Night Talk>라는 이름의 설치개방을 진행했는데, 이 프로그램은 우리가 기획하고 우리 작업을 보여주는 기회이기도 했지만, 외국 작가와 함께한 시도이기도 했어요. 이 설치개방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듣고 경험도 나눌 기회가 많았는데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더 깊게 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아요. 

 

기획을 더 잘하고 싶다는 거지요? 

정현 맞아요. 그래서 기획을 왜 하는지 조금 더 정리해 보고 싶어요.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이 일차원적이라면, 지금부터는 한 발 더 나아가서 ‘다른 게 있을 텐데. 그게 뭘까.’라는 생각을 하는 중이에요. 오늘 대화가 플랏엠으로 하는 공간 이야기였다면 좀더 편했을 것 같은데 논픽션홈은 모든 게 과정 중이어서 확신을 가지고 대답하지 못하는 데에 은근한 아쉬움이 있어요. 게다가 전시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성장 과정처럼 느껴져서 더 잘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고요. 

 

그래서 더 의미 있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이다음 이야기는 다음에 또 이야기해 볼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껏 활동해 오면서 앞으로 논픽션홈으로 바라는 게 생기기도 했나요? 

정현 솔직한 리뷰요. 정말 솔직한 리뷰. 논픽션홈 활동을 하면서 좋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이 활동으로 국경 없이 다른 아티스트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우리가 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 관심을 갖듯, 그들도 저희와 비슷한 시점으로 우리 작업을 보고 있더라고요. 저희가 궁금해하던 아티스트가 도리어 “우리도 너희 작업 궁금했어!” 하고 이야기해 오는데, 그런 반응이 있다는 게 좋아요. 주체적으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는데 더 많은 의견을 수렴하는 데는 환경의 제약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국경을 넘어 좀더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훨씬 재미있게, 성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획하지 않을까 싶어요.

 

국경을 넘기는 어렵더라도 의견 교환의 장이 설치개방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현 맞아요. ‘우리가 이거 만들었어. 보러 와.’가 아니라 소통할 수 있을 만한 동선을 고려하고 있으니까요. 설치개방은 한 번 하고 나면 그다음에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성산동에 논픽션홈 아카이브라는 공간을 만들고 첫 번째 설치개방을 류재혁 작가와 <회화 관람을 위한 가구 설치>라는 타이틀로 함께했거든요. 논픽션홈 아카이브는 반지하에 위치한 공간으로, 주거 형식을 그대로 지닌 다세대 반지하 조건이에요. 그 가장 안쪽에 회화 작품을 배치했고, 사람들이 회화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이동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도록 했어요. 좁은 골목을 지나 이 주택 앞에 서서 반지하 문을 열고 맨 끝 방까지 가는 모든 길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작품 주변에 둔 논픽션홈의 가구들 또한 또 다른 이야기를 지니게 될 거라 생각했고요. 끝에 있는 방까지 가는 길에서 사람들이 생각을 교환하고 나누는 장소로 만든 거죠. 코로나19로 조심스러운 시기였지만 제도가 허락하는 안에서 많은 사람이 모인 거 같아요. 앞으로 그런 소통과 의견 교환이 논픽션홈 아카이브에서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어요. 

©Sally Choi
©Hasisi Park
©plastic product

논픽션홈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만족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좋았던 걸 이야기할 땐 당연하고, 어딘가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할 때도 만족스러워 보여서요. 

규엽 만족스러워요. 순간적이지만요.

 

어, 왜요? 

규엽 모든 건 설치개방이 끝난 뒤에야 보이거든요. 만족감을 느낀 것도 잠시, 그다음을 보게 되기 때문에 만족스럽다고 느끼는 건 순간적이지요. 설치개방뿐 아니라 가구를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예요.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와, 재밌다!’ 하고 생각하는데, ‘이제 다음엔 뭐 하지?’가 바로 치고 올라오고 다른 생각이 시작되니까 새로운 걸 생각하다 보면 만족스러움은 금세 사라져요. 물론 사라진다고 표현하지만 분명히 어딘가의 아래 숨겨진 채 남아 있겠죠.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매번 다른 걸 찾는 여정처럼 보이기도 해요. 

