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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을 재활용하다
공간을
재활용하다
Zero Place Design Lab, Z-LAB
지랩의 세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은 미로 같았다. 골목길 초입에 발을 들이고 몇 발자국 안 가서, 주춤하고 있었는데, 옆에 누군가 나를 힐끔 쳐다보며 지나갔다. 저 사람인가. 말도 없이 그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여관과 구멍가게, 담배를 태우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져갔다. 이것만으로도 그저 좋았다. 5분 정도 걸었을까. 오래된 향취가 고대로 묻어있는, 크래프트 베이스가 나왔다. 역시 맞았네. 앞서간 그가 뒤를 쏙 돌며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몇 마디를 나눈 후, 그들은 다짜고짜 어디론가 나를 데려갔다.
INTERVIEW 이상묵, 박중현, 노경록
안녕하세요, 어디로 데려가시는 거죠?
중현 뒤쪽 폐가요. 한번 보시면 재미있을 거예요. 그런데 조심하셔야 해요. 다칠 수 있거든요.
경록 여기 이렇게 외부인 들이는 건 처음이네요.
이곳인가요? 들어갈 수 있는 데예요?
경록 들어오세요. 발만 조심하시면 돼요. 어어! 거긴 밟으시면 안 돼요. 땅 꺼져요!
그렇게 들어간 곳은 폐가도 그냥 폐가가 아니었다. 쓰러지다 못해, 집 짓는 자재들을 단지 모아두었을 뿐이었다. 그나마 남은 거라곤 골격의 흔적. 아무도 살지 않음이 너무나도 분명한데, 다닥다닥 붙은 방의 모습에서 왜인지 애환의 냄새가 났다. 쪽방촌이었다고 했다. 방들에 각각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오늘 찾은 크래프트 베이스도 고쳐지기 전에, 마치 이랬다고 했다. 그곳의 혼을 느끼고 나서야 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이런 공간을 만지는 사람들은 왠지 어려울 것 같고, 심오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떨리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끝은 편안했다.
우선 가장 기본적인 질문부터 드릴게요. 지랩은 어떻게 만들어진 회사인가요?
상묵 제가 해요?
중현 예, 하시죠.
경록 하세요, 하세요.
상묵 우선 지랩은 ‘제로플레이스 디자인 랩’의 줄임 말입니다. 첫 프로젝트가 ‘제로플레이스’거든요. ‘제로플레이스’의 정신을 가지고 우리가 A부터 Z, 0부터 무한대까지의 프로젝트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지었어요. 2011년도 3월에 셋이 처음 시작한 거고요. 그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화림’이라고 2007년에 저희 부모님의 펜션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당시 건축을 가장 잘했던 형님과(경록 실장 가리키며) 가장 딴짓을 많이 한 형님(중현 실장 가리키며)에게 부탁드린 거죠.
아, 두 분이 형님이세요?
중현 저희는 두 동기와 한 후배의 만남인 거죠.
상묵 밴드도 같이 했었고요. 그렇지만 전혀 안 친했고요(웃음).
지금도 안 친하신 건 아니죠? 언제 친해지셨어요?
상묵 제가 군대 갔다 와서, 약간 전략적으로 친해지려 접근했죠. 설계를 잘하는 형이니까요. 박 실장님은 가장 딴짓을 많이 한 형이긴 한데(웃음)…. 형이 그래픽이나 웹 디자인분야를 잘 다뤘어요. 애플리케이션 같은 걸 가장 먼저 접하는 얼리어답터였죠. 그래서 건축을 열심히 하는 사람과 앞서나가는 사람, 저는 그냥 그 안에서 있었던 사람(웃음). 저희 부모님 프로젝트를 할 때 알게 모르게 많이 도움을 받았어요. 제가 빚을 많이 졌었죠.
지랩은 자연스럽게 생긴 거네요.
상묵 창업은 제로플레이스 작업 이후인 2013년에 했어요. 점점 프로젝트가 많아져서 셋이 더 이상 회사에 다니면서 작업할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었죠.
세 분의 역할은 각자 다른 건가요?
상묵 세 명의 역할은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형은 건축가, 저 형은 그래픽과 브랜딩, 저는 열심히 얼굴을 팔고 있습니다. 얼굴마담이죠(웃음).
영업을 잘하실 거 같아요.
상묵 열심히 하죠. 마케팅 담당이에요.
예전부터 세 분이 건물을 재활용한다는 것에 대한 뜻이 통했나 봐요.
