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준이치다 너는 이랑이고 4

이랑은 매일 어디론가 간다

이랑은 매일 어디론가 간다

나는 시계가 없지만 꽤 정확한 바이오리듬을 유지하고 있다. 해가 창문으로 스며들기 시작할 즈음 일어나 첫 번째 밥을 먹는다. 밥을 먹고 자리를 옮겨 자고 있으면 햇볕이 제일 강하게 들어오는 시간에 이랑이 일어난다. 침대에서 빠져나온 이랑은 제일 먼저 창문을 활짝 연다. 햇볕을 쬐는 건 나의 가장 중요한 하루 일과이기에 드르륵 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자다가도 몸을 일으켜 그쪽으로 간다. 관절 문제로 몇 년 전부터 점프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랑이 창문 밑에 놓아준 벤치를 밟고 창틀에 올라선다. 이랑이 나를 들어 올려 창틀에 앉혀줄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랑은 ‘끙’ 소리를 내는데, 뭐가 그렇게 무거운지. 우습기 짝이 없다.

 

햇볕을 쬐며 창밖을 보는 건 16년 동안 매일 지속해 온 일과인데도 전혀 지겹지가 않다. 그동안 이랑과 나는 집을 아홉 번 바꿨고, 덩달아 창밖 풍경도 아홉 번 바뀌었다. 지난번 살던 집 창문 바로 밑에는 담벼락이 있었고 거길 지나다니는 고양이들이 유난히 많아 이래저래 신경이 많이 쓰였다. 저녁때마다 찾아오던 한 녀석은 처음부터 내 신경을 건드릴 속셈인지 담벼락 위에 앉아 집 안을 향해 시끄럽게 울어댔다. 그 소리를 듣고 창문 가까이 갔더니 그 녀석이 갑자기 점프를 해서 방충망을 찢어버리는 바람에 나도 이랑도 깜짝 놀라 한동안 그 창문을 닫고 지냈다. 그 집에서 유일하게 목련 나무를 볼 수 있는 좋아하는 창문이었는데 창문을 여닫을 때마다 녀석이 있나 없나 신경을 쓰다 보니 점점 애증의 창문이 되어버렸다. 지금 사는 집 창문 밑에는 담벼락도 없고 꽤 조용한 편이다. 창문을 열면 다른 집 지붕들이 보이지만 창문 아래로 한참 떨어져 있어서 거길 지나다니는 고양이들을 마음 놓고 지켜볼 수 있다. 맞은편 집 옥상 빨랫줄에 간간이 쉬러 오는 새들도 있고 아무튼 지금 집 창문은 이래저래 마음에 든다.

 

창문을 보고 있으면 이랑이 옷을 껴입고 인사를 하러 온다. 곧 바깥에 나간다는 뜻이다. 이랑은 매일 어디론가 간다. 도무지 어디에 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제일 싫어하는 병원에 갈 때나 바깥에 나가는데, 그렇다면 이랑은 매일 병원에 가는 걸까. 어디가 그렇게 아픈 걸까. 설마 큰 병은 아니겠지. 나는 이랑이 집에 없는 낮 시간에 대부분 잠을 자는데, 이랑은 바깥에 나가면 어디에서 잠을 잘까. 혹시 낮에 잠을 자러 가는 다른 집이 있는 걸까. 낮에는 그 집에서 자고 밤에는 여기로 돌아와 자는 걸까. 혹시 그 집에 다른 고양이가 있는 건 아닐까. 내가 이랑과 함께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이랑에게 집이 두 개가 있었고, 그 집에 처음부터 다른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면 그 고양이는 지금 나처럼 열여섯 살이 됐을까. 그 고양이는 매일 밤 혼자 지내고 있는 걸까. 하지만 바깥에 나갔다 돌아온 이랑에게 다른 고양이 냄새는 전혀 나지 않는다. 바람 냄새나 담배 냄새, 음식 냄새만 묻어 있을 뿐이다. 아무래도 이랑에게 다른 집과 다른 고양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이랑은 왜 바깥에 나가서 바람을 맞고 담배를 피우고 밥을 먹고 집에 돌아오는 걸까. 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인데 말이다. (물론 담배는 베란다에서 피워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이랑은 항상 가방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간다. 나갈 때는 가방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들이 집에 돌아온 이랑의 가방 속에서 하나둘 튀어나오면 신기하다. 주로 이랑이 먹는 것들이다. 이랑은 그것들을 가방에서 꺼내 냉장고에 넣거나 부엌 찬장에 집어넣는다. 어쩌면 이랑은 자기가 먹을 걸 구하러 매일 바깥에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랑이 좀 불쌍하다. 나는 따로 먹을 걸 구하지 않아도 집에 먹을 게 많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내가 창문에서 지켜보는 바깥 고양이들도 항상 먹을 걸 찾아다니느라 바빴다. 바깥에서는 다들 그렇게 바쁘게 사는 모양이다. 그때 그 목련 나무가 보이는 창문으로 찾아오던 녀석은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은 내 모습을 보고 화가 났던 걸까. 그때 나는 방충망을 찢은 그 녀석에게 너무 놀라 외면했었지만, 그때 내가 좀 다르게 반응했다면 어땠을까. 녀석에게 내 밥을 나눠주거나 간식을 건네줬으면 좋았던 걸까. 지금이라면 그렇게 할 텐데 이 집 창문 아래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내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높은 담벼락이 없다.

 

어쨌든 매일 바깥에 나가는 이랑의 미스터리는 풀렸다. 오늘도 하루 종일 먹을 걸 구하느라 힘들었는지 집에 돌아온 이랑은 영 기운이 없다. 아까부터 거실에 누워 천장만 올려다보며 조용히 숨만 쉬고 있다. 나름대로 기운을 북돋워 주려고 누워 있는 이랑의 주변을 왔다 갔다 하다 몸통을 몇 번 세게 밟아주었다. 가슴께를 꾹 밟아줬더니 그제야 이랑이 ‘억’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난 이랑은 겉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부엌에 가서 가방을 열고 먹을 것들을 꺼내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 내가 밥 먹을 시간도 됐기에 부엌에 따라가 말을 걸었더니 이랑은 내 그릇에 먹을 걸 담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내가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랑은 곧 자기가 먹을 걸 만들기 시작했다. 불을 피우고 칼로 뭘 자르고 냉장고를 열었다 닫았다 하며 참 번거로워 보인다. 그래도 저녁에만 들을 수 있는 달그락대는 소리가 나쁘지 않다. 나와 이랑이 함께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문밖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건 내가 먹을 게 도착하는 소리다. 내가 먹을 것들은 항상 박스에 담겨 문 앞으로 찾아온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왜 이랑은 매일 밖에 나가 자기가 먹을 걸 구하러 돌아다니는지 모르겠다.

이랑
1986년 서울 출생 아티스트. 자칭 준이치 엄마.
[욘욘슨], [신의 놀이] 등의 앨범을 냈고, 《오리 이름 정하기》,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등의 책을 썼다.

 

Hirokawa Takeshi

1981년 센다이 출신 판화가.

글 이랑

그림 Hirokawa Takes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