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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랐던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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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랐던 테이블
꽃잎을 빻아 반찬이라 올리던 넓적한 돌담 위, 혹은 공기놀이하던 교실 뒤편 마룻바닥. 모든 이들은 각자 자신만의 테이블을 마음속에 품어왔다. 그러니까 이건, 아무도 몰랐지만 굳건히 우리의 테이블이 되어준 것들의 이야기.
01 포장마차 가판대
매콤한 떡볶이와 몰랑몰랑한 어묵 한입이 끌리는 날에는 서서 먹는 포장마차 가판대보다 좋은 곳이 없다. 이따금 소주, 맥주 등 주류도 함께 파는 곳이 있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볍게 들리기 제격이다.
추천대상 <내 이름은 김삼순> 속 포장마차 데이트를 꿈꾸는 사람들
TIP 포장마차라고 가격을 무시하지 말 것. 어느새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있는 금액을 보고 놀랄지도 모른다.
02 비행기 간이 테이블
구름 위, 딱 한 사람만을 위한 작은 간이 테이블. 무릎 위로 책상을 내려서
맛있는 기내식도 먹고, 그리운 이에게 엽서를 쓰기도 한다. 달랑달랑 위태
로워 보여도 테이블 역할은 톡톡히 해내는 것이 기특하다.
추천대상 여행을 떠나 비행기에 앉아있는 모든 이들
TIP 이·착륙 시, 테이블을 꺼내 놓는 것은 금지다.
03 바비큐 그릴통
가족끼리, 친구들끼리, 혹은 연인끼리 단기로 떠난 짤막한 여행 속 주인공은 단연 ‘바비큐 타임’이다. 두런두런 고기가 오가는 온정 가득한 그릴 테이블만큼 사랑받는 테이블은 없을 것이다.
추천대상 여행을 떠나 고기 구워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TIP 식기는 사용 직후 바로 닦아 두지 않으면 금세 찌들어 버린다는 것을 잊지 말 것.
04 화장대
화장대 테이블 위로 언제 샀는지 기억도 흐릿한 화장품을 옹기종기 모아두고, 마법 소녀들처럼 변신하는 곳. 내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에 들면 바쁘더라도 화장대 앞에서 셀카 한 장 절대 잊지 않기.
추천대상 하늘 아래 같은 발색은 없다고 믿는 사람들
TIP 알코올 솜을 이용하여 화장대 구석구석 잘 닦아 피부 위생도 지키기.
05 복도 신발장
고등학교 3학년, 죽었다 생각하고 공부만 하라는 엄마, 선생님의 말씀만 믿고 계절감도 없이 그렇게 살았던 시절. 졸려서 얼굴이 책상에 고꾸라지는 날에는 복도 밖으로 나가 신발장 앞에 일어서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다. 어쩜, 창밖 풍경이 그렇게도 그림 같던지.
추천대상 격려해 마지않는 고3 수험생들
TIP 경고! 창밖 풍경만 보다가 한 시간이 사라진다. 일명, 강제 타임워프.
06 아이스 박스
록·재즈 페스티벌이나 계곡에서 급하게 쓸 수 있는 간이 테이블이 필요할 때, 아이스박스 하나로도 탄탄한 테이블이 탄생할 수 있다. 캔맥주와 과일 잼을 올려두는 것은 물론 편지를 쓰거나 사진을 찍을 때 평평한 받침대도 되어준다.
추천대상 급하게 테이블이 필요한 아이스박스 소지자
TIP 물건을 죄다 올려둔 상태에서 물건을 다시 꺼내야 할 때 조금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07 돗자리 모든 영역
볕 좋은 어느 봄·가을에 콧바람 쐬러 간 소풍날 돗자리 위는 안락한 테이블이 되어준다. 뒹굴 거리다 김밥도 먹고 책도 읽기 안성맞춤. 돗자리 안 손닿는 모든 영역이 테이블이 되는 신기루를 맛볼 수 있다.
추천대상 소풍 가서 한량이 되는 것을 즐겨 하는 이들
TIP 돗자리가 날아가지 않도록 끝자락에 신발 올려두기는 필수!