중현 건축이랑 도시를 공부한 사람들은 한 대상지를 바라볼 때, 그 주변 지역까지 포함해서 더 넓은 의미를 생각하고, 그 건물이 도시 안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관념이 변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아파트나 넓은 고층빌딩을 짓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점점 건축가 개인의 성향도 바뀌고, 전체적인 사회 흐름도 더 이상 개발을 하기 보다 ‘고전’이나 ‘고전미’ 같은 것들을 지켜내자는 얘기도 많아진 거죠.
새 건물을 짓는 것 보다 쓰러져가는 폐허를 리모델링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요.
경록 둘 다 성격이 달라요. 리모델링의 변수는 인간관계나 설계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신축은 치수 같은 것들이 명확하게 나와서 미리 검토할 수 있는데, 옛날 건물은 기둥 하나 똑바른 것이 없으니까…. 허물다 보면 아예 기둥이 휘어져 있기도 해서 정확한 디자인을 완벽하게 만들어놓고 시작할 수가 없어요. 리모델링 같은 경우는 오히려 현장에서 많이 만들어지죠. 실질적으로 도면은 몇 장 안 돼요.
‘공간의 재활용’을 주제로 작업하게 되신 이유가 있을까요?
중현 일단은 이런 공간을 가진 분들이 의뢰해 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저희가 처음 했던 작업이 제로플레이스였고, 창업하면서도 오래된 건물을 새로운 개념의 ‘머무르는 공간’으로 만드는 브랜드 이미지를 가져가다 보니, 대부분이 ‘나도 이런 집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요?’ 라고 물어보세요. 의뢰인이 빈 땅만 가지고 그곳에 무언가 짓고 싶다고 하면 신축도 하죠.
경록 무조건 신축이다, 재건축이다 이렇게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도 기존에 있는 것을 없애는 부분은 신중하게 결정하는 편이죠. 그건 한번 없애면 다신 되돌릴 수 없는 거잖아요. 가능하면 어렵더라도 되살리는 쪽을 좀 더 시도해보죠.
조금 어려운 질문일 수도 있는데, 리모델링과 신축 중 어떤 것에 더 매력을 느끼시나요?
경록 대답이 조금 어렵긴 한데, 리모델링의 장점은 명확하게 있어요. 얼마 전에도 저희끼리 술 한잔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신축은 기능도, 디자인도 좋아야 하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요구하는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리모델링은 기존의 공간을 살리는 것만으로도 호기심을 갖게 되는 거죠. 기존의 공간은 그 어떤 공간이라도 다 다른 거잖아요. 신축은 스타일이나 유행이 있기 때문에 다 비슷비슷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있는 거고요.
중현 제일 큰 차이점은 ‘불편함을 이해해준다’는 것이죠. 리모델링을 했을 때,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에요. 특히 여기 크래프트 베이스의 다락방과 부엌 같은 경우, 앉을 때 불편할 수 있거든요. 더러울 수도 있고. 그런데 그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이 이해해준다는 것이 매력인 것 같아요.
이곳은 펍이죠? 리모델링 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있나요?
중현 제일 어려웠던 점은 철거에요. 건축 폐기물들을 운반해야 하는데, 여기 골목에 차가 못 들어오거든요. 그래서 크레인으로 다 떠서 올렸어요. 일곱 트럭에 걸쳐 폐기물을 퍼 올렸죠. 두 번째는 민원. 주변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요. 밤에 일 나갔다가 새벽에 들어와서 낮에 잠깐 주무시는 분들이요. 그분들에게 소음을 최소화해줘야 하고, 먼지도 안 나게 해드려야 하니까. 철거 첫날 비가 엄청 왔는데, 소박하지만 휴지랑 생활용품들을 사서 나눠드리면서 양해를 구했죠.
다른 반대는 없나요?
경록 고친다는 것 자체에 반대가 많았죠. 이곳이 아직도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있거든요. 리모델링을 한다는 것은, ‘이 집 주인은 재개발의 의지가 없다’는 의미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재개발을 꿈꾸는 주민분들은 엄청 싫어하시죠. 그런데 이 동네에 저희 말고도 고친 곳이 좀 있어서 이해하고 넘어가 주신 거 같아요.
‘공간’ 이외에 소재들도 재활용하는 것이 있을까요?
중현 되도록 남기려고 해요.
경록 눈먼고래 같은 경우에는 대문을 뜯어서 상판으로 썼죠. 또 기존에 있던 마루가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마루는 뜯어냈지만, 그 나무로 침대의 침상 공간을 만들었죠.