규엽 어느 정도는 맞아요. 다만, 논픽션홈이 만족을 찾아가기 위해 진행되는 일은 아니에요. 만족하고, 안 하고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거든요. 만족감을 떠나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심사, 새로운 사안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요. 그게 불만족이더라도요. 사실 설치개방을 통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생각이나 고민을 실험한 흔적을 보여주는 거잖아요. 그럼 만족스럽지 않게 완성되더라도… 그 시도와 과정 자체로 저는 만족스럽거든요. 말이 좀 이상한데, 전달이 되려나요(웃음). 

 

네. 완성도랑은 별개로 설치개방에 이르는 자체로 만족스럽다? 

규엽 맞아요. 하고 나면 또 다른 길이 보이니까.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궁금한 걸 다 묻다간 며칠이 지나버릴 것 같아요(웃음). 이다음 이야기는 다음에 또 만나서 나누는 걸로 해요. 마지막으로 전시 이야기를 하면서 마쳐볼게요. 라이프북스에서 바우하우스 100주년을 기념해서 <Invisible> 전시를 기획한 적이 있죠. 그 전시 참 좋았는데, 특히 기획이 그랬어요. 

규엽 저희도 의미 있게 생각하는 전시예요. 저희가 만든 공간인 라이프북스에서 정지돈 작가랑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였죠. 자율적으로 해나가는 일이었기 때문에 의무감 같은 게 있었어요. 우리의 관심사에서 출발해 구성한 전시였죠. 마침 바우하우스 100주년이기도 했고, 워낙 잘 알려져 있기에 처음엔 가볍게 생각했는데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할 이야기가 정말 많더라고요. 바우하우스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으니까 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해 왔는데 모르는 지점이 보이는 거예요. 

그때 규엽 님이 정말 많은 정보를 수집했어요. 전부 다 외국 기사였는데요. 더듬더듬 읽어보니 거장 뒤에 숨은 조력자들 이야기더라고요. 가려진 얼굴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이 여자였어요. 저희가 하고 싶어 하는, 뒷모습을 보는 것에 맞닿아 있는 것 같았죠. 아름다운 것들이 뒤에 숨겨져 있더라고요. 그걸 찾아서 보여주려고 노력한 전시가 <Invisible>이었어요. 지금까지 논픽션홈으로 말해왔던 바로 그거죠. 뒷모습을 보는 일. 

규엽 그 전시를 통해 뒤에서 바우하우스를 만들어 낸 이름들을 한 번 더 호명해 보고자 했어요. 군타 스퇼츨Gunta Stölzl, 아니 알베르스Anni Albers, 릴리 라이히Lilly Reich, 마리안네 브란트Marianne Brandt, 루치아 모홀리Lucia Moholy, T. 룩스 파이닝거T. Lux Feininger…. 

 

두 분은 쭉 뒷모습에 관심을 가져왔군요. 어째서인지 좀 뭉클하네요. 

정현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보이는 아름다움 너머의 가려진 아름다움을 보려고 할 거예요. 그 과정에서 또 해보고 싶은 실험들이 생기겠죠.

규엽 저희는 그것을 계속할 거고요.

우리는 다 같이 지하에 위치한 논픽션홈 아카이브로 향했다. 그곳엔 논픽션홈 가구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막스 밀라의 조명도 아직 자취를 감추지 않은 채였다. 나는 가구이나 가구처럼 보이지 않는, 가구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하게 되는 그것들 사이를 부유해 보았다. 부유의 태도는 다양했다. 앉아보거나, 만져보거나, 가만히 서서 바라보거나, 가구를 보며 웃어보거나. 마침내 이상하게 기울어진 의자에 앉았을 때 정현 씨가 말한다. “엄청 잘 어울리는데요?” 아름다운 것들과 함께 배치되는 건 아무래도 기분 좋은 일이다.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