08 깨끗한 길바닥
여행지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울 때 가끔은 그저 길 위해 철퍼덕 자리를 잡고 그 풍경 안에 빠져들어 보는 것도 좋다. 거리 위의 사람들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면서 한 입,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하면서 한 입.
추천대상 남의 시선 눈치 보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들
TIP 길냥이, 길멍이에게도 나눔의 기쁨을!
09 창틀
호젓하게 보름달이 하늘을 가득 채운 어느 날에는 창틈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소원을 빌어보기도 한다. 만화 주인공 영심이가 늘 달님을 부르며 기도를 했듯, 줄리엣이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듯 그렇게.
추천대상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싶은 게 많은 사람들
TIP 신종 층간 소음이 될 수 있으니 소원은 속으로 빌기.
10 침대 평평한 구석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노곤한 몸으로 침대에 누워 일기를 쓰다 보면 하루가 완벽히 정리된다. 가끔은 새벽 두 시 특유의 감성에 빠져들어 보는 것도 좋다.
추천대상 침대 밖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TIP 나만의 흑역사 대생성의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지할 것.
11 피아노 거치대
뚱땅뚱땅. 어수룩하게나마 피아노를 치며 악보 위로 나만의 높은음자리표, 쉼표, 도돌이표를 그려간다. 펜과 악보 하나가 간신히 올라가는 거치대 위는 수많은 피아니스트들만의 테이블이 되어왔을 것이다.
추천대상 피아노를 사랑하는 사람들
TIP 피아노는 그 위에 자꾸 무거운 것을 올려두면 쉽게 고장 나고 만다.
12 신문지
정신없이 이사를 치른 뒤 방구석에 신문지 깔고 앉아 먹는 자장면과 탕수육은 말 그대로 꿀맛. 이삿날 하면 중국음식, 중국음식 하면 이삿날. 사용한 신문지로 자장면 그릇을 칭칭 감싸는 데 쓰면 일석이조, 일거양득
추천대상 이사 예정인 사람들
TIP 아무리 짬뽕이 좋아도 이사엔 무조건 자장면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
13 스탬프 테이블
내일로 여행을 떠나 도착하는 기차역에 작게 비치되어 있는 스탬프 테이블. 가방에 고이 간직해 다니는 수첩을 열어 각 지역을 특색 있게 표현한 도장을 꽝 박는다. 여행가보다 탐험가가 된듯한 느낌은 덤.
추천대상 모든 내일러들
TIP 수첩을 무조건 평평하게 피고 도장을 꾹 눌러야 한방에 잘 찍힌다.
14 부엌 작은 공간
일요일엔 내가 바로 우리 집 요리사! 부엌에서 지지고 볶는 공간이야말로 진정 내가 요리사가 되는 테이블이다. 페페로치노, 치킨스톡 등 외래어로 무장한 요리 재료를 써 보고 싶지만, 결국 내가 만드는 건 김치볶음밥.
추천대상 요리를 도전하는(X) 사랑하는(O) 모든 사람들
TIP 주의! 셰프 놀이 하다가는 갑자기 날아오는 엄마의 등짝 스매싱.
15 팝콘 판매대
영화관 구석, 사이 좋게 콤보세트가 손에서 손으로 오가는 팝콘 판매대. 영화를 보기 전 신성하게 치르는 하나의 의식이랄까. 간혹 팝콘 대신해서 버터오징어, 핫도그, 나초를 사는 사람들도 있다.
추천대상 영화를 볼 때 입이 심심한 사람들
TIP 무서운 영화 볼 때는 팝콘 비가 내릴 수 있다.
16 묘비 앞
이 세계를 등지고 떠난 이를 찾아가 그가 생전 좋아했던 음식과 수수한 꽃 한 다발을 선물하는 것. 보이지 않지만 눈을 마주하고, 들리지 않지만 목소리를 듣는 그곳이야말로 그리움 가득한 대화가 오가는 테이블일지도 모른다.
추천대상 사랑하는 누군가가 그리운 사람들
TIP 깨끗함과 정갈함을 잃지 말 것.
에디터 이자연
일러스트 배중열