중현 여기에서 가장 큰 재활용은 부엌 방 위에 달린 형광등이에요. 저건 철거하다가 찾아낸, 1983년도에 만들어진 황동 기구예요. 그거 살려서 조명으로 쓰고 있어요. 최대한 살리려고 했지만, 워낙 노후 된 곳이다 보니 썩어버린 것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도 새로운 자재들은 덜 쓰고 되도록 고재들을 가져다가 썼어요.각자 특별히 애정이 가는 건축물이 있을까요? 저는 이화루애에 꼭 머물러보고 싶더라고요.
상묵 (사라졌다가 갑자기 등장) 저요?
세 분 다 한가지씩이요.
중현 각자 것 하나씩 해(웃음).
다 같이 하시는 것 아닌가요?
경록 맞아요. 다 같이 하는데, 그래도 그 안에서 책임이 있어요. 현장컨트롤을 할 수 있는 사람이요.
상묵 주제가 리사이클링과 업사이클링이라고 하셨죠? 아까 주신 질문보다 큰 얘기를 하자면…. 앞으로의 방향성이 그쪽으로 갈 것 같아요.
그 얘기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애착가는 건물 이야기부터 들어볼게요.
경록·중현 (웃음)
상묵 음, 모멘텀을 만든 눈먼고래인 것 같아요. 제주의 첫 프로젝트는 토리코티지지만, 웨딩드레스의 콘셉트를 완성하는 데 있어서 ‘제주다움’에 대한 모습이 빠져나가 있는 것이 아쉬웠거든요. 물론 귤밭도 있지만. 눈먼고래는 제주다움을 제대로 보여준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어요. 단지 과거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와 현재의 연결을 위한 현대적 가치를 담으려고 했던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고요.
경록 전 제가 디자인을 했던 창신기지가….
상묵·중현 (웃음)
상묵 창신기지의 노하우가 없었으면, 눈먼고래는 절대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예요.
경록 맞아요. 눈먼고래를 할 수 있었던 건, 운 좋게 창신기지라는 고옥을 고쳐봤었고, 토리코티지를 만들 때 제주의 공사여건을 경험했었기 때문에 가능했거든요. 그리고 창신기지는 저희의 제대로 된 첫 사무실이거든요. 그전까지는 아는 분 도움을 받아서 잠깐 호텔에도 있었고, 카레클린트 회의실에서도 있었고.
상묵 유목민 생활을 했죠.
경록 어쩔 땐, 카페에서도 일하고, 캠핑장에서도 하고.
캠핑장이요?
경록 제가 제일 먼저 회사를 그만뒀어요. 혼자 일하니까 원룸에서 일하다가 마음이 싱숭생숭하면 나가서 텐트 쳐놓고 일했어요. 거기서 사진 찍어서 둘한테 보내고, 약 올리고(웃음). 둘이 완전 부러워했죠.
상묵 ‘빨리 나와!’ 이러면서 약 올렸어요(웃음).
경록 그랬었는데 창신기지가 완성되니까 너무 좋았던 거죠. 게다가 추워지는 계절에 딱 들어갔거든요. 너무 따뜻했어요…. 세 명이 다 같이 일할 수 있어서 뿌듯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창신기지에 있을 때, 평일에는 일하고, 금요일엔 점심 먹고 두 시가 되면 모든 걸 다 접고 방 치우고 청소했어요. 금요일 저녁부터 손님을 받아야 하니까.
상묵 이불도 막….
경록 이불 빨래 맡겼던 거 다시 회수해서 세팅하고…. 그런 일도 해보면서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과 운영하는 것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제일 밑바닥에서 배운 거죠. 건축디자인을 할 때 도움도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내가 서울에서 이런 거 하고 있을지 모르셨겠지(웃음).
박 실장님 도망가신 줄 알았어요.
중현 (어디 갔다가 막 들어옴) 그럴 리가요. 저는 원래 크래프트 베이스를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제로플레이스가 뭔가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창업 전 프로젝트긴 하지만, 창업하고 3년이 지나서 저희가 제로플레이스에 관한 책을 만들었거든요.
상묵 독립출판 했어요.
중현 저희가 출판업 등록해서 실제로 책을 제작하고 ISBN(국제표준도서번호)도 받고.
경록 ISBN엔 받고 싶어서(웃음).
중현 저희가 다 직접 글도 쓰고 한 거예요. 제로플레이스는 건물을 만들고 직접 운영해보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죠. 그 책에 정말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다 담겨 있어요. 운영과정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나 노하우 같은 것들. 그거 때문에 현재 저희가 더 견고해지고, 조금 더 다른 모습으로 비춰지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묵 클라이언트와 계약할 때 선물로 드려요.
중현 계약하면(웃음)!
결국 공간에 어떤 것을 담고 싶은가요? 디자인? 철학? 강점을 두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경록·중현 철학 담당은….
상묵 철학 담당은 저예요(웃음). 건축물에 어떤 진심을 담아 아이덴티티를 몰아넣는 것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그 진심은 개인의 열망이 될 수도 있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 그 땅이 가진 기운일 수도 있죠. 저는 그 동네의 가치를 담은 공간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독창성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스테이폴리오’란 프로젝트는 그런 머무는 공간을 모아서 소개하는 건가요?
상묵 네 맞아요. 단지 머무는 공간은 아니고, 개인의 혼이 담긴 공간들이죠. 그리고 우리처럼 그 공간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그걸 발굴하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활동을 통해, 자신의 꿈의 공간이 그냥 말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진짜 실현이 된다는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스테이’라는 말이 좋네요.
상묵 저희는 그런 공간을 ‘스테이’라고 규정한 거죠. 펜션이나 게스트하우스라고 말하기 싫었어요. 고정관념이 생기잖아요. 보통 여행 가면 숙소에선 잠만 자고 오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 ‘스테이’를 이용하는 분들은 입실과 퇴실 시간을 꽉꽉 채워요. 그 공간에 대한 경험을 하는 거죠. 머무는 것만으로 여행이 되는 것, 무언가 다름의 가치가 있는 공간. 그걸 ‘스테이’라고 생각한 거죠. 일본엔 료칸이란 문화가 있잖아요. 우리나라에는 그런 것이 없어서 아쉬웠고 지랩이 그런 공간을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누릴 수 있도록 만들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죠.
스테이폴리오는 어떻게 운영되나요?
상묵 ‘픽’과 ‘매거진’, ‘프로모션’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픽’은 저희 기준에서 ‘스테이’로서 적합한 공간을 발견할 때마다 컨택해서 자료를 받고 스테이폴리오에 소개하고 보도자료를 만들어줘요. 만나지는 않고요. 보통 취재 요청 하실 때, 보도자료를 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뭐예요?’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어서. 저도 그런 경험을 했으니까요(웃음).
약간 기획사 같네요(웃음)?
상묵 네, 정확해요. 브랜드를 관리하는 에이전시라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고민이 생기면 프로모션 같은 것 생각해주는(웃음)? 그리고 ‘매거진’은 픽의 공간들 중에서 선별을 해요. 그리고 취재를 가는 거죠. 가면 환대해주시고 나름의 준비도 엄청 하세요. 같이 식사하고 대화하면서 요만큼을 취재하러 갔는데 이~만큼을 얻어 오죠. 인생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걸 다 매거진에 못 담는 것이 아쉽죠.
맞아요. 여기만 해도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이런 곳 하나 갖고 싶네요.
상묵 이 아침에 여기서 술 마시는 거 저희도 해본 적 없어요(웃음). 근데 너무 좋잖아요.
중현 취직하실래요(웃음)?
네? 되나요?
중현 저한테 이야기하세요.
나중에 연락 드릴게요. 그래서 두 분은 어떤 걸 담고 싶으시죠? 이야기가 철학적으로 흘러갔는데….
경록 (웃음) 지랩의 장점인 것 같기도 한데…. 의뢰해 주시는 분들이 ‘개인’이다 보니, 어떤 공간이든 지속가능성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본인의 삶도, 공간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잖아요. ‘스테이’를 예로 들자면, 예약률이 지속적으로 있도록 하는 거죠. 저희는 개인에게 공간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를 만들어 주려고 해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능력 안에서 브랜드를 구축하는 거죠.
중현 제가 하고 싶은 말도 이 ‘브랜드’에 관한 말이었어요. 저희가 공간을 다루지만, 실질적인 결과물이 공간에만 국한되지는 않거든요. 하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개인한테 주고 그 브랜드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저희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건물을 다 만들어 놓고, 가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조명은 무얼 사용하면 좋을지 등등 ‘색’을 입히는 과정들이 결국 브랜드에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요.
자, 그럼 이제 아까 말씀하셨던 방향성 이야기를 해주세요.
상묵 아, 큰 이야기(웃음)?
중현·경록 (웃음)
상묵 큰 얘기 한번 하겠습니다. 스테이폴리오 ‘눅설’편에 인트로로 썼던 글인데, 앞으로 ‘뉴 노멀시대’라고 하잖아요. 키워드가 또 나왔는데요.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는 시대가 왔어요. 저성장의 시대인 거죠.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고, 더 이상 결혼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잖아요.
세분 다 결혼하신 거 아녜요?
중현 다 했고, 다 아기도 있어요(웃음).
경록 (웃음)
상묵 사실 과거 어머니들의 동네나 수많은 어르신들이 살던 동네들은 욕망이 담겨있던 곳들이에요. 재개발이라고 하는 것이 그렇잖아요. 지역을 지정해놓고 전부 쓸어버리고 아파트 짓고. 욕망의 큰 덩어리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이제 그걸 다 채울 수가 없어요.
중현 왜 이렇게 장사꾼 같으냐(웃음).
저 지금 약간 홀린 것 같아요.
상묵 그래서 저는 업사이클과 리사이클에 대한 주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업사이클링은 정말 가치 있어요. 만약에 어떤 건물을 가진 어르신의 자녀가 그곳에 본인의 생각을 담아 공간을 고친다면, 그때 생기는 업사이클링의 파괴력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해요. 희소성이 있기 때문이죠. 그 공간은 어디에도 없는 거예요. 젊은 청년들이 그런 가치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면, 또 다른 모습의 서울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앞으로도 노후된 지역에 집중하시겠네요?
중현 들어오면 해야죠(웃음).
상묵 노후된 지역에 대한 관심보다는 노후된 지역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새로운 시각에 집중하죠. 나이가 어린 친구도 좋고 나이가 많은 분들도 그 시각이 깨어있는 분이라면 같이 작업하고 싶어요.
중현 어떻게 보면 저희가 하는 작업들은 저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금씩이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그들과 함께 바꿔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 같아요.
상묵 다만 아쉬움이 있다면 그것이 서울과 제주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중현 저희가 현장에 나가던, 스테이폴리오 취재를 하던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곳곳에 보석 같은 건물이 엄청 많아요.
상묵 우리 눈에 보석 같은 거죠(웃음).
경록 부산에 갔을 때, ‘야~ 이거 다 일거린데’ 하면서 탄식하고(웃음).
중현 부산만 해도 그런 공간이 많은데, 콘텐츠가 없는 지역에서는 고치면 좋을 것 같은 건물이 있어도 과연 ‘지속성이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 공간이 유지가 될 법한 지역, 그러니까 서울이나 제주 같은 곳에서만 작업해야 하나, 라는 깊은 고민이 있죠.
살펴보니 머무는 공간에 관심이 깊으신 것 같아요. 사무실 설계 작업도 작업하시는 건가요?
상묵 오피스는…. 그냥 오피스는 절대 안 할거고요.
중현 하나 의뢰가 들어오긴 했는데, 저희끼리 아직 진지하게 이야기를 안 해봤어요.
경록 오피스도 ‘스테이’의 관점에서 할 수 있는 거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요.
마지막으로 영감은 어디에서 받으시나요?
경록 좀 즉흥적인 것 같아요. 공간마다, 클라이언트마다 달라요. 여기 크래프트 베이스로 예를 들자면, 마당 바닥이 바둑판 모양이잖아요. 원래 전부 콘크리트로 된 방이었어요. 각 방마다 사람들이 살았던 쪽방촌이었거든요. 그 공간이 가진 의미를 최대한 살리고 싶었지만, 콘크리트건물이 불법건축물이어서 철거를 해야 했죠. 그래도 최소한의 벽이라도 활용하려고 했는데, 철거 과정에서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허물 수밖에 없었던 거죠. 현장감독이었던 박 실장이 판단을 잘해주신 게, 완전히 철거하지 않고 저런 흔적을 남겼잖아요. 다른 사람은 설사 몰라주더라도 저희에겐 의미 있는 거거든요. 이렇게 현장에서 영감을 얻을 때도 있어요. 날이 따뜻해지면 저 공간에도 테이블을 놓을 거예요. 이것도 공간적인 리사이클링 아닐까요?
지랩이 재활용한
머무는 공간들
눈먼고래
백 년이란 시간을 버텨온 제주 전통돌집에 두 마리의 고래가 파묻히다. 제주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감성스테이.
A.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조천7길 19-12
T. 010 3757 5560
H. blindwhale.co.kr
이화루애
1950년대에 지어진 언덕 위의 작은 집,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채 우리 만의 비밀 공간으로 재탄생하다.
A. 서울시 종로구 낙산성곽서길 107-32
T. 010 5904 5540
H. ihwaruae.com
제로플레이스
모든 것을 내려놓고 0으로 돌아가기. 최병금, 이시영 가족이 25년간 일군 낡은 식당을 창의적인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머무는 공간으로 매만졌다.
A.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일락골길 367-19
T. 041 688 5550
H. zeroplace.co.k
창신기지
창신동 쪽방촌에 불을 밝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의 의미를 되새겨 만든 독채 한옥 렌탈하우스.
A. 서울시 종로구 종로48길 31
T. 010 7136 5550
H. creativehouse.co.kr
에디터 정혜미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